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산 지나고 계곡 건너는 알프스 대장정
바위산 지나고 계곡 건너는 알프스 대장정
  • 글 사진ㆍ안병식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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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마라톤대회 참가기 l 고어텍스 트랜스 알파인 런 2009

▲ 정상 부근에 만년설이 쌓여 있는 알프스 산맥의 아름다운 풍광.

독일~스위스~이탈리아 거치는 240km 험난한 코스…약 20개 국 500여 명 참가

글 사진ㆍ안병식(소속·노스페이스) http://blog.naver.com/tolerance

지난 9월 독일과 스위스, 이탈리아 3국을 거치는 ‘고어텍스 트랜스 알파인 런’ 대회에 안병식 씨가 참가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안병식 씨는 독일 친구와 한 팀이 되어 장장 240km의 알프스 산맥을 달렸다. 매일 정해진 구간을 달려야 하는 이번 대회에서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고 험난한 바위지대를 지나 8일간의 코스를 완주했다. 아름다운 알프스의 자연에서 벌어진 생생한 대회의 이야기를 안병식 씨가 담아왔다.
 

고어텍스 트랜스 알파인 런’은 독일 남동쪽 루폴딩(Ruhpolding)에서 출발해서 오스트리아를 지나 이탈리아의 젝스틴(Sextin)까지 300km를 달리는 코스와 독일 남서쪽 오베르스트도르프(Oberstdorf)에서 출발해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를 지나 이탈리아의 라치 임 빈슈가우(Latsch im Vinschgau)까지 240km 코스를 매년 번갈아가며 진행하는 대회다.

▲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선수들.

이 대회는 프랑스의 몽블랑에서 진행되는 ‘노스페이스 몽블랑 울트라 트레일 런’ 대회와 함께 알프스의 대표적인 트레일 러닝 대회로 전 세계 러너들에게 인기가 높다. ‘고어텍스 트랜스 알파인 런’은 ‘몽블랑 울트라 트레일 런’ 대회와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2인1조 팀으로만 참가가 가능하며 하루에 25~40km를 달리는 ‘스테이지 런’ 방식으로 진행된다.

올해는 독일 오베르스트도르프를 출발해 스위스를 거쳐 이탈리아 라치 임 빈슈가우까지 이어지는 코스로 루폴딩~젝스틴 코스보다 거리는 짧지만 험난한 구간이 많아 쉽지 않은 코스다.

▲ 대회 첫날부터 아름다운 알프스의 산군들이 참가자들을 사로잡았다.

독일인 친구와 함께 2인1조로 대회 참가
오베르스트도르프는 알프스 산기슭에 위치한 독일 남쪽 지방의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은 겨울철 적설량이 워낙 많아 스키와 눈썰매를 타기 위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에 도착한 이후 시내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프랑스에서 열린 ‘몽블랑 트레일 런’ 대회에 참가하고 난 후 푹 쉬지 못했기 때문에 선수등록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오후 내내 휴식을 취했다.

저녁이 되자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선수등록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와 왁자지껄했다. 유심히 살펴보니 지난해 참가했던 낯익은 사람들도 많았다. 이번 대회에는 일본인이 3명이나 참가해 아시아인이라는 동지의식으로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대회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파트너를 찾지 못한 나는 주최측에 함께할 팀 파트너를 요청했다. 그리하여 2인1조로 함께할 팀 파트너로 독일에서 온 필립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됐다. 필립은 60세가 넘은 이번 대회 최고령 참가자로 ‘고어텍스 트랜스 알파인 런’ 대회만 5번이나 완주한 베테랑이다. 필립은 동료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팀 이름을 ‘나는 안을 안다’는 의미)의 ‘I WOIS AHNIX’로 정했는데, 아마도 지난해 대회에 참가했던 나를 기억한 모양이다.

▲ 초가을에 치러진 대회지만 고지대에는 눈이 쌓여 있어 험난한 코스가 이어졌다.

다음날 아침 10시부터 대회가 시작됐다. 오베르스트도르프 시내를 지나 알프스 산맥을 오르자 2000m 고지를 넘어서면서부터 산길에는 눈이 쌓여 있었고 날씨도 제법 쌀쌀했다. 눈이 녹은 자리는 진흙 때문에 많이 미끄러워 달리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 대회의 코스는 산, 계곡, 바위, 강 등 다양한 지형을 달리기 때문에 트레일 러닝의 묘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2000m의 산을 넘자 오스트리아의 레히 암 알베르그(Lech am Arlberg)에 도착했다. 코스도 그리 힘들지 않았고 파트너의 페이스에 맞추면서 달리다보니 힘들지 않게 첫 날의 레이스를 마칠 수 있었다. 주최측에서는 음식과 음료 그리고 맥주를 피니쉬 라인에 준비해 도착한 선수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하루의 힘겨운 레이스를 마치고 마시는 맥주 한 잔의 여유로움은 피로를 잊게 할 만큼 달콤했다.

▲ 대회 2일째 날 코스는 험난한 바위지대가 이어졌다. 조심조심 비탈길을 내려서는 참가자들의 모습.

