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과 함께 일주일을 달렸다”
“야생동물과 함께 일주일을 달렸다”
  • 글 사진ㆍ안병식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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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마라톤대회 참가기 l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 익스트림 마라톤 240km

▲ 레이스를 방해하는 날벌레 때문에 선수들은 온 몸을 망으로 감싸고 달려야했다.

칼라하리 사막에서 펼쳐진 7일간의 레이스…240km 완주 성공


대자연의 경이로움이 살아 숨 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세계 극지를 찾아다니며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안병식 씨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칼라하리 사막에 다녀왔다. 섭씨 40도를 웃도는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 240km 달려야하는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 익스트림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했던 대회 이야기를 본지 독자들에게 공개한다.

글 사진ㆍ안병식(소속·노스페이스) http://blog.naver.com/tolerance


하늘에서 바라보니 하얗게 눈이 덮인 히말라야 산맥이 아름답다. 9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두바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세상은 신비로움으로 가득했다. 지금 내가 향하는 칼라하리 사막은 이렇게 눈이 뒤덮인 하얀 세상이 아닌 기온이 섭씨 40도를 넘나들고 끝없이 모래가 펼쳐진 황량한 사막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미지의 세계에 가까워질수록 설렘도 덩달아 커져갔다.

두바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8시간의 비행을 더 한 후에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요하네스버그 시내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아침 버스를 타고 칼라하리(Kalahari) 사막으로 향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아프리카 초원지대는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건초들 사이로 푸릇푸릇 싹이 돋아나는 나무들이 보이고 풀을 뜯고 있는 기린과 타조의 평화로운 풍광도 펼쳐졌다.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진짜 내가 아프리카 초원을 지나고 있구나’ 실감이 난다.

오후가 되자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를 뚫고 출발한 지 10시간 만에 대회 장소인 아우그라비스(Aug rabies)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아우그라비스 국립공원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북서쪽 국경지대에 인접한 오렌지강(Orange River)을 따라 조성된 공원이다. 높이가 60m에 달하는 아우그라비스 폭포와 거대한 협곡에서 뛰노는 야생의 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는 고원지대로 대회는 아우그라비스 국립공원 일대와 칼라하리 사막에서 진행된다.

칼라하리 사막은 남아프리카의 북서쪽 지대로 보츠와나의 남서부와 나미비아의 동부에 걸쳐 있으며 해발 고도만 800~1200m의 고원지대다. 사막이라고는 하지만 모래사막보다는 바위와 협곡지대가 많고 잡풀과 나무, 선인장들이 자라고 있어 영양·타조·기린·사자 등 야생동물들이 뛰노는 거대 사막이다.

▲ 출전 선수들이 험난한 협곡지대를 달리고 있다.

물고 뜯는 날벌레 공격 속에 힘겨운 레이스
▲ 출발선에 서있는 출전 선수들. 무더운 날씨에 선수들은 평소보다 저하된 컨디션으로 대회에 임해야했다.
대회장 인근에서 하루를 푹 쉰 선수들은 다음날 아침 버스를 타고 스타트라인에 도착했다. 오전 9시, 드디어 대회가 시작됐다. 포도밭 농장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 선수들은 첫 번째 체크포인트를 지나 협곡에 접어들었다. 무더운 날씨와 무거운 배낭 무게에 서서히 지쳐갈 무렵 날벌레들이 몰려들어 경기를 방해했다. 눈과 입, 심지어 콧속으로까지 들어가는 날벌레 때문에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버프를 쓰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날벌레들이 얼굴뿐만이 아니라 팔과 다리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바람에 따갑고 간지러워 레이스가 자꾸 더뎌졌다. 대회 관계자들도 이례적인 일이라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하루를 마감한 선수들이 강에서 수영을 즐기며 피로를 풀고 있다.
대회 둘째 날도 날벌레 떼가 시작부터 기승을 부렸다. 강바닥이 훤히 들어난 협곡을 따라 달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래사막이 나타났다. 칼라하리 사막은 사하라 사막처럼 거대한 언덕은 없지만 붉고 고운 빛깔의 모래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낮 최고온도가 섭씨 45도까지 올라갔다. 그래도 레이스를 하는 동안 가끔씩 보이는 기린과 스프링복(Springbok, 영양의 일종) 등 야생동물들이 나타나 잠시나마 피곤을 잊게 만들어줬다.

