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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비박소녀” 김영미 탐구 생활바이칼 호수 단독 횡단 성공한 김영미 씨 인터뷰
  • 임효진 기자 | 양계탁 팀장
  • 승인 2017.07.03 06:59
  • 호수 146
  • 댓글 1

냉동실보다 더 추운 곳을 23일 동안 90kg의 썰매를 끌면서 두 발로 온전히 700km를 걸어낸 이가 있다. 비박소녀, 김영미(영원무역)다. 자연의 아주 깊은 속살까지 들여다보며 교감하는 탐험가는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사람들일까, 아니면 괴짜들일까. 그녀가 궁금해졌다.

매일 30km 가량 혼자 운행했다. 사진제공 김영미

안녕하세요. 소개를 부탁합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안녕하세요, 비박소녀 김영미입니다. 올해로 등반한 지는 17년 됐는데 아직도 막내 산악인입니다.(웃음)”

비박소녀라는 별명이 잘 어울립니다. 누가 지어주신 건가요?
“대학 때 제가 지은 거예요. 20대에 갖고 있던 마음을 변치 않고 싶었어요. 자연을 보고 낭만과 감동을 느끼며, 도전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철부지로 남고 싶어서 스스로에게 지어준 별명이에요. 환갑이 돼서도 꿈을 꾼다면 소녀의 마음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죠.
소녀 앞에 비박을 붙인 이유는 제가 비박을 좋아해요. 대학생 때 집이 강원도 평창군이고 학교가 강릉이었는데, 1년에 한두 번쯤 2박 3일 동안 소금강을 건너고 오대산을 넘어 집에 가곤 했어요. 버스를 타면 1시간이면 갈 거리를요.(웃음) 텐트는 무거우니까 침낭 하나 챙겨서 비박하면서요. 지금도 텐트에서 자는 것보다 비박을 좋아해요. 그때가 정말 즐거웠고, 지금도 그리워요.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싶어서 스스로에게 비박소녀라는 별명을 지어줬어요.”

올해 초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횡단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원초적인 것부터 물어보죠. 추위가 두렵지는 않으신가요?
추워야 시베리아죠.(웃음) 추위도 대비할 수 있어요. 주로 체력이 떨어지거나 마음이 느슨해졌을 때 추위가 찾아오니 예상하고 대비를 해 갔어요. 제가 다른 사람보다 추위를 많이 타지 않는 거 같긴 해요. 이번에 바이칼 호수를 건널 때 만난 프랑스 사람들은 해만 져도 장갑 위에 미튼 장갑을 또 하나 끼더라고요. 저도 챙겨가기는 했는데 안 끼고도 견딜 만 했어요. 강원도에 있다가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도 사람들이 겨울에 두꺼운 잠바를 입고 다니는 거 보고 의아했어요. ‘왜 이렇게 두꺼운 잠바를 입고 다니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바이칼 호수 위에서. 사진제공 김영미

혼자서 얼음 위를 걷는다는 게 두렵지는 않았나요?
처음 가는 길이니까 두려운 게 당연하죠. 사실 지인들이 말리면 어쩌나 제일 걱정됐어요. 그런데 오히려 저의 경험과 의지를 믿어주고 ‘너는 잘할 수 있어. 잘 갔다와’라며 격려해줘서 힘이 됐어요.
썰매는 처음에는 90kg이었지만, 식량이 줄면서 조금씩 가벼워졌고, 4~5일쯤 지나니까 몸이 적응해서 견딜 만 했어요. 하지만 얼음 위에서 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기는 했어요. 밤이 되면 기온이 내려가면서 얼음이 팽창하는데 소리가 어마어마해요. 쿵 하는 소리가 나기도 하고, 공기 방울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소리가 밤새도록 이어지죠. 얼음이 쩍하고 갈라져 수십 미터 아래로 가라앉는 상상을 하다가 너무 무서워서 텐트 밖으로 나와 짐을 챙겨 다시 걸었던 적도 있어요. 야생 동물을 보지는 못했는데, 마을 주민들이 늑대가 많이 사는 곳인데 못 봤느냐고 묻기도 하더라고요.

