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 필수 코스, 춘천 잣나무숲
자전거 여행 필수 코스, 춘천 잣나무숲
  • 박신영 기자 | 양계탁
  • 승인 2018.03.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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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논데일로 떠나는 라이딩… 소양강길 따라 약 25km 코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자 창고에 넣어둔 자전거를 꺼냈다. 자전거 위에 소복이 내려앉은 먼지를 조심스레 닦아내고 천천히 페달을 돌렸다. 따뜻한 햇볕과 포근한 바람이 몸을 감싸주는 기분에 문득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자전거 여행을 가자.

자전거 여행자이자 열정 여행가인 김훈호 씨는 지난달 인터뷰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 함께 자전거 여행을 가자며 인터뷰를 마쳤는데 이렇게 빨리 기회가 올 줄 몰랐다. 그의 친구인 배우 최선호 씨, 마케터 손아영 씨와 춘천 소양강 길을 따라 잣나무 숲으로 가는 약 25km의 여정을 계획했다.

뚜벅이도 떠날 수 있다.
차를 살 돈은 고사하고 주택청약적금을 넣기도 힘든 에디터에게 최고의 이동수단은 대중교통이다. 물론 자전거도 있지만 빠른 기동력을 생각했을 땐 BMW(Bus, Metro, Walking)가 제일이다. 그래서 뚜벅이 4남매(에디터, 훈호, 선호, 아영)는 지하철로 이동 가능한 춘천 잣나무 숲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백패커들 사이에서는 숨은 명소로 사계절 푸른 잣 잎이 아름다운 곳이다.

지하철 탑승 전 패킹을 시작했다. 당일 여행이라 텐트는 챙기지 않았지만, 간단한 캠핑 장비인 해먹·테이블·체어·스토브를 넣기 위해 패니어가 필요했다. 자전거 탑튜브에 설치하는 프레임 팩, 뒷바퀴 위에 설치하는 싯 팩, 손잡이에 설치하는 핸들 바 팩, 안장 밑에 설치하는 새들 백을 준비했다. 부피가 큰 장비는 싯 팩과 핸들 바 팩에 보관하고, 간식은 프레임 팩에 넣어두었다. 패니어는 대부분 방수 처리돼 눈이나 비가와도 끄떡없다. 패니어 개폐구는 롤업으로 돼 있어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단, 싯 팩이 뒷바퀴에 닿으면 페달링이 불편할 수 있으니 주의하자.

춘천역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평일 출퇴근 시간(오전 7시~10시, 오후 5시~8시)을 제외하고는 365일 경춘선에 자전거를 싣을 수 있고, 열차의 맨 앞 칸과 뒤 칸에 자전거 전용석도 있다. 자전거를 갖고 지하철 타면 불편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왔는데 막상 이용해 보니 지하철 탑승객이 어디 가느냐고 묻거나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 정도는 껌이지
탁한 공기에 스마트폰을 꺼내 ‘오늘 미세먼지 농도’를 검색했다. 나쁨이다. 뿌연 하늘을 보자니 불쑥 울화가 치밀었다. 완벽한 여행에 오점을 남길 거 같아 속상했지만, 오랜만에 떠난 여행이니만큼 기분 좋게 자전거에 발을 올렸다. 춘천역~용산교차로까지(약 11km)는 소양강 자전거 길로 이동하고, 용산 교차로에서 잣나무 숲까지는(약 14km) 포장도로를 달리는 여정이었다.

뚜벅이 4남매는 일렬로 소양강 자전거 길을 달렸다. 훈호 씨는 말할 것도 없고 아영 씨도 로드바이크 경력이 5년이다. 선호 씨 역시 자전거와 친했다. 고작 인천 아라뱃길 몇 번 가본 에디터가 그들을 따라갈 수 있을까. 설사 그들보다 체력이 좋다고 한들 실력에서 밀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웃도어 기자라는 자존심은 넣어두고 속도를 늦춰 달라 부탁했다. 낙오되는 것보다 나으니까.

“해 저문 소양강에~” 훈호 씨가 흥얼거렸다. 인터뷰 때, 훈호 씨의 인상은 강렬했다. 뚜렷한 가치관과 목적을 갖고 있고, 무척 진지했으며 난감한 질문에도 술술 소신을 밝히는 사람이었다.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그가 큰소리로 트로트라니. 원곡자 심수봉 뺨치는 솜씨였다. 덩달아 에디터도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초등학교 이후로 누구 앞에서 반주 없이 노래를 불러본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 억눌려 왔던 흥이 훈호 씨를 통해 터져 나왔다.

