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제주 오름 3선, 억새꽃 춤사위에 홀린 ‘오름 여인들’
③ 제주 오름 3선, 억새꽃 춤사위에 홀린 ‘오름 여인들’
  • 글·김경선 기자l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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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살아있는 저지오름, 억새 장관 연출하는 새별오름과 따라비오름

제주도는 억새가 많다. 특히 제주도를 수놓은 수백 개의 오름에는 바람결을 따라 춤을 추는 억새가 장관이다. 가을에 더욱 아름다운 오름 세 곳을 찾았다. 짙은 숲을 자랑하는 저지오름과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억새꽃이 장관인 새별오름과 따라비오름에 올라 제주의 가을을 만끽해봤다.

▲ 부드러운 새별오름 능선길을 따라 사람 키보다 큰 억새들이 서있었다.
제주의 속살을 본적이 있는가? 완만한 땅 위에 수백 개의 오름이 수를 놓은 제주도의 속살은 평화롭고 여유롭다. 수려한 해안 절경에 밀려 관광객들의 발길은 적지만, 만추로 접어드는 제주는 억새가 장관을 이루고, 숲은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기자는 한라산도 몇 번 올라보고, 제주도 구석구석 유명 관광지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제주도를 떠올릴 때마다 가장 그리운 것은 여느 유명 관광지가 아닌 제주의 속살이다. 인파로 북적이는 관광지보다 늘 한가롭고 여유로운 풍광을 선물하는 제주의 길들은 항상 그립고 보고픈 대상이다.

제주의 속살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없는 것이 오름이다. 제주도에는 368개의 오름이 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섬 한가운데를 지키는 한라산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오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저 높지 않아서 일까?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오름은 변신의 귀재다. 온갖 야생화가 꺄르르 웃음 짓는 봄, 싱그러운 초록의 물결이 넘실대는 여름, 알록달록 색동옷 갈아입는 가을, 순백의 신부처럼 하얀 세상으로 변신하는 겨울. 어느 계절이 더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어렵지만, 특히 억새꽃 만발한 가을 오름은 생각만으로도 황홀하지 않은가.

하나, 명품 자연숲 저지오름

▲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저지오름은 오름 전체가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동서로 길쭉한 형태의 제주도는 어디를 가도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진다. 곳곳에 관광지가 활성화 되어 있어 관광객들에게 제주도는 볼거리의 천국인 것이다. 그런데 제주도의 서쪽 지역인 한경면은 섬의 지리적 오지다. 섬의 동쪽과 남쪽에 관광지가 몰려있는 탓에 서쪽 지역인 한경면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한경면 저지리에 이방인들의 발길이 몰려들고 있다. 올레 코스로 이어지는 저지오름(238m)을 찾아 나선 사람들 때문이다.

저지오름은 2007년에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이 수십 년 간 나무를 심고 가꿔 명품 숲을 만든 것이다. 높이 239m, 분화구 둘레 800m, 분화구 깊이 62m의 작은 오름이지만 숲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환상적인 풍광은 여행자들을 압도한다.

저지리 주민에게 물어물어 찾아간 저지오름 입구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쉽게 지나칠 만큼 간소했다. 오름 몇 곳을 찾아다니며 생긴 불만은 제주도에 오름 이정표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마음먹고 오름을 오르려는 외지인들에게 오름은 미로 속에 숨겨진 보물이나 다름없다.

저지오름은 기슭의 둘레길과 분화구 둘레길이 원 모양으로 나 있고 두 개의 둘레길을 가로지르는 오르막길이 연결된 형태다. 오름 입구는 남동쪽에 있고 분화구로 향하는 길은 북서쪽에 있어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꼼짝없이 오름을 반 바퀴 걸어야한다.

