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으로
세상의 끝으로
  • 글 사진 우근철 기자
  • 승인 2017.07.19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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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Ⅱ

#1
산티아고를 지나 세상의 끝으로

순례길을 걷는 동안에는
절대 길 잃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갈림길이 나와도, 숲에서 길을 잃어도
언제나 노란 화살표가 우리를 안내해주기 때문에


의심 없이 믿고 걷는다면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그곳에 도착할 수 있다.

내가 살아가는 인생길에도
화살표가 있다면 어떨까.

일말의 의심 없이
화살표를 따라 걸을 수 있다면

순간순간 갈피를 못 잡고 고민하며
방황하지도 않을 텐데

보이지 않으니까,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까

이쪽이 더 좋은 길인지,
지금 내가 제대로 가긴 하는 건지,

언제나 갈림길 앞에서 주변을 살피고
망설이며 주저하게 되고

남의 눈치를 보면서 다수가 걷는 길을
쭐레쭐레 뒤쫓게 된다.

나만의 이야기로 채우며 바른 길로 간다는 건
내 발걸음을 믿어야 하는 건데,

노란 화살표를 가슴에 새기고
일말의 의심 없이

#2
점점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하는데도
숙소를 잡지 못해 하염없이 걷고 있자니
묵직한 피로가 온몸에 들러붙어 노숙을 감행하기로 했다.

밤이슬을 피해 간신히 몸을 누일만 한 곳을 발견한 것이 작은 창고였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들어갔는데, 물씬 풍기는 비료 냄새.
그래도 이게 어딘가 생각하면서
부스럭 부스럭 침낭을 깔고 잠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떠보자 웬 털북숭이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 몸을 벌떡 일으키자,
그들도 깜짝 놀라 “메에에에~” 하며 물러난다.

나와 함께 동침을 했던 친구들.

어린 시절,
잠이 안 올 때
내 머릿속에서 울타리를 뛰어넘던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3
허리를 푹 숙인 채 배낭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한 순례자를 발견했다.

두 손으로 꽉 쥔 지팡이에 온몸을 의지하고 버티는 그 모습이
애처로울 정도로 힘겨워 보였다.

그녀는 옆 사람이 건네는 물도 사양하고
한참을 그렇게 숨만 고르고 있었다.

그녀의 등은 마치
‘포기하자. 너무 힘들어. 여기까지도 충분해.’라고 말하는 듯했고,
나는 그 고통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코끝이 찡해져 왔다.

그런데 그녀가 다시 허리를 곧추세우더니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땐
언제 그랬냐는 듯 미간의 주름도 사라지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정말 힘들고 지칠 때, 거기서 주저 앉아버리면 포기라고.
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 일어나는 정신을 배우라고.

그저 잔소리라 여기며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내게
그녀가 미소로 대답을 대신 했다.

포기와 실패는
분명 차이가 있는 거라고.

#4
‘요놈을 보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파도가 등대를 철썩 때리며 다시 물러나고
지평선 끝까지 펼쳐있을 듯한 푸른 바다가
내 눈 앞에서 출렁인다.

세상의 끝을 가슴에 품고 걸었던
지난 40일이 스쳐 지나갔다.

때론 한 평 남짓한 잠자리에 행복해하며
물집투성이 발과 근육통에 쓰라린 밤을 보낸 날들.

세계 곳곳에서 온 순례자들과 가슴으로 우정을 나누고
찌는 듯한 스페인의 태양 아래서 서로에게 힘이 되며
드디어 만난 세상의 끝.

0.0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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