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홍콩이 궁금하면 “드루와!”
진짜 홍콩이 궁금하면 “드루와!”
  • 글 사진 이두용 기자
  • 승인 2017.05.27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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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올드타운센트럴

적어도 열 번은 넘게 다녀온 홍콩. 하지만 때로 어딜 가느냐 만큼 그곳에서 뭘 보고, 누굴 만나고, 뭘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잘 알려진 곳은 일단 제외. 오로지 올드타운센트럴Old Town Central에서 며칠을 보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이 말이 맞았다. 홍콩인 듯 홍콩 아닌 홍콩다운 곳. 이곳에서 진짜를 만났다.

란콰이퐁은 우리나라 홍대와 강남의 명소를 적절하게 섞어놓은 듯한 분위기다.

변하지 않아서 좋아요
어린 시절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 1위, 홍콩이었다. 친구들이 ‘미쿡’을 동경할 때도 난 마음속으로 홍콩을 외쳤다. 만화책방 한 편에서 300원을 내고 봤던 영화 ‘개심귀당귀’를 통해 천사 같은 장만옥을 알았고 미지의 땅 홍콩을 꿈꾸게 됐다. 영화로 시작한 홍콩 앓이는 이후에도 ‘영웅본색’과 ‘천장지구’, ‘첨밀밀’등으로 꾸준히 이어졌다.

지척에 홍콩의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를 이끄는 센트럴이 있다.

홍콩이 좋은 이유라면 단숨에 열 개도 넘게 들 수 있지만 첫째는 역시 ‘변함없음’이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것 같은 매력. 홍콩은 알면 알수록 반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과거 중국인의 여유와 낭만이 배어 있는 할리우드 로드 파크.

그런 매력은 올드타운센트럴이 정점이다. 홍콩이 태동한 가장 오래된 곳이면서 반대로 홍콩의 최신 트렌드를 이끄는 센트럴과 한 울타리기 때문이다. 이 일대는 한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들머리는 포제션 스트리트Possession Street가 좋다. 올드타운센트럴을 관통하는 할리우드 로드Hollywood Road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골목마다 거리 예술가 각자의 개성을 담아낸 그래피티가 있다.

사실 포제션 스트리트는 홍콩사람에겐 상처가 있는 곳이다. 1841년 이곳에서 영국의 식민통치가 시작되었다. 170여 년이 지난 지금은 홍콩 고유의 문화와 함께 영국문화도 엿볼 수 있는 곳이 됐다.

가이드 얘기를 들으며 사방을 둘러보니 영화에서 봤던 거리가 떠올라 마치 세트장에 와 있는 느낌이다. 신기했다. 길 건너 할리우드 로드 파크Hollywood Road Park로 향했다. 이곳은 홍콩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데 제격이다. 길 이름을 따서 이름은 할리우드지만 과거 중국인의 여유와 낭만이 배어 있는 도시민의 휴식처라고. 마천루가 빽빽하게 솟은 도시 한가운데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공원이 자리하니 정답다.

스프레이만으로 화려하게 그려낸 그래피티 작품이 인상적이다.

할리우드 로드를 따르면 바로 만모사원Man Mo Temple이 나타난다.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도교 사원으로 관우와 문창제군을 모시는 곳이다. 입구에 서니 향내가 진동한다. 사원 천장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선향이 빼곡하다. 향이 원을 그리며 모두 타면 걸어둔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데 큰 것은 보름까지 탄다고 한다.

만모사원은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도교 사원으로 관우와 문창제군을 모시고 있다.

밖으로 나오니 낮인데 어둑해지면서 비가 내린다. 영화 중경삼림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홍콩은 내가 이곳에서 무언가를 했던 추억보다 이곳을 무대로 한 영화 속 장면이 더 강렬하다. 우비를 걸치고 걷는데 거리 양쪽에 불 켜진 상점들이 예쁘다. 골동품점과 고미술 갤러리가 많다 보니 과거의 홍콩으로 걸어들어온 기분이 든다.

홍콩에서 가장 핫하다는 그곳
만모사원 옆으론 돌계단으로 된 언덕이 있다. 350m 길게 이어진 래더 스트리트Ladder Street다. 영국의 통치가 시작된 해부터 10년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오르막을 따르면 나타나는 일대가 ‘포호Poho’지역인데, ‘소호Soho’와 ‘노호Noho’에 이어 급부상하는 곳이다. 할리우드 로드를 기점으로 남쪽을 소호, 북쪽을 노호, 이곳을 포호라고 부른다. 거리 이름인 포 힝 퐁Po Hing Fong에서 따왔다고 한다. 걸음마다 나타나는 소소한 소품 편집숍과 빈티지 가구점, 찻집 등이 볼거리다.

블레이크 가든은 넓지 않지만 하늘 향해 뻗은 나무들의 기세는 대단하다.

건물은 세월을 끌어안아 낡았지만 묘하리만큼 세련미가 살아있다. 유명해질 무렵의 삼청동을 찾은 기분이다. 아직 다른 지역보다 관광객이 적어 산책하듯 돌아볼 수 있다. 평일 낮이라 더 한적했다.

국내에도 여러 번 소개된 포호의 명물 티카 찻집.

