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목싸목’ 걸어 어머니 품에 안기는 길
‘싸목싸목’ 걸어 어머니 품에 안기는 길
  • 글 사진·진우석 출판팀장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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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 길 | ② 광주 ‘무등산 옛길’

▲ 장불재에서 시원하게 펼쳐진 무등산 남면. 왼쪽 서석대와 오른쪽 입석대가 잘 보인다.

2009년 5월 옛길 개방 후 10만 명 다녀가

▲ 서석대에서 중봉으로 가는 운치 있는 길. 옛 군부대 자리가 말끔하게 복원되었다.
무등산과 광주 시민의 친화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서울 시민과 북한산, 부산 시민과 금정산의 친밀도보다 한 수 높다. 광주 도심 한가운데를 버티고 있는 지리적 위치도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광주 시민과 아픔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옛길이 널리 알려지면서 무등산은 광주 시민의 산에서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산이 되었다. 
 

연말에 이어 경인년(庚寅年) 새해에도 호남과 무등산(1,187m) 일대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덕분에 무등산은 흰 눈 뒤집어쓴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멀리고 온 손님을 반갑게 맞는다. 광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무등산 옛길 탐방객이 개방 8개월 만에 10만 명을 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탐방객의 절반 이상이 다른 지역 손님이었으니, 무등산 옛길은 일찌감치 걷기 명소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앞으로 제주도 올레와 지리산 둘레길 다음의 걷기명소 자리를 놓고 전국의 내로라하는 길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다.

황소걸음으로 걷는 옛길 1코스
무등산 옛길 1코스는 산수동오거리 골목길에서 시작한다. 옛길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다. 골목길로 들어서 빛바랜 담벼락을 바라보니, 어린 시절의 기억이 가물가물 떠오른다. 당시 골목에서 축구, 야구, 다방구… 못 하는 것이 없었다. 어른이 되면 왜 골목길은 형편없이 작아지는 것일까.

골목길을 지나면 ‘황소걸음길’이 나오는데, 전라도 사투리로 ‘싸목싸목’(천천히) 걷는 길이다. 300m마다 옛길 이정표들이 나타나는데, 좀 많다 싶다. ‘신수 봅니다’ 간판을 내건 점집을 지나니 무진고성이 있는 잣고개에 이른다.

▲ 깎아지른 주상절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입석대.

잣고개 앞으로 무등로 신작로가 산수동에서 원효사까지 이어져 있다. 옛길은 중간 중간 신작로를 만나고, 서너 번 도로를 건너게 된다. 무진고성 동문터를 지나 서너 번 모퉁이를 돌면 청풍쉼터에 닿는다. 이곳은 광주의 학생들이 소풍 가는 단골 장소로 김삿갓 시비가 세워져 있다. 과거 김삿갓은 무등산을 지나 화순 적벽으로 넘어갔고, 그곳 동복에서 생을 마감했다.

옛 시인의 발자취를 따르다 보면 서어나무 연리지를 만나면서 화암촌에 닿는다. 예전에는 이곳에 막걸리를 파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더도 말고 딱 한 잔의 막걸리가 간절한 지점이다. 조선시대 의병장인 김덕령 장군을 모신 충장사에서 원효사까지는 ‘숲 속의 길’로 1코스의 마지막 구간이다. 원효봉 너덜겅에서 아스라이 펼쳐진 무등산 정상 일대가 펼쳐진다. 온통 흰 눈을 뒤집어쓴 정상 일대의 높고 거룩한 모습을 보니 쿵쿵! 가슴이 뛴다.

▲ 서석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석대. 눈꽃에 휩싸인 이러한 자태를 선인들은 ‘수정병풍(水晶屛風)’이라 했다.

‘무아지경’에 빠지는 옛길 2코스
무등산관리사무소 입구에서 2코스에 올랐다. 예전에는 군부대가 자리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덕분에 숲이 건강하다. 오솔길로 접어들자 ‘무아지경길’이란 안내판이 서 있다. 원효계곡의 물소리, 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걸으라는 뜻이다. 길섶에는 제법 눈이 수북하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며 잠시 눈을 감자 바람 소리가 들리면서 주위는 더욱 고요해진다. 숲길을 지나니 제철유적지가 나온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김덕령 장군이 이곳에서 무기를 만들어 왜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물통거리’에 이르니 길이 제법 넓고 평탄하다. 예로부터 나무꾼과 숯을 굽던 사람들이 나무를 날랐고, 1960년대는 군부대가 보급품을 나르던 길이다. 옛 수송부대 자리를 지나니 점점 하늘이 열리더니 드디어 군사작전도로에 올라붙는다. 이제는 무등산의 최고 절경인 서석대로 가는 길이다. “우와~” 앞에서 탄성이 터진다. 나무마다 탐스러운 눈꽃을 그득하다. 서석대까지 그늘진 길은 눈꽃터널이다. 이윽고 서석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서석대 전망대. 서석대의 우람한 검은 바위와 주변 눈꽃이 어울려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아름답지요. 광주가 빛고을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수정병풍(水晶屛風)이라 부르는 서석대에서 나왔어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광주 시내에서 반짝이는 걸 볼 수 있어요.”

사진을 찍는 필자에서 광주 아저씨가 다가와 이것저것 알려준다. 그의 말과 눈빛에는 자긍심이 가득하다. 전망대에서 몇 발짝 더 오르니 ‘무등산 옛길 종점, 옛 선조들이 올랐던 옛길 정상입니다. 11.87㎞, 전 구간 완주를 축하합니다’라 쓰인 이정표가 반긴다.

▲ 눈꽃으로 치장한 무등산의 자태.

입석대 지나 증심사로 내려오는 산길
무등산은 옛길은 서석대에서 끝나기 때문에 하산하려면 산길을 밟아야 한다. 하산하기  좋은 코스가 입석대를 거쳐 증심사로 내려오는 길이다. 옛길 종점 이정표 위로 올라가면 천왕봉이 보이는 능선에 올라붙는다. 천왕봉에는 군부대가 들어서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다. 여기서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부드러운 백마능선을 바라보며 입석대에 이른다.

입석대는 주상절리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마치 신이 다듬어 놓은 듯한 원형기둥의 모습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서석대보다 규모는 작지만 돌을 다듬어 놓은 정교한 솜씨는 한 수 위다. 입석대를 내려오면 장불재. 무등산을 통틀어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부드러운 억새밭 너머로 입석대와 서석대의 모습이 한눈에 잡힌다. 입석대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바위들이 장불재에 자유롭게 널려 있는 모습도 보기 좋다.

장불재에서 직접 중머리재로 내려가도 되지만, 중봉을 거쳐 가는 것이 좋다. 군사작전도로를 따라 200m쯤 가면 중봉 안내판이 나온다. 예전 군부대가 있던 자리는 지금은 억새가 하늘거리는 운치 있는 길로 변했다. 중봉에 서면 무등산 정상부인 천왕봉과 인왕봉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난다. 눈을 머리에 인 봉우리들은 어머니의 산처럼 후덕하면서도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있다. 중봉에서 용추삼거리로 내려서면 길이 넓어진다. 이어지는 중머리재 약수터에서 달고 시원한 약수를 들이켜고, 완만한 내리막을 따르면 증심사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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