매일밤 열광적인 파티로 피로 잊어
대회 이틀째 날이 시작됐다. 이 날은 25km의 짧은 코스지만 2700m의 산을 오르고 바위산을 지나는 위험한 구간이다. 한참을 달리는데 주최측에서 사진과 비디오 촬영을 위해 띄운 헬기가 등장했다. 선수들 가까이 근접한 헬기는 요란한 소리 내며 대회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거친 산길을 지나 호수를 끼고 한참을 달리니 오스트리아의 세이트 안톤이다. 마을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저녁에는 파스타 파티가 이어졌다. 파티에 제공된 사과에는 재밌게도 대회 메인타이틀인 ‘Keep on running’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세이트 안톤 마을에서도 이 대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마을 사람들의 섬세한 배려는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대회에 참가하면서 느끼게 된 것은 모든 것들을 참가자들의 관점에서 생각해주고 배려해주는 주최측의 노력이다. 이런 것들이 매년 대회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 참가자들이 불투명한 파란 호수를 지나 결승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대회 3일째 날은 2730m와 2636m 2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하는 험난한 코스다. 바위 언덕을 따라 줄을 잡고 오르는 구간은 특히 위험해 거의 기어오르듯이 지나가기도 했다. 대회가 진행될수록 코스가 어렵고 위험하다보니 부상자들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트레일 러너들에게 이런 상처들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대회를 포기해야하는 상황까지 가지만 않는다면 영광의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대회 후에는 여지없이 파스타 파티가 이어졌다. 대회의 주제곡인 ‘keep on running’을 부른 가수가 나와 파티의 분위기가 더욱 무르익었다. 이렇게 매일 파스타 파티와 공연, 하루를 마감하는 시상식으로 축제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고어텍스 트랜스 알파인 런’ 대회는 참가자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대회에 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 달리는 행위는 끊임없는 나와의 싸움이다. 결승점을 향해 스퍼트를 내고 있는 필자.

대회 4일째 날은 2768m와 2793m 2개 봉우리를 넘어야 하는 힘든 않은 코스였다. 협곡지대를 지나자 알프스의 푸른 초원지대가 나타났다. 소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한가로워 보인다.

목장을 지나 다시 산을 넘자 스위스의 스쿠올 임 운테렌가딘에 도착했다. 스쿠올 마을 입구에는 주민들이 스위스 깃발을 걸어 놓고 참가자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날씨도 덥고 계속된 강행군에 피곤한 하루였지만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박수가 있어 잠시나마 기운을 낼 수 있었다.

▲ 대회 5일째, 결승점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참가자.

8일의 고생 끝에 완주 기쁨
▲ 세이트 안톤 마을 주민들이 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선수들에게 나눠주는 사과에 대회의 메인타이틀인 ‘Keep on running’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대회 5일째 날에는 6km만 달리는 이벤트성 행사로 대회가 진행돼 피니시 라인인 2130m 고지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그동안 지쳐있던 선수들에게는 오후 내내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체력을 재충전할 수 있었다. 오랜만의 휴식에 마을에서 수영도 하고 참가자들과 함께 산책도 하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6일째 날에는 마스 임 빈슈가우까지 37km를 달렸고, 대회 7일째 날에는 대회 기간 중 가장 높은 봉우리를 넘어야했다. 3000m가 넘는 봉우리는 급경사가 심해 오르내리는 것이 녹록치가 않았다. 드디어 대회 마지막 날, 체력이 많이 떨어져 지쳤지만 마지막 힘을 짜내 28km를 달려 레이스의 마지막 마을인 이탈리아의 라치 임 빈슈가우에 도착했다.

8일 간 진행된 이번 대회는 유난히 험한 코스가 많았지만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던 뜻 깊은 기회였다. 밋밋한 로드 마라톤과는 달리 다양한 지형을 달리며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것이 트레일 러닝의 매력이 아닐까. ‘고어텍스 트랜스 알파인 런’은 다른 대회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따뜻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아름다운 알프스의 풍광은 매년 이 대회를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 대회에서 순위권에 오른 팀들이 시상대에 올라 인사를 하고 있다.

▲ 대회 완주 후 스페인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트레일 러너 안병식 선수 주요 프로필 |
▶ 2001년 제주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 2005년 10월 이집트 사하라사막 마라톤(250km) 완주
▶ 2006년 6월 중국 고비사막 마라톤(250km) 우승, 7월 칠레 아타카마사막 마라톤 (250km) 4위, 10월 이집트 사하라사막 마라톤(250km)  3위
▶ 2007년 12월 남극마라톤 130km 3위
▶ 2008년 2월 베트남 정글 마라톤 238km, 4월 북극점 마라톤 우승
▶ 2009년 8월 까미노 산티아고 807km, 8월 노스페이스 몽블랑 울트라 트레일 런 166km, 9월 고어텍스 트렌스 알파인 런 240km, 10월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 익스트림 마라톤 240km, 10월 인도 히말라야 100마일(166km) 런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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