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에 취해 사는 산골 청춘들
아라리에 취해 사는 산골 청춘들
  • 글 사진·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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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일기 34

▲ 연극이 끝난 뒤 연극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는 ‘극단 무연시’의 김도후 대표(맨 왼쪽). 정선 아리랑에 빠져 1999년부터 정선아리랑과 관련된 공연들을 기획하고 있습니다.<사진=김교민>

올 겨울 이상기온의 영향으로 유난히 추울 거라더니 수퍼컴퓨터가 분석한 일기예보가 딱 들어맞는지 요즈음은 한낮이 되어 햇살이 비춰도 영하의 기온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습니다. 추워서 한낮이면 햇살 그득한 창가에서 책을 읽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바깥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눈요기하곤 합니다.

오늘도 늘 같은 일상. 웹서핑을 하다 보니 정선군청 홈페이지에 ‘대머리 여가수’란 제목의 연극 공연을 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올라와 있어 조금 이른 저녁을 챙겨 먹고 공연 시간에 맞춰 집에서 승용차로 십분 거리에 위치한 정선아리랑 공연예술원을 찾아 갔습니다.

정선아리랑 공연예술원에는 정선아리랑을 연구하고 무대에 올리는 ‘극단 무연시’의 단원들이 3년 전부터 상주하며 장날이면 정선을 방문한 외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정선아리랑 창극 공연을 무료로 공연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장날 공연이 없는 때에는 정선 군민들을 위해 가끔 단원들이 준비한 정통 연극도 공연하고 있어 문화적으로 소외된 이 산골에 늘 가뭄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장터에서 아는 이웃들처럼 우연히 마주치기도 하고, 아우라지 강변에서 놀러 나온 그들을 만나기도 하고, 정선아리랑 축제장에서 가슴 떨리는 개막 공연을 하고 있는 그들의 멋진 모습을 만나기도 하며 이 산골에 사는 저 같은 사람의 문화적인 갈증을 해소해주는 정말 고마운 이웃으로 지낸 지 어언 3년. 그렇게 이웃처럼 지내는 그네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해 보지 않은 채 그저 그들이 애써 준비한 무료 공연을 산골에 사는 혜택이라고만 생각한 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동안 그들의 공연만 즐겼습니다.

▲ 연극 공연 전 극단 사무실 한켠에서 분장을 하고 있는 배우들.

늘 그 자리에 있는 이웃이지만 저와는 조금 다른 이웃이라고 생각하며 지냈기에 그네들의 존재를 이웃으로 느끼면서도 한 번도 이웃들의 노력을 돌아보려 하지 않고 지냈던 이 산골의 생활. 한 번쯤 그네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 산골에서 살아가는지, 그 멋진 젊은이들이 이 산골에서 왜 지내고 있는지 그네들의 생각을 살펴보아도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 건 오늘 공연을 보면서였습니다.

이 추운 계절에 연극 공연을 올려 주는 그네들의 노력이 가상해서 많은 분들이 연극을 보러 오시면 좋으련만, 120석이 되는 소극장의 의자가 무색하게도 20여 명 정도의 관객들만 연극을 보러 오셔서 이 추운 날씨에 맨발로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는 배우들에게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네들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 행동 하나 하나를 몰입해서 보고 있자니 어느덧 연극은 끝이 났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 ‘극단 무연시’의 대표인 김도후 씨가 무대로 나가 오늘 공연한 ‘대머리 여가수’란 작품에 대해 이해를 시켜주기도 하고 배우들이 바른 자세로 앉아 관객들의 질문을 받기도 하고 그렇게 그들이 준비한 연극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이어진 막걸리 한잔과 함께 하는 배우들과의 뒤풀이.

“그저 아리랑 하나가 좋아서 십여 년의 세월을 지냈습니다.”

“저희를 여기서 지내게 하는 건 아리랑의 힘입니다.”

▲ 정선아리랑 공연예술원. 폐교를 활용해 만든 문화 예술 공간입니다.
아리랑을 부르며 아리랑에 관련된 창극을 공연하며 아리랑에 빠져 사는 그들. ‘극단 무연시’의 단원들이 이 산골에서 가난한 밥상을 견뎌가며 지내는 그네들의 꿈은 정선아리랑의 한을 풀어내는 창극을 더 멀리 알리는 데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 저희가 창극 공연을 하고 그 창극을 보러 많은 관객들이 전국에서, 전 세계에서 찾아와 줄 거라 생각합니다. 그날까지 힘이 들지만 해 보아야지요. 하다보면 되겠지요.”

‘극단 무연시’의 김도후 대표의 소망이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오기를 기원하며 오늘은 저도 아리랑 가락에 취해 달큰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 봅니다.

※ ‘극단 무연시’ 홈페이지(www.muyonsi.com)에 들어가시면 더 많은 정보들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권혜경 | 서울서 잡지사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04년 3월 홀연히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기슭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서울내기 여인. 그곳서 만난 총각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산골 이야기가 홈페이지 수정헌(www.sujunghun.com)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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