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달랜다는 것…우드 카빙
나무를 달랜다는 것…우드 카빙
  • 이지혜 기자 | 양계탁 팀장
  • 승인 2017.05.1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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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듯 나무와 맞춰가는 시간

문제가 생기면 즉각 문제와 부딪치려 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나무 앞에선 본능이 그대로 민낯을 드러낸다. 한참 집중해 칼질을 하다 보면, 어느새 결이 바뀐 트러블 지점이 느껴진다. 무의식중에 그곳으로 칼이 간다. 하지만 진짜 우드 카빙을 하려면 그땐 잠시 쉬어야 한다. 가만히 문제를 바라보는 것. 지긋이 바라보다 다시 칼을 대는 것. 나무를 달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숟가락 공방에 필요한 다양한 장비들.

나무와 만나다
적당한 나무를 고른다. 단단한 호두나무는 스푼 카빙의 적합한 재료. 원하는 모양을 그린 후 아랫면을 제거하고 큰 아웃라인을 그려가며 칼질한다. 클램프라 불리는 금속제 집게로 나무를 입체적으로 지지한 뒤, 드로우 나이프로 결에 맞춰 스윽 스윽 잘라낸다. 허리는 의식적으로 곧게 펴고 팔꿈치와 몸이 붙은 상태에서 이두근과 전완근을 사용해 쇄골로 민다는 느낌을 익혀야 한다. 몸 전체를 이용해 칼질해야 팔의 무리가 적다. 기억해야 할 것은 나무는 자를 수 있지만 붙일 순 없다는 것. 디테일한 부분은 후반으로 기약하고, 큰 그림을 머릿속에 새겨가며 모양을 만든다. 손잡이 부분에선 십자로 균형을 잡고, 양쪽의 밸런스를 수없이 체크해야 한다. 모든 감각은 둔해지고 손끝은 예민해진다. 오로지 손끝으로 느끼는 밸런스. 밸런스를 맞추는 것은 원초적 안심을 추구하는 것이다. 안정감을 형성하는 행위다.

환도로 숟가락 아랫면의 보올을 판다.

칼을 쥐다
나무는 시각적인 화려함보다는 편안하고 은은한 미소를 주는 도구다. 때문일까. 우드카빙 특히 스푼카빙은 화려한 것을 싫어하고 아웃도어 활동에서 조용한 소일거리를 원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은근히 퍼져나가고 있다. 카빙 중 자주 맞닥뜨리는 상황은 약한 쪽과 강한 쪽이 마주치는 것. 잘 깎여 나가지 않는 부분, 즉 강한 쪽을 기준으로 모양을 잡고 서서히 밸런스를 맞춰 나가야 한다. 볼 파기는 가장 깊은 부분을 고려하고 시작해야 한다. 끌질은 나뭇결의 직각 방향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타원형일 때 제일 가운데를 중심으로 잡고 좌우 밸런스를 맞춰 나가며 스쿱으로 볼을 파야 한다. 사방의 각이 같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손잡이 경사가 가파르고 입 부분을 완만하게 구현하는 것이 관건이다. 음식물이 입에 들어가는 것 하나에도 수학적 원리가 작용하는 것. 카빙 시작 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숟가락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특히 숟가락의 용도를 나누는 것이 좋은데, 예를 들어 수프를 떠먹는 용도, 샐러드를 퍼 담는 용도, 라면을 먹는 용도 등 구체적일수록 두께 조절이나 구조 설계에 도움이 된다.

마무리 작업에 쓰이는 작은 남경대패

숟가락을 만들다
칼을 다루면 쉽게 손을 다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전의 기본 원칙만 지킨다면 우드 카빙은 매우 안전한 취미 활동이다. 칼의 진행 방향에 손가락이 있으면 안 된다. 큰 근육을 쓸수록 세밀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가만히 앉아 바람을 맞으며 칼을 다루는 것. 끌질하는 파지법에선 지렛대 역할을 하는 왼손이 중요하다. 칼 역시 끝의 날카로운 부분은 디테일에 강하고, 가운데 부분은 정교한 작업에 유용하다. 손과 가장 가까운 안쪽 부분을 쓸수록 강한 힘을 준다. 자르고 파고 다듬다 보면 어느새 숟가락 모양이 갖춰진다. 남은 트러블을 좀 더 다듬는 시간을 보낸 뒤엔 마지막 작업이 남아있다. 미온수에 10분 정도 잠기게끔 담가 놓는다. 일종의 면역이다. 미리 스트레스가 발생하게끔 해 돋아난 가시를 제거하는 것. 이후 통풍이 잘 드는 그늘에 하루정도 말린 뒤 고운 사포나 칼로 2차 가공 한다. 호두오일이나 포도씨유 등을 화장 솜에 묻혀 얇게 바른다. 오일이 많거나 두껍게 바르면 건조가 어렵고 산패하기 때문에 얇게 바라는 것이 포인트. 이 작업을 2~3번 반복하면 끝이다.

숟가락은 매력 있는 우드카빙 소재다.

나무와 연애하다
잠깐 체험한 우드카빙은 마치 연애 같았다. 나무를 처음 만나고 나와 손을 맞춰가며 내게 맞는 모양을 만드는 것. 행여나 일어나는 트러블에선 가만히 생각하기도, 쳐다보기도, 달래보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건 나무를 이기려 하지 않는 것. 의도를 과하게 넣지 않고 자체의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않는 것. 아름다움을 도구로 전환하기만 하는 것. 완성된 숟가락을 보고 있자니 조용한 연애를 마친 기분이다. 시각적인 화려함보다는 편안하고 은은한 미소를 짓는 활동. 우드카빙이 그랬다.

이틀 숟가락 공방
www.instagram.com/keumki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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