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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진 선장의 신대항해시대 5
김승진 선장의 신대항해시대 5
  • 글 사진 김승진
  • 승인 2018.11.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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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끝 지브롤터(말라가~라스팔마스)

태양의 해안(Costa Del Sol) 말라가Malaga, 강렬한 태양이 주는 풍부한 일조량과 지중해가 준 온화한 기후는 올리브와 포도를 살찌운다. 풀 비린내 나는 독특한 향의 올리브오일이 요리에 뿌려지면 입 안 가득 행복이 퍼진다. 달고나 향이 강한 달콤한 디저트 와인은 홀짝 거리며 밤새 수다를 떨기에 좋다. 약 800년간의 이슬람정복으로부터 벗어난 15세기 동양의 풍요를 구하러 떠난 항해(대항해시대)에서 얻은 뜻밖의 횡재는 이 도시를 흥청거리게 했다. <한국에서의 학살>을 그린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앞에서 역사의 소용돌이를 회상해 본다.

궁전보다 핫커피
“우~씨. 되게 춥다.”
동사자가 발생할 정도의 이상 한파가 유럽을 덮치던 즈음 우리는 그라나다에 있는 차디찬 아람브라 궁전의 입구에 섰다. 한겨울에도 영상의 기온을 유지한다던 그라나다에 뜻밖에 눈발이 날린다. 입장객이 적어 예약 없이도 구경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궁전 안으로 들어선다. 영하 3도, 궁전의 이름다움보다는 가판대의 따스한 커피가 마음에 와 닿는다. 양손을 겨드랑이에 넣고 어깨를 움츠린 채 종종 걸음으로 궁 안 풍경을 빠르게 스쳐 지난다.

“촬영만 하려고 하면 출연자들이 없어져서 못하겠어요. 천천히 좀 가세요.”
이번 항해를 다큐로 제작하고 있는 주 피디의 투정에도 크루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빠르게 달아난다. 넓은 궁전을 보는데 겨우 두 시간밖에 안 걸렸다. 서둘러 레스토랑을 찾아 추위를 녹이고 안도하며 그라나다소풍을 마쳤다. 마리나로 돌아오자 따스한 바다공기가 마음을 녹인다.
“우와 역시 바다야. 여긴 안 춥네?”

한국인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요트 주변을 기웃거린다. 태극기가 반가웠던 모양이다. 코와 턱에 수염을 수북이 기른 채 스페인 여행 중이던 대학생 김영광 군이다. 우연히 만난 그는 우리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하게 됐었고 급기야 다음 기항지인 카나리제도의 라스팔마스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요트여행의 기대와 설렘이 그의 얼굴에 가득하다.
출항을 위해 배를 정비하고 있을 오후 무렵 잘생긴 스페인 남자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 남자 한국어가 유창하다.
“보내온 물건이 말라가에 도착은 했는데, 세관에서 시간이 좀 걸려요.”
“그래요? 할 수 없죠. 다음 기항지도 스페인 이니까 택배로 보내 줄 수 있나요?”
“네, 가능하죠.”

실은 한국에서 식료품 등의 보급품을 받기 위해 말라가의 한인 민박집 주소를 빌렸다. 한국인 부인은 잠시 한국에 가셨고, 남편 후안씨가 우리가 있는 부둣가로 찾아 온 것이다. 알고 보니 후안 부부는 한국 TV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잠시 후 떠난다고 하자 그가 아쉬워한다.
“여기까지 와서 말라가도 제대로 못보고 가면 어떻게 해요.”
“그건 그래요.”
“내가 안내해 줄 테니 출발을 연기 하는 건 어때요?”
그의 간절함을 받아들여 출항을 하루 연기하기로 했다. 1박 2일 후안 씨의 말라가 투어가 시작된다. 수영장이 있는 고층빌딩 옥상에서 항구도시 말라가 도시풍경 감상하기, 전통 있는 츄러스 맛보기, 말라가 와인 시음하기, 허름한 맛집에서 저렴하고 맛있는 식사하기 등 현지인의 설명이 곁들여진 오후 반나절 투어는 완벽했다.

