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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즐기는 남호주의 크리스마스 축제
11월에 즐기는 남호주의 크리스마스 축제
  • 글 사진 이두용
  • 승인 2018.10.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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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에서 맞이하는 여름의 뜨거운 열정

11월에 들면 계절은 겨울의 문턱을 넘는다. 지난 10월 18일 이미 설악산에 첫눈이 내렸다. 우리나라의 계절은 구분이 명확한데 온기는 제주도에서, 한기는 강원도에서 시작한다. 올여름 더위가 심했던 터라 겨울 추위도 벌써 걱정이다. 이럴 땐 반대편 계절을 사는 나라가 부럽다. 11월, 세계에서 가장 먼저 크리스마스 축제를 여는 남호주 애들레이드. 첫눈 소식을 듣고 핫한 축제를 기다리는 그곳이 떠올랐다.

가장 빠른 크리스마스 축제

세계 각국의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퍼레이드를 이어간다.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와 호주의 계절이 정반대라는 건. 우리가 봄을 맞고 여름이 되면 호주는 가을을 지나서 가장 추운 겨울이 된다. 지금처럼 11월이면 우리는 가을의 중심에서 겨울로 접어들지만, 호주는 여름의 문턱을 넘어 가장 뜨거운 계절이 시작된다.

행렬의 종착 지점 무대에서 합창단이 캐럴을 부르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계절이 반대인 것도 놀라운데 호주 남쪽에선 11월에 대규모 크리스마스 축제가 열린다. 남호주의 주도(主都) 애들레이드Adelaide에서 펼쳐지는 이 행사는 크리스마스 페전트Christmas Pageant라는 이름으로 1933년에 시작됐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지만, 올해로 86주년에 이르는 세계적인 축제다.

한국은 이미 때 이른 한파가 한 번 지난 터라 비행기에 오르면서 따뜻한 나라를 떠올렸다. 10여 시간 뒤 남호주에 도착하면 반소매 옷을 입고 인증샷을 찍을 생각이었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사진을 전송해서 자랑하려고.

하지만 도착한 날은 생각보다 쌀쌀했다. 여름이라더니 계절보다 내가 앞서 도착한 것 같다. 한국에서 입고 간 긴 소매 옷에 재킷까지 꺼내서 걸쳤다. 인증샷은 일단 실패. 상상은 ‘한여름 크리스마스’였는데 축제 당일엔 새벽부터 비까지 내렸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커다란 인형의 품에 소녀들이 앉아서 행진하고 있다.

잔뜩 껴입고 행사가 열리는 거리로 향했다. ‘혹시 열리지 않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도 됐다. 하지만 기우였다. 행사의 명성을 섣불리 봤다. 멀리서부터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불고 날씨가 찬데, 하나둘 모여드는 사람들의 복장은 드레스에서부터 턱시도, 애니메이션 주인공 복장 등 파티에 가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이 축제가 신기한 건 전 세계가 주목하는 거대한 행사지만 일 년에 한 번, 딱 두 시간만 열린다는 것이다. 다양한 복장과 세트, 소품으로 꾸민 팀들이 이른 아침 정해진 곳에서 출발해 두 시간 동안 행진을 하고 종착지 행사장에서 짧고 굵은 파티를 하고 마친다. 눈으로 보기 전까지 상상도 되지 않는 행사다.

행사가 열리는 거리에 도착하니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과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길 안쪽은 행렬이 지날 수 있도록 경찰 통제 하에 퍼레이드 라인을 만들어 놨다. 예비 행사로 곳곳에서 여러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좀 전까지 쌀쌀하더니 갑자기 심장이 뛰면서 몸이 달아올랐다.

붐붕가 호수의 분홍빛은 실제로 보기 전까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거리를 수놓는 두 시간의 기적
오전 9시 30분이 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여덟 마리의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산타가 등장했다. 마치 놀이공원의 세트를 보는 기분이다. 산타가 손을 흔들자 축제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같이 손을 흔들며 반긴다.

뒤를 이어 세계 각국의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춤을 추며 등장했다. 자신의 나라에서 가져온 악기를 연주하며 행렬을 따르는 사람도 있다. 인도나 중국, 태국 등 아시아 전통의상도 보이는데 한복을 입은 행렬은 없었다. 예상했지만 조금 아쉬웠다.

