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국내 최대 관객 기록, 한국화가 김현정
개인전 국내 최대 관객 기록, 한국화가 김현정
  • 이지혜 기자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17.06.0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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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풍속화를 열다

단아한 한복에 해사한 웃음. 정갈한 치아와 솔직한 말투. 초롱초롱한 눈동자와 깊은 음색.
<포브스>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선정된 88년생 김현정 화가의 인상이다. 이중섭과 앤디 워홀 등 유수의 국내전을 제치고 오로지 SNS와 입소문만으로 개인전 국내 최다 관객 기록을 깬 화가계의 아이돌을 만났다.

영등포에 자리한 롯데갤러리에서 김현정 화가를 만났다.

Q. 반갑습니다. ‘한국화의 아이돌’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해요. 그만큼 화려한 경력이 많아요.
A.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어요. 아무래도 40~50대에 이름을 떨치는 화가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주목을 받은 만큼 그런 별명이 생긴 것 같아요. <포브스>에 선정된 건 제게 큰 영광이었어요. 순수 미술 부분에서는 처음으로 선정됐답니다. 제 작품이 매우 직설적이기도 하고 전시가 재미있어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아요. 활발히 SNS 소통을 하려고 노력하고요. 그만큼 악플에 시달리기도 하죠(웃음). 하지만 모든 것이 틀린 말이 없어요. 단지 다를 뿐이죠. 많은 관심에 당연히 뒤따르는 고통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픈 건 똑같아요. 최근엔 모두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받아들이려 노력 중입니다.

Q. 아무래도 기존과는 다른 느낌의 화가라 그런 것 같아요.
A. 세상엔 어려운 그림이 참 많죠. 음악도 대중가요와 클래식이 다르듯, 제 그림은 어쩌면 대중가요 같아요. 사실 매우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려 다른 화가에 비해 더욱 추상적인 표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제가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과거에 앓았던 우울증을 이겨내며 지금의 삶을 선물 받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선물 받은 제 삶을 사회에 환원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그리려고 해요. 직설적인 그림을 통해 한바탕 웃음을 드리며 마음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기 때문이에요.

내숭:투혼 (한지위에 수묵담채, 콜라쥬) 사진제공.김현정아트센터

Q. 한복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데요. 어릴 적부터 한복 사랑이 남달랐다고 하는데, 한복의 매력과 한복을 입은 나를 작품에 투영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어릴 적부터 한국화를 그렸던 이유가 컸어요. 한복의 아름다운 색감과 서걱거리는 질감, 따르는 장신구를 정말 좋아했어요. 한복만의 독특한 멋이 제 표현 욕구를 강하게 자극했어요. 한복을 입은 나 자신을 작품에 투영시키는 것은 ‘내숭이야기’를 보여주는 큰 소재이기 때문이에요. 한복은 ‘격식을 차려 고상한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흔하고 일상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현상을 드러낼 수 있는 효과적인 의상이에요. 인물을 누드로 그리고 콜라주(저고리)나 수묵담채(치마)를 통해서 속이 비치도록 표현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라는 내숭에 대한 관객의 통찰을 유도하거든요. 콜라주를 통해서는 한복의 서걱거리는 재질감도 살릴 수 있었는데, 이런 아이디어들은 평소 제가 한복을 좋아했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죠. 결국, 한복이 제 작품에서 가지는 가장 핵심적인 기능은 ‘통념에 대한 충격’을 시사한다는 거예요. ‘내숭’ 시리즈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고민으로부터 출발했고, 지금은 이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통념에 대한 충격이라는 측면으로 발전시켜가고 있어요. 어떤 의례가 있을 때나 입는 우아하고 고상한 한복과 일상적이고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행동의 대비, 전통적 의상과 현대적 소품의 대비는 우리가 가진 생각들이 때로 무비판적인 통념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요. 앞으로의 제 작품 인생에도 함께할 중요한 요소죠.

Q. 작품이 하나같이 톡톡 튀어요. 발칙하다고나 할까, 당돌하다고나 할까요.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던 자신만의 경험이 있나요?
A.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꿈꿨어요. 부모님이 미술을 하시진 않았지만, 미술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미술관을 참 많이 갔죠. 친언니가 미술을 했었는데, 여동생들은 늘 언니를 따라 하고 싶잖아요? 자연스럽게 ‘언니처럼 되고 싶다’ 생각하며 10살 때부터 하루에 13시간씩 그림을 그렸어요. 부모님의 교육방식도 큰 영향이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는 행동이나 생각에 관해 자주 물어보셨고 시험이나 중요한 면접을 보고 올 때마다 “최선을 다했느냐”는 질문을 던져주셨어요. 이 말들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결과보다는 과정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셨죠. 이런 다양한 환경이 저를 창의적인 사람으로, 결과적으론 이런 톡톡 튀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줬어요. 실제로 전시회를 다녀오신 많은 관람객이 “발칙하다” 혹은 “톡톡 튄다”는 말을 많이 해주세요.

