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진 선장의 신대항해시대4
김승진 선장의 신대항해시대4
  • 글 사진 김승진
  • 승인 2018.10.2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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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아레스해(스페인 이비자~발렌시아~말라가)

우리와 비슷한 쌀이 있어 친근한 도시 스페인 발렌시아, 빠에야(볶음밥)가 유명하다하여 주문했으나 소금 범벅이라 먹기 힘들었던 추억이 있다. 미식의 도시답게 전통시장엔 염소두개골, 염소 골을 비롯해 다양한 식재료를 팔고 있어 생활감이 풍성하다. 바쁘게 길가는 사람 붙잡아 놓고 맥주를 억지로 대접하는 친절한 변두리 촌놈들 “우리는 스페인이 아니야 카탈루냐야 카탈루냐.” 떠나는 내 뒤통수에 이런 말 던지지만 분리독립 운동엔 소극적인 소심하며 현명한 사람들이다.

겨울 바다 항해
한겨울 지중해 영상의 기온이지만 체감온도는 제법 춥다. 1월 9일 잿빛 하늘아래 이베리아 반도로부터 북서풍이 강하게 불어온다. 어느덧 항해에 익숙해진 크루들과 함께 바람과 파도를 마주하고 날카롭게 깎으며 스페인의 발렌시아 항으로 다가간다.

“육지가 가까워지니 파도가 낮아지는 구나…. 자, 들어가 볼까? 입항준비!”

명령이 떨어지자 모든 크루들은 일사분란하게 휀더(선체를 손상 시키지 않기 위해 고안된 고무로 된 풍선 모양의 충격흡수제)를 설치하고 정박용 로프를 매어 손에 든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인다. 짧은 기간이지만 거친 바다는 이들을 훌륭한 선원으로 만들었다.

이중으로 육중하게 설치된 높은 방파제를 돌아 항구로 들어서자 마리나 입구 우측에 방문자를 위한 긴 폰툰(정박시설)과 관리동 사무실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입항수속을 한다. 요트의 동선을 계산한 매우 인상적인 설계다. 대부분의 마리나는 입구에서 깊숙한 위치에 들어가야 클럽하우스 있는 경우가 많다. 수속을 마치자 고무보트로 앞장서며 접안할 장소를 안내하고 정박까지 도와준다. 친절한 마리나 직원들 덕분에 겨울 날씨의 음산한 기운을 한방에 날리며 기분 좋게 스페인에 도착했다. 이때 맞은편에서 자신의 배를 손질하며 태극기와 우리일행을 곁눈질하던 현지인이 말을 건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요?”

“지중해 동쪽 크로아티아에서 건너왔어요.”

“우와, 그 험한 바다를…. 유럽 사람들은 겨울에는 바다가 험해서 항해 안 해요.”

“하하, 우리는 한국으로 가야해서….”

“며칠 전 강풍에 저 앞쪽 요트가 정박 줄이 끊어져 요트 몇 대가 크게 파손 됐어요.”

예로부터 선원들 사이에서는 “외지 항해 중에는 현지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는 말이 있다. 기상환경은 항해에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고 그 지역의 특성을 현지인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외지인에게 바람이 세니 정박줄을 튼튼하게 묶으라는 조언을 해주며 친절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재빠르게 날씨를 확인하니 다행히 우리가 체류하는 기간 중에는 센바람 예보가 없다.

발렌시아 도착
항해에 참여하고 싶은 열망에 대학졸업식도 포기하고 한국에서 발렌시아로 날아온 젊은이가 있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의 대학 4학년생 박준용 군이다. 방학시작과 함께 이곳에서 합류하여 대한민국까지 약 3만km를 항해할 예정이다. 자신의 인생을 바다에 걸어보겠다며 굳은 의지를 보인다. 또 한명의 든든한 크루가 추가됐다.

심한 멀미와 함께 첫 항해를 마친 초보 크루들은 육지에 올라 안도 하지만 이곳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틀뿐이다. 우선 마리나 근처에서 육지도착의 기쁨을 즐기기에 어울릴만한 멋진 레스토랑을 찾았다. 바다 쪽으로 탁 트인 창에 예쁘게 조각된 하얀 벽면을 배경으로 와인 잔을 부딪친다.

