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소호’에서 즐기는 문화 여행
‘서울의 소호’에서 즐기는 문화 여행
  • 글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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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속살 톺아보기 | ③신사동 가로수길

▲ 카페와 아기자기한 옷가게들의 조명 덕분에 따뜻한 가로수길 야경

카페, 갤러리, 소호, 그리고 하이브리드 문화공간까지…도심 걷기의 묘미

▲ ‘한국의 소호’라고 불리는 가로수길
아직 차가운 기운이 강해 가로수길의 나무들은 쉬고 있지만, 그 안의 작은 상점이며 사람들의 움직임이 끊임없는 온기를 뿜어낸다. 가로수길에 발을 딛는 순간, 거대한 건물 숲에서 아기자기한 골목으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면 가로수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고개를 돌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뿐. 고개를 돌리는 순간, 마법은 풀려버릴 테니까. 자, 도심 한 복판 골목에서 느긋하게 즐기는 마법 여행. 출발!


‘길’ 이라는 것은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좋다는 나름의 ‘신조’를 갖고 있던 터였기에 도대체 가로수길이 뭐길래 다들 그렇게 난리일까 싶었다. 오랜 시간을 품고 잔가지처럼 엮이고, 꼬이고,  다시 풀리면서 고불고불 이어진 ‘묵은길’에는 세련된 건물들이 잔뜩 들어선 비싼 길이라도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아우라가 있었으니까. 때문에 끽 해야 겨우 10여 년 되는 이 길을 굳이 찾아가 걸어가 보고 싶지는 않았음을 (감히) 고백한다. 더불어 역사와 전통의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도 고백한다. 시간이 주는 무게감에 취해 미처 놓치고 있던 ‘무언가’를 가로수길에서 발견했으니까.

‘한국의 소호’라고 불리는 가로수길의 시작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가로수길은 인사동에서 옮겨온 소규모 화랑과 건축사무소가 드문드문 거리를 점한 한적한 거리였다. 독특한 카페와 레스토랑, 패션 매장들이 즐비한 현재 가로수길의 모습은 1990년대 중반부터 파고든 디자이너들의 작업실 겸 쇼륨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남성복 디자이너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정욱준의 <론커스텀>이 당시 조용하게 오픈했고, 뒤를 이어 임선옥, 곽현주, 그리고 서상영도 터를 잡았으니까. 지금은 최지형의 <쟈니헤이츠재즈쇼룸>만이 가로수길 대로변에서 살짝 들어간 골목을 지키고 있다.

▲ 빈티지 매장을 비롯해 명품 매장까지 다양한 제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 비로소 ‘소호’라는 명성에 걸맞는 다양한 빈티지 매장이며 명품(아울렛) 매장들이 속속 들어선다. 패기로 뭉친 젊은 아티스트들의 인테리어 사무실, 사진 스튜디오, 앤티크 가구점, 디자이너 소품가게와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도 그 뒤를 잇는다. 이 젊은 아티스트들이야말로 지금의 가로수길의 토대를 만든 숨은 주역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소호’란 ‘South of Houston St.’에서 머리글자만 따온 것으로, 세계적인 명품 매장과 브랜드 매장이 늘어서 있으면서 동시에 거리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는 뉴욕 맨하튼의 대표적 거리를 말한다. 지금은 각종 패션 매장으로 가득 찬 대중적인 거리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저렴한 집세와 작업하기 좋은 공간으로 예술가들이 살던 동네였다고. 언뜻 듣기에도 가로수길과 닮았다.


서울에서 만나는 ‘소호’,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
가로수길은 결코 길지 않다. 메인 도로만 부지런히 걷는다면 왕복 30분이면 충분하리라. 하지만 가로수길은 또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그저 걷는 데에만 집중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구경할 것도, 맛보고 싶은 것도 많다. 세련된 카페를 보면 잠시 느긋한 게으름뱅이 ‘파리지엔느’가 되고 싶고, 명품 아울렛 매장이며 빈티지 매장에 다가가면 가까스로 재워둔 ‘지름신’이 요동을 치며 깨어난다.

지하철 3호선 신사역 8번 출구로 나와 직진 하다 <빠리바게트>가 보이면 하나, 둘, 셋, 좌회전 한다. 좌회전 했을 뿐인데, 순식간에 동네 풍경이 달라진다. 느긋하고 나른한 (비싼) 카페,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크고 작은 빈티지 매장과 브랜드 매장, 그리고 카페를 겸한 다양한 형태의 작업실들이 저들끼리 속닥거리고 있다.

해외 유학파들이 내놓은 뉴욕풍의 빈티지 매장과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다양한 카페 등으로 무장한 가로수길은 20~30대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본래 가로수길의 주인은 작은 임대 사무실과 주택들이었다. 덕분에 특유의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냈던 것이고. 불과 몇 년 사이에 급격한 상업화로, 실력있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찾아들던 초창기 가로수길의 명성은 빛바랜 추억이 됐다. 이젠 가로수길 대로변을 피해서 젊은 주인들은 가로수길 왼쪽의 행복길이나 오른쪽의 학수정길, 그리고 그 사이의 틈새로 새로운 둥지를 개척하고 있다.

▲ 소호, 카페, 갤러리, 그리고 이들이 자가 결합한 하이브리드 문화공간이 가로수길을 진화시키고 있다
가로수길에서는 옷 외에도 다양한 쇼핑, 그리고 복합문화공간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토이 전문점 <마이페이보릿> 세계 각국의 진귀한 초를 만날 수 있는 <베리진>, 갤러리 카페 <스타트>가 가로수길의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단순히 소비가 이루어지는 ‘먹고 노는 동네’가 아니라 두발로 걸으면서 보고 느끼는 ‘문화 거리’로 자리 잡은 가로수길의 지나친 상업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미 대기업의 패션 브랜드와 대형 카페들이 가로수길의 대로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가로수길 옆으로 잔가지처럼 뻗어나가는 일명 세로수길 골목골목으로 작은 소품가게들이, 작은 빈티지 매장들이 들어서고 있다. 가로수길 옆 골목으로 뻗어나가는 작은 골목들의 몸짓이, 그들의 시간이,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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