숲을 향해 난 길을 따라 오름으로 들어섰다. 이정표를 보니 정상까지 1.35km. 400여m 포장도로가 이어지더니 길은 이내 포장이 끊기고 작은 소로다. 붉은 흙과 돌덩이가 소로를 따라 이어지고 울창한 숲이 여행객들을 반겼다. 한창 익어가는 감귤도 여행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3분 정도 오르니 운동기구가 있는 작은 공터 우측으로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계단을 따라 100여m 올라가니 다시 갈림길. 왼쪽 길은 정상 1.1km, 오른쪽 길은 정상 1.22km로 오름 기슭을 순환하는 둘레길이다.

취재팀은 왼쪽 둘레길로 접어들었다. 오름을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은 평지처럼 완만해 산책 코스로는 그만이었다. 울창한 소나무숲은 붉은 흙길 위에 솔잎 이불을 만들어 포근하고 평화로운 길을 내어줬다. 둘레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니 정상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다. 이정표를 보니 정상까지 390m.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니 저지오름 정상이다.

정상 전망대에 서자 한경면 일대와 저 멀리 푸른 바다, 차귀도의 비경이 펼쳐졌다. 상록수림이 우거진 굼부리 속은 어찌나 울창한지 한 눈에 담기 힘들 정도다. 800m 분화구 둘레길을 산책하듯 천천히 걸었다. 보리수나무, 찔레나무, 닥나무, 소나무 등이 싱그러운 숲의 향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저지오름은 민둥민둥한 여느 오름과는 달리 울창한 숲이 색다른 풍광을 선물한다. 더구나 정상까지 20분 남짓이면 오를 수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도 좋다. 숲이 더욱 붉어져 가을의 절정을 자랑하는 11월이 되면 저지오름은 더욱 고즈넉한 운치로 여행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킬 것이다.

둘, 은빛 억새 만발한 새별오름

▲ 3개의 굼부리와 6개의 봉우리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따라비오름
외지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제주도의 오름 중 하나가 새별오름(519m)이다. 매년 정월대보름에 열리는 들불축제와 가을에 열리는 억새꽃축제가 새별오름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새별오름 진입로는 포장도로로 닦여있었다. 편편한 평지 위에 샛별처럼 외로이 서있는 새별오름은 위에서 바라보면 별 모양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새별오름은 저지오름과는 달리 나무 한 그루가 없다. 대신 그 자리에 은빛 억새가 가득하다. 멀리서 바라보니 마치 하얀 꽃이 만발한 듯 은빛 물결이 넘실대고 있었다.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차를 세우고 오름까지 200m 정도 접근하니 왼쪽에 정상으로 오르는 샛길이 보였다. 제법 가파른데다 미끄럽기까지 한 길을 따라 오른 지 10분. 새별오름 중턱에 다다랐다.

오름 안에 들어가니 억새의 물결이 더욱 거세졌다. 사람 키보다 큰 억새가 오름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어 어디를 보아도 가을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래를 내려보니 인근 초지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이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출발한 지 20분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새별오름은 저지오름과 달리 굼부리가 없어 정상의 둥그스름한 능선을 따라 주변을 조망할 수 있었다. 푸른 하늘 밑 억새의 춤사위 너머로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이 발 아래 펼쳐졌다. 너른 수평선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름들이 가득해 수채화의 한 폭을 보는 듯 구도의 깊이가 느껴진다. 한라산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바다 건너 비양도도 한눈에 들어왔다.

정상에서 이어지는 능선은 한없이 부드럽고 포근하다. 깎아지를 듯한 기암절별과 계곡이 어우러진 산수의 아름다움도 좋지만, 물 흐르듯 부드러운 오름의 능선은 어미의 품처럼 편안함을 안겨줬다.

셋, 만추에 더 빛나는 따라비오름

▲ 따라비오름 입구에서 방목하고 있는 말떼를 만났다.
지도를 보고도 한참을 헤맨 끝에 도착한 따라비오름(342m)은 꽁꽁 숨어있던 만큼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조금의 속살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듯 오름 전체를 뒤덮은 억새바다는 한라산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시뻘건 용암 대신 하얀 억새가 손짓하며 오르기를 재촉하는 따라비오름은 가을 그 자체의 풍경이다.

