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눈길엔 ‘소양호 전망대’ 오르기 쉽지 않군!”
“어휴~, 눈길엔 ‘소양호 전망대’ 오르기 쉽지 않군!”
  • 글·김경선 기자l사진·이두용, 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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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푸마와 함께하는 KOREA TRAVEL 춘천 ① 오봉산 트레킹

▲ 오봉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만난 홈통바위. 경사도 급하고 틈새도 비좁아 지나기가 쉽지 않았다.

소양호 선착장~청평사~해탈문~정상 원점회귀 코스 약 10.5km 5시간 소요

험난한 암릉을 품은 춘천의 오봉산은 비경을 숨기고 있는 산이다. 고도를 높일수록 시원하게 펼쳐진 소양호와 꿈틀대는 산군이 조망되니 산꾼들은 굳이 배를 타고 들어와 오봉산 산세를 마음껏 즐긴다. 전국이 흰 눈으로 뒤덮인 겨울날, 하얗게 몸단장한 오봉산을 찾았다.


춘천의 오봉산(五峰算, 779m)은 제1봉인 나한봉부터 2봉 관음봉, 3봉 문수봉, 4봉 보현봉, 5봉 비로봉(정상)까지 5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다. 산세가 크고 높지는 않지만 내륙에 위치하면서도 소양호를 끼고 있어 차량뿐만 아니라 배를 타고 들어가는 운치와 멋이 있고, 산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훌륭해 수도권 산꾼들이 많이 찾는 명산이다. 하지만 산 곳곳에 아찔한 암릉 구간이 있어 초보자들에게는 쉬이 정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소양댐 선착장에서 청평사로 향하는 첫 배(09:30)에 올라탔다. 광활한 소양호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장관이다. 고요한 호수에 포말을 일으키며 달린 지 10여분 만에 청평사 선착장이다. 취재팀을 제외하고는 등산객들이 전혀 없고 청평사를 찾는 관광객 몇 팀만 눈에 띄었다. 향토식당지구에서 만난 식당 주인의 말로는 며칠 전 눈이 온 이후로 등산객은 취재팀이 처음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인적 없는 산길에서 등산로 찾기가 쉽진 않을 듯싶었다.

▲ 청평사로 오르다보면 공주와 상사뱀의 설화를 형상화한 조각상이 있다.

오봉산 자락이 품은 고찰 청평사
▲ 아홉 가지 소리가 난다는 구성폭포는 시간이 멈춘 듯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선착장부터 줄곧 포장도로가 이어졌다. 매표소를 지나 계곡을 우측에 끼고 완만한 오르막길을 10여분 걸으니 계곡에 커다란 조각상이 보인다. 청평사에 얽힌 공주와 상사뱀의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 놓은 조형물이다. 조각상에 얽힌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중국 당나라 때 공주를 짝사랑하던 평민 청년이 상사병으로 죽어 뱀으로 환생했다. 환생 후에도 그 마음을 놓지 못한 상사뱀은 공주의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공주는 어떤 수를 써도 떨어지지 않는 상사뱀 때문에 전국의 사찰을 돌며 부처님께 기도를 드렸고, 춘천의 청평사까지 도달하게 된다. 공주는 청평사에 거의 도착할 무렵 뱀에게 “절에 들어가 먹을 것을 가져올 테니 잠시 떨어져 달라”고 이야기했고, 어쩐 일인지 뱀은 공주의 몸에서 순순히 내려왔다. 시간이 흘러도 공주가 돌아오지 않자 뱀은 청평사로 들어섰고, 그 순간 뇌성벽력과 함께 소나기가 쏟아져 상사뱀은 급류에 휩쓸려 죽었다고 한다.

조각상을 지나자 ‘아홉 가지 소리가 난다’는 구성폭포다. 7m 높이의 폭포는 시간이 멈춘 듯 거칠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그대로 얼어붙어 미동조차 없었다. 맹추위에 폭포도 겨울잠에 빠졌나보다.

구성폭포를 지나 청평사 경내에 들어서니 온통 하얀 세상에 알록달록한 전각만이 도드라져 보인다. 청평사에서 가장 유명한 회전문(廻轉門, 보물 제164호)으로 향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문이 아니라 중생들이 윤회의 전생을 깨우치기 위한 마음의 문이다. 이 외에도 청평사에서 빼놓지 말아야할 것이 고려선원이다. 산자락에 둘러쌓인 분지에 계곡과 영지(影池), 소(沼)가 어우러진 고려선원은 이제현, 나옹, 김시습, 이황 등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 글을 남겼을 만큼 아름다운 정원이다. 하지만 겨울은 이 아름다운 정원을 시샘했는지 영지 주변을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어 정원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 정상으로 향하는 길. 688봉 너머 우측으로 푸른 소양호가 내려다 보였다.

초보자는 정상 남릉길 피해야
등산로는 청평사에서 두 갈래로 갈렸다. 해탈문을 지나 오봉산 남릉에 달라붙는 등산로는 사찰 입구에서 왼쪽 계곡길을 따르고, 688봉을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암릉길은 관음전 옆으로 난 소로를 지나 산길을 따르면 된다.

