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자도 탈락자도 모두 챔피언이다!
우승자도 탈락자도 모두 챔피언이다!
  • 글·사진 안병식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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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식의 극한 마라톤대회 참가기 ⑦ 알프스 트레일런 | partⅠ

▲ 매일 매일 해발 2000m가 넘는 산봉우리를 올라야 했지만 아름다운 알프스의 풍경은 힘든 레이스 마저 잊게 만들었다.

7박8일 동안 300km를 달려야하는 코스…엄격한 대회 규정으로 탈락자 속출

글·사진 안병식 오지 마라토너 http://blog.naver.com/tolerance 
대회 협찬·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제주특별자치도 스포츠산업과, <노스페이스>

알프스 고산지대에서 7박8일 동안 펼쳐진 300km의 레이스. 험난한 코스뿐만 아니라 엄격한 대회 규정으로 많은 탈락자가 속출했지만, 참가했던 모든 선수들은 새로운 곳에 도전했다는 것만으로도 모두 만족해했다. 실패보다는 꿈을 실현하는 열정이 우승이나 완주보다도 훨씬 값진 것이 아닐까? 나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도전은 그 어떤 것보다도 달콤한 ‘유혹’이다.

유럽대륙 중남부의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스위스·이탈리아에 걸쳐 있는 알프스는 일 년 내내 빙하에 덮여 있는 산과 초원지대, 그리고 호수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알프스 산맥은 히말라야 산맥이나 안데스 산맥 보다는 높지 않지만, 그동안 가본 그 어떤 곳보다도 아름다운 풍경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 세계 20개국에서 모인 수많은 선수들이 ‘레이스 축제’를 위해 알프스에 모였다. 대회 참가와 완주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고산지대를 넘어야하는 극한의 레이스
이번 대회의 정식 명칭은 ‘2008 고어텍스 트랜스 알파인 런’으로 ‘알프스 산맥을 넘어 달린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코스는 독일의 남부에 있는 작은 마을인 루폴딩(Ruhpolding)에서 출발해 오스트리아를 거쳐 이탈리아까지 알프스 산맥을 따라 8일 동안 300km의 거리를 달리게 된다. 대회는 매일 해발 2000m가 넘는 산을 오르게 되고 아주 험난하기 때문에 2인1조 팀으로만 참가가 가능하다.

이번 대회는 세계 20개국에서 50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대회는 알프스 산맥을 따라 2개의 코스로 나누어져 있고 2년마다 돌아가면서 열린다. 일반 도로가 아닌 산속의 작은 길이나 비포장 길 등을 달리는 것을 트레일런(Trail Run)이라 하는데,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도로를 달리는 일반 마라톤과는 달리 또 다른 모험과 도전을 즐길 수 있는 트레일런이 굉장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 대회를 시작하기 전 선수들이 선수등록을 마치고 있다.
인천 공항을 출발해 중국과 몽골고원, 그리고 광활한 러시아대륙을 거쳐 독일의 뮌헨 공항에 도착했다. 알프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이미 내 마음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만날 수 있다는 상상으로 가득 찰 만큼 기대에 차 있었다. 지리상 유럽의 중심에 위치한 독일은 유럽연합에서도 가장 인구가 많고 경제적으로도 중심이 되는 나라다. 독일은 세 번의 월드컵 우승 국가답게 축구를 빼놓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고 맥주의 고장, 그리고 많은 예술가들의 문화 공간으로 유명하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에 위치한 뮌헨은 독일에서도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작은 수도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뮌헨은 2006년 월드컵 개막전이 열린 도시며, 매년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 세계 최대의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Octoberfest)’가 열리기도 한다.

독일은 영국이나 북유럽에 비해 물가가 싼 편이지만 버스나 기차 등 교통요금은 비싸기 때문에 독일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교통비에 대한 체크를 미리 해두는 게 좋다. 뮌헨에서 남동쪽으로 2시간30분 정도 기차를 타고 가면 트렌슈타인을 거쳐 대회 출발 장소인 루폴딩에 도착할 수 있다.

▲ 알프스는 일년 내내 빙하에 덮여 있는 산, 그리고 광활한 초원지대와 아름다운 호수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독일의 남쪽 알프스 산맥에 인접한 루폴딩은 2008년 1월에 바이애슬론 월드컵 대회가 열리기도 했으며, 겨울에는 스키 등 스노스포츠, 여름에는 MTB와 알프스 트레킹의 천국이 된다. 독일에서 알프스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을에는 타지에서 온 관광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루폴딩은 도시라기보다는 작은 시골마을이라고 할 수 있고 걸어서 1시간 정도면 마을 전체를 구경할 수 있다. 저녁이 되면 마을 곳곳의 레스토랑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얘기는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여유롭게 보였다.

