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작가, 작업자, 그리고 사진과 교수까지. 그를 설명하는 직함이 여럿이다. 하지만 그는 서울예대 사진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스스로를 ‘사진가는 아니다’라고 얘기한다. 어, 이상하다? 사진과 교수니 당연히 사진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구태의연했던 걸까. 미술과 사진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니 애초에 경계 따위는 정해두지 않은 자유로운 작업을 선보이는 이강우(46) 교수를 만났다.
그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다른 분야의 예술과 맞닿을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한 디자인이 아닌, 먹고 살기 힘들다는 순수예술을 전공했고 그림 그리는 재미에 푹 빠져 대학 생활을 보냈다. 제대를 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그림보다 속도감 있게 현실을 보여줄 수 있는 사진에 고개를 돌리게 된다.
“5공 시절에 대학생활을 했으니까요. 답답하고 숨 막히는 현실에서 소통을 위해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어요. 아무래도 페인팅은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요. 하지만 사진은 정말 빨랐죠. 그때그때마다 순간적인 것까지도 표현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붓과 함께 카메라를 잡기 시작했죠.”
흔히들 사진을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한다. 그는 “사진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1989년 졸업 작품 중 하나인, ‘나비-꿈’에서 보여준 흑백 드로잉에 컬러풀한 색감의 나비를 더한 것은 매체에 상관없이 겹쳐지는 그만의 ‘레이어’ 작업의 출발점은 아니었을까. 그 후로 그는 ‘생각의 기록’에서 유화 물감을 나이프로 긁어낸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 묻어나는 종이에 많게는 20번 가까이 다중 노출을 준 압도적인 크기의 작품을 내놓는다. 아직, 미술계에서는 사진에 대해 별 관심도 없을 때였다.
“작업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우선이죠. 사진은 매체의 특성상 회화보다 월등한 순발력으로 현실의 이미지들을 직접 작품으로 수용할 수 있는 강점이 있어요”
미술과 사진의 경계가 모호해 지면서, 페인팅을 전공했으니 모든 작업을 페인팅만으로 해내야 하고, 사진을 전공했으니 모든 작업을 사진으로만 완성해 내라는 암묵적인 강요는 젊은 작가들에게 더 이상 어불성설일 뿐이다. 모더니즘이라는 거인과 그를 밟고 올라선 ‘호빗’ 포스트모더니즘을 구경해 온 똑똑해진, 아니 남의 눈치 보지 않는 젊은 작가들은 더 이상 어떤 사조나 양식에 작업을 맞추지 않는다. ‘표현을 위해서’라면, ‘소통하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 ⓒ이광우 <나비-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