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고어텍스 트랜스알파인런 2017 체험기
제13회 고어텍스 트랜스알파인런 2017 체험기
  • 김비오 기자 | 사진제공 레스 모랄레스
  • 승인 2017.09.1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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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R COUNTRIES, TWO RUNNERS, ONE WEEK - ONE DREAM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이탈리아
총거리: 263.8km 총상승고도: 15,463m

제13회 고어텍스 트랜스알파인런 2017은 독일 알고이(Fischen im Allgäu, Bavaria)에서 시작해 알프스를 통해 4개국을 거쳐 이탈리아 슐덴(Sulden am Ortler, South Tyrol)에 도착하는 대회이다. 263.8km, 7개의 스테이지를 7일 동안 통과해야 한다. 지난 9월 3일부터 9일까지 열렸다.

스테이지 1

안전 규정상 2명이 파트너로 달려야 해서 나는 미국에서 가장 친한 친구 테일러와 함께 팀을 이뤘고, 대학교 룸메이트였던 레스 모랄레스도 사진작가로 대회에 참여해 멋진 사진을 찍어줬다. 팀명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이라는 뜻의 ‘WORTH IT’이었다. 한국에서 다른 팀도 참여했는데 특전사 출신인 이진봉 선수와 트레일 러닝 대회 경험이 있는 양지훈 선수다. 이번 대회는 고어코리아의 지원으로 참여했고 레키 코리아에서 폴을 지원해줬다.

스테이지 1
스테이지 1

스테이지 1: FISCHEN IM ALLGÄU~LECH AM ARLBERG
거리: 42.7km, 상승고도: 2101m

비가 쏟아졌지만 첫날이어서 그런지 신나기도 하고 겁도 났다. 평지로 시작했지만 얼마 안 가 정말 어마어마한 알프스의 장관이 펼쳐졌다. 도저히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절벽에도 길은 있었다. 코스가 끝날 것 같았지만 계속됐고 확실히 왜 이 대회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트레일러닝 대회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스테이지 1을 무사히 완주한 후 테일러와 나는 정말 힘들었지만 완주했다는 사실에 기쁨을 나눴다. 뛰어서 독일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온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스테이지 2: LECH~ST. ANTON AM ARLBERG
거리: 24.2km, 상승고도: 1987m

스테이지 1을 끝내고 자기 관리가 이 대회를 완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그냥 누워서 잠이나 잤으면 좋았겠지만, 옷을 직접 빨아야했고,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마사지를 부지런히 해야 했다. 내일 다시 뛰기 위해서.

스테이지 2는 거의 처음부터 산으로 올라갔고 우리는 영화에서나 봤던 눈 쌓인 알프스 산에 다다랐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대단한 풍경이었지만 코스는 녹록치 않았다. 다운힐이 결코 쉽지 않았다.

다행히 지원받은 레키 폴을 이용해서 다리에 실리는 무게를 분산할 수 있었다. 폴을 들고 뛰는 대회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나는 크로스컨트리 경력이 있어서 인지 사용하는 게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다. 반대로 없었으면 과연 완주를 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대회에 참가한 약 80%의 사람들이 트레일러닝 폴을 이용했고, 그 중 대다수가 레키 폴을 사용하고 있었다.

스테이지 2는 거리는 짧았지만 가파른 다운힐에 테일러가 무릎 통증을 호소했고, 다음 스테이지를 뛸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코스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상승고도가 높아 무릎에 무리가 간 것이다.

스테이지 3: ST. ANTON AM ARLBERG~LANDECK
거리: 39.9km, 상승고도: 2494m

시작부터 업힐이었고 그렇게 한참을 올랐다. 테일러는 아픈 무릎을 이끌고 참여했지만 더 이상 뛰기 힘들어 보였다. 나는 그에게 “네가 이번 스테이지를 완주한다고 결정하면 시간은 상관없어, 끝까지 같이 뛸 거야. 하지만 부상이 악화될 것 같고 완주하기 힘들 것 같다면 결정을 내려. 이번 스테이지를 쉬고 다시 합류해도 되잖아?”라고 말했다. 테일러는 어려운 결정을 했고 스테이지를 포기하고 회복 후 합류하기로 했다.