바이칼 호수의 얼음. 사진제공 김영미

외로움은 어떻게 이겼나요?
출발과 끝에 나를 기다려 주는 두 선배님이 계셨고, 응원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운행 과정이 그리 외롭지는 않았어요. 사실 엄청 바빴어요.(웃음) 파트너가 없다보니 텐트치고 밥하는 일을 모두 혼자 해야 했어요. 전에는 30분이면 끝났을 일인데 1시간이 넘게 걸렸죠. 또 하루에 30km를 가야하는데, 조금 지체돼서 23km 정도 밖에 못 걸은 날은 마음이 조급해서 ‘해님아, 가지마’라고 소리치면서 달렸다니까요.
사실 처음부터 혼자 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한번쯤 혼자 해보고 싶었어요. 아니 한 번쯤은 혼자 해내야 했어요. 제가 누군가와 함께 원정을 갈 때 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동행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짐도 되지 않을 테니까요.

바이칼 호수 원정 중. 사진제공 김영미

누구나 인생의 밤이 찾아온다
2003년 가셔브룸 2봉으로 히말라야 등반을 시작한 김영미는 2008년에는 에베레스트를 오르며 7대륙 최고봉을 완등했고, 2009년에는 세계 4위봉인 로체 등정, 2013년에는 히밀라야 암푸1봉 세계 초등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어쩌면 그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인생의 절정처럼 보이던 때였다. 하지만 이 시기 그녀는 인생에서 가장 슬프고 힘든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었다.

“누군가 저에게 가장 힘들었던 등반이 어떤 거였느냐고 물을 때 사고가 나던 그때라고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 인생이 그 시간에 멈춰져서 갇혀 있을 것만 같았고, 이렇게 등반 인생에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았어요. 벗어나고 싶었고, 모든 걸 쏟아 붓고 가벼워지고 싶었어요.”
한국인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거봉 14좌를 완등하며, 세계 최초 산악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박영석 대장은 2011년 안나푸르나 남벽의 신루트를 개척하던 중 실종됐다. 김영미는 박영석 사단의 막내다.

이 시기 인생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대자연이 주는 힘에 감동하며 철모르고 산에 다니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두려워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지금까지는 자연이, 그리고 산이 인생의 전부였다고 할 수 있죠. 20대 때는 닥치는 대로 원정을 갔어요. 하지만 많은 걸 했다고 많은 걸 볼 수 있던 건 아니었어요.”

서른 세 살쯤이었나 보다. 서른 다섯의 삶이 궁금해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의 서른 다섯은 어땠는지 물었다. 자주 가던 미용실 원장님은 34살에 비달사순을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도 인생의 굵직한 일들을 온몸으로 통과하고 있었다. 예수가 서른 셋에 십자가에 못 박히고, 석가모니가 서른 다섯에 깨달음을 얻었던 것처럼. 많은 사람에게 이 시기가 인생에서 중요한 때였고, 괴로움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한편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도 돌아보면 20대의 제 삶에 만족해요. 잘 살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물론 제가 한 노력보다 운이 좋았죠. 그렇게 20대를 돌아보면서 30대에도 이렇게 계속 살아도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홀로 2500만년의 액체 화석 위를 걷다
가던 길에 확신이 생기자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다른 나라 등반가 이력에서 산악스키와 자전거 대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등반과 아웃도어를 철저히 분리해서 생각하던 때가 지나고, 트레이닝 과정의 하나로 스포츠를 즐기며 체력을 보강했다. 하지만 쇳덩이보다 무거운 마음의 부채는 쉽게 가벼워지지 않았다. 모든 걸 쏟아내고 가벼워지고 싶었다. 바이칼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등반은 자기 체력의 80% 정도만 쓰면서 안전하게 하산할 힘을 남겨 와야 해요. 트레일러닝 대회는 루트에 대한 정보와 중간에 쉬어갈 수 있는 보급CP(check point)가 있어 선수들이 에너지를 쏟아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120%의 능력치를 발휘하더라고요. 저는 그 중간 지점이 필요했어요. 위험에서 좀 더 자유로우면서 매일 매일 온 몸의 에너지를 쏟아내는 것, 살아 있다면 에너지는 내일 다시 채워질테니까요.

