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의 도시’를 감싼 사랑의 침술
‘보석의 도시’를 감싼 사랑의 침술
  • 글 사진·최광호 사진가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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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최광호의 KOMSTA 동행기 | ① 스리랑카 라투나푸라

▲ 스리랑카의 전통병원, 아유르베딕에서 만난 환자의 얼굴과 발. 맨발로 걸어다니는 그들의 발은 굳은살 투성이다.

“나는 사진가다.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 하는 대신 세상과 호흡하기 위해, 나는 사진기를 들고 문밖으로 나선다.”

지난 12월, 약 열흘간 나는 콤스타(KOMSTA,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와 함께 스리랑카 ‘라트나푸라(Ratnapura)’ 지역의 ‘아유르베딕’에 머물렀다. 콤스타의 의료봉사에 동행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콤스타의 의료봉사지로 선정된 라트나푸라는 스리랑카의 행정수도 콜롬보(Colombo)에서 남동쪽으로 67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보석의 도시’라는 뜻과는 달리 가난하고 소외된 벽지마을이다. 아유르베딕은 스리랑카의 전통의술병원을 뜻한다. 너무 비싸서 일반 서민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개인병원을 대신해 무료로 진료 받을 수 있는 아유르베딕이 서민들의 건강을 담당하고 있다.


▲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지금의 반도모양으로 지어진 골포트(Galle fort)에 자리한 성당. 현지의 전통 돔양식과 서양식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유 없이 서로 쳐다보다 눈만 마주치면 웃는 모습. 티 없이 맑은 눈망울이 나를 긴장시킨다. 순수하게 웃는 맑음으로 다가오는 그들이 나를 긴장시킨다. 그네들의 순박한 웃음으로 전해지는 마음. 그 즐거움. 스리랑카 사람들의 순수함이 웃음으로 드러나는 순간, 나와 나의 사진기가 반응한다. 순수하고 티 없이 맑음에 본능적으로 감동해 그들을 찍는 내가 더 긴장하고 만다. 사진기를 들이대면 일순간 부끄러워하는 그들의 몸짓에 잠시 아련해진다. 문득 예전에 우리들도 품고 있던 순수함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티 없이 맑은 웃음마저 귀해진 요즘 우리 현실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어느새 코에 땀이 방울방울 맺히며 긴장한다. 내가 긴장해 혀와 코로 반응하듯, 그들은 온몸 온 마음으로 살그머니 웃으며 부끄러움을 드러낸다. 다시 한번 그 모습에 반한 내 사진기가 긴장해 그들의 뒤만 졸졸 따라 다닌다.

다시 찾은 스리랑카, 가슴이 두근두근
▲ 대통령 궁 앞 바다에서 사진을 찍자 “사진촬영 금지 구역”이라며 군인이 따라다닌다. 내전은 끝났다고 하지만 타밀족과 신할리족의 갈등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나는 콤스타와 함께 할 때마다 병에 걸린다. ‘진정한 봉사란 무엇인가’와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에 대해 반성과 자학을 거듭하게 하는, 치료약을 구할 수 없는 병에 걸린다. 이번 스리랑카는 더더욱 그랬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봉사 때마다 만나는 20여 개의 커다란 상자와 약들, 그리고 의료기구가 반갑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여느 때와 달리 한의사가 달랑 두 사람이다. 진료를 받으러 끝도 없이 모여들던 그들이 떠오르자 걱정이 되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홍콩, 방콕을 거쳐 이틀이 지나 스리랑카에 도착할 때까지 무게는 덜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과 닿는 순간 나는 또 다시 사진가로 태어난다. 나는 사진가다.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 하는 대신 세상과 호흡하기 위해, 나는 사진기를 들고 문밖으로 나선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 도착한 것은 새벽 두시.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잠에 빠져든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니 예전 쓰나미 때 왔던 곳이다. 창가에 보이는 인도양의 바다와 도시풍경에 예전과는 다른 촬영금지 표지판이 창가에 붙어있다. 사진기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가자 “이곳은 대통령 궁 근처여서 촬영이 금지”라며 총을 든 군인이 졸졸 따라다니며 성가시게 군다. 그래도 못 찍을 내가 아니기에 농담을 섞어가며 사진을 찍고 산책을 한다.

차를 타고 라트나푸라로 향한다. 이동하며 스치는 풍경들에 내 사진기와 자동차가 거친 숨을 몰아쉰다. 그곳으로 향하는 이 순간이 아쉬워 셔터를 눌러댄다. 서너 시간쯤 지났을까. 라트나푸라의 아유르베딕에 도착한다. 정말 부러울 정도로 대단한 규모다. 전통을 지키는 그들의 자부심 역시 그러했다. 보다 새롭고 현대화 된 것에 집중하는 우리에 반해 이 나라는 자기 것을 지키며 소중히 하는 것이 느껴졌다. 사진기를 들고 나를 되돌아본다.

▲ 이번 진료에 참여한 콤스타 소속 이원욱 원장과 정성훈 단장, 그리고 한규언 원장(왼쪽부터)이 현지병원 의사들에게 적외선 열치료기를 전달하고 있다.

한 번도 병원에 못 가본 이들이 부지기수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늘 그렇듯 사진기를 들고 나선다. 멀리서 북소리며 나팔소리, 그리고 소라 고동소리가 들려온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어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니 축제중인 마을이다. 촌장과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는다. TV에서나 보던 풍경이다. 흰 가루로 바닥에 자기가 원하는 꽃이나 등불, 성전 등의 문양을 그리고 기다린다.  흰 가루로 그린 집은 신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른들은 돈 벌러 나갔는데 어린꼬마가 정성들여 그림 그리고 신을 맞이하는 모습은 경이롭다.

