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기어의 미인봉 백패킹
마이기어의 미인봉 백패킹
  • 김혜연
  • 승인 2018.04.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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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싶으신가요?

산과 들에 새순이 돋아나고 파릇파릇 귀여운 잎이 얼굴을 내미는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우리는 역마살을 잠재우지 못하고 길을 나섰다. 오늘의 목적지는 제천 금수산 자락에서 뻗어 나온 미인봉이다. 미인봉의 원래 이름은 저승봉으로, 이름과 관련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온다.

과거 이곳에 저승골이라는 협곡이 이름 붙여졌다는 유래와 멧돼지가 많이 살아 ‘돼지 저(猪)’자를 써서 만들어진 유래가 있다. 미인봉은 바위 능선이 많은 모습이 미인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등산객들이 붙인 이름이다.

미인봉 자락에 있는 학현 계곡에는 여근석(여성의 성기 모양을 한 바위)이 있으며, 등산로를 따라 궁둥이 바위, 쪼가리 바위, 전망대 바위, 너래 바위 등 기암이 이어져 있다. 더불어 노송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산행 들머리에 들어섰다. 어제 내린 때아닌 눈으로 등산로가 미끄러웠다. 초반부터 가파른 등산로를 오른다. 한고비를 넘기고 시야가 트인 곳에 올라서자 큰 배낭을 멘 몸이 휘청할 정도로 바람이 불어온다. “무사히 내일을 맞을 수 있을까?”

염려도 잠시, 땀을 식히려 슬쩍 고개를 들었는데, 새로 돋아난 나뭇잎 위에 눈이 쌓여있고 옆으로는 진달래가 만발이다. 나무에 흰 꽃이 피어있는 듯했고 그 옆으로 분홍빛 진달래, 뒤편으로 보이는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한 폭의 동양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펼쳐지는 험난한 등산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 오돌토돌한 바위 위를 아슬아슬하게 오르는 스릴은 주중의 스트레스를 날린다.

한참 동안 오르내리니 청풍호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멋진 곳에 다다랐다. 산행 종료를 축하하며 그대로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시원한 바람에 진정됐다. 한동안 앉아서 넋을 놓고 경치를 감상했다. 뒤로는 뾰족뾰족 솟아오른 바위가 늠름하게 버티고 있고 앞으로는 잔잔한 나무들이, 그 끝에는 청풍호가 여유롭게 반짝이고 있었다.

때마침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광경은 한동안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토록 아름답던 노을이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오자 순식간에 자연은 두 얼굴을 내놓는다.

거센 눈발과 힘차게 불어대며 바람은 기온을 뚝뚝 떨어뜨렸다. 무서워할 법도 하지만 오뉴월에 찾아온 특별한 크리스마스라며 환호했다. 낮고 쉬운 산이건 높고 어려운 산이건 자연은 항상 무섭다. 우리는 항상 겸손한 자세로 철저히 준비하고 아웃도어 활동을 즐겨야 한다.

침낭 안에서 굼벵이처럼 밤을 보내고 무사히 아침을 맞았다. 새벽녘, 촉촉하고 상쾌한 공기와 밝고 따사로운 햇볕을 온몸으로 맞고 느끼는 시간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그것은 어떤 비타민보다 큰 활력을 심어준다.

이곳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한없이 화창하고 반짝반짝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이상하리만큼 어제부터 등산객을 만나지 못했지만, 아침 등산객들을 생각해 눈뜨자마자 철수를 시작했다.

언제나 신속하게, 다녀가지 않은 듯 흔적 없이, 가져온 것 그대로, 조금 더 챙겨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 길은 탐험 그 자체였다. 길인 듯, 길이 아닌 듯, 알아볼 수 없게 또는 아슬아슬하게 등산로를 지나갔다.

좁고 험한 등산로에 간간히 걸려있는 빨간 리본을 찾아가며 내려간다. 평소 등산로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리본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는데, 길이 잘 닦이지 않는 산에서 등산객들에게 리본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인식이 바뀌었다. 무사히 하산을 완료하고, 제천 시장의 유명한 시래깃국 집에서 든든히 배를 채운 뒤 일상으로 복귀했다.

지구가 아프다. 사계절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우리나라의 기후도 점점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있다. 그동안 보아오던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의 변화를 볼 수 없게 될 것 같아 두렵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던가. 지금부터라도 일상 속 작은 실천으로 환경보호에 모두 함께 앞장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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