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물든 다양한 역사·문화, 필리핀 마닐라
도시에 물든 다양한 역사·문화, 필리핀 마닐라
  • 글 사진 이두용
  • 승인 2018.05.05 07: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빛과 그림자의 아찔한 교집합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3,3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다도해라고 부른다. 무인도가 유인도보다 많다. 필리핀은 섬이 7,000여 개란다. 놀랐다. 최근 필리핀 대통령이 자연보호를 내세우며 보라카이 폐쇄를 선언했다. 필리핀 최고 휴양지 중 하나다. 그래도 세부, 팔라완, 보홀 등 필리핀엔 섬 명소가 많다. 그럼 수도 마닐라는? 그런 궁금증으로 도시를 걸었다. 35도 무더위에 18km 시티트레킹.

인트라무로스는 유럽의 정취가 느껴져 결혼식이나 행사가 많이 열린다.
여느 동남아시아 국가처럼 수도의 중심가는 선진국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빛과 그늘이 공존하는 도시
최근 1년 사이 동남아시아 국가를 여럿 다녔다. 태국을 시작으로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 필리핀까지. 늘 느끼는 거지만 가보기 전까지 어느 나라, 어떤 도시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건 사람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인종이나 문화, 역사, 풍습이 달라도 사는 모습은 결국 비슷하다는 걸 느낀다.

자연과 어우러진 풍경이지만 도시에 흐르는 물은 냄새 나고 많이 오염돼 있었다.

태국에 가서 수도 방콕의 화려한 야경에 놀랐고, 베트남 호치민 거리에 우리나라 브랜드 체인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동남아시아를 떠올리면 우선 코끼리가 대나무 숲을 걸어 다니는 모습을 생각했는데, 도심은 한결같이 잘살았다. 내가 무지했다.

공원 중앙에는 필리핀 국립 역사박물관과 필리핀 국립박물관이 마주보고 있다.

이번에 필리핀 마닐라로 향하면서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여러 번 놀랐으니 ‘덜 놀래야지’하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해서 도심에 들어서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 마닐라도 정말 잘 산다.

트라이시클(Tricycle)에 한 남자가 짐을 싣고 있다. 서민의 삶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호텔이 있는 마카티(Makati) 지역은 우리나라에선 서울의 강남과 명동을 합쳐놓은 느낌이었다. 그 핵심인 아얄라 애비뉴는 건물마다 호텔과 백화점, 쇼핑몰이 들어선 문화복합 지역이다. 얼핏 보면 뉴욕을 닮았고 자세히 보면 홍콩과 비슷하다. 뉴욕을 닮은 건 아마도 미국인들이 이곳에 머물 때 이들의 생활 문화와 건축양식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산티아고 요새로 향하는 길, 필리핀에 와 있다는 생각이 점점 희미해졌다.

1980년대 초반 이곳에서 유학했다는 지인의 말엔 ‘당시 필리핀은 일본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잘사는 나라였다’고 한다. 지금 도심에 세워진 마천루들도 대부분 그 당시에 있던 것들이라고. 그땐 필리핀에 있다가 한국에 들어가면 우리나라가 정말 못산다고 느껴졌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가 단기간 큰 성장을 한 건 맞는 듯하다. 필리핀 얘기를 듣는데 왜인지 자랑스러웠다.

동남아시아의 특징이라면 도심과 외곽의 느낌 차이가 심하다는 것이다. 외곽이라고 하지만 번화가와 등을 맞댄 거리만 해도 단번에 비교될 정도로 사는 모습이 달랐다. 마닐라 물가가 많이 올랐다지만 저렴하다고 느낀 건 많이 싸게 느껴졌다. 쇼핑몰이나 번화가는 국내와 비슷하다.

리잘 공원 한편에서 필리핀·한국 우정의 탑을 발견했다. 한글로 쓰인 탑이 인상적이다.

이들의 월급은 우리 돈 30~60만 원 수준이고 대학교 교수가 80~100만 원 정도를 번다고 한다. 공사장 인부가 하루 2만 원 가량을 벌고, 여성들이 많이 하는 가정부는 한 달에 10~20만 원을 번다고 한다. 놀라운 건 5만 페소(130만 원) 정도를 벌면 고수익자에 해당돼 세금을 32%나 뗀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다시 한번 고맙게 느껴졌다.