우리나라에서 정월에 지신밟기 하듯 집집마다 돌면서 이마에 빈디(bindi, 힌두교 여자들이 이마 중앙에 찍거나 붙이는 장식용 점)를 찍어주며 다음 집으로 차례차례 마을을 도는 축제다. 다 마친 후에는 내 이마에도 빈디를 찍어준다. 어쩌면 이것이 사진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면하는 첫 인사일지도.

진료 첫날이다. 콤스타의 한의사 선생님들이 지속적으로 꾸준히 의료 봉사활동을 한 결과는 스리랑카 현지인 의사들의 침술을 통해 드러났다. 한국인 한의사와 현지인 의사들이 함께 침술로 의료봉사를 했기 때문이다. 현지 의사들과 함께 선서를 하고 진료를 시작한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눈여겨보는데…. 그것은 기우였다.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잘 해내가고 있었다.

▲ 게릴라 진료를 갔던 마을은 인도에서 이주해온 타밀족들이 살고 있었다. 힌두교를 믿는 그들은 우기가 끝나고 건기가 되는 시기에 새벽부터 마을을 돌며 집집마다 안녕을 기원하는 축제를 벌인다. 마지막에는 서로의 이마에 빈디를 찍어준다.

이는 최초의 콤스타 파견 한의사인 한규언 선생님의 눈물어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어를 사용하며 침을 놓는 현지 의사들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올림픽 종목에 채택된 태권도의 세계화 과정을 엿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벌써 스리랑카에는 삼스트(SAMST, 스리랑카 침구의료봉사단)가 조직되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우리 한의학의 초석이 될 모임이 되길 바랄 뿐이다.

맨발로 온 환자의 발바닥에 침을 다 놓고는 아까정기, 우리의 ‘빨간약’으로 소독해 준다. 행여나 침 맞은 맨발로 걸어 다니다 풍토병이나 파상풍에 걸릴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란다. 그 장면에 “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자기들에게 맞는 가장 정확한 진료법을 찾아낸 현지 의사들의 성과는 곧 내가 스리랑카에 머물며 대면한 그들만의 아름다움과도 통했다. 그 후로 더 간절히 기도했다. 사진기를 들고 그들 위로 군림하지 아니하고 건방지지 아니하고 다소곳하게 다가서기를. 소박한 마음 나누기. 그래서 서로 마음으로 느끼는 사진을 찍길 바라며.

▲ 콤스타 한국인 의사와 현지인 의사들이 침술로 스리랑카 사람들을 진료한다.

▲ 현지인 의사들이 침술로 스리랑카 사람들을 진료한다.
한의사만이 할 수 있는 게릴라 진료에 나섰다. 말 그대로 ‘게릴라 진료’답게 계획성 없이 아침에 갔던 그 마을 집을 가가호호 방문해 아픈 사람에게 침을 놓아주고 약을 준다. 그러다 보면 금세 마을 공터에 터를 잡고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돈 없이 태어나 병원 문턱에도 못 가본 사람들이기에 의사가 찾아와 이렇게 정성을 들이는 것에 마을 사람들도 감동한다. 다음날 또 그 마을을 다시 찾아 게릴라 진료를 한다. 몰려드는 사람들. 이것이야 말로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나누는 진정한 봉사가 아닐까. 침 대신 사진기를 든 내게는 사진으로 그들의 전통문화를 알아가는 감동의 마음 나누기다.

사진가 최광호 | 1956년 강릉 출생. 고교시절 우연히 시작한 사진에 빠져 거의 모든 시간을 사진과 함께 해 온 사진가. “사진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나는 사진이다”로 답하는 여전히 뜨거운, 청춘. 우연한 기회에 스리랑카, 몽골, 티베트, 우즈베키스탄 등 수십 차례에 걸친 <콤스타> 의료봉사에 동행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숨 쉬며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풀어가고 있다.

콤스타

콤스타(KOMSTA,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는 우리 한의학으로 의료봉사를 하는 단체다. 1993년 네팔을 시작으로 매년 5~6차례 진행되어 왔다. 현재까지 17년간 27개국으로 100여회에 가까운 지속적인 의료봉사로 침술과 침술교율 뿐 아니라 우리 한의학의 세계화에 든든한 한 몫을 해내고 있다. 스리랑카에는 2000년부터 총 여덟 차례 한방의료 봉사팀을 파견했고, 2만명이 넘는 현지 주민들을 치료하면서 한의학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스리랑카

실론티로 유명한 스리랑카(Sri Lanka)의 원래 이름은 실론(Ceylon)이었다. 18세기 말부터 영국의 식민지였던 실론은 1948년 2월, 영국 연방내의 자치령으로 독립한다. 하지만 독립의 기쁨도 잠시, 주요 권력을 다수 불교계인 신할리족(Sinhalese)이 독점하면서 소수 힌두계인 타밀족(Tamil)에 대한 차별정책이 시작된다. 갈등과 충돌이 이어지던 1972년, 타밀어로 된 원래의 국호 ‘실론’을 ‘신할리어’인 스리랑카로 바꾸면서 타밀족의 본격적인 분리독립운동이 시작된다.

타밀족의 분리독립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1983년. 타밀족 본거지인 자프나(Jaffna) 반도에서 몇 명의 정부군이 사망하면서 타밀족 대학살이 자행되면서 부터다. 다행히도 26년간의 내전은, 2009년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 등 타밀반군의 항복과 정부군의 무력진압으로 일단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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