“모두 고생 했습니다.”

“일찍 도착하면 이런 즐거움과 여유가 있군요. 이 밤도 고생하며 항해중인 아라파니호를 생각하니 음식이 잘 안 넘어가네요. 하하.”

이전 구간까지 아라파니2호에 승선했던 허태완 팀장이 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너스레를 떤다.

요트는 선체길이나 구조에 따라 속도가 다른데 비슷한 조건이라면 긴 요트가 빠르다. 타노아호는 길이가 45피트로 아라파니2호(43피트)보다 속도가 대략 10%정도 빨랐다. 성능이 다른 배가 함께 항해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촬영 혹은 교육 등 특별한 목적이 없는 경우 각각 알아서 항해하고 항구에서 만나는 방법으로 항해하고 있다. 이럴 경우 먼저 도착한 배가 다음 항해를 위한 식료품 구입 등을 미리하고 입항수속 연료 구입 방법 등을 나중 오는 배에 전달하며 시간을 아끼기도 한다.

다음날 아침 아라파니2호가 입항했다.

“수고 하셨습니다. 내일 오후에 출발하니까 그때까지 발렌시아를 마음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어~휴 겨우 하루? 우린 안가!”

박주용 선장이 웃으며 투덜댄다. 오늘 하루에 항해에 필요한 식료품 쇼핑과 관광을 해야겠기에 크루들 모두가 우르르 시내로 나갔다. 레이나 광장과 발렌시아 대성당 부근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옛 건축물을 둘러보며 즐기던 중 한 카페에서 한국에서 유학 온 이지은 씨를 만났다. 우리의 항해 이야기를 들은 이지은 씨는 자청하여 발렌시아 시내를 안내해 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짧은 시간에 시내 구경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다. 대화 도중 항해에 매력을 느낀 그녀는 다음 구간을 우리와 함께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미쳐간다
오후 늦게 발렌시아 출항한 타노아호는 다음 목적지인 말라가를 향해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바람이 센 만큼 빠르지만 파도도 높다. 먼 바다로 나오자 파도가 높아지고 적응됐다고 생각했던 크루들도 멀미로 힘들어한다. 첫 항해를 경험하고 있는 지은 씨의 존재도 잊은 채 한밤중 잠에 취해있는데 “왝~”하는 괴성과 함께 머리 위로 허공을 가르며 소화가 덜 된 음료수가 날아간다. 잠들기 전 지은 씨에게 건네준 음료수가 위액과 섞인 냄새다. 잠결에 귀찮아 일어나지 않은 채 상황을 살피고 있을 때 불침번을 서던 허팀장이 걸레로 닦으며 지은 씨를 돌본다. 항해가 처음인 지은 씨가 고생스런 고통의 추억만 가지고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날이 밝자 바람이 더욱 거세져 40노트가 넘는다. 적당한 항구를 찾아 지은 씨를 내려주어야 하는데 상황이 좋지 않다. 항해 하는 것은 문제없지만 육지를 향해 부는 바람과 높은 파도를 넘어 접안하기란 쉽지 않다. 실수하면 좌초하여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안 가까이 말리는 파도가 발생하는지 유심히 관찰하며 엘체 부근의 작은 마리나로 접근한다. 파도가 크게 부딪치며 부서지는 1차 방파제를 들어서자 파고가 낮아지고 두 번째 방파제를 지나 마리나 안으로 들어서자 천국 같은 잔잔한 풍경으로 변한다. 긴 부두에 정박을 하려는데 자전거를 탄 관리인이 황급히 달려온다.

“여긴 안 돼요. 저안 쪽에 자라가 있으니 그쪽에 대세요.”

“사람만 한사람 내리고 바로 갈 겁니다.”

“이런 날씨에요? 파도 장난 아닌데….”

“가던 길인 걸요. 들어오는 것 보단 나가는 게 쉽지요.”

