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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 금메달리스트 천종원 인터뷰
클라이밍 금메달리스트 천종원 인터뷰
  • 박신영 기자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18.10.16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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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더링 불모지에서 반짝이는 암장의 별

2018 아시안게임에서 천종원 선수의 날렵한 몸짓을 보자마자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천종원 선수를 만나기 쉽지 않았다. 2018 아시안게임 후 클라이밍 월드 챔피언십 경기를 치르기 위해 인스부르크로 날아간 것. 꼬박 한 달을 기다려 그와 대면했다.

8월 26일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천종원 선수. 그의 목에는 묵직한 금메달이 걸려있었다. 2018 아시안 게임에서 최초로 정식 종목이 된 스포츠 클라이밍 남자 콤바인 부문에서 영광스런 1위를 차지한 것. 가슴 쫄깃한 경기로 클라이밍 애호가의 애국심을 자극했다.

“아시안게임 직후 세계선수권대회까지 치러 정신이 없어요. 입국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아 실감 나지 않지만 행복합니다. 경기 때 긴장을 많이 했거든요. 평소에 뛰던 국제스포츠클라이밍 월드컵 경기는 축제 분위기인데 아시안 게임은 진지한 분위기라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또 군대 등 개인적인 문제가 걸려있었고, 일본 선수가 일등할 거라는 예상이 많아 부담감이 컸어요. 예선 때 일본 선수가 압도적으로 1위해서 위축되기도 했는데, 그 선수도 긴장을 많이 했는지 본선에서 실수하더라고요. 운 좋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죠.”

올 초 시즌 성적이 좋지 않았다. 2017년 월드컵 1위를 차지해 2018년 월드컵도 자신있었다. 결승에 진출하면 무조건 잘할 것 같았는데 입상조차 못했다. 잘 해야 한다는 강박에 긴장이 심해지고 문제도 풀리지 않았다.

“시즌 성적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아시안게임 선발전에 나갔어요. 사실 목표는 월드 챔피언이거든요. 그런데 아시안게임 선발전과 월드 챔피언십 선발전 일정이 겹치면서 월드 챔피언십을 포기해야 했어요. 항상 1등 하던 경기라 자신 있었는데 경기에 뛰지 못하게 되니까 속상했죠. 태릉 생활도 힘들었고요. 항상 혼자 모든 일정을 소화했기 때문에 단체 생활에 익숙지 않았거든요. 체중 관리로 먹는 것도 부실하고 감독님 통제 하에 있는 것도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몸과 마음이 지친 채 아시안게임에 나갔는데 다행히 대회가 잘 풀렸어요.”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 권유로 클라이밍에 입문한 천종원 선수.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클라이밍에 대한 흥미로 훈련을 거듭했다. 국내에서 잘 알려진 리드 클라이밍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는데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리드 클라이밍 선수일 때 성적이 안 좋았어요. 오히려 재미삼아 나간 볼더링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죠. 함께 훈련하던 민현빈 선배가 볼더링으로 전향하라고 추천했는데, 한국에는 볼더링 선수가 없어 전향하기 애매했어요. 한번도 안 가본 길이라 잘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기도 했고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됐거든요. 다행히 전향 후 첫번째 월드컵에서 7위를 하고 두번째는 4위를 했죠.”

176cm, 55kg 날렵한 몸이 홀드 사이를 가볍게 움직인다. 겉보기에 쉬워 보이지만 직접 암장에 오른 사람은 알 수 있다. 천종원 선수의 움직임과 힘이 남다르다는 걸. 매끈한 몸에 잔 근육으로 똘똘 뭉친 천종원 선수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긴 팔과 다리, 호리호리한 몸매가 볼더링에 적합해요. 물론 훈련도 중요하고요. 보통 이틀훈련하고 하루 쉬는 사이클로 운동하는데, 한번 할 때마다 다섯 시간 정도 해요. 대회 시즌에 따라 훈련의 종류가 다른데, 요즘은 지구력 위주로 하고 있어요. 손가락 힘과 발가락 힘을 늘리기 위해 손가락 턱걸이, 손으로 공굴리기로 웜 업 운동도 하고요. 기초 근력 운동도 필요해요. 상체에 비해 하체 근육이 약해 하체 운동을 열심히 하고, 꾸준히 밸런스를 맞추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감각이에요. 홀트를 컨트롤 하는 능력이죠. 작은 조각을 밟고 올라가는 기술, 홀드를 잡는 법 등 미세한 감각을 잘 느껴야 해요.”

