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자도 탈락자도우리는 모두 챔피언!
우승자도 탈락자도우리는 모두 챔피언!
  • 글·사진 안병식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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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식의 극한 마라톤대회 참가기 ⑧ 알프스 트레일런 | partⅡ

▲ 7박8일의 알프스 트레일런을 마친 선수들이 결승점을 통과하며 기쁨의 포옹을 나누고 있다.

카메라 촬영과 완주 목적 달성…가장 운영이 뛰어난 대회로 기억남아

글·사진 안병식 오지 마라토너 http://blog.naver.com/tolerance | 대회 협찬·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제주특별자치도 스포츠산업과, <노스페이스>

세계의 오지를 찾아다니는 마라토너 안병식 씨가 이번에는 알프스에서 열린 7박8일간의 트레일런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열정 하나로 지금까지 수많은 극한 마라톤대회를 참가하고 있는 그는 험난한 도전 속에서 자신의 소중한 경험을 쌓아 가고 있다. 그동안 본지에 연재된 안병식 씨의 극한 마라톤대회 참가기는 이번 12월호 ‘알프스 트레일런 partⅡ’를 마지막으로 잠시 끝을 맺는다. 그의 도전은 자신의 몸이 버티는 한, 그리고 꿈과 목표가 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대회 5일 째. 아직 험난한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

Stage 5
Prettau(Italy) → Sand in Taufers(Italy) 34.86km

이탈리아는 지중해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어 지중해 지역의 특색이 가장 잘 나타나는 나라다. 특히 대회가 진행된 북쪽 지방은 알프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와 접해 있어서 남부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 대회 측에서는 매일매일 펼쳐지는 레이스를 미디어팀을 통해 생중계했다.
이탈리아의 샌드 인 타우퍼스(Sand in Taufers)에 도착하자 많은 마을 주민들이 참가자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곧이어 그들이 준비한 민속공연이 이어졌다. 이탈리아나 스페인 사람들은 한국인의 정서와 비슷한 부분이 참 많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있으면 금방 친해지게 된다. 그동안 많은 레이스를 하며 만났던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친구들과는 대회가 끝난 후에도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는데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오늘 캠프는 피니시 라인 근처가 아닌 시내와 조금 떨어진 마을 체육관에 숙소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이 불편하지 않게 버스로 숙소까지 이동시켜 주었고, 샤워를 할 수 있도록 마을에 있는 목욕탕까지 안내해 주었다. 다른 대회에 비해 이번 알프스 대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원활한 대회 진행을 위해 준비가 아주 철저했다는 것이다. 스텝들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선수들을 위해 아침저녁 식사뿐만 아니라 체크포인트마다 빵과 음료, 그리고 신선한 과일들을 충분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동안 많은 대회에 참가를 하는 동안 선수들을 위해 이토록 최대한 신경을 쓴 대회는 없었던 것 같다. 비록 코스는 다른 대회만큼 아주 힘들지만, 아름다운 알프스의 풍경을 배경으로 달릴 수 있다는 것과 스텝들의 만족스러운 대회 운영은 모든 선수들에게 다음 해에도 다시 참가해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 체크포인트에서 물품을 지급받는 선수들.

▲ 선수들이 줄지어서 바위지대 길을 따라 오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Stage 6
Sand in Taufers(Italy) → Antholz(Italy) 24.04km

한번은 2개의 카메라를 들고 달리는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독일의 방송국에서 나에 대해 취재하고 싶다며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들에게 그동안의 레이스 경험들을 얘기해 주었더니, “믿을 수 없다”며 결국 “미친 놈”이라는 칭찬(?)까지 듣기도 했다. 하긴 가끔은 내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이렇게 미친 듯이 오지를 찾아다니는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날은 그들의 요구에 응하며 촬영에 도움이 되도록 페이스를 조절하며 달렸다. 코스는 짧은 편이였지만 산을 하나 넘은 후 도로를 지나 다시 해발 2700m의 산을 넘어야 하는 코스였다. 어떤 코스는 내려오는 길이 너무 위험해서 중간 중간에 전문 산악인들이 배치되어 참가자들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했다.

▲ 7박8일 동안 250km를 달려야 하는 극한의 레이스지만, 고령임에도 참가하는 외국인 선수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참을 달려 해발 2000m가 넘는 지대에 올라서자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소들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알프스에서는 마을에서부터 산 정상까지 방목되어 있는 소와 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오전 브리핑에서 정상에는 눈이 내릴 수 있다고 재킷과 비옷을 챙기라고 했지만, 다행이 구름만 끼어 있을 뿐 눈이나 비는 내리지 않았다.

안톨즈(Antholz)에 도착하자 이탈리아 할아버지들이 반갑게 맞이해주면서 맥주를 권했다. 하지만 “레이스를 금방 끝내서 아직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라고 말했는데, “걱정하지 말라”며 맥주 한 잔 값인 3유로를 흔쾌히 지불하며 맥주를 건넸다.

할아버지들은 “안톨즈는 겨울이 되면 매년 바이애슬론 대회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며 신나게 마을 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많은 질문들을 던졌다. 아직 유럽에서는 한국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더치페이 문화에 익숙한 외국인들이 건네주는 맥주가 처음에는 약간의 어색함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그렇게 맥주 한잔을 얻어먹으며 얘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나의 마음은 그들과 동화되어 갔다.