내숭:제니티스 (한지위에 수묵담채, 콜라쥬) 사진제공.김현정아트센터

Q. 매우 많은 작품으로 다양한 전시회를 진행하셨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과 전시회가 있겠죠?
A. 모든 작품이 자식 같은 존재죠. 한 가지 작품을 고르기 힘들지만 그래도 고르자면 ‘내숭’이란 주제로 제가 내놓았던 첫 작품인 ‘나르시스’가 애착이 많이 가요. 가장 초기의 이미지로, 손바닥만 한 손거울을 앞에 놓고 눈썹화장에 몰입하는 그 순간이 내숭을 표상하는 대표적 모습이라 생각했어요. 이 작품으로 대한민국 여성미술대전에서 금상을 받아 개인적으로 의미가 커요. 작품 활동에 있어서 전환점이 된 순간을 표현한 ‘낯선 혹은 익숙함’이라는 작품도 애착이 많이 가요. 초기에만 해도 내숭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희화화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작업하다 문득 제가 그리고 있던 인물이 결국 ‘나’의 모습이고 실체임을 깨닫게 된 적이 있기 때문이죠. 서로 호환되지 않는 게임기를 들고 두 여인이 마주 앉은 모습은 익숙하지만 낯설었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 순간을 이미지화했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내숭’을 자화상으로 그리게 됐죠.

기억에 남는 전시는 지난 2016년 3월에 27일 동안 진행된 <내숭놀이공원>이에요. 27일간 진행됐고 총관객 수 6만7402명으로 국내 작가 개인전 최다 관람객을 기록 했어요. 놀이공원이라 하면 주로 어린이들이 뛰어다니는 공간으로 생각하시죠? 저는 어른들의 일상 속 놀이 공간, 즉 해방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 <내숭놀이공원>을 기획했어요. 관람자가 화가와 함께 경험하고 이벤트와 참여공간을 통해 의미 있는 추억을 만들며 놀다가 갈 수 있는 ‘참여형의 놀이터’인 것이죠. 작품을 감상하고 작가와 함께 미술 활동을 공유함으로써 <내숭 놀이공원>을 진심으로 즐기고, 놀이를 통한 자아실현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가지는 시간이었어요.

Shall We Dance (한지위에 수묵담채, 콜라쥬) 사진제공.김현정아트센터

Q. 클라이밍, 자전거 등 아웃도어와 관련된 작품도 눈에 띄어요. 직접 경험한 것이겠죠? 어떤 아웃도어 활동을 좋아하세요?
A. 제 작품은 모두 실제로 제가 겪은 것을 그렸어요. 어떤 작품이나 활동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면 직접 겪은 뒤 사진을 촬영하죠. 한복을 입은 모습과 타이츠를 입은 모습을 따로 촬영한 뒤 콜라주를 입혀요. 상상으로 그리는 것은 원하지 않으니까요. 섭외부터 경험, 촬영까지 힘들기도 하고 손이 많이 가기도 하지만 여러 운동이 많은 도움을 줘요. 가장 큰 고민은 ‘다음에는 어떠한 활동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볼까’하는 거예요. 즐기는 운동은 자전거에요. 유산소, 무산소가 병행되는 운동인 만큼 체력관리 하기에 좋아요. 사실 작업실에서 그림만 그리다 보니 운동이 필요해 주변의 근린공원을 자주 가는데, 가까이 있는 친근한 운동기구를 좋아해요. 윗몸일으키기, 허리 돌리기, 역기, 철봉 등 익숙한 생활 운동을 즐기죠. 실제로 아주머님들과 운동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것이야말로 생활의 올림픽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이 소재를 활용해 작품 제작을 했고 얼마 전 <내숭올림픽>이라는 개인전까지 할 수 있었죠.

Q. 작품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나 상황도 많을 것 같아요.
A. 매우 다양하죠. 작품이 모두 제 자화상인 만큼 실제로 생활 순간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받아요. ‘투혼’이라는 작품은 작업에 몰두한다고 끼니를 거르다 쓰러지겠다 싶은 순간에 전투적으로 햄버거를 섭식하는 제 모습을 보며 ‘이것이 내숭이구나’ 하고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에요. 그림을 그리던 중이라 손에 기름을 묻히지 않고 감자튀김을 먹기 위해 빨대로 집어먹던 제 모습을 그대로 그렸죠. 이렇게 실제 생활의 일부를 화면에 옮겨 놓았기 때문에 아마도 많은 분이 쉽게 공감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소재가 편하게 생활에서 나오다 보니, SNS 소통하며 네티즌에게 많은 영감과 소재를 받기도 해요.

영감을 주는 인물은 김홍도 선생님과 신윤복 선생님이에요. 선조의 작품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영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죠. 오늘날의 아티스트 중에는 작가 서도호 선생님, 무라카미 다카시 선생님이 작품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인물이에요. 가끔은 영화 <팩토리걸>이 영감을 주기도 하죠. <팩토리걸>은 작가 엔디 워홀과 그의 뮤즈 에디 세즈웍의 이야기인데, 같은 미술작가로서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고 저에게도 비슷한 뮤즈가 나타날지 궁금하기도 해서 좋아해요.

사진제공.김현정아트센터

Q. 어떤 작가로 남고 싶으세요?
A.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전시를 해외에서 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 대중과 호흡하는 미술, 젊은 작가와 함께하는 미술을 하는 것이 바람이에요. 최종 목표가 있다면 미술이 생활 속에 스며들어서 자리 잡고 누구나 즐기는 문화와 구조를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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