바이칼 호수에서 돌아온 지 두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직도 몸이 나른하고 바이칼 호수 원정을 생각하면 꿈처럼 느껴진다고. 그녀는 무엇을 느꼈고, 또 얼마나 비워내고 왔을까.
“썰매의 짐을 비웠지요.(웃음) 마음속의 쇳덩이를 두고 오려고 간 것이지만 오히려 이 기쁨과 슬픔이 모두 나에게서 나온 내 삶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이고 왔어요. 보고 싶지 않아서 마음속에 꽁꽁 숨겨뒀던 생각을 인정하고 자유를 준거죠.

얻은 것도 많아요. 나의 두발로, 땀으로, 온몸으로 그려내는 그림을 그렸다고나 할까요. 바이칼보다 더 큰 지도에 또 한 번의 도전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어요. 경험으로 데이터도 많이 얻었고요. 자연은, 항상 절대 포기 하지 말라는 영감을 줍니다. 또 다른 나로 돌아왔어요. 이제 시작입니다.”

수직의 세상에서 수평의 세상으로
올해로 등반을 시작한지 17년, 원정은 26번 다녀왔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산이 좋고, 사람이 좋아 산에 갔는데 국내 최연소 7대륙 최고봉 등반이라는 수식어가 생겼고, 이제는 한국 최초 바이칼 호수 횡단이 이력에 추가됐다.

“제가 한 이번 여정은 국내에서는 최초라고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미 7명이 다녀간 길이에요. 바이칼 호수 원정의 형식이 탐험이었을 뿐 익스트림 여행이었다고 생각해요. 미지의 세계를 찾아간 것도 아니었고, 학술적 가치를 찾기 위해 간 것도 아니거든요. 저를 알고 격려해 주는 분들이 그 전보다 더 어려운 걸 해냈다며 박수쳐 주신다면 그 정도로 충분해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히말라야 베이스캠프까지만 가더라도 그 경험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고, 큰 가치가 있었다면 그건 탐험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개별적 가치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바이칼 호수는 기술적으로 걷기만 한다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에요. 고산 등반처럼 고난도 테크닉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에요. 바이칼에 가슴이 두근거린다면 누구든 시도할 수 있죠. 한 걸음씩 만 용기를 내면 돼요.”

사람들이 탐험가들에게 묻는 단골 질문. 그 어려운 걸 왜 하느냐는 것. 대답은 늘 간단하다. 좋으니까.
“자연을 생각하면 엉덩이가 들썩들썩 거리고 가슴이 널뛰어요. 연애할 때 처럼요. 어쩌면 연애할 때보다 더할지도 몰라요. 소중한 가치는 어렵고 험난한 것들 뒤에 꽁꽁 숨어 있다고 느껴요. 그걸 조금 맛보았다고나 할까요?
저는 제가 독특하다거나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글을 쓰는 사람은 원고지가,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악보 위에서 좌절과 혹독함을 느끼고 그걸 넘어설 때 경외감과 감동을 느끼겠죠. 저는 그 대상이 자연인거고요. 무대가 다를 뿐이지 혹독함 뒤에 경외감, 감동을 느끼는 건 다 같다고 봐요. 배경이 다를 뿐이지 사람 사는 모습이 다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준비 과정과 운행 일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김영미 씨의 페이스북 글을 옮깁니다. - 편집자주

2017.2.12 (D-5)
1일의 식량 = 6000칼로리 = 1.2kg
낮은 온도에 체온 유지를 하며 움직여야 하는 활동대사 능력에 내 기초대사량 약 1400kcal를 더해 필요한 칼로리를 대략 6000kcal로 잡아 주셨다. 종목에 따라 다르지만, 국가대표 1인이 하루 8시간 운동하고 5000kcal를 섭취한다고 한다.

