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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진 선장의 대항해시대 2
김승진 선장의 대항해시대 2
  • 글 사진 김승진
  • 승인 2018.08.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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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메시나~칼리아리

입국관리소 숨바꼭질
키가 작고 친절하며 패션 감각이 뛰어난 멋쟁이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영화 <대부>의 무대가 된 시칠리아. 그 야욕과 정복의 역사를 마주한다. 거리 곳곳에는 여러 민족의 건축물이 혼재한다. 그리스의 지배, 카르타고의 침략, 로마로부터의 식민화, 노르만의 침략, 사라센의 지배, 스페인의 점령을 거쳐 157년 전 이탈리아의 영토가 된 섬나라다. 약 2800년의 긴 세월 이민족과의 문화 혼합이 있어서일까. 이들은 이방인을 전혀 낯설어하지 않는다.

태풍을 견디고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메시나Messina항에 도착한 우리는 약간 피로에 지쳐있었다. 마리나 사무실로 세관 직원들이 직접 찾아와 수속해준 덕분에 입항신고와 세관 신고를 수월하게 마쳤다. 마지막으로 여권에 입국 도장을 받아야 하는데 출입국관리소까지 가야만 한다. 마리나 직원이 안내해준 곳으로 찾아갔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다.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메시나 시내 여러 곳을 찾아 헤맸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자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아는 전명진 작가가 앞장선다. 가는 곳마다 “여기가 아니고 저기로 가봐”를 반복해 듣는 동안 우리는 점점 지쳐갔다.
오전부터 시작된 출입국관리소 찾기에 다리가 아파지고 어느새 저녁이 됐다. 입국 도장 받는 것이 탐험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해 질 무렵 크루들을 숙소로 보낸 뒤 경찰서로 찾아갔다. 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이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경관이 이제까지 들었던 이야기와 같은 내용을 답한다.
“해안에 있는 해양경찰서에 가면….”
“이미 다녀왔어요. 그런 말 듣고 온종일 헤맸어요. 확실하게 안내해 주세요.”

우리 때문에 경찰서 입구가 시끄러워졌다. 옆으로 지나치는 사람까지 불러 세워 하소연한 끝에 입국관리소까지 안내를 받는 데 성공했다. 하소연을 듣던 사람 중 한 여인의 남편이 출입국관리소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욱 다행인 것은 소지인이 없어도 크루 전원의 여권에 입국 도장을 찍어주었다. 요트 여행자를 편하게 해준다.
‘입국 도장 받는데 하루가 걸릴 줄이야…’
지친 몸으로 돌아오는 길 불 켜진 자그마한 과일가게의 수북하게 진열된 오렌지에 눈이 간다.

“이 오렌지 얼마에요?”
“45센트(한화 약 580원)요. ”
싼 가격이 믿기지 않아 다시 물었다.
“1kg에요?” (해외여행 팁: 이때 “한 개에요?” 라고 물으면 안 된다. 하하)
“네~.”
오렌지의 인상적인 가격에 놀라 4kg을 샀다. 조그마한 오렌지는 껍질이 얇아 벗기기도 수월하다. 끈적한 과즙은 단맛이 진하고 산미까지 더해 입안 가득 행복하다. 저절로 두 눈을 감게 만드는 지중해의 향기와 여권을 크루들에게 나누어주며 유럽연합 입국 절차를 마쳤다. 이제부터 유럽연합을 벗어나기 전까지 출입국 절차의 번거로움이 없어졌다.

미안하다 계속 간다
한편 우리와 함께 항해할 또 한 척의 요트, 아라파니 2호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출발해 이곳 메시나로 향하고 있다. 이곳에서 합류해 대한민국까지 함께 항해할 예정이다. 아라파니 2호를 기다리며 우리는 시칠리아를 즐긴다.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문득 과거를 회상한다. 우리나라 1세대 세계 일주 배낭 여행가 김찬삼 교수가 있었다. 고인이 된 교수님께서 대학 시절 모험을 좋아하는 나에게 해주신 말이 떠오른다.
“외국에 가면 현지 음식을 먹어. 그러면 그 나라 문화를 가장 빨리 이해할 수 있지.”

