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를 기다리는 시간
나비를 기다리는 시간
  • 글 사진·안광태 여행작가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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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세상 사람 ⑮ 말레이시아의 나비 밀렵꾼 시바

▲ 말레이시아의 나비 밀렵꾼 시바.

시야를 삼켜 벼렸던 산안개가 다시금 세상을 토해냈지만 여전히 라자 브룩스 버드윙(Raja Brooke's Birdwing)은 나타나지 않았다. 가끔씩 들려오는 잔나비 울음소리가 긴 꼬리를 흐느적거리며 맞은편 골짜기 어디론가 사라졌다. 반시간은 넘게 침묵에 잠겨있던 그의 입이 열렸다.

“그 놈을 만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놈을 잡는 것은 기다림을 배운다는 말과 같습니다. 기다림이란 말에는 설렘, 초조함, 지루함 같은 낱말들이 묻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놈을 기다리는 것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산 밑에서 밀어 올리는 상승기류 때문에 이리저리 어지럽게 헤매드는 산안개 사이로 열대의 태양이 가끔씩 기웃거리다가 사라졌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북쪽으로 4시간 정도 자동차로 달리면 카메론 하일랜드(Cameron Highlands)에 도착한다. 이곳은 말레이시아가 영국의 식민지이었던 시절, 영국인들이 열대의 무더위를 피하고자 건설한 전형적인 힐 스테이션(Hill station, 피서지)이다. 1885년 영국의 식민지 국토 조사관 윌리엄 카메론이 이곳을 발견했기에 그의 이름을 본떠 카메론 하일랜드라 부른다. 이 고원지대는 적도 아래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해발고도 1500m가 넘어 1년 내내 시원한 곳이다. ‘말레이시아의 샐러드 그릇’이란 표현처럼 카메론 하일랜드는 각종 야채와 과일, 그리고 꽃과 곤충들의 천국이다. 게다가 너른 차(茶) 농장들이 사시사철 초록의 향연을 내뿜고 있어 뭇 여행자들이 동경하는 곳이다.

“나비를 잡아, 먹고 삽니다. 표본을 만들어 팔거나 아니면 산채로 나비 농장에 넘겨 돈을 벌고 있습니다.” 카메론 하일랜드의 울창한 정글에서 서너 번 마주쳐 알게 된 시바(Siva)는 자신을 나비 밀렵꾼이라 소개했다. 까무잡잡한 얼굴을 가진 그는 얼핏 보아도 남인도계 말레이시아인임이 확연했다.

▲ 시바는 ‘기다림’이란 말에 비움과 가득함이 들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본래 호텔의 매니저였는데 잠시 호텔에 문제가 생겨 일을 못하고 있었다. 어쩐지 그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날마다 도시락을 싸들고 이산 저산으로 나비 사냥을 떠나는 밀렵꾼에게 떠돌이로서의 동지 의식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처음에 깨달은 바, 삶은 옳고 그름의 문제였습니다. 젊을 때는 대개 그렇잖습니까? 할아버지는 제1차 세계대전 무렵, 남인도 타밀(Tamil) 지역에서 차밭 쿨리(cooly, 중국어 苦力(kuli)에서 비롯된 단어로 중국·인도의 막노동자를 일컬음)로 이 땅에 이주해왔답니다. 그래서 제가 어릴 적엔 아버지도 저도 차밭 쿨리였습니다. 지금은 많이 기계화되어 다소 수월해졌다지만, 아직까지도 차밭 일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과거에는 어떠했겠습니까. 그야말로 쿨리는 극도로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 조건 속에 시달리는 채무노예 신세였습니다. 가파른 경사도의 산비탈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하루 종일 손으로 찻잎을 따면 50㎏ 정도를 수확했습니다. 지치고 허기진 몸으로 그 무거운 찻잎 자루를 옮기려면 얼마나 힘이 들던지…. 인종차별은 심하고, 가진 자들은 어린 몸뚱어리를 사정없이 짓눌렀으니 산다는 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로 다가올 수밖에요.”