대회 전날은 선수등록을 하고 300km의 레이스를 함께할 새로운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며 대회 준비를 했다. 대회 본부는 마을 학교에 설치됐다. 그곳에는 <고어텍스> <살로몬> <폴라> <레키> <파워 바> 등 스폰서들의 엑스포가 대회 기간 내내 열렸으며, 저녁 때는 대회 참가국 소개와 함께 경기 설명회 및 코스 브리핑, 그리고 파스타 파티가 함께 열렸다.

▲ 초원지대와 언덕에서는 MTB를 즐기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Stage1
Ruhpolding(Germany) → St. Ulrich a. Pillersee(Austria) 38.23km 

대회 첫날은 루폴딩에서 출발해 오스트리아의 St. Ulrich a. Pillersee까지 38km를 달리는 코스로 첫날이라 그런지 비교적 쉬운 코스였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면서 같이 참가하는 팀 파트너가 그렇게 빨리 달리는 선수가 아니라서 개인적으로는 사진과 비디오 촬영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을에서의 민속공연과 사진촬영 등 여러 가지 행사가 끝난 후 루폴딩 시내를 출발하면서 대회는 시작되었다. 관광객들과 마을에서 모인 많은 사람들의 응원, 오토바이를 타고 참가자들을 따라 오는 카메라맨, 그리고 대회 시작 전부터 요란한 소리를 내며 대회장을 촬영하는 헬기가 선수들을 더욱 흥분시켰다.

마을을 벗어나 알프스를 오르기 시작하면서 폭포와 목장지대가 나타났고 트레킹을 하는 관광객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날씨도 맑아 푸른 하늘과 초록으로 물든 초원지대가 더욱 눈부시게 보였다. 산 정상에서는 멀리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들이 보였다. 그렇게 한 참을 달려 산을 내려오고 난 후 호수를 따라 마을로 내려오면서 오스트리아의 St. Ulrich a. Pillersee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잔잔한 호수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이 도시는 주말이라 그런지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국경선도 없이 산을 하나 넘는 것만으로도 이웃 나라인 오스트리아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게 조금은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것은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넘어갈 수 없는, 섬 아닌 섬이 되어 버린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 너무 익숙해져서일 것이다.

▲ 이날은 해발 2000m가 넘는 산봉우리를 두 번이나 올라야 했고, 50km를 넘게 달려야 했다.

Stage2
St. Ulrich a. Pillersee(Austria) → Mittersill(Austria) 51.03km

알프스 산맥 동쪽에 위치한 오스트리아는 독일남부와 국경을 접하며, 국토의 3분의 2가 알프스 산지로 둘러 쌓여있다. 오스트리아는 음악으로 유명한데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베토벤, 슈베르트 등도 오스트리아에서 수많은 연주회를 가지기도 한 예술과 낭만을 느낄 수 있는 나라다.

오늘은 해발 2000m가 넘는 산봉우리를 두 번 올라야 하고 50km를 넘게 달려야 하는 아주 힘든 레이스다. 그러나 푸른 초록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알프스 풍경은 힘든 레이스를 잊게 하기에 충분했고 그렇게 멋진 풍경들을 사진과 마음속에 간직하며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캠프가 설치된 마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코스가 힘들어 초반부터 탈락자가 많이 발생했다. 특히 지난 고비사막과 칠레의 아타카마에서 만났던 스페인 친구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오지마라톤 경험도 많은 친구들인데도 마지막 체크포인트에 3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대회에서 탈락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규칙도 엄격히 적용되어 매일매일 탈락자가 발생했다. 스페인 친구들과 저녁을 함께 먹으며 아쉬움을 같이 했지만, 다음날 짐을 싸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난 그저 쓸쓸하게 바랄 볼 수밖에 없었다.

▲ 비록 한걸음 한걸음 발을 떼기도 힘들지만, 아름다운 알프스의 초원지대를 걷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다.

Stage3
Mittersill(Austria) → Neukirchen(Austria) 26.15km

Mittersill 시내에는 교통량도 적고 깨끗해서 산에서 달리는 것처럼 아침 공기가 아주 맑았다. 가슴깊이 스며드는 그 상쾌한 기분을 지울 수 없을 것만 같다. 나무숲을 지나 산을 넘자 푸른 초원지대가 나타났다. 대회 측에서는 중간 중간 헬기 촬영을 했다. 많은 참가자들의 레이스를 따라 헬기가 따라다니면서 촬영을 하는데, 헬기가 가까이 접근하면 참가자들이 환호성과 함께 카메라맨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또 다른 장관을 연출했다.