“오늘 출항 안하길 잘했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한국사람이니까 해주고 싶어요. 다른 나라 사람이면 절대 안 해요.”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스페인 사람이다. 다음 날 아침 약속대로 후안 씨는 자신의 승합차를 타고 부두에 나타났다. 우리일행을 납치한 차는 굽이굽이 산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몇 개 추가된 청명한 날씨는 여행의 흥을 더한다. 오늘 행선지를 설명하던 후안 씨가 묻는다.
“카피타노 시골카페에서 아침커피한잔 어때요?”
“좋지요. 우리 그런 거 무척 좋아해요. 하하.”

현지인이 안내하는 투어
차를 세우고 들어간 조그마한 카페는 간판, 인테리어, 손님들 그리고 흐르는 시간까지 완벽한 시골이다. 커피를 내리고 있던 후덕한 인상의 주인이 갑자기 들이닥친 여러 명의 손님에 살짝 당황하는 눈치다. 마치 옛 사진을 보는 듯 시골풍경의 구성은 완벽 했다. 작고 둥근 탁자 위에는 큰 페트병의 올리브오일과 꿀 병이 놓여있다. 말라가 사람들이 자랑하는 특산품이다. 그들의 자부심을 몇 병 구입하고 흐뭇한 기분으로 시골길을 달린다.

후안 씨가 친구의 와이너리라며 한적한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우리밖에 없었고 문은 닫혀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자 대머리에 인상 좋은 주인 보데가 씨가 나타나 환대한다. 쉬는 날인데도 친구인 후안 씨의 부탁으로 달려와 준 고마운 친구다. 우리 일행들만을 위한 특별한 가르디아Grardia 와이너리투어가 시작된다. 어두운 와인 창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미줄이 쳐진 오크통들이 줄지어 놓여있고 기분 좋은 쿰쿰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보데가 씨가 가늘고 긴 와인 국자를 오크통에 넣어 잘 숙성된 갈색 와인을 떠낸다. 감성을 자극하는 오크통 시음, 이런 분위기에 어떤 맛인들 안 좋을 수 있으랴. 오묘한 달고나 향과 와인의 절묘한 조화다. 200년 전통의 가르디아 와인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인증서를 받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주인장의 친절과 분위기에 취해 2상자나 구입해 버렸다. 대량쇼핑 요트여행의 장점이다. 보데가 씨의 가족과 아름다운 정원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낸 우리는 점점 무거워지는 차를 달려 하얀 마을로 향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길마다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에 일행들이 감탄하며 소리친다. 후안씨도 기분 좋아한다.
“관광객들이 거의 가지 않는 숨겨진 곳을 보여 드릴게요.”
“와우, 고맙습니다. 우린 행운이네요”

기대에 부풀어 도착한 곳은 산꼭대기에 형성된 하얀 마을 프리힐리아나Frigiliana다. 비수기인데도 관광객이 제법 보이는 것으로 보아 숨겨진 곳은 아닌듯하다. 산꼭대기에 빼곡히 지어진 집들은 온통 흰색으로 칠해져있다. 유럽풍이 아니고 둥근 모스크를 포함한 아랍풍의 건축물들이다.
시선을 강탈하는 의외의 아름다운 풍경에 감동하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지만 궁금증이 폭발한다. ‘왜 하필 산꼭대기?’ 사실 이곳뿐만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시실리 섬 등 많은 곳에 이와 유사한 집성촌이 있다. 8세기경부터 15세기경까지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를 점령하고 살았던 이슬람 사람들은 스페인의 레콩키스타처럼 유럽인들의 주권회복운동에 밀려 도망치듯 피해 산꼭대기에 집성촌을 만들어 생활했다고 한다. 지금은 대부분 관광지화 되어 있다.

말라가항을 떠나다
스페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플라멩코다. 기대하며 들어선 작은 공연장 관객은 대부분 백발의 신사 숙녀들이다. 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들어서자 장내가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하더니 백발의 신사 분들께서 의자를 뒤로 밀어 자리를 만들고 여성 크루인 영아씨를 이끌어 앉히며 환영한다. 그 모습을 보며 웃고 있는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엔 할머님들께서 내 팔을 잡아 자신의 테이블에 앉히고 까르르 웃으며 좋아한다.