필리핀 속의 작은 스페인
마닐라가 휴양지는 아니다. 도시 생활자가 쉼을 얻기 위해 휴가를 얻어 날아오기에 이곳에 즐길 거리는 적다. 하지만 이곳을 추천할 수 있는 이유는 이곳이야말로 필리핀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필리핀이란 국가명이 스페인 국왕 이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나도 이번에 알았다. 16세기에 이곳에 파견된 탐험가 빌라로보스(Villalobos)가 당시 스페인 황태자인 필립의 이름을 따서 필리피나스(Las Islas Filipinas)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 그 당시의 역사를 마닐라에 오면 찾을 수 있다.

번영했던 과거와 발전을 꾀하는 현재의 마닐라. 산티아고 요새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소래포구 느낌이다.

스페인은 1565년 필리핀을 정복했고 300년 넘게 통치했다. 필리핀은 1898년 독립을 선언했지만 스페인과 미국의 전쟁으로 다시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 1943년엔 일본이 필리핀을 점령한다. 1945년이 돼서야 미국군이 재탈환한 후 비로소 독립했다. 독립 연도는 우리나라와 똑같다.

리잘 공원 입구에 세워진 필리핀 독립 영웅인 호세 리잘의 동상.

300년 넘게 스페인 지배하에 있었던 터라 마닐라엔 스페인 문화를 오롯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처음엔 필리핀과 스페인이 쉽게 오버랩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서면서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인트라무로스(Intramuros)다.

이곳은 너무 뻔하지만 ‘성의 안쪽’이란 뜻을 가졌다. 스페인이 필리핀을 통치하던 시기, 스페인 사람과 스페인계 혼혈만이 이 성의 안쪽에 거주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치사하다. 이곳엔 가장 아래쪽에 성 어거스틴 성당이, 중앙엔 마닐라 대성당이, 가장 위쪽 바다와 마주한 곳엔 산티아고 요새가 있다. 이 셋을 포함한 인트라무로스가 마닐라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다.

성 어거스틴 박물관 안에는 당시의 유물과 그림, 문서 등이 전시돼 있다.

인트라무로스에 들어서면 과거 스페인의 거리를 걷는 느낌이 든다. 이따금 마차가 지나면 그 기분은 최고조가 된다. 성 어거스틴 성당은 중세 유럽의 성당 느낌과 흡사하다. 가톨릭이 국민의 83%나 되는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한편에는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안쪽에는 당시 사용하던 제품과 기록, 그림 등이 전시돼있다. 계단만 몇 걸음 올라가도 유럽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이런 이유로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올랐다.

마닐라 대성당은 인트라무로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힌다. 공기가 맑아 푸른 하늘과 성당의 십자 탑이 조화를 이룬다. 아름답다. 주변엔 산책하거나 잔디에서 쉬는 사람이 많다. 인트라무로스는 마닐라 속의 다른 땅 같은 느낌이 더 했다.

대중교통은 부르는 게 값이야?
성당 둘을 돌아보고 산티아고 요새로 걷고 있는데 트라이시클(Tricycle)이 따라붙어서 계속 타고 가라고 한다. 자전거나 오토바이 옆에 사람이 앉을 수 있게 바퀴 달린 의자를 달아놓은 교통수단이다. 싫다고 해도 계속 따라붙어서 전화번호를 하나 받고 보냈다.

산티아고 요새는 마닐라 대성당에서 300여 미터 떨어져 있다. 하지만 필수 코스니 반드시 보자. 이곳은 필리핀 독립 영웅인 호세 리잘(Jose Rizal)이 사형 선고를 받은 곳으로 스페인 통치 시절의 감옥과 호세 리잘 박물관이 있다. 바다로 향하고 있는 요새의 대포와 근처 연못, 넓은 광장이 인상적이다.

인트라무로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마닐라 대성당과 하늘의 조화가 화려하다.

