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자연에서의 진짜 힐링, 실화냐?
청정 자연에서의 진짜 힐링, 실화냐?
  • 글 사진 이두용 기자
  • 승인 2017.07.23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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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태즈매니아

오늘도 뿌연 서울의 하늘. 외출하려면 먼저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한다. 언제부턴가 집 근처 공원에서 걷고 뛰는 것조차 걱정을 하게 됐다. 황사와 미세먼지 농도에 따라 아웃도어 활동마저 좌우가 되니 ‘에어노마드족’이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문득 한없이 푸르기만 한 호주 태즈매니아의 하늘이 떠오른다. 한없이 맑고 깨끗한 그곳의 자연. 잠시 빌려오고 싶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일행 모두가 신발을 벗어 한 손으로 들고 구름이 낮게 깔린 해안을 걸었다.

기대보다 괜찮은 첫 단추
우연한 기회였다. 느닷없는 식사자리가 생겼고 호주에 가는 얘기가 나왔다. 세계 곳곳에서 선발된 미디어들이 호주 태즈매니아에 모여 매일 청정한 자연을 걷고, 카약을 하고, 자연에서 얻은 음식을 먹는다고 했다. 설렜다. 나보고 가라고 한 것도 아닌데.

설렘이 현실이 되니 시간은 빨리 지났다.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곧바로 출국일이 다가왔다. 가서 보니 사실 준비도 필요 없었지만.

비행기에 올라 미리 받아든 태즈매니아 안내서와 일정표를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미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는 호주.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는 청정한 나라. 이번엔 어떤 마음의 선물을 줄까. 풍선에 바람이 채워지듯 가슴속 기대감이 부풀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월터처럼 상상력 풍부한 나는 비행시간 내내 상상력을 총동원해 태즈매니아를 머릿속에 그렸다.

숙소로 향하는 길, 해안을 지나니 모래사장과 연결된 숲길로 이어진다.

직항이 없어 멜버른에서 하루를 묵었다. 도시마다 독특한 매력이 있는 호주. 비 오는 낮에 마주한 멜버른의 거리가 강한 인상을 줬다. 벽마다 그래피티가 가득 그려진 골목이 마치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다음날 호주 국내선을 타고 론체스톤 공항을 향해 날았다. 늘 새로운 호주지만 태즈매니아의 첫 인상은 더 새로웠다.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건 진짜 ‘자연’. 호주 사람에게 태즈매니아에 대해 물었더니 실제로도 “아름다운 자연”이라는 짧은 답이 돌아왔다. 나라 전체가 국립공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호주. 태즈매니아는 호주에서도 최고의 청정지역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자국민조차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니 이번 여정, 기대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멜버른의 그래피티가 그려진 골목은 마치 할리우드 영화의 세트장 같았다.

아날로그 라이프의 시작
공항에 도착하니 작은 버스가 마중 나왔다. 한국에서 간 인원은 나까지 두 명. 다음 장소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합류한다고 했다. 모든 일정동안 영어로만 진행한다고 하니 긴장이 됐다.

버스를 타고 또 한참을 달렸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가 싶더니 작고 하얀 등대 앞에서 멈췄다. 출발 전 받은 일정표에 나왔던 에디스톤 등대. 현지인이 먼저 나와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보니 이미 와 있는 사람도 여럿이다. 미국과 독일, 말레이시아 등 떠나온 나라가 제각각이다. 설렘보다 긴장이 됐다.

야트막한 언덕 수풀에 빨간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싱그러운 초록과 대비돼 아름답다.

“이곳부터 차로 이동할 수 없으니 가져온 짐에서 3일 분량만 배낭에 담아서 메고 가야 합니다. 해안과 숲을 걸어서 가야 하니까 등산복과 등산화를 착용해 주세요.” 자기를 인솔자라고 소개한 청년은 등대 앞에 모인 사람들에게 큼지막한 배낭을 하나씩 나눠주고 10분 동안 짐을 꾸리라고 했다. 일정표에 없던 내용이라 다들 어이없어했지만 가져온 캐리어와 가방을 열어 옷가지와 카메라, 세면도구 등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멍하니 있다가 분위기에 이끌려 가져온 짐 중에 필요한 것만 챙겨 배낭에 담았다.

10여 분이 지나자 등대 앞은 배낭을 짊어진 길 다란 행렬이 생겼다. 그리고 인솔자의 뒤를 따라 우리는 해변을 향해 걸었다. 마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피리 소리를 따라 움직이는 아이들 같았다. 나머지 짐은 타고 온 버스에 다시 실어서 어디론가 떠났다.

언덕을 하나 넘으니 해변과 길이 이어졌다. 해변에 오르니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진다. “Amazing!”, “Wonderful!”, “Beautiful!” 좌측엔 맑고 투명한 바다가, 우측엔 녹초가 우거진 숲이, 지평선 끄트머리엔 다이내믹한 구름으로 수놓아진 푸른 하늘이 비현실적인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져온 캐리어와 가방을 열어 옷가지와 카메라, 세면도구 등을 챙기기 시작했다.