천종원 선수는 반복되는 훈련에 지칠 때마다 운동하는 친구들에게 의지하면서 훈련의 고통을 이겨낸다. 경기장에서는 라이벌이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의형제처럼 지내는 선수들이 있다.

“한국 선수는 서성보, 김명수, 손상원, 민현빈 형과 훈련하면서 친해졌어요. 리드 클라이밍 선수로 성적이 안 좋을 때 많은 조언을 해줬거든요. 외국인 친구는 제르닉 크루더Jernej Kruder 선수와 형제처럼 지내요. 경기를 뛰면서 알게 된 사이인데, 볼더링, 바위 등 클라이밍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그외에도 알렉스 카자노프Alex Khazanov, 가브리엘 모로니Gabriele Moroni, 그레고르 베조니크Gregor Vezonik 선수들과 메시지 단체방에서 사담을 나누죠. 라이벌인 나가사키 도모아 선수와도 인연이 깊어요. 2015년부터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랭킹 1위를 다투고 있어요. 나이도 같고 주 종목이 볼더링이라는 게 동일해요. 저는 정석대로 홀트를 완벽히 컨트롤한다면 나가사키 선수는 닌자처럼 스윙을 이용해 암벽을 타죠. 나가사키 선수 경기를 볼 때면 자연스레 감탄사를 연발하게 되요. 친한 선수들과 마음을 나누고 동기부여 받으면서 좋은 영향을 받고 있어요.”

천종원 선수는 아시안 게임 직후 9월 16일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열린 2018 국제스포츠클라이밍 연맹 세계선수권대회 볼더링 부분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앞으로도 줄줄이 열리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에 매진한다.

“내년 월드 챔피언십 1위, 2020 도쿄올림픽 금메달이 목표예요. 또 은퇴하기 전까지 세계 랭킹 1위를 유지하고 싶어요. 대회마다 문제 스타일이 달라 1위를 유지한다는 게 어렵지만 열심히 한다면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어요. 아시안 게임 후에 자신감도 붙었고요. 은퇴 후에는 코치로 활약하고 싶어요. 볼더링 꿈나무에게 길을 터주고 싶거든요. 세계 챔피언 만들 자신이 있어요.”

한국 스포츠클라이밍 문화에 아쉬운 점을 꼽기도 했다. 최근 볼더링 동호회가 늘어 아마추어 대회가 많이 생겼지만, 프로 대회는 줄고 있다는 것. 해외 클라이밍 문화에 비해 한국 문화가 뒤쳐졌다고 말한다.

“국내 아마추어 붐이 엄청나요. 클라이밍 산업도 잘 되고요. 아이러니하게 산업은 성장 중이지만 프로 선수는 줄고 있어요. 그 점이 아쉬워요.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유소년 선수층이 중요해요. 중학생 때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야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는데, 한국은 시스템이 없어요. 한국에서 1등하더라도 생계를 유지할만한 스폰이 생기지 않죠. 월드 클래스 수준이 아닌 경우 대부분 암장 오픈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죠. 일본은 프로 대회가 많아서 매년 루키가 나오거든요. 스폰도 활발하고, 훈련도 시스템화 되어 월드 클래스의 길이 잘 닦여 있어요. 2020 도쿄올림픽부터 스포츠 클라이밍이 정식 종목이 됐어요. 한국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클라이밍이 조명 받길 바라요. 국가적으로 클라이밍 선수를 양성하고 지원하는 기반이 갖춰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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