노인정 같은 공연장에 흩어져 자리한 우리 크루들은 기대했던 섹시한 플라멩코 춤이 아닌 애절한 스페인 전통노래만 들어야했다. 오늘은 연세 지긋하신 박주용 선장의 날이다. 외모로 보아 자신들과 비슷한 세대라 여겨졌는지 관중들의 관심의 대단하다. 급기야 노래하던 가수로부터 볼에 키스세례까지 받는다.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박선장님 신났다.

“나는 안 가려!”
“제가 봐도 그러신 것 같아요. 히히.”
말라가항에 붉은 햇살이 비춘다. 후안 씨 덕분에 제대로 말라가를 즐긴 우리는 미루어진 출항을 서둘렀다. 말라가의 올리브오일과 꿀, 가르디아 와인을 선실 밑바닥에 정성스레 수납하고 정박 줄을 푼다. 부두에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김영아 선생이 손을 흔들며 멀어진다. 지중해 마지막 여성 크루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제 타노아와 아라파니에는 남자들만 남았다. 선실에서 크루들의 말 수가 적어진다.
한동안 다른 항로를 항해하던 이준호 선장의 라르고호가 말라가 서쪽의 지브롤터 만에 먼저 도착해 있다는 전갈을 받았다. 1월 22일 깜깜한 새벽 거대한 바위산이 인상적인 지브롤터 만에 들어섰다. 라르고호와 합류하며 또다시 세 척이 되었다. 불과 이삼백년 전 까지만 해도 아메리카 대륙에서 약탈해온 스페인 보물선을 가로채려는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의 해적들이 들끓던 지역이다.

홍정우 군의 기발한 음식으로 푸짐하게 차려진 저녁식사를 마치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노래 소리가 들린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라르고 호에 동승중인 엄태현 군과 채선기군이 케이크를 들고 선실로 내려오며 축하노래를 하고 있다. 깜박 잊고 있었는데 크루들이 섬세하게 내 생일을 기념 해준다. 이어서 그들이 제작한 동영상에는 크루 전원의 축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감격스러워 하마터면 무너질 뻔했다. 내가 눈치 채지 못하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이벤트를 준비해준 사나이들에게 감사한다. 술에 마음을 적신 우리는 밤새 노래하고 춤추며 야단스럽게 놀았다.

남자들의 신대항해시대
2017년 1월 23일, 북위36도70 서경05도23, 지중해의 끝자락 지브롤터를 나선다. 525년 전 콜롬버스가 처음으로 갔던 대서양 항로를 이번엔 우리가 간다. 하지만 항해목적은 확연히 다르다.
대서양에 들어서자 강한 맞바람에 파도가 높아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력한 폭풍이 바다를 뒤집기 시작한다. 이내 수평선이 높은 파도에 가려지고 바다가 좁아진다. 한동안 그럴 것이다. 아라파니 2호는 아프리카의 모로코로 피항을 결정했다고 알려온다. 타노아는 계획대로 항해를 계속한다. 고생스러울 거라는 경고에도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항해에의 의지를 불태우던 학생 김영광군이 몹시 당혹해한다.

“저 이배에서 내리면 다시는 배 안 탈 것 같아요.”
“그쪽은 경사져서 불편하니까 이쪽으로 내려와 앉아, 편할거야.”
“거기까지 갈 자신이 없습니다.”
내가 안내한 곳은 불과 2미터 앞의 맞은편 벤치였다. 영광군은 눈을 꼭 감고 중얼 거리기 시작한다.
“오~ 주여, 어찌 저에게 이렇게 피할 수 없는 시련을 주시나이까?”
콕핏에 앉아 윈치를 부둥켜안고 간혹 날아오는 파도를 뒤집어쓰는 영광군이 안쓰럽다. 그 모습에 깔깔 거리는 우리를 태운 타노아호는 거친 대서양을 힘차게 남하하고 있다.

이프리카대륙 서쪽편 카나리제도 라스팔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뒤바람에 올라타며 안정적으로 항해하고 있다. 라스팔마스 도착 하루 전 요트항해에 적응해 움직임이 자유로워 진 영광군이 슬며시 마음을 꺼낸다.
“선장님, 저 계속 타고가면 안될까요? 요트에서 내리기 싫어요. 여기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쉬워요.”
“…”
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툭 떨어진다. 바다가 두려움에 떨던 젊은이를 감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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