우리의 노래에 아영 씨가 피식 웃었다. 큰 눈과 앙증맞은 코를 가진 아영 씨는 다람쥐를 닮았다. 그녀는 아담한 체구를 지녔고 걸음걸이도 얌전했다. 그러나 자전거 위에서 원더우먼으로 돌변한다. 그녀는 엄청난 파워로 페달을 굴리며 쏜살같이 나아갔다. 한편으로 뒤처지는 에디터를 챙겨주었고, 체인 조절이 미숙한 에디터에게 계속해서 조언을 하기도 했다.

용산 교차로까지는 약 한 시간이 걸렸다. 잘 닦인 자전거 길은 초보 라이더에게 최고의 코스였다. 그새를 못 참고 레이서 기질이 발동.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뒤로 지나치는 일행을 보면서 ‘이 정도는 껌이지’ 하는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자전거 길이 끊겼다.

도로의 매력
앞서가던 아영 씨가 도로로 향했다. 이제부터 14km를 포장도로로 달려야 했다. 눈앞으로 덤프트럭 두 대가 연달아 지나가자 온몸이 얼어붙었다.

사실 에디터는 씩씩해 보여도 몸을 사리는 스타일이다. 약간만 위험해도 도전을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쫄보다. 아웃도어 기자다 보니 쫄보 습성을 숨기고 담대하고 강한 척을 했다. 트리 클라이밍을 할 때, 북한산의 암벽을 탈 때도 정신력으로 버텼다. 그런데 왕복 4차선 도로를 두 시간 이상 달려야 한다니, 자신감이 사라졌다.

불쑥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가족 여행 중 도로에 멈춰 엄마와 바다를 보고 있었다. 지루했던 나는 엄마 품을 벗어나 도로 건너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뒤뚱거리며 도로를 건너가는 내 옆으로 트럭이 달려왔다. 할머니가 팔을 잡아당겼고 간발의 차이로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그 일은 에디터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런 사연으로 그만하겠다고 말하려는 찰나,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잘 하고 와.” 그 말의 담긴 수많은 의미 중 가장 커다랗게 불거진 뜻. ‘못하고 오면 알아서 해.’ 도로를 달리지 못하고 이야기를 만들지 못한 에디터를 바라볼 선배를 떠올리니 그것이 더 끔찍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한다.

에디터를 마지막으로 뚜벅이 4남매는 도로 우측에 안착했다. 도로교통법상 차에 해당하는 자전거는 자전거 전용 도로가 없는 곳에서 도로 우측 가장자리로 통행해야 한다. 첫 코스는 평지라 마치 자전거 길처럼 수월했다. 그러다 눈앞에 업힐이 나타났다. 자칭 월드투어리스트 훈호 씨를 필두로 아영 씨와 선호 씨가 빠르게 나아갔다.

허벅지가 터져라 페달을 밟아댔지만,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자전거 탓을 해보기도 하고, 트라우마 탓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발에게 말도 걸었다. “제발 페달 좀 돌리자.” 모노드라마를 찍기도 했다. ‘용산 교차로에서 돌아가야 했어. 잘못된 선택이다’, ‘나는 할 수 있다. 해야만 한다’, ‘내가 왜 자전거 여행을 간다고 했을까’ 라는 온갖 생각이 초 단위로 머리를 스쳤다. 자전거를 버리고 뛰어가려는 순간 업힐이 끝났다. 이 코스를 만든 사람은 밀당의 고수다.

누군가 다운힐이 끝나는 지점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한 마리의 겁먹은 사슴이 저기 있네” 했을 거다. 오랫동안 올라온 만큼 내려가는 길도 무척 길었다. 경사도 엄청났다. 양손에 브레이크를 꽉 잡고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속력이 붙자 다시금 레이서 기질이 발동했다. 브레이크를 놓고 그대로 미끄러졌다. “대박!” 환호성이 터졌다. 속력이 주는 짜릿함과 시원한 바람에 자신감이 솟구쳤다. “이게 바로 자전거 타는 맛이지.” 기다리던 일행들에게 윙크를 날리며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나아갔다. 잣나무 숲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먹이 신의 한 수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임도가 시작됐다. 다행히도 자전거 바퀴가 우둘투둘한 돌멩이 밭을 잘 견뎌 주었다. 얇은 로드바이크에 비해 로드와 오프로드를 달릴 수 있는 그래블 바이크가 임도에서 제 실력을 발휘해 주었다. 문제는 반복되는 업힐과 다운힐. 또다시 일행은 멀어졌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 에디터 페이스에 맞춰 천천히 달리는 게 답이다.

