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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텔로 그린 동화 마을, 노비사드, 수보티차
파스텔로 그린 동화 마을, 노비사드, 수보티차
  • 글 사진 이두용
  • 승인 2018.07.0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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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 내딛는 곳마다 그림, 세르비아

‘세르비아’라는 이름은 낯설다. 지도를 보여줘도 대충 어디쯤이라고 짐작도 못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왼쪽에 보스니아를 시작으로 몬테네그로, 코소보,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등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당최 낯선 곳뿐이다. 아는 게 없으니 보이는 것 모두가 새롭다. 수도 베오그라드를 벗어나면서 더욱 그랬다. 발길 내딛는 곳마다 동화 속 풍경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동화 속 인물이었다.

푸른 하늘과 울창한 나무, 수보티차의 시청사가 동화 속 풍경을 연출한다.
푸른 하늘과 울창한 나무, 수보티차의 시청사가 동화 속 풍경을 연출한다.

일상이 축제인 마을
해외여행은 유럽이 꽃이라고 하는데 발칸반도가 주축인 동유럽은 아직 많은 이가 모른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독일, 영국 등 서유럽과 중부·남부 유럽이 가장 유명하고 핀란드나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은 동경하지만 유명한 나라를 거친 다음 코스로 여겨진다.

노비사드에 들어서는데 동화책 첫 장을 펼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노비사드에 들어서는데 동화책 첫 장을 펼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세르비아를 다녀왔을 때 많은 이가 “그게 어디야?”라고 물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지역을 설명하기보다 그저 그곳의 사진 몇 장 보여준 거로 설명이 됐다. 그곳의 수도, 명소, 먹거리, 문화 등 궁금해 한 것은 다양하지만 일단 사진을 보고 나면 “우와!”하는 탄성과 함께 ‘동화 속 마을에 다녀온 거 아니냐’는 질문했다. 수도인 베오그라드보다 세르비아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지방이 더 그랬다.

노비사드Нови Сад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즈마이 요비노이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을 보니 내가 방문한 때에 맞춰 축제가 열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수백 명의 사람이 모여 있고 그중 수십 명의 사람이 악기를 둘러메고 곳곳에서 서로 다른 연주를 하고 있었다. 정말 대규모였다.

즈마이 요비노이 광장에는 평일에도 수백 명이 모여 연주하고 춤추며 축제를 연다.
즈마이 요비노이 광장에는 평일에도 수백 명이 모여 연주하고 춤추며 축제를 연다.

아코디언, 트럼펫, 색소폰, 바이올린, 첼로, 콘트라베이스, 기타 등 악기 종류도 많고 음악도 클래식에서 팝송까지 다양했다. 음악에 맞춰 흥겹게 춤추는 사람도 많았다. 아직 이렇게나 밝은 낮인데 분위기는 축제의 밤처럼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코디언을 든 남자에게 다가가 “오늘 무슨 축제예요?” 하고 물어봤다. 그런데 씩~ 웃더니 “축제라니요? 우린 매일 이렇게 모여서 연주해요”라고 답한다. 이렇게 넓은 광장을 가득 메운 연주자들이 매일 모이는 사람이라고?

거대한 물방울과 함께 뛰어노는 아이들 모습도 역동적이었다.
거대한 물방울과 함께 뛰어노는 아이들 모습도 역동적이었다.

정말 그랬다. 노비사드에선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시간이 맞는 사람이 모여서 중앙 광장에서 이렇게 음악을 연주하며 일상을 보낸다고 했다. 기타를 치며 노래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버스킹 공연만 보다가 이렇게 대규모의 다양한 음악을 접하니 신기하고 놀라웠다. 스마트폰으로 바이올린 소리 하나만 듣던 사람이 실제로 대규모 오케스트라 공연을 본 것 같은 충격이랄까. 일상이 이렇다고 하니 나도 마음 놓고 이 음악 저 음악을 넘나들며 어깨춤을 췄다. 흐느적거리며(?) 이곳저곳에서 춤추는 나를 보고 누군가는 술 취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얼마나 신나고 흥겨웠는지는 직접 와서 봐야 안다.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페트로바라딘 요새에서 만난 사람들. 세르비아 사람은 평균 신장이 커서 모델 같다.
페트로바라딘 요새에서 만난 사람들. 세르비아 사람은 평균 신장이 커서 모델 같다.

유쾌함이 습관인 사람들
노비사드는 사실 즈마이 요비노이 광장이 전부는 아니다. 다뉴브강을 보기 위해 페트로바라딘 요새를 오를 때도 마주치는 사람마다 먼저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들거나 카메라를 보고 제스쳐를 취해줬다. 중동의 시골 마을을 다닐 때 생각이 났다. 그곳에선 생김이 다른 나를 보고 피하기도 하고 카메라를 들지도 않았는데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인상을 쓰기도 했다. 어느 곳이 맞거나 틀리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를 수도 있고 낯선 곳을 갈 때 내 방법이 서툴렀을 수도 있다. 다만 처음 보는 내게 웃음으로 대하는 노비사드의 사람들이 나도 많이 반가웠다.

요새에서 내려다보이는 다뉴브강은 언제나 고요하고 평화롭다.
요새에서 내려다보이는 다뉴브강은 언제나 고요하고 평화롭다.

페트로바라딘 요새는 1692~1780년 전쟁의 방어를 위해 지어진 성인데 예전 모양이 오롯하게 남아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 내전으로 몸살을 치렀던 세르비아인데 요새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는 한 없이 평화롭다.

