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31 - 덕산기의 슬픈 가을
산골일기 31 - 덕산기의 슬픈 가을
  • 아웃도어뉴스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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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벌써 지나가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산골의 풍경은 가을의 복판에 들어 서 있음을 실감하게 합니다. 햇살이 온 천지에 그득한 오늘, 저는 아는 후배가 살고 있는 덕산기(德山基)라는 골짜기로 가을 나들이를 떠났습니다.

▲ 후배 부부가 사는 덕산기 중간의 흙집.
 
유명한 일요일 밤 예능 프로그램인 ‘1박 2일’이란 프로그램에 두 번이나 소개 되어 이번 여름 참으로 많은 행락객의 방문으로 한 바탕 홍역을 치른 덕산기 골짜기. 오늘 그곳을 가보니 이번에는 덕산기 계곡 바위에 자생하고 있는 물매화를 찍으러 전국에서 아주 많은 사진가들이 오셔서 사진을 찍고 계시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살피니 많은 분들이 자기들이 찍으려는 대상만 신경 쓰고 자기들 발밑에 봉우리만 맺힌 물매화들을 그냥 밟아 버려서 정말 많은 물매화 들이 바닥에 짓이겨져 있었습니다.

저도 그분들 틈에 섞여 물매화 몇 포기를 찍고 그분들께 발 밑도 조심해 달라 당부하고 작년 4월 서울서 내려와 덕산기 중간쯤에 살고 있는 산악계 후배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타박타박 걸어 통과 하는 덕산기 계곡은 벌써 단풍이 들기 시작하여서 하늘벽처럼 솟아 오른 뼝대(바위 절벽을 이르는 강원도 사투리)에는 울긋불긋 벌써 화려한 색깔이 군데군데 칠해지고 있었습니다.

부지런히 걸어서 1시간 정도 지나니 아름다운 경치 안에 들어 앉아 있는 후배네 집, 그 집에서 정선 읍내서부터 사가지고 간 점심꺼리를 풀어 놓고 후배 부부,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자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이 제가 앉은 곳이 무릉도원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 되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한참을 후배 부부와 놀다가 다시 올라 왔던 길을 거슬러 내려가는 길, 후배 부부가 함께 산책 삼아 길을 나서 주어서 아름다운 덕산기의 풍광이 더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고 자갈길을 걷는 발걸음이 여간 가벼운 게 아니었습니다.

▲ 물매화. 덕산기에 많이 자생하고 있는 가을 야생화입니다.
 
“덕산기의 도로가 완성되면 이제 이 계곡은 쓰레기 천지가 될 것입니다. 땅값이 조금 오를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에 사는 우리는 이곳을 얼마 남지 않은 오지로 남겨 두었으면 하는 바램이 더 크답니다.”
후배 남편의 걱정스런 이야기를 들으며 예전 300년 넘게 마을을 이루고 사셨다는 덕산기 원주민들의 삶을 생각하며 지금 길을 내려는 이 계획이 올바른 생각인가 다시 한번 길을 내시는 분들이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덕산기를 와 보았던 4년 전 보다 이제는 길이 많이 닦여서 후배네 집에 찾아가는 길이 조금 수월해지긴 하였지만 길이 늘어날수록 황폐해져 가는 덕산기의 생태계를 생각 하면 길은 더 이상 건설하지 말고 덕산기만이라도 투명한 물빛을 대대로 간직 할 수 있는 정선의 몇 안 되는 오지로 남겨 두기를 바라는 제 마음이나 덕산기 안에서 불편하게 사는 후배부부의 마음도 같아서 길에 대한 이야기는 덕산기 자갈길을 다 벗어나도록 끝이 없었습니다.

자갈길을 거의 벗어나 사진가들이 물매화를 찍던 곳에 오니 역시나 타지에서 오신 사진가들이 자기들 찍기 좋은 곳에 일부러 물매화를 캐서 바위위에 얹어 사진만 찍고는 그대로 두고 간 것이 보여 속이 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은 자연적인 것을 찍어야 더 아름다운 것을 사진가들은 왜 이 평범한 진리를 모르고 있는 걸까요? 꽃을 향해 셔터를 누르던 그 고운 마음에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려는 마음까지 보태어진다면 그 어떤 사진보다도 아름답고 행복한 사진이 될 터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덕산기의 가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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