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을 깨우는 홈 베이킹
오감을 깨우는 홈 베이킹
  • 임효진 기자 | 양계탁 팀장
  • 승인 2017.09.17 06:5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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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발효빵 클래스 ‘오븐스프링스튜디오’

프랑스어로 된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골목을 점령하면서 동네 빵집들은 다 망할 거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여봐란듯이 실력과 개성이 있는 이색 빵집들이 하나 둘 생겨났고, 이름난 빵집 앞에 여름이나 겨울이나 길게 줄을 선 사람을 보는 건 이제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그 중심에 있는 게 천연 발효빵. 빵 반죽이 살아있는 것처럼 뽀글거리고 쉬쉬 소리를 내기도 하고 탁탁 타는 듯한 소리도 난다. 화학첨가물이 들어있지 않은 건강한 빵이다.

천연 발효빵 만들기는 까다로워서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사람들만 만드는 건 줄 알았는데,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일산의 어느 한적한 골목, 홈베이킹을 배우기 위해 오븐스프링스튜디오를 찾았다.

풀리시 바게트 & 쇼콜라 깜빠뉴
치아바타, 베이글, 바게트, 샤워도우, 깜빠뉴를 좋아한다. 바게트는 대중적이지만 다른 빵들은 잘 만드는 빵집을 찾기도 어렵고 찾았다 해도 멀리 있을 뿐만 아니라 가격도 비싸다. 천연 발효종을 이용해 만드는 빵집들은 소규모인 경우가 많아 일요일은 문을 안 열거나 퇴근하고 가면 문을 닫는 경우도 다반사.

인터넷에 보니 천연발효종을 이용해 빵을 만드는 걸 집에서도 할 수 있다고 한다. 포스팅을 열심히 봤지만 도무지 찰떡처럼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 무렵 친구가 추천해 준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봤다. 시골에 혼자 사는 주인공이 한 여름, 화덕에 빵을 구웠다.

‘그래, 나도 빵을 구워봐야겠다.’
책을 사서 봤다. 포스팅으로 볼 때보다 한결 낫다. 자신감이 생겼다. 책에 나온 대로 치아바타를 만들어봤다. 계량 도구를 사고, 하루하고도 반나절동안 반죽을 보고 있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성형하고 드디어 오븐을 넣었다. 내 생애 직접 만든 첫 빵, 포슬포슬하고 쫀득쫀득한 치아바타를 기대했는데 벽돌이 나왔다. 가족들은 ‘그래도 빵 비슷하다’며 몇 개 먹어줬지만 다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쏙 들어갔다. ‘역시 빵은 빵집에서 사 먹어야 제 맛이지’라고 합리화했다. 천연발효빵 만들기 책은 책장 가장 위쪽 손이 잘 안 닿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때 이후로 깔끔하게 접었던 홈 베이커의 꿈을 다시 꺼내게 된 건 습하고 뜨거운 지난여름 동안 의도치 않게 식탁과 싱크대 위에서 발효되어 가던 음식물들을 본 뒤였다. 그 음식들은 먹을 수 없게 됐지만 뽀글거리는 효모들이 ‘다시 시작해야지?’라고 인사하는 것 같았다.

일산의 홈 베이킹 스튜디오 ‘오븐스프링’을 찾았다. 오븐스프링은 천연 발효종을 이용해 빵을 만드는 클래스를 진행한다. 오늘 만들 빵은 풀리시 바게트와 쇼콜라 깜빠뉴. 천연발효 빵은 발효종과 물, 밀가루, 소금이 주재료다. 여기에 쇼콜라 깜빠뉴는 약간의 설탕과 코코아 가루, 초콜릿이 들어간다.

효모가 살아있는 빵
가장 기본이 되는 건포도 액종을 만드는 것부터 해야 한다. 유리병을 살균하고 건포도 50g, 정수한 물(27℃) 100g, 설탕 5g을 모두 넣고 5일 동안 실온에 두면 된다. 이때 중간 중간 병을 흔들어서 섞어주고, 하루에 한 두 번씩 뚜껑을 열어서 기포를 빼줘야 한다. 5일이 지나면 모든 건포도가 떠오르고 유리병 바닥에는 하얀 침전물이 가라앉는다. 체에 건포도를 걸러내고 액체만 따라낸다. 이제 1단계가 마무리됐다. 이 액체에 밀가루를 넣고 실온에서 두 배 양의 반죽이 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 발효종이 두 배로 부풀면 일정량을 덜어낸 후 다시 발효종에 밀가루와 물을 1:1:1로 넣는다. 이 작업을 다섯 번 반복하면 드디어 천연발효종, 르방이 만들어진다.

다음은 본격적으로 빵을 반죽하는 단계이다. 르방, 천연발효종에 밀가루와 물과 소금을 넣고 기계를 이용해 반죽한다. 기계가 없을 때는 반복해서 접어주는 무반죽 공법을 하면 된다고 한다. 기계로 하는 것보다 탄력은 약간 떨어질 수 있지만, 맛의 차이는 크게 없다.

기계가 하는 모든 일이 끝나자 아기 엉덩이처럼 반질반질하고 뽀얀 반죽이 만들어졌다. 이 반죽을 꺼내 적당한 통에 넣고 1차 발효를 하는데 중간에 폴딩을 하여 반죽의 신장성을 높인다. 이 과정을 지켰다면 알맞게 부푼 반죽을 만날수 있게 된다.