이날 한국팀도 부상을 당해 보급소에서 컷오프 시간을 맞추지 못해 실격 처리됐다. 하지만 스테이지 하나를 쉬고 회복해서 남은 스테이지는 완주했다. 나는 팀에서 개인 부문으로 자동 전환됐다. 혼자라서 외로울 거라 생각했지만 전환되자마자 일본팀과 친구가 됐다. 전날 비가 많이 와서 다운힐이 미끄러운 진흙범벅이 되어 모든 러너들이 계속 넘어지며 내려왔고 나도 한번 넘어졌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첫 번째 보급소에서는 고어텍스 중국팀을 만나 합류해 긴 스테이지를 완주했다. 이대회의 매력이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뛰며 끈끈한 정을 나누게 된다.

스테이지 4: LANDECK~SAMNAUN
거리: 46.5km, 상승고도: 2930m

아마 스테이지 3은 가장 힘들었던 스테이지였을 거다. 대회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2700m가 더 높았고 올라갈수록 점점 더 추워졌고 바람이 거세졌다. 바닥에는 눈과 얼음이 덮여있어 뛰기 힘들었다. 나는 이날은 ‘아이스버그’ 회사 직원으로 구성된 팀에 합류했다. 핀란드에서 온 헨릭과 스웨덴에서 온 피터였고, 그들과 함께 다음 스테이지 3을 함께 뛰며 서로를 챙겨주다 보니 어느새 형제처럼 끈끈해졌다. 그렇게 오스트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왔다.

스테이지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지만 정말 너무 힘들어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테일러와 레스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눈물이 날 정도로 날 웃겨줬고 다시 다음 스테이지를 뛸 힘을 얻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붓고 특히 얼굴이 퉁퉁 부었다. 그리고 전 스테이지 다운힐에서 무리가 갔는지 다리도 성하지 않았다.

스테이지 2

스테이지 5: SAMNAUN~SCUOLLANDECK~SAMNAUN
거리: 39km, 상승고도: 2227m

스테이지 5도 쉽지 않았다. 다운힐이 무시무시해서 올라가는 게 오히려 쉽게 느껴졌다. 마지막 부문 10km 다운힐이 특히 고통스러웠다. 다리는 점점 더 통증이 심해졌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 곁에 있어 다행이었다. 아이스버그 팀과 나는 모두 딸을 둔 아빠라는 공통점이 있었고, 보고 싶은 딸들 이야기를 나누며 스테이지를 마칠 수 있었다.

스테이지 6

스테이지 6: SCUOL~PRAD AM STILFSERJOCH
거리: 44.1km, 상승고도: 1692m

스테이지 6은 아마 이번 대회에서 가장 멋진 스테이지였을 거다.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갔으며 테일러가 합류했다. 넘어가는 길은 산의 절벽을 깎아 만든 길이었다. 날씨가 따뜻해서 기분은 좋았지만 다리는 여전히 상태가 좋지 못했다. 그래도 다시 테일러와 함께 뛸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아이스버그 팀과도 함께 뛰면서 즐거움은 배가됐다.

스테이지 5

스테이지 7: PRAD AM STILFSERJOCH~SULDEN AM ORTLER
거리: 31km, 상승고도: 2600m

드디어 마지막 스테이지다. 마지막 스테이지는 정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다리 상태는 점점 악화됐고 스테이지 거리는 짧았지만 상승고도가 높았다. 테일러가 페이싱을 해주고 말동무가 돼주어 완주할 수 있었다.

절벽을 지날 땐 쇠줄만 의지한 채 이동해야 했는데 순간 쇠줄을 놓쳐 절벽으로 떨어질 뻔했다. 뒤에서 나를 보던 테일러가 “너 방금 죽을 뻔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다운힐을 내려오고 마지막으로 피니시를 향할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한국을 대표해 출전하면서 전 스테이지를 의지 하나로 완주했다. 피니시에 들어가며 태극기를 휘날렸고 끝나자마자 테일러와 레스와 함께 맥주 한 병을 원샷했다. 그날 밤 디너파티와 시상식 후 스테이지 7 완주자들에게 셔츠를 나누어 주었다. 완주자만 받을 수 있는 셔츠로 그 어떤 메달보다 자랑스러웠다.

이번 대회에서 한계를 시험할 수 있었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고 절친들의 도움으로 완주할 수 있었다.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도전이었고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또한 코스에 쓰레기 하나 버리지 않고 대회를 마친 유럽 사람들의 의식에 감탄했다. 이번 대회는 나에게 큰 자신감을 선물했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과 우정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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