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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오의 트레일러닝GO. DO. BE
  • 임효진 기자 | 양계탁 차장
  • 승인 2017.10.20 06:59
  • 호수 150
  • 댓글 1

지난 9월 3일부터 9일까지 알프스에서 열린 2017 고어텍스 트랜스 알파인 런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김비오 선수. 그는 서울시청 트라이애슬론팀, 통영 ITU 트라이애슬론월드컵을 거쳐 세계 아이언맨 협회에 프로로 등록된 선수다. 그가 남다른 이유는 직장을 다니면서 프로 선수로 활약한다는 점이다. 모두 그를 보고 가능하느냐고 묻는다. 그에게 가능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서 산다.

고어텍스 트랜스 알파인 런은 2인으로 짝을 이뤄 7일간 알프스를 달리는 트레일러닝 대회다. 지난 9월 3일부터 9일까지 진행됐으며, 독일 알 고이 지역을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레흐암 아르베르크와 세인트 안톤, 란데크, 그리고 스위스 잠나운, 슈쿠올을 통해 알프스를 횡단하고 이탈리아에서 코스가 마무리됐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즐거웠고 좋은 추억이 됐어요. 특히 많은 걸 보고 느끼는 시간이었어요. 알프스가 주민들에게 엄청난 존재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죠.”
자연과 어울려 사는 주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알프스를 기반으로 소를 기르고, 우유를 짜고, 물을 먹고, 집을 짓고 살았다. 그들은 자연을 사랑했고, 알프스를 존중하는 듯 보였다. 대회 주최 측도 마찬가지였다.

“700여명이 7일 동안 알프스 산을 뛰는 행사였지만, 놀랍게도 쓰레기 하나 버려진 걸 보지 못했어요. 주최 측의 매우 엄격한 규정 때문이었죠.
대회 출발을 앞두고 모든 선수의 가방을 검사해서 모든 간식에 배번 스티커를 부착했어요. 자신이 가져간 것에 대한 책임감을 주기 위해서요. 만일 하나라도 간식 봉지나 쓰레기를 버리면 그 선수는 실격이에요. 실수라고 해도 용납이 안돼요.
앞에 가던 선수 가방에서 에너지젤 포장지가 바닥으로 떨어진 걸 본 적이 있었어요. 근데 뒤이어 가던 선수가 떨어진 포장지를 주워서 자기 배낭에 넣더라고요.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요. 그 뒤로도 이런 감동적인 장면을 여러 번 볼 수 있었어요.
또 베이스캠프에 물과 플라스틱 컵이 비치돼 있었지만, 대부분 자신이 가져온 컵을 사용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남들이 쓰던 플라스틱 컵을 같이 썼어요.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이죠.”

대회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국내는 산악 지형 특성 상 아직은 트레일러닝 폴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에 반해 유럽은 트레일러닝에서 폴을 이용하는 게 보편화돼 있었다.

“알프스를 뛰어본 경험이 있는 안병식 선수에게 물어봤더니 폴을 꼭 가져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레키코리아의 후원을 받아 레키 사의 트레일러닝 폴을 가져갔어요. 가져간 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실제로 트레일러닝 폴은 선수 대부분이 지참했을 만큼 필수 장비였고, 매우 유용하게 쓰였어요. 다리 하나가 더 생긴 기분이었죠. 팔로 힘을 분산하니까 다리에 힘이 덜 들어가더라고요. 불안정한 지형에서는 지지를 해주고 내리막에서는 안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제가 사용한 레키 트레일러닝 폴은 카본 재질로 가볍고 3단으로 접을 수 있어, 사용하지 않을 때는 팩에 넣거나 손에 들고 뛰기도 편했어요. 손목 스트랩은 장갑 형태로 탈착이 가능해 편리했고요. 대회에 함께 참가한 친구 테일러가 “이 폴이 없었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하더라고요.”

그는 미국에서 먼저 육상을 시작했다. 열다섯 살 때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백인들만 사는 동네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방법으로 미국 사람들이 가장 선망하는 스포츠인 육상을 택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 실력이 가장 형편없었어요. 그런데 실력이 뛰어난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다보니 어느새 상위권에 진입해 있더라고요.” 별일 아닌 듯 얘기하지만, 이방인이자 꼴지 실력을 가진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부단히 노력했을 터.

육상 선수로 자리를 잡자 뭉친 근육을 풀기 위해 수영도 시작했다. 수영장에서 우연히 코치 눈에 띄었고, 바로 훈련이 시작됐다. 그 무렵 뚜르드프랑스의 영웅, 랜스 암스트롱을 동경하며 자전거도 열심히 탔다. 트라이애슬론 선수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운동은 할수록 욕심이 생겼다. 깨있는 시간을 온전히 운동에 몰입하고, 체력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한계치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취미 생활이 아닌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마침 서울시청에서 트라이애슬론 선수 제의가 왔다. 2주 만에 한국으로 날아갔다.

1년 동안 서울시청 소속 선수로 활동하며, 하루 5시간 이상 일주일에 35시간씩 강도 높은 트라이애슬론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제재가 많은 실업팀의 문화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인생의 기로에서 다시 고민에 빠졌다.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사는 것보다는 삶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가 더 중요했다. 미국에서 성실히 대학을 마쳤고, 안정적인 삶의 토대를 만들어갔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지만, 직장과 차와 집이 있었다. 그러나 안주할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하는 책임 있는 삶에는 군 복무도 포함돼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남자는 군대에 가야 한다’고 이야기해왔던 터라 한국 군대에 꼭 가고 싶었다. 미국 영주권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군대는 선택이었고, 카투사에 입대하는 길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정당하고 싶었고, 솔직하고 싶었다. 그의 인생철학처럼 BE MAN(남자가 되라)을 실현하는 방법이었다. 다행히 군대는 적성에 잘 맞았다. 한식이 좋았고, 한국 문화가 좋았다. 특히나 강원도 인제군 현리,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그곳이 정말 좋았다.

제대한 후 선수 생활과 직장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할리데이비슨 코리아를 시작으로 트렉바이시클코리아를 거쳐 지금은 호주 애슬래틱 브랜드 2XU에서 근무하며, 전국체전, 트레일러닝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그 사이 어여쁜 딸도 얻었다.

“다들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요. 힘들죠.(웃음) 하지만 이런 길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운동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운동만 하고 은퇴하면 아무 것도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한국 사회 관행을 바꾸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세 살 된 딸아이가 지켜보고 있어요. 딸이 제 나이가 됐을 땐 저처럼 사는 삶이 평범한, 자연스러운 삶이었으면 좋겠어요.”

임효진 기자  hyo@outdo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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