▲ 알프스의 대자연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매일매일 고산지대를 넘어야 하는 만큼 선수들은 극한의 고통을 참으면서 달려야 했다.

Stage 7
Antholz(Italy) → Niederdort(Italy) 40.63km

오늘도 산을 두 번 오르는 쉽지 않은 레이스다. 또한 이번 코스는 미리 예정됐던 코스가 조금 변경된다는 설명도 있었다. 그동안 촬영을 만족스럽게 하지 못한 것 같아서 촬영을 위해 선두그룹과 같이 뛰다보니 초반부터 힘든 레이스가 계속됐다. 촬영을 하면서 달린다는 것이 자칫 자신의 페이스를 잃어버릴 수도 있고 무척 힘든 일이지만, 더 다양하고 멋진 화면들을 생생하게 담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오늘까지 종합 기록으로는 남자는 이탈리아 팀이, 여자는 캐나다 팀이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선두 그룹은 페이스가 너무 빨라 정말 힘든 촬영이었다. 초반부터 마을을 벗어나며 급경사의 산을 넘고 다시 마을이 보이는 산길을 따라 내려오다 마을을 지나고 다시 산을 오르는 레이스가 진행됐다.

▲ 선수들을 위해 체크포인트에 마련된 에너지 보충 음료와 식품들.
레이스를 하는 동안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진 풍경들이 이어졌다. 독일에서 출발해 오스트리아를 거쳐 이탈리아에 오기까지 어느 한 곳 그냥 지나 칠 수 있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알프스의 장엄한 풍경과 그와 어우러진 마을 풍경들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워 보였다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초반부터 빨리 달린 덕분에 레이스를 일찍 끝마칠 수 있어서 오후에는 여유롭게 맥주를 마시며 시내 구경도 할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은 마을 체육관이나 레스토랑에서 파스타 파티가 있었지만, 오늘 저녁 파스타 파티는 야외에서 열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 선수들이 사력을 다해 결승점으로 달리고 있다. 대회 7일 째로 접어들면서 선수들 모두 체력적인 한계에 다다랐다.

Stage 8
 Niederdort(Italy) → Sexten(Italy) 42.195km

아침 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하지만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마음도 가벼워지고 참가자들의 웃음도 더 많아진 것 같았다. 마을을 지나고 체크포인트1을 지나면서 급경사의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낭떠러지가 있어 매우 위험한 코스였다. 이번 코스는 해발 2500m 이상의 산을 오르고 600m를 내려 온 후 다시 2400m까지 올라야 했다. 체크포인트2에 가까워지자 마치 그랜드캐니언을 연상하게 할 만큼 거대하고 웅장한 협곡지대가 나타났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과 햇빛에 반사된 협곡은 알프스의 또 다른 신비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 필자를 촬영하는 방송국 카메라맨의 익살스런 표정 때문에 인터뷰 내내 재미가 있었다.
체크포인트2를 지나 산을 내려오자 저 멀리 대회 마지막 피니시 라인이 설치되어 있는 젝스틴(Sexten)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피니시 라인이 가까워질수록 대회 진행자의 마이크 소리와 음악, 그리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알프스 산맥을 넘고 마을을 지나는 사이 어느새 8일간의 긴 레이스가 끝나고 피니시 라인을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마지막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자마자 같이 달렸던 선수들과 얼싸 안고 격려와 축하의 인사를 나누었다. 여기저기서 맥주 파티가 이어졌고 샴페인을 터트리며 그동안의 힘든 레이스를 축제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저녁이 되면서 마지막 파스타 파티와 함께 시상식이 열렸는데 이번 대회 남자 우승은 매일 선두를 유지했던 이탈리아 팀이, 여자 우승은 캐나다 팀이 차지했다.

그리고 시상식이 끝나자 카메라 2대를 들고 달리는 내가 대회 내내 안타까웠는지 우승팀인 이탈리아 친구들이 자신들이 받은 우승 기념 티셔츠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이 티셔츠는 내가 그동안 받은 그 어떤 선물보다도 의미가 컸다.

이번 대회는 비록 많은 탈락자가 있었지만, 참가했던 모든 선수들은 새로운 곳에 도전했다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챔피언’이 되기에 충분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어느 누구든 도전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면 모두가 ‘챔피언‘의 자격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축제와 열광의 함성이 섞인 파티는 새벽이 오도록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300km의 알프스 산맥을 달리면서 정말 힘들었지만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이번 알프스에서의 기억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삶은 어느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듯이 자기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 가야한다. 나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도전은 ‘첫사랑’에 대한 기억보다도 더 달콤한 ‘유혹’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오아시스’를 찾아서 나의 ‘방황’은 계속 될 것이다. 

▲ 6일 째 레이스를 무사히 마친 선수들.

▲ 축하 파티와 함께 열린 시상식장. 이번 대회는 약 500명이 참가한 최대 규모의 트레일런 대회였다. 이렇게 같은 꿈을 가진 선수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미친듯이 오지를 찾아다니는지도 모른다.

안병식
| <노스페이스> 소속이다. 중국의 고비사막, 이집트의 사하라사막, 칠레의 아타카마사막, 남극 등 세계 4대 극한 마라톤대회를 완주한 ‘그랜드슬래머’로 지난 4월에는 북극점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했다. 세계 곳곳의 극한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전문 오지 마라토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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