골목마다 오래된 건물이 즐비하지만 촌스럽지 않았다. 절반은 그라피티 덕분이 아닌가 싶다. 어지간히 좁은 골목에도 건물 외벽엔 어김없이 화려한 그라피티가 그려있었다. 낡으면 낡은 대로, 좁으면 좁은 대로 자신의 느낌을 담아낸 거리 예술가들의 솜씨가 놀랍다. 거미줄 같이 이어진 골목마다 그림이나 글로 쓰인 작품(?)이 있으니 이곳에 온다면 발품을 팔더라도 찾아다녀 보자. 보물찾기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사진 찍는 사람이라면 더욱 추천한다.

음료를 주문하면 곧바로 포트에 끓여 내온다.

포호는 찻집과 카페로도 유명하다. 대형 커피 체인이나 화려한 인테리어의 카페는 없지만, 곳곳에 맛으로 승부를 건 가게가 숨어있다. 그중 가장 핫하다는 찻집 ‘티카Teakha’를 찾았다. 신문과 여러 블로그에 소개돼 국내에도 소문난 곳이다.

유명세에 비해 매장이 너무 작아서 놀랐다. 매장 안쪽으론 의자가 네다섯 개 있고 밖으론 길쭉한 의자 하나뿐이다. 그렇다고 실내에 여러 사람이 들어갈 정도도 아니었다. 실내가 좁으니 차 한 잔 들고나와 밖에서 마시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할리우드 로드는 홍콩의 과거와 오늘을 돌아보며 산책할 수 있어 좋다.

이곳에 커피는 안 판다. 중국, 일본, 인도, 스리랑카 등에서 가져온 차와 케이크, 빵 종류 등을 맛볼 수 있다. 인기 메뉴는 밀크티. 주문하면 곧바로 포트에 끓여 내온다. 케이크 한입에 밀크티 한 모금이면 포호 산책의 별미로 손색없다.

지척엔 차 한 잔 마시며 쉴 수 있는 공원도 있다. 포호의 쉼터 블레이크 가든Blake Garden이다. 넓지 않은 공원이지만 하늘 향해 뻗은 나무들의 기세는 대단하다. 홍콩 역사와 함께 자란 고목들이 이곳을 찾은 사람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여유가 있다면 잔잔한 음악 들으며 책 한 권 읽고 가도 좋겠다.

동·서양, 어제와 오늘의 교집합
오늘날의 홍콩과 올드타운센트럴, 포호를 설명하기 좋은 곳은 PMQ(Police Married Quarters)다. 과거 모습을 최대한 계승하면서 가장 최신의 오늘을 살아가는 곳. PMQ는 1951년 지어진 건물로 과거 홍콩 경찰학교의 기숙사로 쓰였던 곳이다. 건물의 기본 외관은 거의 그대로 보존하면서 곳곳을 현대식 감각으로 리모델링했다.

디자이너들이 직접 만든 액세서리며 옷이며, 인테리어 소품들 천지다.

2014년부터 홍콩의 트렌드를 이끄는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의 창작공간, 편집숍으로 사용되었고 이후 레스토랑과 카페, 팝업스토어 등이 들어오면서 젊은이들의 명소가 됐다. 현재는 홍콩을 찾는 사람이면 필수 코스로 손꼽힌다.

PMQ로 들어서니 입이 떡 벌어졌다. 우리는 한창 6.25 한국전쟁을 치르던 시기에 이렇게 말끔하고 높은(?) 건물을 지었다니. 건축 당시엔 지금과 아주 달랐다 치더라도 기본 골조는 같을 텐데.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과거 홍콩 경찰학교의 기숙사로 쓰였다가 젊은이들의 명소로 자리 잡은 PMQ.

현재 외관은 서울 인사동의 ‘쌈지길’과 많이 닮았다. 건물 구조도, 동선도, 그 쓰임도 비슷해 보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더 그렇다. 디자이너들이 직접 만든 액세서리며 옷이며, 인테리어 소품들까지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것들 천지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다시 할리우드 로드로 나왔다. 골목으로만 다닌다 해도 모자람 없지만 역시 올드타운센트럴의 중심가다. 근처를 어느 정도 돌아봤더니 거리 좌우로 올려다보이는 오래된 건물이 대충 어떤 쓰임이었을지 짐작 간다.

골목마다 오래된 건물이 즐비하지만 영화 풍경 같은 묘한 매력이 있다.
좁은 골목을 걷다보면 여유롭고 낙천적인(?) 고양이를 자주 만난다.

할리우드 로드 끄트머리엔 포팅거 스트리트Pottinger Street가 있다. 영국이 이곳에 들어왔을 때 맞이한 첫 총독 헨리 포팅거Henry Pottinger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곳은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길로 센트럴, 올드타운센트럴을 통해 종일 많은 사람이 오간다.

포호는 골목마다 오래된 건물이 즐비하지만 그래피티 덕분에 촌스럽지 않았다.

포팅거 스트리트를 기점으로 란콰이퐁Lan Kwai Fong이 시작된다. 란콰이퐁은 우리나라 홍대와 강남의 명소를 적절하게 섞어놓은 듯한 분위기다. 동서양의 맛을 내세운 다양한 레스토랑과 바, 라이브 하우스 등이 있어 홍콩으로 날아온 전 세계 젊은이들이 이곳에 모인다. 사실 란콰이퐁의 진짜는 밤이다. 어둠이 찾아오면 거리는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클럽에서 쏟아져 나오는 신나는 음악과 거리를 가득 메우는 젊은 행렬이 낮과는 다른 이국적인 풍광을 보여준다. 새벽 2시에 선배 기자와 맥주 한잔하러 나왔다가 낮보다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거리를 보고 놀라기도 했다. 낮에 차분한 골목 산책을 즐겼다면 밤엔 젊은 열기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 들이켜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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