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에 의한, 소방관을 위한, 파이어마커스
소방관에 의한, 소방관을 위한, 파이어마커스
  • 임효진 기자 | 양계탁 차장
  • 승인 2017.12.23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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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사이클링 브랜드 3

화재를 진압할 때 사용하고 남은 폐소방호스를 이용해 가방, 소품을 제작하는 파이어마커스FIREMARKERS. 2014년 4월에 시작해 많은 화제를 모은 대표적인 업사이클 브랜드다.

파이어마커스를 창업한 이규동 대표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소방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일선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늘 직업에 자부심을 지녔던 아버지를 존경하며 자신도 소방관을 꿈꿨다. 대학에서 전공을 소방방재학을 선택했고, 소방공무원 시험 준비도 했다. 하지만 시험 준비 과정에서 회의를 느꼈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던 중, 대학교 4학년 때 창업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알게 된 영국의 소방 업사이클 브랜드 ‘엘비스 앤 크레스Elvis & Kresse’가 떠올랐다. 소방 공무원이 돼서 아버지처럼 현역으로 일하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삶의 방향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한국의 ‘엘비스 앤 크레스’가 돼야겠다고 결심, 창업대학원에 진학해 내공을 쌓은 뒤 파이어마커스를 창업했다.

“소방관과 관련된 거로 창업하고 싶어서 알아보던 중 폐소방호스가 재활용되지 않고 버려진다는 걸 알았어요. 국내에서 사용하는 소방 호스는 두 겹으로 돼 있어서 질기고 튼튼해요. 겉감은 폴리에스터고, 안감은 고무 재질의 폴리우레탄으로 방수가 되죠. 하지만 수명이 6개월~1년밖에 안 돼서 자주 교체해야 한다더라고요. 이 소방 호스를 이용해 가방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착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소방 호스를 일일이 수거해야 했고, 직접 손으로 세척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됐다. 그 과정이 끝나면 재봉틀도 직접 잡았다. 하지만 이 같은 방법을 반복하는 건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단순히 재봉틀로 박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품질을 높이기 위해 가방을 만들어 줄 분을 찾았고, 일본에서 30년 넘게 가방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경력 단절로 쉬고 계신 분을 찾아서 부탁을 드렸어요. 그분도 소방 호스로 가방을 만들어본 적은 없어서 처음에 올이 풀리는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부분을 해결해서 가방 이외에 다른 제품을 만드는 것도 시도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캠핑 커뮤니티와 제휴해 캠핑 관련 제품도 샘플 작업에 들어갔다. 내년부터는 소방 호스로 만들어진 캠핑 관련 제품을 본격적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처음에 창업하고 제품을 만들었을 때 바로 팔릴 줄 알았는데 6개월간 한 개도 못 팔았어요. 그리고 6개월 만에 처음 제품을 팔았을 때 감개무량하더라고요. 첫 수익금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소방관분들이 현장에서 쓰는 장갑을 직접 산다는 사실을 알고 장갑을 몇 개 구매해서 필요한 소방관에게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관련 커뮤니티에 필요하신 분은 연락을 달라고 올렸는데, 그때부터 많은분들이 알아주셔서 지금까지 오게 된 거 같아요.”

폐소방호스를 이용해 가방을 만들고, 수익금 일부를 소방관을 위해 쓴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지금은 일하는 게 한결 수월해졌다. 서울시 25개구 소방서에서 대부분 폐소방 호스 수거 작업에 도움을 주고, 경기 소방서도 성남, 이천, 광주, 용인시 등에서 지원해 주고 있다.

덕분에 작년에는 1천개를 수거해 3천개 제품으로 만들었고, 모든 제품이 매진됐다. 내년에는 2000~3000개의 폐호스를 수거할 것으로 예상한다.

“저희가 맨투맨 티셔츠나 에코백도 제작했지만 브랜드의 정체성은 예전에도 소방관이었고 앞으로도 소방관이에요. 화재 현장에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늦게 나오는 소방관의 스토리를 담고 싶어서 제품에도 FILO, First in Last out 로고를 넣었어요. 저희 브랜드를 많은 분들이 찾아주지만 여전히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내년에는 더 나은 품질의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고, 소방관을 위한 커뮤니티 채널을 개설하는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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