적막한 사막의 밤이 찾아오자 지친 선수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른 시간부터 숙면에 들어갔다. 한참 깊게 잠들었을 무렵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을 깨 밖으로 나가보니 주최측과 외부인들이 언쟁을 높이고 있었다. 대회측이 사유지에 캠프를 설치하면서 마을사람들과 마찰을 빚은 것이다. 사막이 지역 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종종 이런 실수가 발생하곤 한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11시부터 레이스가 시작됐다. 원래는 40km를 뛰는 코스였지만 주최측에서 대회를 늦게 시작하는 바람에 20km로 거리를 단축했다. 하지만 거리가 줄었다고 쉬운 코스는 아니었다. 한낮의 기온은 섭씨 48도까지 올라갔고 지형도 험해 달리기가 만만치 않았다. 더위에 지친 선수들은 레이스를 마친 후 강가에서 수영을 하며 피로를 풀었다.

▲ 한 낮 기온 섭씨 45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사막을 달리는 선수들.

섭씨 48도 오르내리는 사막의 무더위
사막마라톤 대회는 하루 평균 30~40km를 달리고, 그 중 하루는 80~100km를 달리는 롱데이가 포함된다. 대회 사흘째날인 오늘이 바로 롱데이다. 그동안 피로도 많이 쌓이고 배낭도 무거워 롱데이가 쉽진 않을 듯싶었다. 롱데이에서는 선두그룹과 후미그룹간의 격차가 심해 그동안의 기록을 합산해 그룹을 나누어 출발한다. 첫 번째 그룹은 6시에 출발했지만 마지막 그룹에 속해 있던 필자는 11시가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더위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바람이 많이 불어 생각만큼 무더운 날씨는 아니었다.

오늘 뛸 구간은 총 83km. 사막 같은 극한의 기후에서는 결코 짧지 않은 구간이다. 50km 지점의 체크포인트를 지나 갑자기 길을 잃어버렸다. 사막 한 가운데서 혼자라는 두려움도 컸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뒤쳐진 것에 부담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한 시간을 헤맸을까. 다행이 다음 체크포인트를 지났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마지막 체크포인트를 지날 때는 캄캄한 암흑을 달려야만했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길고 긴 롱데이의 하루가 끝이 났다. 롱데이 구간은 1박2일 일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다음 날 하루를 푹 쉴 수 있었다.

▲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자신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의 모습.

대회 6일째 날은 48km 코스를 달렸다. 대회 막바지에 접어들수록 선수들과의 우정도 깊어져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사진 촬영을 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대회 마지막 날, 20km의 짧은 코스를 달려 피니시 라인에 들어섰다. 대회 스태프와 자원 봉사자 그리고 먼저 들어온 참가자들이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왔다. 머나먼 이국땅 칼라하리 사막에서의 추억은 그렇게 끝이 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요하네스버그로 이동했다. 버스로 12시간이 걸리는 먼 귀가길, 그동안 쌓인 피로에 자연스레 눈이 감겼다. 뜨거운 태양빛이 작렬하는 남아프리카에서의 일주일. 아무리 힘들고 고된 레이스라도 남아프리카의 대자연과 전 세계 친구들과 함께한 일주일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았다. 

▲ 일주일 동안 자신과의 한계를 극복한 참가자들의 단체사진.

트레일 러너 안병식 선수 주요 프로필 |

▶ 2001년 제주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 2005년 10월 이집트 사하라사막 마라톤(250km) 완주
▶ 2006년 6월 중국 고비사막 마라톤(250km) 우승, 7월 칠레 아타카마사막 마라톤 (250km) 4위, 10월 이집트 사하라사막 마라톤(250km)  3위
▶ 2007년 12월 남극마라톤 130km 3위
▶ 2008년 2월 베트남 정글 마라톤 238km, 4월 북극점 마라톤 우승
▶ 2009년 8월 까미노 산티아고 807km, 8월 노스페이스 몽블랑 울트라 트레일 런 166km, 9월 고어텍스 트렌스 알파인 런 240km, 10월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 익스트림 마라톤 240km, 10월 인도 히말라야 100마일(166km) 런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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