이제 한 개의 빵을 만들기 적당한 양으로 나눠준 후 다시 모양을 잡아줬다. 기포는 빠져나가지 않고, 공기는 넣어주면서 적당한 힘으로 만져주어야 했다. 정신을 집중하고 대표의 손 모양을 열심히 따라해 봤지만 쉽지 않다. 이순주 대표는 아기를 다루듯이 힘을 빼고 부드럽게 만져보라고 했다. 빵 반죽을 신생아라고 생각했다. 부드럽게 살살, 빵 반죽과 대화하는 느낌으로 만져주자 제법 모양이 나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긴장했던 반죽이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이른바 ‘벤치타임’이다. 축구 선수가 벤치에서 쉬듯이 반죽들도 한 곳에 잘 정렬한 후 천을 덮어서 낮잠을 재웠다.

한 잠 잘 자고 일어나면 이제 꽃단장을 하고 오븐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모양을 만들어주는 2차 발효 과정을 거쳤다.

여기서 중요한 건 쿠프. 쿠프는 빵이 터지지 않게 칼집을 내주는 걸 말하는데, 일명 ‘베이커의 사인Sign’이라고도 불린다. 디저트와 다르게 데코레이션을 거의 할 수 없는 제빵 분야에서 제빵사가 빵에 자신만의 무늬를 새기는 작업이기도 하다.

바게트에 쿠프를 넣을 때는 규칙이 있다. 눈으로 빵을 세로로 3등분 하고 가운데 부분만 사선으로 칼집을 내주는 기술이 필요하다. 여기서 빵을 ‘뜯듯이’ 칼집을 넣는 게 아니라 한번에 ‘샥’ 베는 게 중요하다. 칼을 집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칼끝을 반죽에 대고 아래로 그었다. 그런데 ‘샥’이 안 되고, 뜯어지는 것 같은 느낌. 칼끝에 망설임이 있었나보다. 다음번에는 더 대범하게 ‘샥’ 하고 그었다. 이번엔 좀 낫다. 사선은 아니지만 뜯어지지는 않았다.

바게트와 다르게 깜빠뉴 쿠프는 더 자유롭다. 측면에도 넣고 사선으로도 넣고 빵을 자르지만 않으면 된다. 빵 반죽을 도화지 삼아 예술혼을 펼쳤다. 이제 오븐에 들어갈 차례. 여기까지 했으면 거의 다 된 거 같은데, 이순주 대표는 이제 50%했다고 말했다. 오븐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

해피해피 브레드
260도에서 약 20분 넘게 예열한 오븐에 반죽을 넣었다. 빵을 구울 때는 뜨거운 온도뿐만 아니라 스티머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한다. 가정용 오븐은 스티머 기능이 대부분 없으니 반죽을 넣기 전에 발연 팬 아래에 얼음을 하나 넣어주거나 물을 부어주면 스티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

빵이 구워지길 기다리면서 티타임을 가졌다. 이순주 강사는 천연발효빵은 유럽에서는 우리나라 밥처럼 먹는 주식이라며, 빵을 활용해서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요리법도 함께 알려줬다. 빵을 썰어서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피자치즈와 몇 가지 채소를 올려 오븐에서 살짝 구웠다. 마침 출출하던 참이라 그런지 고소한 빵 냄새를 맡으며 커피와 함께 간식을 먹는 시간이 배우는 과정 못지않게 즐거웠다. 홈 베이킹 클래스의 또 다른 매력이다.

타이머가 울리고 오븐에서 빵을 꺼냈다. 갓 구운 빵을 먹어본 적이 있나? 언제나 미지근하게 식거나 차가운 빵만 먹어봤는데, 뜨끈뜨끈한 빵이라니! 갓 구워진 빵을 앞에 두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비주얼은 말해 무엇 하랴. 환상적이었다. 이제 ‘바게트 송’을 들을 차례. 빵에 귀를 기울여보면 타닥타닥하고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장작 타는 소리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빵은 원래 식고 나서 썰어야지 단면이 깔끔하게 잘린다고 하는데, 궁금해서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다. 냉큼 썰어서 천천히 음미하며 한 입을 먹었다. 겉은 기분 좋게 바삭거리고 속은 부드럽고 쫄깃했다. 그 바삭거림과 쫄깃함의 조화가 좋아 멈추지 않고 먹었다. 아, 행복하다.

“다른 취미는 가족이 함께 공유하기 힘든 경우가 많죠. 하지만 베이킹은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고, 아이와 함께 만들 수도 있어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돼요. 또 요리는 많은 재료가 필요해 번잡하지만 빵은 물과 밀가루만 있으면 돼요. 단순하죠. 손으로 직접 주무르고 만지는 과정도 그 자체가 힐링이에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고 잡념은 사라지게 만듭니다.”

왜 힐링하는 영화에 베이킹이 종종 등장하는지 알 것 같다. 별 다른 도구나 큰 기술 없이도 무언가를 내 손으로 만들었다는 성취감이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들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거나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행복해진다. 베이킹, 행복해지는 열쇠 하나를 얻었다.

오븐스프링스튜디오
홈베이킹 클래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 1234-1
수강신청 : 카카오스토리 http://story.kakao.com/runcoo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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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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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벽호 2020-08-13 05:15:55
갓 구워낸 빵만큼이나 맛깔스런 글 잘 읽었습니다.

빵ㅋㅋㅋ 2017-09-17 20:39:21
아웃도어뉴스에 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