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고 끌고 나르며’ 얻은 감동의 파노라마
‘들고 끌고 나르며’ 얻은 감동의 파노라마
  • 글 사진·김성중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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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TRAVEL 안동 | ② MTB

▲ ’안동대학교 뒷산 코스’는 산이 높지 않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어 싱글 라이딩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안동시내·안동호 조망 빼어난 ‘안동대학교 뒷산 싱글 코스’

낙엽은 비단 걷는 사람들만의 소유물은 아닌 것 같다. 길을 빼곡히 덮은 낙엽 속을 달리는 기분은 라이더를 감상적이고  낭만 속에 젖어들게 만든다. 세상이 붉고 노랗게 물들어 가는 가을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고즈넉한 도시 안동에서의 라이딩은 그래서 더욱 가슴을 설레게 한다. 

취재협조·안동 ‘산중이륜’ MTB동호회 http://cafe.daum.net/bikeinmt

아침저녁 기온이 제법 쌀쌀하다. 올해는 유난히 무더운 여름이 지속된 한해였다. 대중매체에서는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을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하고 있지만, 사실 이전까지는 그리 몸에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갈수록 짧아지는 봄가을을 보면 그동안 배운 뚜렷한 사계절이란 말도 조만간 없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다.

라이더들이 한결 같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처럼 가을만큼 라이딩하기 좋은 계절은 없다. 그래서 더욱 놓칠 수 없는 것이다. 청명한 하늘 아래 노란색으로 물든 대지 속을 달리는 기분을.

▲ 328봉우리를 넘자 완만한 길이 이어졌다. 여기부터 덕산지맥의 주능선에 닿기까지는 업힐 구간이 조금 더 이어진다.

‘싱글족’을 위한 최적의 코스
안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사다. 안동에는 하회마을, 도산서원 등 중요한 문화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고, 그 문화와 빚어진 많은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다. 그래서 안동은 여느 지역보다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또한 안동시내만 벗어나면 안동호, 임하호 등 차량이 드물고 풍경이 좋은 곳이 많아 라이딩하기도 좋다.

하지만 이미 알려진 이러한 정보보다도 안동에는 숨은 MTB 코스가 있다. ‘안동대학교 뒷산 코스’라고 이름 지어진 이곳은 싱글 라이딩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자전거 라이딩에서 ‘싱글’이란 도로도 임도도 아닌 산길을 달리는 것을 말한다. 즉 산에서 타는 자전거의 의미를 가장 잘 살린 라이딩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라이더조차 싱글 라이딩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위험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 ‘산중이륜’ 동호회 회원들이 계속되는 업힐에도 흐트러짐 없이 올라가고 있다.
안동에도 MTB 동호회가 많지만 싱글 라이딩을 전문적으로 하는 동호회는 ‘산중이륜’ 단 한 군데다. 산중이륜은 안동대학교 교수와 학생들, 그리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안동의 라이더들이 모여 만든 동호회로 고성운(54) 안동대학교 교수가 회장을 맡고 있다. 워낙 거친 곳만 다니다보니 회원 중에 여성이 한 명도 없고, 몇 주 해보다가 그만두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안동에는 대외적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싱글 코스가 아주 많습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안동대학교 바로 뒤에 있는 ‘뒷산’입니다. 비록 변변한 이름도 없어 뒷산이라 부르지만, 높지도 않고 인적이 드물어 싱글 라이딩을 하기에 최적이죠. 그래서 최근에는 소문을 들은 영주, 상주 등 인근 도시의 ‘싱글족’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안동대학교 뒷산의 봉우리들은 해발 300~400m 사이다. 출발점은 여러 곳이 있지만 자연과학대학 뒤편 산길로 올라서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출발점이 해발 100m 정도 되기 때문에 실제로 표고차는 200~300m 정도다. 뒷산 코스는 시간과 능력에 따라 여러 가지 코스로 연결할 수 있는데, 가깝게는 5km 내외부터 10km가 넘는 코스까지 다양하게 계획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싱글 라이딩을 할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또한 싱글 코스가 있어도 등산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은 마음 놓고 달리기도 어렵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라이더들은 임도를 찾게 되는데, 안동에 이렇게 좋은 싱글 라이딩 코스가 있는 건 정말 큰 행운이다.

“뒷산에는 한두 시간만 여유가 있으면 갔다 올 수 있는 코스가 많아요. 그래서 강의가 없는 시간에는 틈만 나면 올라갑니다. 요즘엔 거의 싱글 라이딩만 해요. 짧은 시간에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한적해서 좋고요. 강의나 연구로 쌓인 스트레스를 거의 라이딩을 하며 풀고 있죠.”

▲ 원점회귀 코스에서 가장 험난한 봉우리인 ‘떡봉’을 있는 힘을 다해 오르고 있다.