지은 씨를 내려주고 바로 항구를 나와 높은 파도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마주 부는 바람에 진행 속도가 매우 느리다. 그런데 전방에 파도를 막아줄 섬을 발견했다. 이곳에서 하룻밤 쉬고 가기로 했다. 저녁 노을이 유난히 아름답다. 내일은 바람이 약해 질 것이다.

아이들이 미쳐간다. 보름달이 떠오르자 허태완 팀장이 울부짖듯 노래를 시작한다. 아니 노래는 불루투스 스피커에서 나오고 스피커를 마이크처럼 들고 시늉만 한다.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그의 위트있는 행동은 금세 전염된다. 강승진 씨도 김영아씨도 눈을 지그시 감고 목청을 높인다. 급기야 3인조 혼성그룹 ‘어반자이빙’ 결성(어반자카파의 패러디, 자이빙이란 뒤바람으로 달리는 요트가 방향을 전환하는 동작이다). 해만 뜨면 세 사람의 화음으로 시끄럽다.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없어~.”

지난 구간 멀미로 쓰러져 뒹굴던 멤버들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긴 시간 멀미로 괴로워하던 강승진 씨가 뒤늦게 항해에 적응 되어 웃고 떠들며 즐거워한다. 은행원인 그는 짧은 휴가일정의 비행스케줄 때문에 말라가까지 갈수 없어 도중에 내려야 했다. 작은 마리나에 그를 내려놓고 우리는 갈 길을 재촉했다. 40대의 새내기 요티가 눈물을 훔치며 고향으로 돌아간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노는 방법을 알게 됐네요…. 많은 것을 얻고 갑니다.”

지중해 횡단 성공
1월15일 오전 말라가항 부근 멀리 자동차 소음이 들리기 시작할 무렵 위성사진을 검색해 정박지를 결정한다.

“부두가에 번화가가 있네? 이번엔 가장 번화한 중심지에 정박하자.”

자랑스런 우리 크루들은 혹독하기로 소문난 겨울철 지중해 횡단에 성공했다. 모두에게 요트 바로 앞의 카페와 레스토랑을 즐길 수 있는 편리함을 선물한다. 배청소를 마치고 송인화씨가 멋진 포즈로 입수하여 배 밑의 프로펠라를 점검하고 입항이 완료됐다. 정박을 마치자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태극기를 단 요트와 한국인들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말라가항은 세련된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카페거리에는 야자수를 심어 멋스런 분위기를 더하고 크루즈 터미널에 접한 긴 해안 산책로는 파도모양의 모던한 파골라로 걷는 이에게 아늑함을 선사한다.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 시내에 목욕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다. 제법 규모 있는 스파 입구에는 대기자들이 여러 명 기다리고 있었다. 동행한 허팀장은 이 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어느새 옆에 있는 키 큰 금발여인에게 말을 걸고 있다.

“혼자 왔나요?”

“여긴 혼자지만 가족과 함께 여행 중 이예요.”

중앙이 삼층 까지 뚫려있는 개방형 구조의 멋진 스파다. 수영복차림에 여러 종류의 탕과 수영장을 오가며 목욕을 즐겼다. 홀로 삼층 스파에 누워 있는데 일층에서 네델란드 처녀와 이야기하고 있는 아니 수작떠는 허팀장의 목소리가 그곳까지 들려온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건강한 청년이다.

허팀장의 구애는 실패했으나 기분 좋게 목욕을 마친 우리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우리가 찾은 곳은 인터넷에 많이 소개된 넓은 테라스식당 엘핌피Elpimpi로 피카소미술관 근처에 있다. 피카소의 고향답게 벽면에는 피카소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예쁜 화분이 곳곳에 놓여있다. 메뉴의 대부분이 맛있지만 특별히 전채요리인 문어요리가 일품이다. 입에 넣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온다. 맛의 비결은 지역 특유의 풀 향이 강한 올리브 오일 인 듯하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히브랄파로 성(Castillo de Gibralfaro)이 있는 언덕에 올라 저녁노을을 바라본다. 멀리 타노아와 아라파니호가 보인다. 꿈꾸던 항해와 여행을 가능하게해준 이 요트들은 내게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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