내가 이곳을 찾았던 행사는 2016년이다. 이때는 170개 팀이 퍼레이드를 했다. 올해는 172개 팀이 참여한다고 한다.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밴드와 댄스팀, 영화·동화·드라마 등을 연출한 팀 등이 행렬을 이어간다. 두 시간 동안 행렬이 이어지다 보니 어디서 관람하든 한 편의 영화를 보듯 계속 새로운 팀이 눈앞을 지난다.

호수가 깊지 않아서 중심부까지 걸어서 갈 수도 있었다.

“Mom, Look over there!(엄마 저기 좀 봐요)” 한 꼬마가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손가락으로 거리를 가리켰다. 환호하는 인파 속에서 꼬마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스타워즈>였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만 봤던 우주선이 연기를 내뿜으며 거리 위를 달렸다. 그 뒤로 영화 속 주인공인 다스베이더와 제다이, 요다 등이 관람객들과 악수하며 걸어왔다.

곳곳에서 아이들이 아스팔트 바닥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깨끗하기로 소문난 호주지만 이날 하루는 거리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어른들도 종종 눈에 띈다. 그림 그리기에 열심인 아이들 틈으로 들어가 나도 바닥에 산타클로스와 사슴을 그렸다. 금세 내 주위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You know, What it is?(너희들 이게 뭔 줄 아니?)”

“Yes, it is Santa Claus.(네, 산타클로스요.)”

같이 그림을 그리면서 아이들과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부모들도 근처로 다가와 내가 그린 그림을 사진으로 찍기도 했다. 괜히 우쭐해졌다.

도착지에 가보니 무대가 세워져 있고 합창단이 캐럴을 부르고 있다. 도시를 울려 퍼지는 캐럴과 머리 위로 쏟아지는 형형색색의 종이가 진짜 크리스마스 축제 열기를 만들어 준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절대 깨고 싶지 않은.

가장 유명한 곳은 사실 중심부에 에어호수다. 하지만 물이 모두 말라 있었다.

분홍색 호수가 실제로 있다고?
축제에 참여하면서 내내 궁금했던 게 있다. 이 많은 인파와 행렬, 화려한 무대와 세트가 두 시간 뒤에 어떻게 될까. 어디서 왔는지 모를 정도로 갑자기 행렬이 시작된 것에 놀랐듯, 사라지는 것도 똑같았다. 마치 마법이나 기적 같았다. 거리를 수놓은 치장과 도시에 울리던 캐럴도 사라지고 언제 축제가 열렸었나 싶었을 정도로 평소의 주말로 돌아갔다. 이것 역시 극적인 행사를 눈으로 보고 두 시간 뒤의 고요한 반전을 체험해야 믿는다.

평소에도 사람이 몰린다는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혹시 그곳에는 조금 전 축제의 무대 의상을 입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정말 감쪽같이 사라졌는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일상복을 입고 주말 오후를 즐기러 나온 사람 같았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크리스마스 깜짝 이벤트라고 하는 게 좋을 정도. 올해는 오는 11월 10일 토요일 아침 9시 반에 열린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크리스마스 축제(www.cupageant.com.au)를 보고 싶다면 남호주 애들레이드로 날아와 보길 바란다.

축제가 마치고 바로 내륙으로 차를 돌렸다. 분홍색 호수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 분홍색 호수가 여럿 있지만, 호주가 가장 유명하고 크다. 호주에만도 여러 개의 분홍색 호수가 있다고. 처음 도착한 곳은 애들레이드에서 130km 정도 떨어진 붐붕가 (Bumbunga)호수다. 낯선 여행자에게 호주의 마법사가 선물한 기적 같은 곳이다.

내륙을 여행하다 보면 자주 만날 수 있는 에뮤Emu는 타조와 닮았다.

‘뭐 얼마나 핑크빛이겠어’하고 갔다가 “헐!”을 외친다. 넓은 호수에 진한 분홍빛 물감을 풀어 아름답고 오묘한 연분홍색을 만든 느낌이 든다. 독일에서 왔다는 한 친구는 수정처럼 결정이 생긴 분홍색 소금 덩어리를 호수에서 들고 나왔다. 몇몇 사람들은 호수의 안쪽까지 들어가 있었다. 물이 깊지 않고 호수 중간까지 소금 결정으로 길이 나 있어 물 위를 걷는 듯 호수 곳곳을 거닐 수 있었다.