험난한 업힐 끝에 안동을 품다
코스 초입은 자연과학대학 뒤편에서 시작한다. 건물 뒤편에 가보면 산으로 연결된 낮은 콘크리트 턱이 있는데 그곳이 출발점이다. 초반부터 급경사를 이룬 오르막이 이어졌다. 회원들은 자전거에서 한번도 내리지 않고 잘 올라갔지만, 싱글 경험이 거의 없는 기자에겐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 업힐 도중 MTB에 이상이 생겨 꼼꼼히 점검하고 있다. 싱글 라이딩은 험한 산길을 달리기 때문에 항상 정비 도구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처음에는 초입부터 자전거를 끌면서 오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루가 다르게 거리가 점점 늘어나더군요. 지난 번 상주에서 자전거 대회가 있었는데, 회원들 모두 상위 50% 안에 들어오는 성적을 거뒀어요. 회원 중에는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지 한 달 밖에 안 된 초급자도 있었는데, 놀라운 성과였죠. 싱글 라이딩이 실력을 쌓는 데는 가장 빠른 방법인 거 같습니다.”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나고 다리도 풀리기 직전, 조그만 봉우리에 가까스로 올라설 수 있었다. 봉우리의 높이는 328m로 초입부터 약 200m의 표고차, 업힐 거리만 1km 정도 오른 것이다. 한 고비는 넘긴 셈이다.
“이 뒷산의 봉우리들은 이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임의로 저희끼리 통하는 이름을 붙여 놓았죠.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안동호가 훤히 보이는 전망대가 나오고, 다시 500m 쯤 가면 명수봉과 산불감시탑이 나옵니다. 그곳에서의 전망이 아주 좋아요.”

▲ 뒷산 원점회귀 코스 중 가장 전망이 좋은 산불감시탑. 전방에 푸른 하늘을 머금고 있는 안동호가 보인다.
‘명수봉’은 명수라는 이름을 가진 동호회 회원이 그 봉우리를 오르다가 크게 다친 적이 있어서 그 후부터 ‘명수봉’이라 부르게 됐다. 이외에도 회원들이 지은 봉우리 이름으로 ‘떡봉’이 있는데, 워낙 오르막이 심해 봉우리에 올라서면 모두 숨을 헐떡인다고 해서 지은 것이다. 산불감시탑에서 떡봉 방향의 오르막은 현재 회원들의 실력이 좋아져 대부분 한 번도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올라서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반대편에서 쉼 없이 오른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떡봉은 이 코스에서 가장 ‘악명’ 높은 봉우리인 것이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정면으로 안동호가 시원스레 펼쳐졌다. 비로소 뒷산의 주능선에 올라선 것이다. 전망대에서 좌우로 이어지는 능선은 낙동정맥에서 뻗은 산줄기 중 하나인 덕산지맥의 일부분이다. 덕산지맥을 따라 라이딩하는 코스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명수봉을 지나 산불감시탑에 도착하자 안동의 풍광이 넓게 펼쳐졌다. 정면으로는 안동호가 푸른 하늘을 머금고 있고, 공기가 맑아 안동 시내도 또렷하게 보였다. 사실 안동의 풍광을 감상하기는 전망대보다 이곳이 훨씬 좋은 것 같았다.

드디어 떡봉이다. 떡봉에 오르기까지 자전거를 거의 들거나 끌다시피 했다. 하지만 정상에서 잠시 쉴 틈도 없이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이 이어졌다. 뒷바퀴가 죽죽 미끄러져 자칫 잘못하면 산비탈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비포장도로가 나있는 가틔고개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가틔고개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마지막 목적지인 320봉우리로 향했다.

▲ 덕산지맥의 능선에 올라서면 경사가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가을은 라이딩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
가을은 가을인가. 오후 늦게 시작하긴 했지만 320봉우리에 도착하자 벌써 서산으로 기운 해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안동시내는 해가 붉어지면 붉어질수록 무르익은 가을 정취와 너무나 잘 어우러졌다. 어느 하나 노력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어쩌면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이 풍경들은 힘든 업힐을 견뎌냈기에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이제 남은 건 안동대학교까지 이어진 다운힐이다.

안동대학교 뒷산은 비록 낮은 산에 불과했지만, 또 다른 자전거의 세계를 느끼게 했다. 노력한 만큼 업힐의 거리가 늘어나는 결과. 이는 노력의 대가는 정직하다는 뜻일 게다. 라이딩 도중 들은 고성운 교수의 말이 가슴깊이 새겨진다.

“산과 마찬가지로 업힐을 끝냈을 때 기다리는 것은 신나는 다운힐입니다. 업힐이 힘들다고 오르지 않으면 다운힐의 즐거움은 맛볼 수 없죠.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우리의 삶도 MTB와 비슷하지요. 지금 어렵다 해도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면 힘들었던 만큼 즐거움이 찾아옵니다. 뒷산은 비록 작은 산이지만 항상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주죠. 도전하는 자만이 그 단맛을 느낄 수 있겠지요.”

▲ 안동 ‘산중이륜’ MTB 동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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