태즈매니아에 발을 들이다
오솔길로 내려와 바나나처럼 구부러진 해안을 따라 걸었다. 비를 잔뜩 머금은 하늘이 머리 위로 바짝 내려와 앉는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 부을 기세다. 맨 앞에 걷던 사람이 신발을 벗자 도미노 블록처럼 한 명씩 신발을 벗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서 신발을 벗어 한 손에 들었다. 발가락에 닿는 모래가 따뜻하다. 걸음마다 발가락 사이로 파고들며 간질인다. 장애물 하나 없는 해안이라 가만히 눈을 감아봤다. 비릿한 바닷냄새, 볼에 와 닿는 시원한 바람, 귀에 속삭이는 잔잔한 파도 소리. 해무를 끌어안은 따뜻한 기운이 몽롱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해변과 몇 개의 나지막한 사구를 지나며 2시간을 걸었다. 멀리 어스름이 내리는 하늘 아래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맨 안쪽 정상에 빨간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싱그러운 초록과 대비돼 아름답다. 꿈속을 걸어온 우리가 며칠간 묵을 곳이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곳의 이름은 베이오브파이어로지(bay of fires lodge). 대자연에 일부가 되어 자연이 주는 청정함과 고요함을 오롯하게 누릴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그렇다 보니 보기와는 달리 숙소로는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곳이었다.

입구에 설치된 펌프를 30~40회 들었다 놨다 해야 5분 남짓 샤워할 수 있었다.

땀 흘리며 걸어온 터라 먼저 샤워를 하려고 했는데 처음부터 벽에 부딪혔다. 공용인 샤워실은 입구에 설치된 펌프를 이용해 30~40회 정도 열심히 들었다 놨다 해야 5분 남짓 땅속의 물을 끌어올려 사용할 수 있었다. 대충 몇 번 펌프질하고 샤워에 들어갔다간 비누 거품을 뒤집어쓰고 나오기 일쑤였다. 나중엔 2인 1조로 샤워하는 진풍경도 생겼다. 물이 없으니 화장실도 달랐다. 남녀 구분이 없는 화장실은 사용 후에 각자 알아서 준비된 톱밥을 부어서 후처리해야 했다.

전기도 없었다. 태양전지를 이용해 복도와 주방에만 전등을 사용했다. 그마저도 컴컴한 밤에 낮은 밝기로 쓰는 정도. 스마트폰은 물론 가져간 전자제품은 무용지물이 됐다. ‘혹시 연락 온 곳은 없나’ 싶어 휴대폰을 켰다 끄기를 여러 번. 숙소 주위를 아무리 돌아다녀 봐도 신호가 잡히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언덕을 하나 넘으니 해변과 길이 이어졌다. 해변에 오르니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진다.

내가 ‘자연’스러워진다는 것
시나브로 내 삶의 일부가 되었던 문명의 이기들. 잠시만 사용하지 못해도 불편하고, 불안하고, 궁금했던 그것들이 아무짝에 쓸모없는 짐이 되어가고 있었다. 둘째 날이 되면서 전자제품은 처음 메고 온 배낭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다.

자연스레 눈과 귀, 마음이 자연으로 향했다. 우리네 가을을 닮은 한 없이 푸른 하늘과 유채화처럼 푸르고 빽빽한 나무들, 시시각각 낯빛을 바꾸는 천의 얼굴의 바다. 이따금 캥거루와 꼭 닮은 왈라비가 내 방 창문까지 찾아와 날 물끄러미 보다가 가기도 했다. 숲으로 향한 벽 하나가 통창이라 어느 순간 난 자연에서 지낸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매일 밤 깊은 잠을 잤다. 며칠간이지만 어두워지면 잠들고 해가 뜨면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종일 피곤하지 않았다. 음식은 유기농으로 키운 재료로만 만들어서 내왔다. 식사를 하면 숲으로 들어갔다. 바위에 누워서 책을 읽기도 하고, 그루터기에 앉아 차를 마시기도 했다. 깨끗한 물에 담가서 몸과 마음을 찬찬히 헹궈내는 시간 같았다.

로지에서 운영하는 숲과 해변의 트레킹과 호수에서의 카약도 참여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우리지만 느끼고 있는 자연은 비슷했다.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해선 보통 한 시간씩 숲을 걸어가거나, 무릎까지 오는 물길을 지나서 갔는데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이따금 굵은 소나기가 나타나도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했다. 춤을 추는 친구도 있었다.

일정은 생각보다 빨리 지났다. 돌아오는 길 다시 멜버른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숲속의 숙소보다 훨씬 편하고, 세련되고, 내게 익숙한 것투성인 이곳. 하지만 이상스레 난 어두워져도 불을 잘 켜지 않았다. 그냥 잠들었다. 그리고 일찍 일어나 낯선 도시에서 조깅했다. 한국에서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TV를 켜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일도 없었다. 노트북을 켜도 필요 이상의 시간을 붙잡고 있지 않았다. 어떤 게 더 좋다고 말할 수 없지만, 아직도 몸과 마음이 분주해져서 결단이 필요할 때면 ‘태즈매니아에 한 번 다녀올까’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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