마을 주변에는 과거의 번성을 자랑하듯 25만 개가 넘는 구멍이 있다.

소금 호수가 분홍색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은 물속에 있는 박테리아의 영향이라고 한다. 물맛은 생각보다 짜지 않았다. 요르단과 이스라엘 사이에 있는 사해에서 비슷한 소금 결정을 보고 물맛을 봤던 기억과 교차한다. 사해의 물은 짠 정도가 지나쳐서 쓴 느낌이 들었다. 붐붕가의 물은 바닷물보다 덜 짠 느낌이다. 두 시간이면 사라지는 크리스마스 축제처럼 분홍색 호수도 보기 전엔 믿기 힘든 풍경이다.

내륙으로 내몰린 호주 원주민 에보리진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살고 있다.

우주로 떠나온 듯한 보석마을
붐붕가 호수에서 10시간가량 달려서 아웃백Outback 남호주 안쪽으로 들어왔다. 국내에선 한 외식 브랜드 이름으로 알고 있지만, 호주의 광활한 사막 지역을 아웃백이라고 부른다. 호주의 아웃백은 상상보다 훨씬 넓다. 호주의 국토가 한반도의 34배에 달하는데 대부분 도시는 바다와 인접한 가장자리 땅에 있다. 내륙으로 향할수록 사람도 거의 살지 않고 황무지에 가까운 땅이 많다. 곳곳에 있는 마을에는 도시에서 내몰린 호주 원주민 에보리진Aborigine이 터전을 만들어 살고 있다. 이들 마을 중엔 외부인의 출입이 불가한 곳도 여럿 있으니 여행 전에 정보를 얻는 게 좋다.

남호주 아웃백에서 추천할만한 곳은 단연 쿠버 페디Coober Pedy다. 이곳은 보석 중 하나인 오팔의 세계 최대 생산지다. 덕분에 아웃백 오지에 있어도 자동차를 이용해 방문하는 사람이 많다.

쿠버 페디의 첫인상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마을이었다. 차로 한 바퀴 도는 데 20여 분의 작은 마을. 거리를 걷는 사람이 몇 명 없었다. 이 마을의 비밀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데 있다. 현재 3500명 정도의 사람이 살고 있지만 대부분 더그아웃Dugout이라는 지하 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더위 때문에 과거 오팔 광산인 지하에 조성된 교회, 이곳의 명소 중 하나다.

연중 8개월 정도 한낮 기온이 평균 35도, 최고 47도까지 올라가는 건조지역이다 보니 대부분 사람이 땅 밑 주택에 살고 있다. 이곳에 며칠 머물면서 여러 호텔에 묵었는데 많은 숙소가 땅속에 있었다. 과거 오팔 광산을 현대식으로 개조해 만든 것이다. 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했지만, 호텔 주인장은 “이곳은 연평균 17도 정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쾌적할 뿐 아니라 음식이나 와인 보관에도 좋다”고 자랑했다.

쿠버 페디 거리에는 과거 SF영화에 사용했던 소품도 여럿 있었다. 이곳 풍경이 워낙 독특한 데다 주택을 지은 구조도 특별해서 우주의 행성을 다룬 영화 촬영장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내가 머물던 숙소 앞에도 불시착한 듯한 우주선 모형이 있었다. 크기도 모양도 워낙 실제 같아서 올라타기만 하면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았다. 마을 곳곳에서 영화에 사용한 듯한 공상과학 소품을 볼 수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서 매일 할리우드 세트장을 거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쿠버 페디의 과거 명성을 보여주는 낡은 장비들, 이젠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많다.

쿠버 페디는 원주민 언어로 ‘구멍에 사는 백인’이라는 뜻이다. 100년의 세월 동안 번성과 쇠락을 거치며 전 세계 오팔의 65%를 생산하는 산지가 됐지만 한때 수만 명이 거주하며 융성했던 도시는 명성만 남기고 현재는 고요한 마을이 됐다. 마을 주변에는 과거의 번성을 자랑하듯 25만 개가 넘는 구멍이 있다. 모두 오팔을 채굴했던 광산이다. 구멍마다 수직갱도가 빚어낸 흙무덤이 솟아있어 진짜 지구가 아닌 다른 별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특별한 호주를 경험하고 싶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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