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갈래로 나뉘는 겨울 성북동 시간 여행
여러 갈래로 나뉘는 겨울 성북동 시간 여행
  • 글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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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속살 톺아보기 ② 성북동, 명륜동 골목골목, 그리고 북악스카이웨이


성북초교~길상사~과학고~성북초교…‘성북동 데이트 코스’로 제격,
삼청동, 가회동으로 이어지는 코스에 북악스카이웨이 코스까지…골라 걷는 재미가 쏠쏠

성북동은 제법 다양한 표정을 지을 줄 아는 동네다. 얼핏 보기에는 성북초교에서 길상사까지 이어진 길 위에 자리한 고급 주택단지와 대사관저, 그리고 해외 공관 건물이 세련된 자태를 드러내지만 골목골목으로 들어서면 지난 달 걸었던 북촌과 비슷한 풍경이 스쳐지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성북동 길 위에 올라보았다면, 그 골목골목에 발을 디뎌 보았다면 알 것이다. 역시 성북동의 ‘팥소’는 거대한 저택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골목골목의 옛 이야기임을. 낡고 볼품없어 보이는 한옥들이 성북동을 지키고 있는 대들보임을. 다행히 아직 근처의 삼청동보다는 덜 알려져 순수함이 묻어나는, 그래서 더 애틋한 공간. 성북동 골목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 ‘성북동 트레킹’이 시작되는 한성대입구역 근처의 모습. 눈 내린 성북동의 표정이 아련하다.
대학시절, 명륜동 자락에 살던 동기 덕분에 성북동에 처음 발을 딛게 되었다. 산책을 좋아하던 그를 따라 가다보면 마을 한켠에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 잡은 성곽을 만났고, 또 아기자기 정답게 속삭이는 키 작은 집들과 인사했다. 그렇게 걷다보면 어느새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곤 했다. 산비탈에 촘촘히 뿌리를 내린 작은 집들은 날이 저물기 시작하면 저마다의 품에서 작은 별을 꺼내놓았다. 별들로 가득 찬 산비탈은 반짝반짝 빛났다.

또 어느 날인가는 드라이브 코스 같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한참 걸었다. 걷다가 서울 한 복판에서 아주 예쁜 절을 만났고,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담장 높이만 해도 내 키를 훌쩍 넘는 저택들이 양옆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왔다.

벌써 십년이나 된 일이지만 길의 감촉, 풍경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때 그 성곽은 조선시대부터 있던 성곽길이었고, 그때 만난 예쁜 절은 애틋하고 절절한 마음을 품은 길상사였고, 저택들을 즐비한 곳은 동네의 ‘트레이드 마크’ 성북동 길이었다. 이 모두가 ‘성북동’이 품은 길이라는 것은 한참 뒤에 알았지만. 10년 만에 다시 만난 첫사랑처럼, 이제 그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차례다.

▲ 많은 이야기를 품은 길상사를 그저 예쁘다고 하기에는 미안하다.

역사를 품은 성북동, 아는 만큼 보이지요!
성북동은 남편이 집을 나가 노구메를 드렸더니 남편이 돌아왔다는 전설 덕분에 ‘노구멧골’이라 불리기도 했고, 또 험한 산세에 도둑들이 출몰했다고 해서 ‘도둑골’로도 불렸다. 그래서 조선시대 중엽, 이 동네에 도성을 지키는 군대인 어영청의 북둔을 설치하는 동시에 민간인 한 무리를 보낸다. 하지만 험한 산지인데다, 곡식을 품기 어려운 척박한 땅에서 살길이 막막하자 백성들은 성북동을 떠난다.

이에 영조는 이 지역 사람들에게 ‘생포목을 잿물에 삶아 빨아서 하얗게 표백시키는’ 특권을 주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자 다시 메주 쑤는 권리도 세검정 사람들과 갈라준다. 지금도 성북동 언저리에는 마전과 메주 쑤는 일과 관련한 ‘빨래골’, ‘북적골’ 등의 지명이 남아있다. 이렇듯 성북동은 일반 백성들이 살기에는 버거웠던 돌 많고 험한 산골이었지만, 양반들에게는 한양에서 가까우면서도 아름다운 산세와 풍경을 자랑하는 최고의 장소였다.

