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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버스타고 세계 여행한 임택 씨 인터뷰
마을 버스타고 세계 여행한 임택 씨 인터뷰
  • 이지혜 기자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17.06.14 0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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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에 나이는 없다

마을 한편에 멍하게 앉아있던 그에게 우연히 12번 마을버스가 터덜터덜 지나쳤다. 한평생 60km 이상 속력을 내본 적 없는 은수교통의 마을버스를 보며 문득 ‘자신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평생 힘들게 일하고 가정을 뒷바라지하다 어느새 늙어버린 자신. 망설임은 짧았다. 폐차 직전의 12번 마을버스를 샀고 ‘은수’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임택 작가는 그렇게 은수와 세계로 떠났다. 이보다 더 짠한 만남이 있을까.

임택 작가는 5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세계여행에 도전했다.

Q. 안녕하세요? 이 아이가 은수군요. 멀리서 보니 일반적인 마을버스 같은데 가까이서 보니 비범한 버스였네요.
A. 반갑습니다. 은수와 은수 아빠 임택입니다. 혜화역과 종로만을 오가던 12번 마을버스, 폐차를 6개월 앞둔 은수를 인수해 수리한 다음 세계 일주를 했죠. 이래 봬도 5대륙 48개국 147개의 도시를 677일간 저와 함께 여행한 기특한 제 딸입니다. 처음 “마을버스를 가지고 세계여행을 떠나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만 해도, 주위의 모든 분이 50대 중년의 허풍인 줄 아셨어요. 함께 여행하기로 했던 5명의 동료 중 제가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3명이 포기했을 정도니까요. 제겐 그만큼 간절한 꿈이었어요. 퇴역 직전의 마을버스 그리고 인생의 절정이 끝났다고 말하는 50대의 제가 가졌던 희망이었으니까요.

Q. 아무리 그래도 쉽게 생각하기도, 도전하기는 더 어려운 일을 해내셨네요. 여행가로서 자질이 있었나 봐요.
A. 오랜 꿈이 여행가였어요. 세계를 돌며 많은 것을 보고 싶었죠. 하지만 가정이 생기고 쉽지 않아 30여 년간 무역업에 종사했어요. 다양한 나라에서 많은 것들을 가져와 팔았죠. 돈도 많이 벌진 못했어요. 우연히 파키스탄 북부 히말라야 지역을 지인과 여행했는데, 그때 일어난 일이 제 인생을 바꿨어요. 한마을에서 사람들이 붉은 돌을 갓처럼 깎아 램프를 만들어 팔더군요. 직업상 그 자리에서 흥정했고 마을 주민들이 제게 여행을 시켜주는 대신 컨테이너 한 박스, 즉 램프 1700개를 사라더군요. 그렇게 여행 경비 전부와 컨테이너 하나를 맞바꿨어요. 여행이 끝났고 한국으로 돌아가 램프를 팔았는데 이게 대박이 났어요. 그동안 고생한 와이프에게 가게를 차려주고, 넉넉히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죠.

Q. 2년 가까이 그것도 마을버스를 타고 다녀오신 여행, 아주 많은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은데요.
A. 하루를 꼬박 세도 다 이야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일이 있었죠. 모든 여행이 끝나고 남는 건 여행에서 만난 사람이에요. 저에게 사람을 준 건 모두 은수 덕분입니다. 많은 사람이 손사래 쳤던 안데스 산맥, 볼리비아의 포토시의 언덕, 우유니 사막, 중남미를 질주한 후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까지 달려갔죠. 저를 감동시킨 건 마추픽추도, 티티카카호도 아니에요. 10년간 48만km를 달린 마을버스가 해발 4,600m를 넘어갔다는 사실이죠. 고도가 높다 보니 공기가 희박해서 엔진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고, 일행 중 2명은 기절까지 했어요. 해발 4,600m의 그곳엔 소수의 사람과 라마만 살고 있었는데, 다들 생전 처음 보는 버스였던지 넋을 잃고 은수를 바라봤어요. 은수 덕분에 더 많은 세상을 봤죠. 낙타 떼, 양 떼 무리가 지나가면 수 천 마리씩 지나가는 경우도 있어요. 시베리아에서는 곰이 길을 막기도 하고 사막을 지나갈 때도 있었고요. 안데스 산맥 넘어갈 때는 설산이 양쪽으로 있어서 정말 멋있었죠. 설산 광경이 너무 멋있어서 거기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기도 했어요.

임택 작가와 677일간 세계여행을 함께한 마을버스 은수.

Q. 솔트램프, 마을버스 은수를 인수하신 사연, 여행 이야기까지. 모든 게 드라마 같네요. 또다시 드라마 같은 일은 꿈꾸시나요?
A. 항상 꿈을 잃지 않고 소원하고 있으면 어떻게든 길이 열려요. 우리는 기회가 주어져도 못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죠. 저의 경우엔 계속 마음에 여행을 염원하고 살아가다 보니 제게 주어진 적은 기회들을 잘 잡은 것 같아요. 세계여행이 끝난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한국 곳곳을 은수와 여행하며 5060세대에게 강의도 하고 방송에 나가요. 여행이 끝났다고 제 꿈이 끝난 건 아니에요. 또 다른 소원이 있죠. 저처럼 여행을 꿈꿨지만, 사정이 힘든 아이들에게 여행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어요. 지난번 1기 여행 장학금은 가정이 어려운 장애우 소년에게 돌아갔죠.

Q. 인생의 멋진 후반전이 시작되고 있네요.
A. 50대, 남은 수십 년의 인생이 또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나이에요. 많은 분이 제 이야길 듣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돈을 적당히 벌어놓고, 가족 부양도 끝났지만 외롭고 쓸쓸한 중년 남성이 많죠. 험난한 여정에 은수가 힘들어할 때마다 치료해준 사람들이 많아요. 길에서 만난 여행객들에게 참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이제는 제가 그 도움을 갚을 차례에요. 많은 분에게 희망을 드리고, 여행 장학금도 부지런히 모아 아이들을 돕는 게 제 후반전의 첫 목표에요. 꿈을 꿀 수 있는 나이는 정해진 게 아니에요. 젊음에, 나이는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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