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고립된 깊은 산골
눈에 고립된 깊은 산골
  • 글 사진·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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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일기 35

▲ 눈이 내린 뒤 그대로 두고 있는 마당. 처음 하루 이틀은 견딜 만하더니 슬슬 이제 눈이 치우고 싶어지는군요.

한겨울 들어 전국적으로 내린 폭설 소식이 텔레비전 뉴스를 도배하고 있습니다. 곳곳에 꼬리를 물고 서 있는 차들과 눈으로 엉망이 된 도로 위에서 이리 엉키고 저리 엉키고 헛바퀴를 도는 뉴스를 보고 있자면 당장 출근할 곳이 없는 이 산골 생활이 다행스럽기까지 하게 되는군요.

여기도 눈이 많이 내렸답니다. 그동안 내렸던 적설량은 가래로 밀어 치우면 되는 정도여서 비교적 수월하게 해치우곤 했는데, 이번엔 적설량이 30cm를 넘어버리니 가래로는 도저히 안 되고, 눈삽을 가지고 푹푹 퍼서 치워야 하는 정말 고된 중노동이었습니다. 겨우, 집으로 올라오는 길만 빼꼼 치워 길을 내고 정지! 마당과 뒤뜰 그리고 옥상에 쌓인 눈은 나 몰라라 봄이 될 때까지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그동안의 겨울은 눈이 한번 많이 내리고 나면 며칠 포근한 기온이 계속 되어서 눈이 내린 지 사나흘 지나면 대부분 도로의 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올 겨울은 추운 날들이 계속되니 연초에 내렸던 눈이 아직도 도로에 그대로 얼어 있네요. 이런 빙판길 상태가 벌써 보름 이상 계속 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문 밖 출입이라고는 아침, 저녁으로 강아지들과 함께 가리왕산 입구로 산책을 다녀오는 일입니다. 춥지 않은 계절에는 한 시간씩 하던 산책이었는데 눈이 많고 춥다보니 시간을 반으로 뚝 잘라, 삼십 분씩 그것도 강아지들 때문에 마지못해 하고 있답니다.

▲ 오랜만의 대설에 장독들도 하얀 눈을 이고 있습니다. 날이 추워 저 모습 그대로 보름째네요.

올 겨울 최고로 추웠던 날의 기온이 -28℃를 기록하고 집안 평균 온도가 10℃를 머물고 있으니, 그동안 등산을 취미로 하며 썼던 많은 등산 용품들이 여간 요긴한 게 아니랍니다. 집 안에서도 겨울 산행 시 입었던 고소내의에 폴리스 재킷 그리고 모자까지 챙겨 쓰고 조금 더 추운 날에는 가벼운 우모복까지 챙겨 입고 일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강아지들 산책을 나서며 눈 쌓인 길 때문에 스패츠에 목이 긴 고어텍스 등산화에 워킹용 스틱까지. 이 차림으로 눈 덮인 가리왕산이라도 산행하면 좋으련만 딱 가리왕산의 등산로 입구까지만 강아지들과 함께 다녀오고 있으니 제 등산용품들에게 미안하단 생각까지 들기도 한답니다.

그래도 등산용품만큼 이 산골의 생활에 딱 맞는 것은 없는 것 같단 생각. 늘 비브람 창이 달린 등산화를 신고 여기저기 움직이면 미끄럽지도 않고 눈도 덜 들어오고 늘 등산화를 신고 다니는 저를 놀리는 동네 총각에게 “이게 타이어로 치자면 눈길에도 안 미끄러지는 스노타이어란다” 하고 등산화에 대한 자랑을 늘어지게 하곤 합니다.

▲ 밖에 나가 사냥하며 간식거리를 찾는 제가 키우는 고양이. 밖에 못 나가니 저렇게 집안에 키우고 있는 금붕어를 잡기 위해 매일 매일 노려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등산 용품을 입고 있어도 겨울 김장 김치만 먹어 대는 이 산골의 고립은 늘 헛헛해서 그 속을 채우려 온갖 궁리를 다하며 뭔가 특별한 것을 먹고 싶어 징징거리게 되지만 읍내에 있는 정선장에 나가지 않는 한 집에 있는 먹거리라고는 김장 때 담근 김치가 전부랍니다.

김치찌개, 김칫국, 김치전 이렇게 해 먹는 것도 한두 번. 뱃속에서는 조금 달달한 것을, 조금 느끼한 것을 넣어 달라고 성화. 읍내 안 나간 지 열흘쯤 되면 자장면, 피자, 햄버거 등 도시에서는 거들떠도 안 보았던 음식들이 먹고 싶어지기 시작합니다.

▲ 햇살 가득한 창가에서 모자란 햇살을 조금이라도 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눈 핑계 대고 스스로 자처 했던 고립생활을 이쯤에서 중단하고 빠른 시간 안에 읍내 나들이 한번 하고 와야겠다는 맘을 먹게 되는군요. 곧 오게 되는 장날에는 등산복 입고 읍내를 어슬렁거리며 그동안 먹고 싶었던 자장면도 한 그릇 먹고 피자도 한판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 와야겠습니다.
산골의 겨울은 침잠의 계절입니다. 활발히 활동하던 많은 것들이 봄을 기다리며 숨고르기를 하고 있을 때지요. 소한이 지났으니 대한이 이제 며칠 안 남고 그러다 보면 입춘이 지나고 이 산골에도 봄이 오겠지요. 기다릴 봄이 있으니 추위에 꽁꽁 얼고 있는 이 계절도 견딜 만하다고, 행복하다고 느끼게 되니 산골의 겨울을 여덟 번째 지내는 저도 이제는 산골 아낙으로서의 이력이 붙어 가는 듯싶어 스스로 여간 대견스럽지 않습니다.

권혜경 | 서울서 잡지사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04년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기슭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서울내기 여인. 그곳서 만난 총각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산골 이야기가 홈페이지 수정헌(www.sujunghun.com)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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