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통을 찾아 떠난 가을 기행 - 간사이 (2)
일본의 전통을 찾아 떠난 가을 기행 - 간사이 (2)
  • 이두용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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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요미즈테라~헤이안진구~히가시혼간지~후시미이나리타이샤~기온~오사카성

천년고도 헤이안시대를 상징하는 헤이안진구

▲ 헤이안진구(平安神宮)내 건물들은 기둥에 붉은 옻칠을 하고 지붕엔 초록색 기와를 얹어 그 색이 유난히 화려하다.
 
일본에는 절과 신사(神社)가 있는데, 부처님이 아닌 신령을 모시는 신사의 숫자가 절보다 훨씬 많다. 대표적인 신사인 헤이안진구(平安神宮)로 가기 위해 키요미즈테라에서 버스로 이동했다. 이 신사는 간무덴노(桓武天皇)의 헤이안 천도 1100주년을 기념하여 1895년에 건립된 곳이다.
 
에도시대에 실질적인 정치적 중심이 도쿄(東京)로 옮겨지면서 의미를 상실하게 된 교육, 문화, 산업, 생활의 부흥을 위해 헤이안(平安)시대 왕의 신령을 모시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넓은 신사 경내가 신전을 둘러싸도록 했고, 신전은 헤이안시대 왕궁의 형태를 본떠 당시 궁의 3분의2 크기로 만들어졌다.

붉은 옻칠을 하여 가을채색이라도 한 것 같은 붉디붉은 기둥과 여름의 푸름을 표현한 것 같은 초록색의 기와가 인상적이었다. 궁의 계단 아래 나뭇가지에 소원을 적어 묶어놓은 ‘묶어두는 나무(Musubiki)’라고 적힌 나무를 보니 그들의 소박한 마음이 느껴진다.

세계 최대 목조건축물인 히가시혼간지

▲ 16m의 불상을 모신 높이 47.5m로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이로 불리는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의 대불전.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로 가는 길에 사슴공원을 지나게 된다. 우리나라 자연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슴이나 고라니 정도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사람에게 다가가 애완용사슴처럼 친한 척도 하고 과자를 구입해서 나누어주면 무리를 지어 다가와 받아먹기도 한다.

자연을 벗 삼아 사슴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고 체험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사슴공원을 지나면 일본 남도(南都)의 7대 절 중 하나인 히가시혼간지가 나타난다. 서기 745년에 쇼무오오(聖武王)의 발원으로 로벤(良弁)이 창건한 이 절의 본존은 비로자나불로 앉은키가 16m, 얼굴길이가 5m나 되어 속칭 ‘나라 대불’이라고도 한다.
 
당내에 모셔진 불상이지만 거대한 크기 때문에 입구에 들어서면서 일단 압도당한다. 이렇게 큰 불상을 모시는 당은 또 얼마나 클까? 에도(江戶)시대에 재건된 대불전, 즉 금당(金堂)은 높이 47.5m나 되는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이다.

실내는 불상을 중심으로 옆과 뒤에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 공간이 확보되어 있고 그 곳곳에 크고 작은 불상과 조형물들이 있었다. 불상 뒤로 소원을 빌고 기둥 가운데 나 있는 구멍을 통과하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재미난 전설이 있는 기둥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우신사’라 불리는 후시미이나리타이샤

▲ 후시미이나리타이샤(伏見荷大社)로 오르는 길에서 만난 다소 섬뜩한 여우가면.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여우신사’라고 불리는 후시미이나리타이샤(伏見荷大社)에 가는 동안 귀엽고 정겨운 여우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려 15분 남짓 신사로 걸어가면서 기념품 상점에서 여우가면을 보고 흠칫 놀라고 말았다. 고전 드라마 ‘전설의 고향’의 단골손님인 ‘백년 묵은 여우’의 느낌이랄까, 첫인상은 그랬다.

후시미이나리타이샤는 일본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약 4만여 개의 사원을 보유한 이나리진자(荷神社)의 총본산으로 사업번창, 풍년, 교통안전 등의 수호신으로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해마다 많은 참배객으로 붐빈다.