광장에서 느꼈던 흥과는 달리 요새는 흐르는 다뉴브강과 어울려 고요하다. 하지만 이곳 역시 페스티벌 공간이라고 한다. 알다가도 모를 노비사드다. 매년 7월이면 요새를 무대로 유럽의 음악축제인 EXIT 페스티벌이 열린다. 2016년엔 데이비드 게타, 스크릴렉스, 프로디지, 바스틸, 니키 로메로, 엘리 굴딩 등 내로라하는 뮤지션이 이곳에서 연주하고 노래했다고.

디자이너 브라니슬라브 라도세비치가 만든 조형물과 나무의 조화가 재미있다.
디자이너 브라니슬라브 라도세비치가 만든 조형물과 나무의 조화가 재미있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내 마음을 훔쳤던 OST ‘How long will I love you’를 부른 엘리 굴딩이 이곳에서 노래를 불렀다니.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과 음악이 잘 어울린다. 영화 세트장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영화 OST를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언젠가 7월에 이곳을 다시 찾고 싶다.

요새를 걸어 내려오는데 등대처럼 하얀 시계탑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의 상징인 시침이 분침보다 긴 시계탑이란다. 요새의 성벽과 시계탑을 사진에 담으려고 하는데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된다. 시계탑 옆에 높다랗게 자란 아름드리나무를 배경으로 내 앞에 세워진 조형물이 하나의 작품이 됐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절묘한지 “풉!”하고 웃음이 터졌다.

벽지 하나, 창틀 하나, 유리창의 스테인드글라스 하나 어느 것도 허투루 만든 게 없다.
벽지 하나, 창틀 하나, 유리창의 스테인드글라스 하나 어느 것도 허투루 만든 게 없다.

조형물은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코가 오뚝한 서양 남자의 모습인데 뒤에 서 있는 나무와 매칭이 되면 나무가 뽀글뽀글 파마머리처럼 보였다. 이 작품은 세르비아의 유명 디자이너 브라니슬라브 라도세비치가 만들었다. 나무를 다듬을 때마다 머리 모양이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의 유쾌함이 작품에서도 묻어나는 것 같았다.

영화의 세트장 같은 이곳이 지금도 업무를 하고 있다는 시청의 회의 공간이다.
영화의 세트장 같은 이곳이 지금도 업무를 하고 있다는 시청의 회의 공간이다.

동화 속 마을의 실사판
매일 축제가 열리는 마을의 사람들은 그곳을 여행하는 내게도 미소와 긍정의 에너지를 선물했다. 정말 동화의 단락마다 등장하는 재미있는 소재의 마을 같았다. 자연스레 노비사드를 떠나면서 다음 마을 수보티차Суботица가 기대됐다.

숲 가운데로 난 도로를 한참 달려 마을로 들어섰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양옆으로 늘어선 집들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아직 발도 디디지 않은 곳인데 달랐다. 우리가 동화 속 마을이라고 상상하면 으레 놀이공원에 예쁘게 지어진 거리라던가 유럽의 성을 떠올리기 쉽다. 이곳은 그냥 평범한 집이 그랬다.

시청사 옥상에서 내려다본 수보티차의 모습은 정말 놀이공원의 동화 거리다.
시청사 옥상에서 내려다본 수보티차의 모습은 정말 놀이공원의 동화 거리다.

세르비아에서 보았던 집들의 모양이나 색상과 전혀 달랐다. 차창 밖으로 지나는 건물마다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신기하게 살피는 걸 보고 가이드인 ‘말리차’가 얘기해줬다. “이곳은 1391년 헝가리 왕국의 정착지로 시작해서 세계 대전이 있기까지 헝가리 땅이었어요. 지금도 이곳 인구 중 40% 이상이 헝가리인이고 문화나 건축양식도 많이 남아 있지요.”

세르비아의 다른 곳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곳은 헝가리와 세르비아의 문화가 조화롭게 남아 있는 곳이었다. 세르비아 땅이지만 여전히 헝가리어가 공용으로 쓰일 정도니 말 다했다.

갤러리로 꾸민 과거 예술가의 집. 스페인의 가우디 작품이 떠올랐다.
갤러리로 꾸민 과거 예술가의 집. 스페인의 가우디 작품이 떠올랐다.

이곳은 유럽에서도 정말 동화 속 풍경 같은 곳인데 그 이유는 아르누보Art Nouveau의 정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 및 미국에서 유행한 양식인데 이곳의 건물과 거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은 수보티차 시청사다. 1908년 부다페스트에서 온 건축가 코모르 마르셀과 데즈소 자카브가 지은 이 건물은 아르누보의 보석이라 불리며 이곳의 명소로 손꼽힌다.

입구에만 들어서도 사방으로 물결치며 뻗어 나가는 곡선에 매료된다. 계단 아래서 올려다본 천장은 보석으로 치장한 데칼코마니 예술품처럼 느껴진다. 건물은 벽지와 창틀, 유리의 스테인드글라스까지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만든 게 없었다. 진짜 걸음마다 고개를 돌리며 환호했다. 건축가나 예술가가 이곳에 오면 그저 건물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하루 이틀은 쉽게 보낼 것 같다.

첨탑과 건물의 양식, 벽의 수놓인 문양이 하늘색과 어울려 예술품이 된다.
첨탑과 건물의 양식, 벽의 수놓인 문양이 하늘색과 어울려 예술품이 된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평일 나들이를 나온 것인데 시상식에 가는 배우들처럼 복장이 화려해 보인다. 여행 온다고 차려입고 온 내가 더 머쓱했다. 눈을 돌리는 어느 곳도 예술가가 한 땀 한 땀 수놓은 흔적이 보였다. 그냥 지나치기에 아쉬웠다. 이들은 그저 살고 있는 마을인데. 그냥 일상인데 말이다. 언젠가 노비사드와 수보티차를 다시 온다면 이곳을 무대로 한 편의 예쁜 동화를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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