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찾아 부유하는 이들을 위하여
뿌리를 찾아 부유하는 이들을 위하여
  • 글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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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TO PEOPLE 사진가 성남훈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남루한 차림의 소녀가 머리에 잔뜩 짐을 이고서는 수줍게 웃어 보이고 있다. 또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할머니와 손자가 얼굴을 맞대고 있다. 두 사진 모두 어떤 부연설명도 없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영상물처럼 움직임이 담긴 것도 아니고, 소리가 더해진 것도 아니지만 이미지를 보는 순간 그저 알게 된다. 미소 뒤에 스며있는 슬픔과 아픔, 그리고 쓸쓸함을.

바로, 루마니아 집시부터 몽골 유목민, 보스니아 내전, 그리고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분쟁지역과 소외지역을 다니며 전쟁과 배고픔, 그리고 자연재해로 고통 받는 이들의 삶을 날것 그대로 기록해 온 다큐멘터리 사진가 성남훈(46) 씨의 사진이다.

전북 진안의 깊은 시골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일이 사진”이라며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스물일곱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고 했다. ‘이카르 포토’에서 사진을 공부하던 중 살인적인 파리 집세를 피해 파리 외곽으로 이사한 그는 차별을 견디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던 루마니아 집시들을 만난다. 같은 이방인이었기 때문일까. 루마니아 집시들은 이내 그를 허락했고 성남훈은 이리저리 내쫓기면서도 삶에 대한 끈을 놓치지 않는 그들의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다큐멘터리 사진에 발을 딛는다.

‘이카르 포토’를 수석 졸업한 다음해인 1994년, 그는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사진 에이전시 <라포> 소속 사진가로 유럽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1996년에는 보스니아의 전쟁 현장으로, 1997년에는 내전으로 고통 받는 르완다 난민들의 삶속으로, 1998년에는 민주화 운동으로 몸부림치던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로 달려간 그는 전 세계 내전 현장에서 가장 한국적인 시각으로 이미지를 재해석해낸다.

“이라크 전쟁 때였어요. 바그다드에서 미군과 이슬람 사람들 사이에 싸움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어요. 그런데 갑자기 아무런 경고도 없이 총탄이 쏟아지면서 기관총을 단 차가 내 앞으로 돌진해왔어요. 몸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 없었죠. 단지 납작하게 엎드렸는데…. 신이 저를 살렸죠.”

그의 발길은 내전으로 곪아 터진 코소보로, 굶주림에 절규하는 에티오피아 땅으로 향한다. 인도 구자라트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에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전쟁 현장에도, 그리고 2005년에는 쓰나미가 휩쓸고 간 인도네시아에도 그는 그곳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난과 전쟁, 그리고 재앙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땅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일어난 사람들을 만나 카메라로 소통하고 이야기하며, 기록했다.

어떤 장치도 더해지지 않은 그의 사진은 <타임> <리베라시옹> <르몽드> <지오> 등의 매체를 통해 세계에 알려진다. 그리고 1998년 인도네시아 민주화 과정을 담은 사진에 이어 2009년 중국 쓰촨성 깐쯔현 아추가르 불학원에서 비구니를 촬영한 사진으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세계보도사진(WPP)상을 수상한다.

세계 노동자들의 전장, 땅을 잃은 빈민들의 현실, 전쟁과 분쟁으로 고통 받는 힘없는 아이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그의 사진 속에는 뿌리를 잃고 부유하는 그러나 생에 대한 의지를 결코 버리지 않은 이들의 삶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의 발길은 내전으로
곪아 터진 코소보로, 굶주림에 절규하는
에티오피아 땅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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