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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크라우너 양희종 · AT 완주 이하늘 인터뷰길 위의 인생, 장거리 하이커 부부
  • 임효진 기자 | 양계탁 차장 Ⅰ사진제공 이하늘, 양희종
  • 승인 2017.11.18 06:59
  • 호수 151
  • 댓글 0

인생의 의미를 잃었던 그는 떠날 때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인생의 모든 깨달음을 얻고 더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삶을 마치거나, 반대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역시 삶이란 의미가 없는 거’라고 생각하며 삶을 마치거나.

비관적인 생각으로 마지막 희망을 찾아 떠났던 길이었지만, 길은 놀랍게도 자기 삶도 구하고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책임지는 결혼을 선택하도록 이끌었다. PCT(Pacific Crest Trail), CDT(Continental Divide Trail), AT(Appalachian Trail)로 이어지는 미국 장거리 3대 트레일을 모두 마친 양희종 씨의 곁엔 아내인 이하늘 씨가 서 있었다.

프로필
양희종 (Spontaneous)
2008 오지탐사대 알래스카팀
2010 알래스카 ~ 유콘 자전거 여행 (1200km)
2015 PCT(Pacific Crest Trail, 4300km)
2015 미국 시애틀 ~ 멕시코 과달라하라 자전거 여행 (5500km)
2016 미국 CDT(Continental Divide Trail, 5000km)
2016 멕시코 과달라하라 ~ 과테말라 ~ 벨리즈 ~ 유카탄 반도 자전거 여행 (4500km)
2016 멕시코 최고봉 오리자바산 등정 (5700m)
2017 과테말라 산타마리아, 아카테낭고 화산 등정
2017 미국 AT 완주 (3500km)
2017 미국 장거리 트레일 트리플 크라운 달성
저서 <4300km 175일간 미국 PCT를 걷다>

이하늘 (Sky)
2010 한국청소년 오지탐사대 중국 깡션카팀
2011 4대강 자전거길 완주
2012 제주도 자전거 일주
2014 오지탐사대 OB 회장단
2014 제주도 자전거 일주
2016 미국 CDT 와이오밍~몬타나 구간 하이킹
2016 멕시코 자전거 여행 (4500km)
2016 멕시코 최고봉 오리사바산 등정 (5700m)
2017 과테말라 산타마리아, 아카테낭고 화산 등정
2017 미국 AT 완주 (3500km)

트리플 크라우너가 된 걸 축하드려요.
양희종(이하 양)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해야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건 아니었고요. PCT를 갔는데 CDT라는 멋진 길을 알게 돼 완주했고, 두 개 길을 걷고 나니 제 자신도 트리플 크라운 욕심이 나고, 주변의 기대도 있어 AT를 시작했어요.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타이틀보다는 묵묵히 산길을 걸으며 자신과 싸움을 이겨내고 값진 경험을 했다는 게 의미가 있다고 봐요.

희종씨는 처음에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에서 PCT로 도망치듯이 갔다고요.
저는 목표지향적인 사람이에요. 남들이 아무리 좋은 평가를 해도 저 스스로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극도의 스트레스로 자살 생각도 했어요. 그런 상태에서 도망치듯이 PCT로 무작정 갔어요.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는데, 길을 걸으며 저를 많이 놓아줬어요. 관대해졌고 편안해졌어요.

PCT를 마치고 CDT를 걸으며 결혼을 하셨어요.
하늘 양과 한국오지탐사대 선후배 출신으로 7~8년간 의남매처럼 가까이 지냈어요. PCT를 마치고 한국에 잠시 들어왔을 때 하늘 양을 만났는데 제 마음에 확신이 생겼어요. 그녀에게 호감이 있었는데, PCT를 걸으며 인연과 결혼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게 영향을 미쳤어요. 그 전에는 사랑이나 결혼을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했는데 길을 걸으며 조금 더 간결하고 명확해진 거 같아요.