그와 다르지만, 이건 신선식품이 아니므로 난 더 많이 섭취해야 할지도 모른다. 허나 그 많은 걸 소화·흡수시켜 본적이 없다.
때문에 필요한 열량에서 주기적으로 내 몸에서 부족한 칼로리가 손실될 것이고 그에 대비하여 어느 정도 체중을 불릴 필요가 있다. 몇 개월에 걸쳐 겨우 4kg을 찌웠는데 요즘 바빠서 막 빠지고 있는 기분이 든다. 원정을 다니며 등반 중 굶어 가며 온 몸의 진을 다 빼어 놓을 정도로 힘을 쏟아 내고 그걸 채우기 위해 폭식하다보면 자연스레 당뇨와 친구가 될 것이다.
히말라야나 이런 길을 걷는 것은, 그것들까지도 예상을 해야 한다는 걸 이번 준비를 하며 느끼게 되었다. 머리로 가슴으로 산과 마주하며 내 몸의 소리를 귀 기울이지 않은 듯도 싶다.

야채 건조식 블럭 두개를 추가 하고는, 맛다시마와 알로에 캡슐 추가로 섬유질을 추가 한다. 건조 블럭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초록색 시금치가 살아난다. 건조기술력이 놀랍다. 내가 끓인 것보다 맛있다.

동결건조를 시키면 비타민과 무기질이 파괴된다고 한다. 때문에 기수형이 비타민 영양제를 보내줬고, 그 외 영양소 군들을 길주현 박사님이 보조식품으로 조제하여 제공해 주신다.

(간식을 제외한 식량은 모두 이번 원정을 위해 특별제작)
아침은 돼지고기와 밥
점심은 파시코 1
저녁은 쇠고기와 밥
취침 전 파시코 2를 먹고
수시로 간식을 물고 살아야 한다.

평소 단 것, 간식을 거의 안 먹기에 이걸 챙겨 먹는 것 또한 고통일 것이며 그래서 점심인 파시코1은 죽통에 담아 물처럼 마시는 형태로 조제해 주셨다.

2017.3.5(D+11)
운행 11일차
3월 4일 토요일 흐리다 맑음
하루 운행 40km
누적 거리 344km
700km의 중앙에 섰다.

안녕하세요.
혼자 걷고, 혼자 먹고, 혼자 자는 여자입니다.
오늘은 혼자가 아닙니다.

이제 몸이 좀 풀리나?
오전은 눈밭으로 12km 운행, 오후 1시부터 호수 위의 자동차 길이 융단처럼 얼음으로만 뒤덮였다.
쉽게 갈 수 있지만, 달리기엔 그리 만만치 않은 길.
한국에서 어젯 밤 신언훈 형님과 박범신 작가님이 오셨다고 한다. 나 기다리며 지켜봐 주시고 1주일째 고생 중이신 유럽최고봉 엘브르즈 등정을 같이 했던, 정상 사진 찍어주신 영선형과 안나푸르나 같이 다녀오신 광근 형님을 만나기 위해 만나러 달렸다.
두려운 길에서는 달려도 40km까지 늘 못 달렸는데 기다림이 있는 발걸음은 기쁘게 다가갈 수 있네.

700km마라톤 42.195km를 17회 하는 거리...
오늘 거의 한 코스를 달렸다.

#일어나면 감사하라.
노래하라.

아침에 일어나 온도와 하늘을 보고,
맑은 날은 맑은 대로,
흐린 날은 바람이 불지 않아서,
눈보라치는 날은 진짜 시베리아 날씨를
선물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또, 얼마 전 부터 할 말이 없으니,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몸에 훨씬 활기가 생긴다.
프랑스 친구들이 내 얼굴 보면 물었다.
“안피곤해?”
“나 어제보다 컨디션 좋은 것 같아”
그랬더니, 오늘 진짜 좋아진 것 같다.

감사하라.
노래하라.
내일도,
모레도,
한국 돌아가서도,
나의 삶이 그러하기를

BAIKAL 700KM

#타키
#노스페이스

임효진 기자  hyo@outdo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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