일본 중요 문화재에 지정되어 있는 혼덴(本殿)에는 양옆으로 여우상이 있고 건물 뒤로는 센본토리이(千本鳥居)라고 불리는 주황색의 토리이(鳥居) 터널이 있다. 실제 산으로 길게 연결되어 있는 이 터널은 일본 내 각종 매체는 물론,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서 어린 시절의 여주인공이 터널을 뛰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토리이(鳥居) 터널이다.

기온에서 게이샤를 만나다

▲ 기온(祇園) 거리의 하나미코지(花見小路)에서 운 좋게도 게이샤를 만날 수 있었다. 목뒤까지 하얀 분칠을 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게이샤(藝者)는 연회에서 전통적인 일본 예술을 실연하는 전문 여성 예능인이다. 하지만 나중에 유녀(遊女)가 갖추지 못한 예능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 게이샤와, 춤을 추는 것을 구실로 손님에게 몸을 파는 게이샤 두 종류가 따로 생기게 되었다 한다.

메이지(明治)시대 이후 일반 게이샤의 수가 크게 증가하여 지방도시까지도 게이샤가 퍼지게 되었으나 현재는 그 명맥만을 이어가는 수준이라 한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게이샤가 되고 싶은 소녀들은 악기연주, 노래, 춤과 같은 다양한 전통 예능 및 대화법 등과 같은 사회적 기술을 배우는 엄격한 견습생활을 거쳐야 한다.

현존하는 게이샤의 마을 기온(祇園) 거리는 액과 화를 면해주고 상업을 번성하게 해준다고 하여 시민들의 방문이 잦은 야사카진자(八坂神社)를 마주하며 형성되어 있다. 야사카신사와 기온거리는 매년 7월 교토의 3대 축제의 하나로 유명한 기온마쓰리(祇園祭)로도 유명하다.

기온 거리에서도 종종 게이샤를 볼 수 있다는 ‘게이샤의 거리’ 하나미코지(花見小路)를 지날 때 얼굴과 목을 하얗게 분칠한 게이샤가 눈앞에 나타났다. 멀리서도 뚜렷하게 구분된 전통의상과 하얗고 울긋불긋하게 칠한 화장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람들을 크게 의식하는 듯 말을 걸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피해 골목사이로 황급히 사라졌다.

 

일본 역사의 상징 오사카성

▲ 물에 씻은 듯 깨끗한 외형과 푸른 하늘이 잘 어울리는 오사카성의 전경.
오사카성(오사카죠, 大阪城)은 오사카뿐만 아니라 일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오사카 시내에 위치해 있지만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며 수목과 잘 어우러져 있는 성이다.

오사카성의 기원은 이렇다. 1583년 도요토미히데요시는 수운이 편리한 우에마치(上町) 대지에 천하 쟁탈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한 성을 축성하기로 한다. 이것이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의 오사카성이다. 히데요시는 권력과시를 위해 1585년에 5층 8단, 검은 옻칠을 한 판자와 금박기와, 금장식을 붙인 호화로운 망루형 천수각을 완성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크고 작은 일들로 여러 번의 소실을 겪은 뒤 1931년 현재의 철근 콘크리트로 재건축된 성이 지어졌다. 이후 1997년 전문가들에 의해 성의 내부에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삶과 성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꾸며졌다고 한다.

오사카성의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오사카 시내는 가을이라 더 맑아 도시 전체가 선명했다. 단풍으로 막 접어든 공원의 풍경과 도시의 모습이 자연스레 어우러져 보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아픔인 임진왜란을 일으킨 원흉인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침략을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그리 달갑지 많은 않았다. 그래서일까.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오사카성을 끝으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일본이 자랑하는 역사 중 많은 부분이 우리 조상들의 직접적인 전수 혹은 영향력을 통해 만들어졌다. 과거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조상들은 당시 우리보다 미개했던 일본에 선진 문명을 전하고 크고 작은 일들로 일본문화에 영향을 끼치며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과시했다.
 
간사이지방을 여행하면서 ‘우리에게 더 많이 자랑할 전통과 역사가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먼저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는 ‘우리 것’이 결국 남들도 인정할 수 있는 최상의 문화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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