어렸을 때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순수하게 그 마음을 보이곤 했는데 머리가 커가며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혹은 실패확률을 줄이기 위해 마음을 숨겼던 게 조금은 후회되더라고요. 더 후회할 일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 가장 생각나고 보고 싶은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가장 마음에 들어오던 사람이 지금의 아내 하늘이어서 용기를 내서 고백했어요. 차여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았고 만약 고백하지 않으면 죽기 전에 후회 할 것 같다 생각했죠. 한편으론 욕심인 줄 알지만, 먼 길을 걷는 저를 누군가 지켜봐 주고 지지해주며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하늘(이하 이) 대학생 때부터 남편과 또 다른 오빠까지 세 명이 자주 만났어요. 남편이 고백했을 때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어요. 3일 뒤에 CDT로 떠날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남편은 매우 진지했고, 저도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봤어요. 지난 7~8년간 저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 오빠들을 만났어요. 제가 왜 그랬을까 다시 생각해보니 오빠들을 만나는 게 제 삶에 활력과 영감을 줬고, 많이 의지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이 사람과 함께해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양희종 씨는 고백한 후 3일 후에 예정대로 CDT로 떠났는데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헤어져 있다 보니 더 애틋했어요. 저는 오빠가 떠난 날부터 매일 손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를 보니 제가 그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알겠더라고요. 위험한 구간에 간다고 할 때 애가 탔고, 연락이 닿지 않을 땐 마음을 졸였죠. 그러면서 점점 남편을 향한 마음이 무르익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CDT로 떠나고 3개월 뒤 하늘 양이 여름휴가 기간에 맞춰 저를 만나러 왔어요. 그동안 그녀가 정말 보고 싶었고, 다시 만나니 떨어지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결혼하자고 프러포즈를 했고 우리는 마운트 휘트니에 올라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어요. CDT 걷는 것보다 그녀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죠. CDT를 그만두고 한국에 돌아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고민됐어요. 직장 생활은 비교적 만족스러웠고, 50-60대쯤 떠나야겠다라고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가든 그가 오든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 거죠. 처음에는 서로 삶의 목표가 달라 고민했지만 제 개인의 목표보다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 한 편에 미뤄두었던 세계여행을 한다면 두 사람이 함께 할 수도 있고 저와 남편 모두의 꿈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되더라고요. 그래서 직장을 정리하고 배낭을 챙겨서 CDT로 갔어요. 후회하지 않아요. 지금 생각해봐도 잘한 선택이었어요.

장거리 트레일에서는 트레일 네임을 따로 쓴다면서요. 두 분의 트레일 네임은요?
즉흥적인 이라는 뜻의 스폰테니어스spontaneous요.
저는 하늘, 스카이sky 요.

트레일을 걸으며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요?
콜라요.
저는 피넛버터와 초콜릿이요.

하늘 씨는 AT가 첫 장거리 트레일이었는데 어땠어요?
CDT는 일부 구간만 걷는 섹션 하이킹을 했고, AT가 비로소 저에게 첫 장거리 하이킹이어서 더 신났던 거 같아요. 씩씩하게 잘 걷고, 걸으면서 많은 생각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봐야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그런데 CDT보다 길도 너무 가파르고 험한 데다 비도 자주 와서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많았어요. 목표는 뒷전이고 하루에 얼마나 걸었는지 평가하는 날이 잦았어요.

오늘 행복하기 위해 저는 세계 여행을 선택했고,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갔는데 ‘세상은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있지는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와중에 초콜릿 하나, 맥주 한 캔, 햄버거 하나에 힘든 마음은 풀리고 행복을 느끼면서 진정한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라 일상에서 소소하게 느끼는 거라는 깨달음도 얻었어요.

희종 씨에게는 AT가 마지막 트레일이었는데, PCT·CDT와 비교해 어땠나요.
PCT는 김희남과 함께 갔어요. 페이스가 달랐고 서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따로 가는 방법을 택했어요. 하지만 지나고 보니 제가 좀 이기적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CDT 때는 외국인 친구들과 걸으며, 상대방의 페이스에 맞췄어요. 장거리 트레일 문화가 다들 익숙한 친구들이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몰라요. 어쨌든 제가 좀 달라졌다는 걸 느꼈어요.

AT는 아내와 함께한다는 점은 좋았지만 힘들었던 부분도 있었어요. PCT, CDT를 걸을 때는 완주가 목표가 아니었어요. 언제든지 걷고 싶지 않을 때는 그만둘 거라는 마음으로 걸었어요. 하지만 AT는 좀 달랐죠.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목표가 있다 보니 마음에 부담이 있었어요. 떠밀려온 느낌이었죠. 주변 사람들의 기대, 시선, 또 저 스스로 세운 목표가 절 떠밀었다고나 할까요. 그런 데다 AT 코스가 광활한 풍경이 트이는 조망보다는 계속해서 습한 숲길을 오르락내리락 걸어야 해서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만큼 기대했던 이국적 풍경도 적었고 걸었던 시간 중 반 이상은 비가 와서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했고요.

PCT, CDT보다 AT 길이 단조롭다 보니 남편이 종종 시무룩해 하는 거 같아 마음이 쓰였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제가 ‘지금이라도 PCT를 갈까?’라고 물었는데, 남편이 망설임없이 ‘그럴까?’라고 되묻더라고요. 저는 ‘트리플 크라운을 목표로 밀어붙이는 게 맞을까 아니면 목표보다는 지금 행복한 게 가장 중요한 거니까 행복하지 않다면 언제든지 그만둬도 돼’라고 이야기하는 게 맞을까 갈등했어요.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남편이 스스로 선택하는 게 중요해 믿고 기다렸어요. 남편은 끝까지 걸어보고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그때 판단하고 싶다며 계속 걷기로 했죠.

