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산과 들은 봄나물 천국
지금 산과 들은 봄나물 천국
  • 글 사진·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4.2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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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중순이 지나자 온 산하가 봄 처녀의 품안에 들어 있습니다. 예년보다 일주일이나 빨리 당도한 봄 처녀의 잰걸음 덕분에 요즘 밥상이 풍족해졌습니다. 바로 들나물 때문입니다. 겨우내 비타민 부족에 시달렸던 몸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푸른 기운들입니다.    

요즘 바구니를 들고 이리저리 밭둑가를 돌아다니거나 나지막한 야산을 오르내립니다. 다양한 들나물들을 잘 손질해서 냉장고에 채워 두면 일년 내내 두고두고 풍요로운 봄 향기를 누릴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산골의 봄이 시작된 것이지요.

처음 산골 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는 아는 나물이 몇 종류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냉이, 달래, 쑥 정도이고 조리법도 고작 국을 끓여 먹거나 데쳐서 무쳐 먹는 정도였죠. 하지만 산골 생활 햇수가 늘어날수록 아는 나물들이 늘어나고 다양한 요리까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겨울을 이기고 나온 이른 봄철의 웬만한 풀(?)들은 어느 것을 먹어도 탈이 없습니다. 들나물들은 제각각 다른 고유의 맛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으로 무쳐 먹고, 데쳐서 무쳐 먹고, 튀겨 먹고, 또 나중에 먹으려고 데쳐서 냉동고 가득 얼리기도 합니다. 또 말려서 차로도 만들어 먹는 경지까지 이르렀으니 산골 아낙으로서 참으로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그래도 가장 좋은 요리법은 나물 고유의 맛을 건드리지 않고 최소한의 양념만 해서 생으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게 봄나물들을 즐기는 방법입니다. 살짝 데쳐 무쳐 먹는 방법도 소금간만 약간해서 들기름을 함께 버무려 먹으면 좋습니다.  

 

냉이
가장 널리 알려진 들나물이지요. 독특한 향이 좋아서 데쳐서 새콤달콤하게 무쳐 먹거나 된장을 풀어 국으로 먹기도 합니다. 한방에서는 위에 이롭고 설사를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간에도 아주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위가 안 좋은 제가 유난히 탐내는 나물입니다. 살짝 데쳐 만두속으로 만들기도 하고 라면 끓일 때 넣기도 합니다. 튀김옷을 입혀 튀겨 먹어도 향기로운 맛이 납니다.
 

쑥 또한 다들 아는 봄나물의 대표 선수이지요. 단군신화에도 나오는 쑥은 향도 좋고 몸에도 좋습니다. 초봄에 어린 순을 따서 그늘에 말려 두었다가 위에 탈이 나거나 위경련이 있을 때 차로 우려 마시면 아주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또 쑥 가루를 넣은 수제비는 별미입니다. 삶아서 냉동실에 보관하면 일년 내내 향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벼룩이자리
밭농사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잡초 중의 잡초입니다. 이른 봄에 뜯어서 비빔밥에 넣어 먹거나 된장국을 끓여 먹기도 하는데 구수한 맛이 일품입니다.
 
돌미나리
계곡이나 습지에 자라는 야생미나리입니다. 맛과 향이 좋아서 많은 사랑을 받는 나물이지요. 데쳐서 초장에 무쳐 먹기도 하고 생즙을 내서 먹기도 합니다
망초
나라를 망하게 한 풀이라는 뜻의 망초는 한 1년 밭농사를 안 하고 묵혀 두면 바로 망초밭이 될 정도로 번식력이 강합니다. 초봄 새순을 따서 소금간만 해서 먹으면 시금치와 비슷한 맛이 납니다. 씹는 식감은 시금치보다 더 뛰어난 초봄의 나물입니다. 먹을 수 있는 나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가 2년도 안 된답니다.
 