교수님의 조언대로 나는 외국에서 가능하면 현지 음식을 먹었다. 덕분에 내 혀는 글로벌 해졌고 현지인들과의 소통이 수월했다.
그런데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아라파니 2호는 타노아호의 출발 시간이 돼도 메시나에 도착하지 못했다. 더 기다릴 수 없어 아라파니 2호에 위성 전화를 했다.
“태완아, 우린 일정 때문에 출발해야 하는데 우리 뒤를 따라 올 건지 메시나에 입항해서 하루 쉬고 올 건지 회의해서 연락해라”
“네 알겠습니다. 선장님!”
몇 분 후 연락이 왔다.

“저희 메시나 입항 하지 않고, 타노아호 따라 가기로 했습니다.”
“알았다. 고생스럽겠지만 칼리아리에 가서 쉬자!”
“네 선장님, 보고 싶습니다~!”
허태완 팀장의 마지막 한마디 말로 아라파니 2호 크루들의 실망감을 상상할 수 있었다. 네 명의 크루들은 매일 밤 이어지는 폭풍에 시달리며 첫 대양항해의 어려움을 겪고있었다. 지친 그들은 메시나항이 가까워지며 과거에 내가 했던 말, 그러니까 “외국에 입국할 때는 샤워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정갈하게 들어가라”는 말을 되새기며 입항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설레며 입항 준비를 하고 있는데 계속 항해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훗날, 그때 기분을 묻는 인터뷰에 아라파니 2호 박주용 선장은 이렇게 답했다.
“(김승진 선장을)죽이고 싶었지… 어휴 그땐 정말로….”

혼돈의 바다, 티레니아해
타노아호가 메시나항을 출항한 시각은 아라파니 2호가 도착하기 약 네 시간 전인 오후 6시가 넘어서다. 출항하며 금방 주변은 어두워졌고 배에서 갑자기 ‘삐삐’ 알람 소리가 울린다. 수심 엔진 온도, GPS, 주변상황 모두 확인했지만 아무 이상 없다. 항을 빠져나와 방향을 북으로 잡고 자동항해 스위치를 눌렀다. 안 먹힌다. 살펴보니 코스 컴퓨터 혹은 컨트롤러(조종기)의 이상으로 수리가 불가능한 고장으로 여겨진다.
“모두 고생해야겠다. 오토파일럿에 문제가 생겼다.”
“어떻게 해야 하죠?”
“24시간 교대로 수동으로 조타한다. 두 시간씩 할래? 세 시간씩 할래?”
“세 시간 버티고 잠을 길게 자는 게….”
“오케이! 세 시간씩 교대로 하고 여자들은 낮에 연습 삼아 하는 걸로 하자. 다들 요트 조종 제대로 배우겠는걸! 흐흐”


얼굴엔 웃음, 마음엔 부담을 가득 싣고 타노아호는 어두운 티레니아해로 들어선다. 나흘 동안 쉬지 않고 수동으로 조종해야 한다는 부담이 모두의 마음 짓누르지만 누구 하나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거친 티레니아해의 밤하늘 구름 사이로 별이 가끔 보인다. 깜깜한 바다 나침반을 응시하며 삐뚤삐뚤 조종하는 초보들에게 별과 구름을 이용해 코스를 유지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손으로 파도를 느끼며 선체가 좌우로 흔들려도 핸들을 많이 틀지 않으며 똑바로 항해하는 방법도 설명했다. 습득 속도는 매우 빨랐고 즐기면서 조종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
“아 이제 좀 알겠네. 파도 넘는 요령을….”

명진이의 감탄을 재원이가 받는다.
“그래그래. 기울어진 선체로 파도를 스윽스윽 깎아 가는 이 맛, 캬~!”
“자동으로만 항해했더라면 이거 모르고 갔을 거 아냐?”
이들의 긍정의 힘으로 우리는 행복을 만들어 간다.
다음날 낮, 구름이 걷히고 청명한 날씨로 변했다. 바람은 점차 약해져 엔진을 사용해야 했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강풍 속의 가혹한 환경이 아니어서 고생을 덜 할 것 같은 안도감이다. 멀리 예쁜 섬이 보인다. 정교한 원뿔 모양의 알리쿠디Alicudi섬이 신기해 가까이 다가갔다. 섬은 선인장으로 가득했고 나무들은 자라지 못해 분재 같다. 척박한 대지에서 생존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을까? 먼 옛날 동양의 풍요를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도전해야 했던 대항해의 이유가 조금이나마 이해된다.

