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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에 울리는 고즈넉한 풍경소리
속리산에 울리는 고즈넉한 풍경소리
  • 김경선 부장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18.09.04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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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보은 법주사

지난 7월 1일 한국의 일곱 개 사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보은 법주사, 해남 대흥사, 안동 봉정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가 주인공이다. 본지는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은 일곱 개 사찰을 매달 한 곳씩 둘러본다. 이번호에는 보은 법주사다.

금강문에서 바라본 법주사 경내. 멀리 천왕문과 팔상전이 보인다.

‘댕강~ 댕강’
숨 막히는 열기를 몰고 온 바람이 팔상전 추녀 끝 풍경을 스친다. 영롱한 풍경 소리가 경내를 채우고 속리산 자락으로 자취를 감춘다. 작렬하는 태양에 절을 찾은 신도와 관광객들은 전각 안으로 숨어들기 바쁘다. 해가 구름 뒤로 자취를 감추길 기다리며 대웅보전 앞 찰피나무 아래서 잠시 숨을 고른다.

법주사 일주문에는 호서제일가람 현판과 속리산대법주사 현판이 걸려있다.

속세를 벗어나는 길
속리산 자락에 자리한 법주사를 만나려면 오리숲길을 지나야한다. 십리의 반, 약 2km 숲길이다. 해 한 점 파고들기 힘든 울창한 오리숲길에는 노년한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하늘을 메우듯 빼곡하다. 태양이 머리 위를 한참 달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숲길을 걷는 기분이 꽤 시원하다.

고즈넉한 법주사 경내.

속리산은 ‘속세를 떠난 산’, 법주사는 ‘부처의 법(法)이 머무는(住) 절’이라는 뜻이다. 오리숲길은 속세를 떠나 부처의 법으로 향하는 경계다. 이 길 끄트머리에서 일주문을 통과한다. 문에는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이라는 현판과 전서체로 쓰인 속리산대법주사(俗離山大法住寺) 현판이 걸려있다. 호서지방 즉 충청도 지방 제일의 사찰로 세속과 이별을 하고 부처님과 머무는 사찰이라는 의미다.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숲을 지나며 세속에서 조금씩 멀어지던 마음이 일주문을 지나면서 속세의 때를 한 꺼풀 벗어던졌다.

이 경계를 통과하면 남쪽의 천왕봉(1058m)을 중심으로 비로봉, 문장대, 관음봉 등 8개의 봉우리가 연꽃잎처럼 법주사를 감싼 형국을 만난다. 법주사는 속리산 자락에서 흐르는 계곡 너머에 자리한다. 소박한 돌다리를 건너면 절의 대문 격인 금강문(金剛門)이다. 활짝 열린 금강문 너머로 천왕문과 팔상전이 액자 속 그림처럼 한 프레임 안에 담겨있다.

법주사는 금강문-천왕문-팔상전-대웅보전이 일직선으로 들어서 사찰의 중심축을 이루고, 주변에는 나라의 국보며 보물이 자리하고 있다. 법주사 서편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마래여래의좌상(보물 제216호)을 만났다. 연꽃 위에 앉은 부처의 얼굴이 평안하기 그지없다. 둥글고 온화한 얼굴의 자애로운 표정은 고려 초기 마애불의 특징적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국보 제64호 석련지와 국보 제5호 쌍사자 석등.

유산 가득한 보물창고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의신조사가 창건한 이후 고려와 조선 왕실의 지원을 받아 번성해 60여 동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거느렸던 대찰이었다. 이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전소돼 조선 인조 2년(1624년)에 사명대사와 벽암대사에 의해 다시 중건됐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산사가 지니고 있는 창건(7~9세기) 이후 현재까지의 지속성, 한국 불교의 깊은 역사성이 세계유산 등재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기준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법주사의 역사성은 화려함이 아닌 고아한 아름다움이었다. 개보수로 인해 화려해진 단청 보다는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가람과 조형물의 진가를 알아봤다. 경내에는 국보 3점과 보물 12점이 자리하는데, 이것들을 찾아다니는데도 시간이 한참이나 걸린다.

법주사 목어.
법주사 목어.

금강문을 지나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전나무 두 그루가 천왕문을 호위하듯 지키고 서있고 왼쪽으로는 당간지주, 오른쪽으로는 과거 대찰임을 증명하듯 쌀 40가마를 담을 수 있다는 철솥(보물 제1413호)이 자리한다. 유적 하나하나를 눈과 머리에 담는 사이 법주사 최고 보물인 팔상전(국보 제55호)에 다다랐다.

우리나라 유일 목탑 팔상전의 색바랜 단청.

팔상전은 우리나라 유일의 오층 목탑으로 높이만 23m에 달한다. 553년에 건립한 목탑은 임진왜란 때 전소됐으며, 이후 조선 인조 4년(1624년)에 다시 지었고, 1968년 완전히 해체해 복원공사를 한 뒤 지금에 이르렀다. 빛바랜 단청이 예스러움을 자아내는 팔상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탑이라기엔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실제로 탑 내부에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개의 장면으로 그려 놓은 팔상도가 있다. 수줍게 선을 올린 추녀 끝, 물고기 모양의 풍경은 바람이 불 때마다 청아한 소리를 내며 울러댔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가람은 사찰을 위압하는 금동미륵대불의 화려함과 대조를 이뤄 더욱 고아하다.

찰피나무 아래서 얻는 깨달음
팔상전에서 대웅보전으로 가는 길에는 또 다른 국보가 버티고 있다. 두 마리 사자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앞발과 주둥이로 윗돌을 받치고 있는 쌍사자 석등(국보 제5호)이다. 석등이 건립된 통일신라시대에는 주로 8각 기둥을 많이 사용했는데 사자가 이를 대신한 것은 새로운 시도였다는 평가다. 무거운 윗돌을 드느라 앞발의 근육까지 도드라진 사자의 생생한 조각이 인상적이다.

금동미륵대불과 법주사 원통보전 내 좌불.

법주사의 마지막 국보는 석련지(국보 제64호)다. 이름만 듣고는 화려한 연못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높이 1.95m 둘레 6.65m의 석조조형물이다. 8각 받침석과 구름무늬로 장식한 간석이 화려한 연꽃을 받치고 있는 모습인데, 연못 위에 연꽃이 둥둥 떠있는 듯한 사실적인 표현이 일품이다.

보물 제216호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
보물 제216호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

길의 끝에는 대웅보전(보물 제915호)이다.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국내 3대 불전으로 꼽힌다. 전각 내부에는 소조삼불좌상(보물 제1360호)을 조성했는데, 비로자나불을 가운데로 왼쪽에 노사나불, 오른쪽에 석가모니불이 배치돼있다. 앉은키가 5m나 되는 좌상은 위압감이 느껴질 만큼 웅장하다.

여름의 끝은 여전히 무더웠다. 잠시 땀을 식히기 위해 앉은 대웅보전 앞 320년 된 찰피나무는 원래 보리수나무로 알려졌는데,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는 사실 한국에서 자생하지 못하는 수종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며 조사한 결과 보리수나무로 알려졌던 대웅보전 앞 나무는 결국 찰피나무로 밝혀졌다. 보리수나무든 찰피나무든 노목이 주는 그늘은 안온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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