통칭 말라야(Malaya)라고 불렸던 말레이반도는 인도양과 남중국해가 연결되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오랜 역사를 통하여 동서양 국가들의 전략적 요지 역할을 해왔다. 말라야는 인도·인도네시아 같은 주변국의 영향력 아래 일찍부터 힌두문화와 불교문화가 전파되었고, 14세기경 아랍 상인들에 의해 이슬람교가 널리 퍼지면서 많은 술탄(sultan, 이슬람 군주) 국가로 병립하였다.

16세기 이후부터는 유럽 열강의 식민지 경략 정책에 따라 차례로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영국은 천연고무 생산과 주석광산 개발을 위해 19세기말부터 1930년대까지 말라야에 중국인과 인도인들을 대규모로 이주시켰다. 이로 인하여 과거 인종적·문화적으로 비교적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던 말라야는 이질적인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급격히 변모되어 갔다. 말레이시아 연방이란 이름으로 독립된 이후, 정치·경제·문화적 차이에서 빚어지는 이민족 간의 갈등은 증폭되어 갔다.

1970년대부터 연방 정부는 말레이계와 원주민들을 부미푸트라(Bumiputra, 선주민 이라는 뜻임)라 칭하며 구조적으로 우대하는 정책을 폈다. 하지만 부미푸트라 정책은 정치권을 쥐고 있는 말레이계, 경제권을 쥐고 있는 중국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인도계와 소수 민족에게는 또 다른 인종차별로 작용하며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현재 말레이시아의 인구는 대략적으로 말레이계 5, 중국계 3, 인도계 1, 원주민 및 기타 1의 비율이다.

▲ 시바가 기다리는 나비, 라자 브룩스 버드윙.

“그렇게 한참을 살다가 다시 깨달은 바는, 삶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득(得)이 되느냐 실(失)이 되느냐로 다가왔습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땅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기름야자(palm) 농장들을 보셨습니까? 팜유 생산 업체에서 기름야자를 재배할 땅을 얻기 위해 원주민들과 동물들의 보금자리인 정글을 불사르고 조성한 어마어마한 넓이의 플랜테이션들입니다.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그들의 어린 처자식들까지 빼앗겼습니다. 바로 그 플랜테이션에서 기름야자 열매를 채취하기 위해 노동력까지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것을 옳지 않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도, 그들이 생산한 팜유로 만든 음식과 비누 등을 희희낙락하며 먹고 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산다는 것이 득과 실의 문제로 다가올 수밖에요.”

산안개가 잦아지고 차츰 햇살이 빗질하듯 내리면서, 형형색색의 나비들이 가끔씩 찾아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비를 기다리면서 다시금 깨달은 바는, 삶은 옳고 그름의 문제일 것도 없고 득과 실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좀 엉뚱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문제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시원한 힐 스테이션이지만 적도의 후끈함이 그의 이야기만큼이나 강하게 갈증을 자아냈다. 그때 요란한 색깔의 나비 한 쌍이 바로 눈앞에서 심하게 허공을 어지럽혔다.

“아니 저것들은 남우세스럽게 하필 여기 와서 사랑질이야.” 기다림에 지쳐 지루해진 동지의 괜한 투정에 시바가 슬며시 웃어보였다. “저것들은 지금 사랑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컷들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고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사람이나 곤충이나 내 것이란 소유욕은 아마도 일종의 생존본능인가 봅니다.” 이번에는 풀숲에서 강렬한 색채의 날개 한 쌍이 너붓거렸다.

“혹시 저 놈이 기다리는 나비 아닌가요?”

“아닙니다. 저것은 나비가 아니라 나방입니다.” 동지의 겅둥댐이 우스웠는지 시바는 아예 허옇게 이를 드러내놓고 웃어 젖혔다. “어쩐지 오늘은 기다리는 라자 브룩스 버드윙이 나타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다림 속에는 비움과 가득함, 이런 말도 묻어있으니까요….” 웃음소리에 민망해져 나방의 날개 무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안광태 | 40대 초반의 여행작가 안광태 씨는 돌아올 기약 없이 수년째 세상을 떠돌고 있습니다. 그는 바람처럼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며 유명 관광지보다는 그곳에 사는 사람을 만납니다. 본지는 안광태 씨가 보내준 각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생활양식이 녹아있는 흥미로운 인간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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