 취재팀은 688봉을 거치는 암릉길로 올라 적멸보궁터가 있는 선동계곡으로 하산하기로 결정하고 관음전 옆 소로를 따랐다. 오봉산 안내도를 지나자 본격적인 등산로다.

▲ 청평사에서 688봉을 거치는 등산코스는 가파른 암릉 구간이다. 암릉이 미끄러운 겨울철에는 초보자들이 피해야할 코스다.
청평사를 지나자 등산로가 온통 눈밭이다. 사람 발자국은 고사하고 산짐승 발자국도 없는 적막공산이다. 시작부터 종아리가 팽팽해질 정도로 급경사를 오른다. 눈밭에서 산길을 찾느라 눈도 발걸음도 바쁘게 움직였다. 그렇게 10분을 걸으니 드디어 본격적인 암릉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바위틈 사이로 쇠말뚝을 꽂아 밧줄로 연결한 것이 등산로다. 게다가 눈까지 소복이 뒤덮여 오르기 쉽지 않아 보였다. 밧줄을 붙잡고 암릉에 달라붙었다. 아이젠 때문에 바위와의 접지력은 제로에 가깝고 눈까지 있어 미끄럽기까지 하다. 애꿎은 밧줄만 붙잡아대니 금세 팔뚝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조금만 더 가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마음에 기운을 내보지만 갈수록 길은 더 험해졌다. 게다가 함께한 일행은 겁을 내며 따라오지 못한다. 이대로 강행하다가는 사고라도 날 것 같아 온 길을 되돌아 선동계곡 등산로를 따르기로 결정하고 길을 되짚어 내려갔다.

실제로 오봉산 남릉은 소양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지만 조금만 삐끗해도 수십 미터 절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구간이다. 일 년이면 몇 번씩 119구조대가 출동할 정도로 위험해 초보자들은 피하는 것이 좋다.

청평사까지 되돌아와 선동계곡을 따랐다. 넓고 완만한 등산로가 한동안 이어지더니 해탈문이 나타났다. 청평사에서 20여분은 족히 걸어야하는 곳에 해탈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의 사찰이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짐작이 간다. 해탈문을 지나 15분을 걸어가니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는 적멸보궁이 보였다. 등산로는 적멸보궁 우측의 작은 소로를 따라야한다. 눈이 뒤덮여 길이 제대로 보이질 않으니 수시로 길을 잃어 산행이 더디다.

적멸보궁을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길이 가팔라지기 시작하더니 688봉 안부를 앞에 두고서는 등산로가 급격하게 곧추섰다. 코가 땅에 닿을 것만 같은 급경사를 밧줄을 잡고 힘겹게 올라 나무 계단길을 지나자 등산로는 688봉 안부 삼거리에 닿았다. 왼쪽으로 들어서 정상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 오봉산 정상은 숲에 가려 주변 조망이 잘 보이지 않았다.

홈통바위 지나는 재미 쏠쏠
▲ 선동계곡 초입에 만난 거북바위. 기묘한 형상이 흡사 거북이 같다.
능선을 따르는 등산로 좌우로 까마득한 벼랑이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688봉 안부에서 15분 정도 걸었을까. 드디어 홈통바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작은 구멍을 지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위의 틈새가 좁기만 한데, 낑낑거리며 5분여를 실랑이한 끝에 겨우 빠져나왔다. 배낭이 크거나 살집이 많은 사람은 비집고 빠져나오는 것이 쉽지 않을 듯싶었다.

고진감래라던가. 간신히 홈통바위를 빠져나오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조망이 멋진 전망대다. 손에 잡힐 듯 투명한 소양호가 한 눈에 조망돼 지금까지의 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다. 홈통바위에서 능선을 따라 20여분을 걸으니 드디어 오봉산 정상이다. 작은 정상 표지석이 정상임을 말해줄 뿐 우거진 나무에 가져 조망이 시원치가 않다. 5봉인 정상에서 1봉까지 이어지는 능선도 보이지가 않았다. 눈이 많지 않은 계절이면 배후령 방면으로 하산해 5개 봉우리를 만나 보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 같은 눈길에는 위험천만이다.

시계를 보니 산행을 시작한 지 벌써 3시간이 넘었다. 눈 때문에 산길을 놓쳐 수차례 길을 헤맸더니 평소보다 곱절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마지막 배(16:30) 시간에 맞춰 선착장에 도착하려면 서둘러 하산해야만 했다.

겨울의 오봉산은 ‘달콤살벌’했다. 능선에 오르면 우아한 산군과 푸른 호수의 절묘한 조화가 기다리고 있지만, 눈길에 파묻힌 암릉길은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봉산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위와 아름드리 소나무, 소양호가 어우러진 진풍경 때문이다. 688봉 안부에 도착해 오봉산을 바라보니 맹추위에 하얗게 질려버린 바위벽만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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