달래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러 가자는 노래가 있을 만큼 인기 있는 들나물입니다. 간장에 넣어 달래간장을 만들기도 하고, 새콤달콤하게 무침을 해먹기도 합니다. 달래는 알뿌리까지 캐서 먹는 나물로 간장을 달여서 절임으로 해두면 일년 내내 향과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돌나물
돈나물ㆍ돌나물ㆍ돋나물로 불리기도 합니다. 번식력이 좋아서 물 빠짐이 좋은 곳은 어디나 자라는 향이 좋은 나물이랍니다. 멸치 액젓으로 새콤달콤하게 무쳐 먹기도 합니다. 조금 크게 자란 돌나물은 물김치를 담가 먹기도 합니다
 
민들레
처음 산골에 와서 민들레를 먹는다는 걸 알고 놀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민들레는 뿌리째 캐서 생으로 무치거나 살짝 데쳐서 먹기도 합니다. 잘 말려서 차로 끓여 먹기도 하는데 쌉싸름한 맛과 구수한 맛이 납니다.
쇠뜨기
“이것도 먹는 거야?”하고 놀란 나물 중 하나입니다. 소가 뜯어 먹는 풀이란 이름답게 소가 아주 좋아하는 나물입니다. 데쳐서 1시간 정도 물에 우린 뒤에 기름에 볶아 먹으면 그 맛이 아스파라거스와 비슷합니다. 데친 쇠뜨기를 밥을 뜸들일 때 넣어 양념장에 비벼 먹어도 맛이 좋습니다. 그러나 한 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설사가 납니다.
 
원추리
참으로 예쁜 꽃입니다. 원추리나물은 맛이 달달하여 초고추장에 무쳐 먹으면 상큼한 맛과 식감이 뛰어납니다. ‘망우초(근심을 잊는 풀)’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큼 맛이 좋습니다. 데쳐서 1시간 정도 물에 우렸다가 먹어야 합니다.
씀바귀
맛이 쓰다고 해서 씀바귀란 이름이 붙었다지요. 봄철 입맛 없을 때 이 쓴맛 때문에 자주 먹는 나물입니다. 소금물에 반나절 정도 우려야 먹을 수 있을 만큼 쓴맛이 강합니다. 고추장에 새콤달콤하게 무치거나 김치 양념을 해서 두고두고 먹기도 합니다.
들나물 비빔밥
들나물 비빔밥은 이른 봄 부족한 비타민을 채울 수 있는 훌륭한 영양제이다. 산골에 사는 특권은 소쿠리 하나 들고 이리저리 집 주변을 돌아다니며 나물들을 뜯어다가 해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각종 들나물에 고추장과 들기름 한 스푼 넣고 여기에 봄 햇살까지 한 줌 넣으면 아주 간단하고 영양이 가득 담긴 비빔밥이 됩니다.

망초ㆍ벼룩이자리ㆍ꽃다지도 먹어 
“앗! 얘도 먹는 거였어요?”
작년 봄 처음으로 먹는 걸 알게 된 나물이 있습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풀이란 뜻의 망초입니다. 나물로 무쳐 먹으며 정말 맛있는 식감에 놀랍니다. 잡초라고 구박하던 풀을 채취하고 다듬고 하는 일이 신기했습니다. 더구나 망초는 뿌리에서 올라오는 근엽을 칼로 도려내서 채취하는데, 다른 나물보다 잎이 커서 조금만 캐도 바구니가 그득 채워집니다.

‘봄에 들에 난 풀들은 웬만하면 다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흔하게 깔려 자라는 잡초이지만 나물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주 많습니다. 흔히 길가에서 엄청난 세력을 자랑하는 환삼덩굴도 해마다 봄만 되면 새순을 뽑아다 샐러드에 넣기도 비빔밥으로 먹기도 합니다. 여름에 무서운 번식력으로 덩굴을 뻗어가는 환삼덩굴을 생각하면 새순이 나오는 때에 조금이라도 더 먹어 치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더 부지런히 땁니다.  

또 농사꾼에게는 아주 지겨운 잡초인 벼룩이자리나 꽃다지도 된장을 풀어 끓여 먹으면 맛과 향이 구수한 것이 참으로 기가 막힌 별미입니다. 그래서 봄이 오면 꼭 한두 번은 챙겨 먹는 나물이랍니다.

이외에도 제가 미처 알지 못하는 나물들이 아직도 얼마나 많은지 짐작도 못합니다. 그러나 한 해 한 해 새롭게 알게 되는 나물들 때문에 놀라는 이 산골의 봄은 올해 또 어떤 새로운 나물을 발견하고 무슨 이름으로 부르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혹한과 폭설에 유난히 사는 게 버겁게 느껴졌던 지난겨울. 그 힘든 계절을 견디고 나니 그래도 또 어김없이 봄은 오고, 작년에 누리던 입맛을 기억하고 있는 산골 아낙은 예년보다 일찍 당도한 봄 처녀의 품안에서 한 계절 입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힘든 기억들은 잊게 되겠지요. 사는 게 별거 아니어서 밥심이면 다 행복하구나, 하고 다시 떠올리는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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