AT가 신혼이었던 셈인데 남편이 시무룩한 게 서운하지는 않았어요? 남편만 믿고 그곳으로 간 건데 말이에요.
서운하기보다는 걱정이 됐어요. 평소 걸으면서 워낙 많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남편이 어떤 관점에서 힘들어하는지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더 안타깝고 걱정이 됐어요.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AT를 걷는 건데, ‘AT를 걷는 게 행복하지 않다면 계속 걷는 게 맞을까,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만약 그렇지 않다면 계속 이 길을 걸으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완주하고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AT는 또 한번 저 자신의 틀을 깰 수 있던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PCT, CDT를 걸으면서 많이 깨우쳤다고 생각했어요. 욕심은 많이 내려놨고 인내심은 더 커졌다고 느꼈죠. 사실 앞으로 더 깨우칠 게 있겠느냐는 마음도 있었는데, 제 생각이 틀렸어요. 아직도 제가 모르는 세상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모르던 저 자신의 모습도 발견했죠. 저는 여전히 어느 부분에서 욕심을 내고 있더라고요.

두 분이 AT를 걸으며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를 자처했는데요.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남에게 도움 주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동계패럴림픽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캐나다 배낭여행 중 블로그 기자 자격으로 패럴림픽 취재를 하며 인연이 됐고 장애인 아이스하키팀 국가대표 주장 한민수 선수 등과 친분을 쌓으며, 계속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고 있었거든요.

AT를 걷기 전 패럴림픽 조직위와 장애인 체육회 쪽에 패럴림픽을 홍보하고 싶다고 문의했어요. 하지만 상업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어 직접적으로 민간을 후원하는 건 어렵다더라고요. 그래서 개인 사비를 들여 올림픽 & 패럴림픽 마스코트인 수호, 반다비 인형과 스티커, 핀 등을 구매하여 트레일에서 만나는 전세계 하이커들에게 선물했어요.

장거리 트레일에서는 배낭의 무게를 줄이는 게 관건인데, 필수품과는 거리가 먼 인형을 배낭에 꽂고 다니자 사람들이 궁금해하며 먼저 물어왔어요. 그럼 저는 겨울 스포츠를 좋아하느냐고 운을 띄운 뒤 한국에서 곧 아주 큰 이벤트가 열린다며 평창올림픽을 소개했어요. 장거리 하이커들은 음료수를 정말 좋아하는데, 마을에서 콜라를 사서 ‘see you on the trail, see you in PyeongChang 2018’이라는 문구를 붙여서 선물로 주고요. 나중에 강원도 장애인 체육회와 강원도청에서 마스코트 핀과 부채를 보내줘서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어요. 이번 이벤트가 인연이 돼서 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도 나서게 됐어요.

텐트에 직접 그린 여정

오랜만에 도시로 돌아와 낯설게 느껴지겠어요.
AT를 마치고 미국 보스톤 시티로 갔는데, 고층 빌딩들 사이에서 비로소 안락함을 느꼈어요. 그 빌딩이 싫어서 떠나왔는데 말이죠.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힐링하고, 편안함을 느낀다고 하지만 사실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공간이라는 이유로 편안함을 느꼈던 걸지도 몰라요. 저도 그동안은 제가 자연 속에서 편안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많은 긴장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야생, 자연, 사람에게서 나와 아내를 지키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덩치도 크게 키우고, 수염과 머리를 기르면서 강하게 보이려고 했던 거 같아요. 도시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져 얼마 전 수염을 잘랐어요.

물론 자연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죠. 뻥 뚫린 시원한 광경과 다른 것 고민하지 않고 오로지 먹고 잘 것만 생각하면 되는 점도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이죠.

트레일에 들어가면 미디어 기기나 스마트폰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 처음에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사색을 더 깊게 할 수 있고 생각의 나래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가도 우리는 종종 스마트폰이 울리는 소리에 생각이 끊기곤 하잖아요. 그곳은 그런 게 없으니까 계속 생각을 이어나갈 수 있어요. 생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도시에는 거울이 정말 많다는 걸 새삼 느껴요. 내 모습이 비치는 유리와 거울도 많고,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거울처럼 느껴져요. 트레일에서는 옷도 한 벌만 입고 다니고 손거울도 없어서 가끔 선글라스에 얼굴을 비춰보는 게 다였는데, 도시로 돌아오니 머리는 어떻게 할지 옷은 어떤 걸 입을지 고민돼요.

당분간은 지붕이 있는 집에서 생활하겠네요.
한국에 머물면서 곳곳을 여행할 예정이에요. 미국 트레일을 걸을 때 외국인들이 한국에는 어떤 길이 있느냐, 어떤 아웃도어를 즐기느냐고 묻는데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저희도 한국의 장거리 트레일 문화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이번에 백두대간 등 다양한 산길을 가볼 예정이에요. 내년 봄에는 다시 PCT로 갑니다.

다시 PCT로 떠난다고요?
오빠한테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PCT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말 가보고 싶었어요.

PCT를 언젠간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요. 아내가 PCT를 가보고 싶다고 하길래 혼자 가는 게 좋을지 같이 가는 게 좋을지 생각하다 같이 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걸 볼 수도 있고, 다른 창작 활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봐요. 또 PCT를 아내랑 같이 걷는 건 처음이니까 저에겐 더 의미가 있어요.

저희는 장거리 하이킹을 목적으로 여행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세계 여행이 목적이죠. 앞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 정말 많아요. 계획이요? PCT 마치고 그때 생각해 보려고요. (웃음)

임효진 기자  hyo@outdo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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