역사, 문화, 맛, 그리고 골라 걷는 재미까지

▲ 길상사에서 북악스카이웨이로 넘어가는 길, 가깝게는 한국가구박물관이 멀리는 남산타워가 보인다.
성북동 골목 여행 코스는 우선 성북초교~길상사~혜화동 로터리로 이어지는 길을 메인으로 했다. 성북동의 역사와 아기자기한 골목을 맛볼 수 있을뿐더러 이 동네를 대표하는 미술관과 맛집도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이 없어 그 이름 역시 ‘성북동 데이트 코스’라고 붙였다. 또 ‘성북동 데이트 코스’의 길상사를 기점으로 가회동으로 이어지는 길인 ‘가회동 코스’와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삼청동 코스’로 나눠 보았다. 마지막으로 겨우내 굳은 몸을 풀어보고 싶은 이들을 위해 ‘북악스카이웨이 코스’를 소개한다. 몸도 마음도 복잡해 질 때 찾으면 산뜻하게 잡생각을 날려버릴 수 있는 효과만점의 코스다.

우선 ‘성북동 데이트 코스’에 올라보자. 한성대입구 5번 출구로 나와 선잠단지까지 직진한다. 선잠단지길로 들어서 길상사까지 올라가는 길에 자리한 고급 주택들이 눈길을 끈다. 일제 강점기까지도 성북동은 산골이자 시골이었다고 하는데, 이 길에 올라있으니 믿기 어렵다. 실제로 1930~40년대의 성북동은 뒤뜰에 꿩과 늑대가 들 만큼 산골이어서 ‘꿩의 바다 마을’이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아, 길상사로 오르는 길, 여전히 ‘꿩의 바다 마을’은 남아있다.

▲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재미가 있는 북악스카이웨이 코스.

▲ 고급 주택들이 즐비한 길에 자리한 성북동 성당.
시인 백석과 자야의 이야기를 품은 길상사에 닿으면 잠시 쉬어가도 좋다. 온통 흰 눈으로 뒤덮인 길상사의 모습이 새롭다. 이제부터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우선 ‘성북동 데이트 코스’를 선택하려면 수월암쪽으로 내려가서 성북초교로 가면 된다. 이 길에는 <복덕방> <문장강화>를 쓴 이태준 선생의 옛 집 ‘수연산방’과 만해 한용운의 고택 ‘심우장’, 그리고 국보급 작품들을 품고 있는 ‘간송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모두 성북동을 대표하는 장소들이다. 더불어 돈가스, 돼지갈비, 분위기 있는 카페 등 약간은 투박하면서도 털털한 분위기의 음식점들이 자리하고 있다.

좀더 고즈넉하게 혼자 걷고 싶다면 수월암에서 주암아파트 쪽, 우측으로 들어서는 ‘가회동 코스’로 가보자. 서울성곽을 지나 지난번 걸었던 가회동이나 성대후문으로 길이 이어진다. 성곽길도 걸을 수 있고 구불구불한 한적한 드라이브코스로 답답한 마음을 털어버리기 좋다. 다만 서울성곽과 만날 때 동네로 들어서야 물이나 간식 등을 구할 수 있으니 간단한 간식은 챙겨가는 편이 좋겠다.

▲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재미가 있는 북악스카이웨이 코스.

길상사에서 계속 직진하다가 삼청각 쪽으로 크게 좌회전 하면 삼청공원을 지나 삼청동에 닿는다. 도착지점에 따라 이름도 ‘삼청동 코스’로 붙였다. 약간 더 걷고 싶다면 이쪽 길을 선택해도 좋다. 만약, 이보다 더 진하게 걷고 싶다면 고민 없이 ‘북악스카이웨이 코스’를 추천한다. 북악골프에서 하늘마루와 팔각정 공원을 지나 부암동으로 내려서는 코스다. 넉넉하게 서너 시간쯤 잡으면 된다. 약간 루트를 수정하면 와룡공원부터 말바위 쉼터, 숙정문을 통과해 부암동 자하문까지 걷는 ‘성곽 트레킹’을 즐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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