호세 리잘을 기념하는 곳으로는 지척에 리잘 공원이 적격이다. 우리나라 광화문 광장과 비슷한데 마닐라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독립을 기념하는 장소다. 공원 한편에는 필리핀·한국 우정의 탑도 있다. 6.25 한국 전쟁 당시 필리핀이 미국, 영국 다음으로 참전한 걸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인데 한글로도 쓰여 있다. 감회가 새로웠다.

이날 18km를 걸었다. 필리핀 사람들도 머리에 수건을 얹고 양산을 썼는데 모자 하나 쓰지 않고 무식한 행군을 했다. 카메라 두 대와 렌즈 다섯 개를 등에 짊어지고. 사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은 건 아니다. 워낙 마닐라를 소개하는 국내 글에 ‘사람조심’, ‘대중교통 조심’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의심에 의심했지만 길을 모를 땐 어쩔 수 없었다.

지프나 화물차를 개조한 서민 교통수단 지프니(Jeepney). 타보지는 못했다.

처음 탄 건 트라이시클이다. 스마트폰 지도로 보니 리잘 공원까지 4km 정도 거리인데 400페소(약 9,000원)를 달란다. 비싸다고 안 타겠다고 했더니 300페소로 줄여줬다. 힘들었던 터라 50을 더 깎아서 250페소(약 5,500원)에 탔다. 그런데 운전수는 길을 모르는지 사방으로 오가며 행인에게 길을 물었다. 그러곤 다 왔다며 내리라고 한다. 내가 지도를 보여주며 2.1km 더 가야 한다고 했지만 내게 100m만 걸어가면 나온다고 우겼다. 어이가 없어서 돈을 주고 그냥 웃으며 보냈다. 더운데 운전할 때 힘내라고 시원한 물도 한 병 사줬다.

인트라무로스에서 호텔까지는 약 9km 떨어져 있었다. 인트라무로스를 다 돌아보고 택시를 잡았다. 호텔 주소를 내미니 800페소를 달란다. 미터기로 가자고 했더니 안된다며 내리라고 한다. 다음 택시는 500을 달란다. 역시 미터기는 싫다고. 깎아서 350페소(약 7,500원)에 왔다.

중세의 성을 닮은 성 어거스틴 성당은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올랐다.

마지막 날 호텔에서 공항으로 가는 길. 인터넷에는 공항을 오가는 택시가 가장 바가지가 심하다고 쓰여 있어서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였다. 미터기를 켜도 조작해놔서 더 빨리 올라간다고. 그래서 넉넉히 1,500페소(약 3만3000원)를 준비했다. 사실 호텔에서 공항까지가 대중교통 이용한 것 중 가장 멀기도 했다.

택시를 탔는데 미터기에 그려진 말이 너무 빨랐다. 택시는 천천히 달리는데 말은 다리가 안 보인다. 한참 후 공항에 도착했는데 미터기에 1,250이란 숫자가 보였다. 그러려니 하고 낼까 하다가 “얼마예요?”하고 물었다. “여기 보이는 금액입니다. 125페소(3.300원)요”한다.

인트라무로스에 발을 디디면 마치 스페인 어느 도시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미터기에 나온 금액이 맞는 건데 갑자기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깎아서 탔던 교통수단은 뭐였던가’ 싶기도 했다. 기사에게 500페소를 쥐어주고 ‘고맙다’고 ‘잘 왔다’고 했다. 그랬더니 차에서 내려 내 짐을 내려주곤 계속 고맙다며 허리 숙여 인사한다. 공항에 들어서는데 마닐라에 대한 마음이, 필리핀에 대한 추억이 순간 좋아졌다.

러시아에서 온 친구가 과거 포대가 향하던 바다를 바라보며 모델이 돼주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짜증 2018-05-12 07:34:51
목적지 보다 2킬리미터 떨어진곳에 내려 걸어라라고 사기친 필리핀 택시기사에게
덮다고 물까지 사주면서 택시비까지 군말 없이 지불하는 당신
다른나라 여행가면 한국인이라고 하지마세여
왜냐면 다른 한국인들이 피해를 보니깐
한국인들에게 저렇게 해도 물까지 사주면서 아무말도 안하고 고마워하는줄 아니깐
정말 이기사 읽고 짜증이 날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