여유가 생기자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도심에서 느낄 수 없었던 고요함에 몸을 곧추세웠다. 벽돌로 만들어진 옛날 버스 정류장과 원두막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한편에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웃어주었고, 농기구가 쪼르르 걸린 초가집이 우리를 맞이했다. 옛 것이 주는 정겨움에 빠질 무렵 배꼽시계가 울렸다.

탁 트인 춘천호 앞에서 닥치는 대로 샌드위치를 입에 넣었다. 예의를 차릴 때가 아니었다. 출발 전 점심을 제대로 먹지 않은 탓에 위산이 과다 분비되고 있었다. 아영 씨와 선호 씨는 커피 원두를 갈며 한껏 여행 분위기를 냈다.

배를 채운 뒤 다시 출발했다. 5분 정도 언덕을 오르니 푸른 숲이 보였다. 오후 4시 잣나무 숲속으로 자전거를 끌고 들어왔다. 흙바닥에는 잔가지가 널려 있었고, 곳곳에 커다란 돌멩이가 숨어있어 주행하기가 무서웠다. 그런데 갑자기 훈호 씨가 쌩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역시 그래블 바이크는 다르네요. 사고 싶다. 진짜.” 어느새 에디터 자전거를 타고 있는 훈호 씨가 그래블 바이크 예찬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영 씨도 예찬론에 가세했다. “바퀴가 두꺼워서 숲길에서도 안전하게 주행할 수 있어요. 로드와 오프로드에서 모두 활용할 수 있고요.”

잣나무 숲속에는 이미 한 팀이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얼른 나무에 해먹을 치고 사이트를 구축했다. 선호 씨가 해먹 위에 드러누웠다. 한쪽 발을 밖으로 빼고 누운 그를 보니 에디터도 얼른 누워 보고 싶어 차례를 기다렸다. 잠시 한눈 판 사이 이번에는 아영 씨가 해먹 위에 앉았다. “내 차례인데” 하고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순간 흠칫 놀라며 입을 틀어막았다. 쪼잔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은근슬쩍 아영 씨 옆으로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해먹이 신의 한 수네요.”

해가 춘천호 건너편 산꼭대기에 걸렸다. 우리는 쪼르르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각자 생각할 게 많은지 아무 말이 없었다. 훈호 씨가 침묵을 깼다. “우리 해 보자.” 어리둥절해 하는 아영 씨와 선호 씨를 뒤로하고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 해를 보면서 하고 싶은 일 다 해봐요.”

우연히 모인 20대 후반의 네 명이 자전거 여행을 했다. 각자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만 사랑, 돈, 미래라는 복잡한 미로 속에서 방황한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지만, 하루하루가 스트레스 연속이다. 이런 네 명이 자전거를 통해 복잡한 머릿속을 말끔히 정리하고 내일을 위한 원동력을 얻었다. 훈호 씨의 말처럼 자전거 여행은 헤어 나올 수 없는 마성의 아웃도어다.

초보 라이더가 도전하기 쉬운 자전거 여행 코스 3선

▶남한강 길
여주역~강천섬으로 가는 편도 약 13km의 평이한 코스로 캠핑도 할 수 있다.
*경강선: 주말 자전거 탑승 가능

▶인천 신 · 시 · 모도
운서역~삼목 선착장~신도 선착장~신도 저수지~시도~수기 해변~모도~조각 공원을 지나는 25km 코스다. 중간에 삼목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신도로 이동해 멋진 바다 경치를 보는 게 포인트다.

▶호명산 잣나무 숲길
운길산역~북한강 자전거 길~상천역~잣나무 숲길을 지나는 편도 34km 코스로 라이딩과 백패킹의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상천역~잣나무 숲길 사이의 트래킹 코스(1.4km)에서는 자전거를 끌고 이동해야 한다.

춘천역에서 잣나무 숲까지 가는 고도표다. 11km까지는 소양강 자전거 길로 업힐과 다운힐이 없는 완만한 코스다. 본격적으로 도로를 달리는 12km부터(용산 교차로) 업힐과 다운힐이 반복되면서 고도가 점차 상승한다.

초보 라이더로서 쉽지 않은 코스였다. 반복되는 업힐과 다운힐을 선호하는 이에게 추천하지만, 자전거를 처음 타보는 이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
*가민에 GPS 코스 파일을 담아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주행한다. 라이딩을 마치고 나면 오늘 달려온 길의 거리, 고도 등이 기록되는데, 라이더들은 이 코스 파일을 서로 공유하며 다음 여행지를 찾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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