한가롭게 풀을 뜯고 노니는 말들이 오름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풀을 뜯어 건네니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는다. 순한 눈망울을 꿈벅거리며 취재팀을 따르는 말들을 뒤로한 채 오름으로 들어섰다. 오름 초입의 측백나무 터널을 지나면 풍만한 오름의 속살이다.

여기서부터는 나무 대신 화사한 억새가 가득하다. 척박한 오름에서 자연에 순응하고 고개 숙이는 억새만이 살아남은 것은 아닐까.

오름이 제법 거칠다. 붉은 오솔길은 퍼석퍼석하고 미끄러워 가파른 비탈길이 꽤 위험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불어오는 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억새의 호위가 발걸음을 가볍게 해 20분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따라비오름은 이름만큼이나 생김새도 색다르다. 2개의 타원형 분화구와 1개의 말굽형 분화구가 어깨를 맞대고, 분화구 주위로 6개의 봉우리가 오밀조밀 몰려있는 모습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니 크고 작은 봉우리가 매끄러운 등성이로 연결된 따라비오름의 장관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름처럼 봉우리와 봉우리가 서로 따르는 모양이다. 끊임없이 구름을 토해내는 한라산 너머로 태양이 자취를 감추자 겹겹이 늘어선 봉우리에 노을이 내려앉았다. 붉게 타오르는 억새가 재촉하듯 손짓하자 오름 나그네는 가을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저지오름·새별오름·따라비오름

▲ 부드러운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평화로운 따라비오름에 억새가 가득하다. 바람결에 살랑거리는 억색의 춤사위를 바라보며 가을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 저지오름
제주도 서쪽 땅 한경면 저지리에 위치한 저지오름은 238m의 작은 오름이지만 2007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이후 유명세를 얻었다. 최근에는 새롭게 개방된 올레 14코스 시작지점에 속한 오름으로 올레꾼들의 방문도 많아졌다.
저지오름은 오름 중턱 기슭 둘레길과 분화구 둘레길이 원 모양으로 나 있어 산책하기 좋은 오름이다. 남서쪽 오름 입구에 들어서 둘레길을 반 바퀴 정도 돌아가면 오름 북서쪽에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정상까지 20분 정도면 오를 수 있고, 전체적으로 길이 잘 정비돼 있어 노약자나 아이들도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다.
▶교통
한림읍과 대정읍을 이어주는 1120번 국도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1120번 국도 분재예술원 삼거리에서 한림 방면으로 진입해 왼쪽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면 차량으로 5분 거리에 저지오름이 있다. 저지리에 ‘저지오름’ 이정표가 곳곳에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 새별오름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들불축제가 열려 유명해진 오름이다. 멀리서 보면 다소 밋밋한 느낌이지만, 오름에 들어서면 억새가 장관을 이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정상까지는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약 20분 소요된다.
▶교통
제주시와 대정읍을 이어주는 1135번 국도(서부관광도로) 중간 지점(애월읍)에 위치해 있다. 1135번 국도를 타고 애월읍에 들어서면 이정표가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내비게이션에 ‘새별오름 관광지’로 검색 가능하다.

⊙ 따라비오름
2개의 타원형 분화구와 1개의 말굽형 분화구, 6개의 봉우리가 오밀조밀 몰려있는 독특한 형태의 오름으로 제주도 사람들이 가을 억새 장관으로 손꼽는 명소이기도 하다. 정상까지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20분 정도 소요된다. 길이 험하고 미끄러우니 각별히 조심하는 것이 좋다. 특히 정상에서 일몰을 보고 내려올 때는 무척 위험하다. 랜턴을 꼭 준비하도록 한다.
▶교통
오름 입구는 성산읍과 한경면을 이어주는 1136번 도로변에 위치해있다. 성읍민속마을 사거리에서 서귀포시 방면으로 진입해 약 5km 이동하면 가시리 사거리 바로 직전 오른쪽으로 좁은 포장도로가 나온다. 차 한 대 정도 겨우 지날 수 있는 포장도로를 따라 3km 정도 들어가면 따라비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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