밤이 되며 바람은 완전히 죽어 바다 표면이 거울처럼 별을 비춘다. 모두에게 표류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잠시 배를 세웠다. 지붕 천막(캐노피)을 걷고 항해등을 모두 껐다. 갑판에 누워 별을 보며 행복해한다.
“와아, 아름답다!”
“도시 생활에서 잃었던 것을 얻었네요.”

팀이란 건, 이런 거군요
같은 시각 우리를 뒤따르고 있던 아라파니 2호는 지옥을 맛보고 있다. 센바람을 이용해 우리를 따라잡겠다고 북으로 올라갔다가 태풍급 폭풍을 만난 것이다. 돛을 전부 펼친 채로 태풍을 만나 돛 줄이는데 심하게 고생을 한다. 선체가 제멋대로 휘둘리며 쓰러지고 연신 파도가 갑판을 덮친다. 가까스로 돛을 줄이는 데 성공한 후 허 팀장은 타노아가 걱정된다며 내게 위성 전화를 한다.
“선장님 저희는 잘 가고 있습니다. 타노아는 괜찮습니까?”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박주용 선장이 소리친다.
“누가 누굴 걱정하냐 지금?”
가끔 폭소를 만들어 주는 우리 크루들이다. 험한 지중해의 겨울 바다가 이들을 훌륭한 선장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태완아, 북위 39도 106분 동경09도 509분 사르데냐섬 남측 만에서 만나자.”
“네. 북위 39도 106분 동경09도 509분. 위치 확인했습니다.”

북풍을 막아 아늑한 만으로 들어가 닻을 내리고 아라파니 2호를 기다리기로 했다. 처음 입항하는 항구에 밤에 들어가는 것은 조금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만나서 아침에 입항할 계획을 세웠다. 랑데부 위치에 한낮에 도착한 우리는 홍정우 군의 맛난 요리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밤늦도록 아라파니 2호를 기다렸다. 해 질 녘 우연히 연락이 된 이준호 선장의 요트 라르고 호가 우리 곁에 먼저 합류했다. 라르고호에는 선장 외에 젊은 크루인 채선기, 엄태현 군이 동승하고 있다. 먼 외국에서 태극기를 단 요트를 만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자정이 조금 넘어 아라파니로부터 무전이 들어온다.
“타노아 타노아. 여기는 아라파니 2호. 감도 있습니까?”
박주용 선장의 피로에 지친 쉰 목소리다.
“여기는 타노아. 말씀하세요.”
“타노아의 무어링 라이트(정박등)가 보이네요. 정박할 위치 알려 주세요.”
“타노아 스타보드 측 후미 50미터 지점에서 앵커(닻) 떨어뜨리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접근 하겠습니다.”

선실 밖으로 나가 손전등과 무전기를 이용해 아라파니를 유도했다. 크루들 모두 뛰어나와 환호하며 그 모습을 지켜본다. 그때 어둠을 뚫고 허태완 팀장의 큰 목소리가 들려온다.
“선장님! 보고 싶었습니다~.”
“고생했다. 박선장님, 윤선장님도 고생하셨습니다.”
말로만 듣던 아라파니 2호와 첫 만남을 지켜본 미현이와 물길이가 눈물을 보인다. 이어 명진이가 흐느낀다. 지구 반대편 바다에서 이루어진 랑데부에 모두의 감정이 격해진 모양이다.
“팀이란 건 이런 거군요.”
“아라파니 2호 이야기를 듣긴 했어도 본적이 없어서 느낌이 없었는데…. 박선장님의 무전기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

이렇게 우리는 하나가 되어간다. 대한민국의 요트 세 척이 모인 사르데냐섬 남해안에 2016년의 마지막 해가 뜬다. 무전기로 출발을 알렸다.
“아라파니 라르고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타노아 앵커 올리고 출발하겠습니다.”
“라르고는 벌~써 앵커 올리고 대기 중입니다. 허허.” 이선장의 기분 좋은 목소리다.
“아라파니도 출발 준비하고 따라가겠습니다.” 막 잠에서 깬 박선장의 목소리다.
풍속 18노트의 센 바람에 태극기 펄럭이는 소리가 유난히 힘차다. 세 척의 대한민국 요트가 사르데냐의 칼리아리 항을 향해 돛을 올린다. 지중해의 기분 좋은 바람으로 우리는 새로운 해양문화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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