산 정상에 올라섰을 때 밑으로는 오스트리아의 시내 풍경이 보이고 멀리는 하얗게 눈이 덮인 알프스의 만년설이 신비로움으로 다가왔다. 이날도 역시 해발 2400m를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는 코스로 해발 2000m까지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었고, 그들은 우리를 향해 많은 응원과 격려를 해주었다.

오스트리아의 Neukirchen 시내는 겉으로는 독일의 루풀딩과 비슷했지만 조금은 다른 문화의 특성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저녁 파스타 파티와 함께 시상이 열리고 그날의 레이스 사진과 비디오를 보여주어 하루하루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 매일 레이스가 끝나고 저녁에는 파스타 파티와 함께 시상식이 열렸다. 그날에 있었던 레이스를 사진과 비디오를 통해 보여주기도 했다.

저녁 파스타 파티를 위해 10여 분이 넘게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2000m까지 올라가야 했다. 그 높은 곳에 레스토랑이 있는 것이 정말 신비로웠다. 메뉴에는 파스타뿐만이 아니라 라이스와 스프도 메뉴에 있어서 오래간만에 포식할 수 있었다. 특히 오뎅(?) 국물에 튀김이 섞여있는 그 스프의 맛은 마치 한국에서 먹었던 스프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며칠을 밀가루 음식만 먹다가 간만에 쌀이 들어간 음식을 먹게 되서 정말 꿀맛 같은 저녁 식사를 보낼 수 있었다. 거기에다 특별히 생맥주도 한 잔 같이 했는데 오스트리아에서 맛 본 정말로 특별한 만찬이었다.

▲ 2인1조로 팀을 이룬 선수들이 힘차게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이번 대회는 규정이 엄격해 탈락자가 속출하기도 했다.

Stage4
Neukirchen(Austria) → Prettau(Italy) 41.41km

오늘은 같이 팀으로 참가했던 파트너가 그동안의 레이스에 피곤함이 쌓였는지 초반부터 너무 힘들어했다. 속도를 많이 줄이고 서로 얘기를 많이 하면서 달렸는데 다른 마라톤과는 달리 2인1조 팀으로 참가하는 대회라 다른 대회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감정들이 많이 생겼다. 대회 측에서는 팀 멤버 중 한명이 다치거나 포기하게 되면 다른 파트너를 찾아주기도 하고 레이스가 비슷한 팀을 골라 3명이 함께 달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다시 힘든 레이스가 펼쳐졌지만, 처음 만난 거대한 폭포를 시작으로 산 정상까지 계곡과 크고 작은 폭포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산에서 만년설이 녹으면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만든 절경이었다. 날씨는 변덕스러워 가랑비와 함께 안개로 덮여 있어 시야도 그리 멀리 보이지 않았다.

▲ 저 멀리 알프스 산맥이 장쾌하게 펼쳐져 있다.

다행이 ‘체크포인트2’를 지나면서 안개가 걷히고 아름다운 목장지대가 펼쳐졌다. 또한 햇빛에 반사된 산 정상은 더욱 눈부시게 빛났으며, 산이 가까워질수록 그 장대함과 경이로운 알프스의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오늘의 코스는 그동안의 레이스를 하는 동안 가장 환상적인 알프스 풍경들을 볼 수 있는 날이었다.

그러나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변덕스러운 날씨는 다시 안개구름으로 덮여 버렸고, 바람과 안개비 때문에 매우 춥고 시야도 많이 좁아졌다. 날씨는 하산하면서 구름사이로 햇빛이 비치며 다시 맑아졌고 멀리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려오는 동안 그동안 괜찮았던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면서 힘든 레이스가 이어졌다. 고생 끝에 대회 4일 만에 이탈리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나를 처음 맞이 해준 친구들은 수줍게 미소를 짓고 있는 ‘알프스 소녀’들이었다. 

▲ 선수들을 위해 마련된 터닝포인트에서 식수 등이 제공됐다.

안병식
| <노스페이스> 소속이다. 중국의 고비사막, 이집트의 사하라사막, 칠레의 아타카마사막, 남극 등 세계 4대 극한 마라톤대회를 완주한 ‘그랜드슬래머’로 지난 4월에는 북극점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했다. 세계 곳곳의 극한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전문 오지 마라토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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