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어부 주름살 보듬는 영덕의 푸른 길
늙은 어부 주름살 보듬는 영덕의 푸른 길
  • 글 사진·진우석 출판팀장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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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 길 | ③ ‘영덕 블루로드’

▲ 영덕 블루로드란 이름과 잘 어울리는 창포말등대는 시원한 바다가 일품이다. 게 형상을 한 등대가 재미있다.

해안절벽, 작은 포구, 전망 좋은 산 넘나들며 50㎞ 이어져

‘영덕 블루로드’란 말에 푸른빛 내뿜으며 일렁거리는 바다가 떠올랐다. 수려한 해변과 야트막한 언덕이 절묘하게 어울릴 것이란 예감은 적중했다. 영덕의 산과 바다를 아우르며 50㎞ 이어진 블루로드는 기암괴석의 갯바위와 드넓은 해수욕장, 목은 이색 유적지 등 청정 자연과 문화유산이 한바탕 어우러진다.


▲ 영덕 신재생에너지관의 바람개비 공원. 풍력단지는 강원도 대관령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전국을 휩쓴 걷기 열풍이 점입가경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도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를 만들었다. 전국 7개 코스로 길이는 340km에 이른다. 경상북도 영덕에서 강원도 삼척까지 이어지는 ‘동해 트레일’ 74km도 그 안에 속해 있다. 동해트레일의 영덕 구간인 블루로드는 강구항에서 시작해 고래불해수욕장까지 약 50㎞ 이어진다.

바람언덕 너머 창포말 등대까지, 1코스
블루로드는 영덕대게의 집산지 강구항에서 시작한다. 강구터미널 앞에는 ‘영덕 블루로드’ 안내판이 서 있고, 바닥에는 노란 화살표가 강구항 쪽을 가리킨다. 화살표를 따라 다리를 건너면 강구항. 영덕군청 강영화 계장이 일러준 대로 대게종가 식당에 들어가 도보여행자 여권을 받고 도장을 받았다.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7개 코스는 하나의 여권으로 각 코스마다 도장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도장 찍힌 여권은 발품으로 만든 자신만의 소중한 기념품이 된다.

강구항은 삼척에서 내려온 오십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이라 어자원이 풍부하고 풍광이 수려하다. 마침 대게 철이라 노천 어시장은 북적북적 활기를 띤다. 어시장 끝머리 인심 좋은 할머니 포장마차에서 방어 한 마리에 소주 한 병의 유혹을 물리치고 길을 나선다.

항구를 벗어나 골목길을 오르면 정자가 나오고, 여기서 강구항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오십천이 바다를 만나는 지점에 방파제가 세워졌고, 그 너머 바다는 거칠게 햇빛을 퉁겨낸다. 불과 5분 올라 만난 강구항의 새로운 모습이다. 영덕 블루로드는 1코스가 좀 힘들고 지루하다. 강구항에서 고불봉(235m), 다시 고불봉에서 풍력단지 임도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고불봉까지 이어진 길이 영덕군에서 2004년 개설한 ‘해맞이 등산로’다. 거리는 좀 멀지만 산길 내내 바다를 볼 수 있다. 고불봉(235m)에 오르니 사방이 절경이다. 동쪽으로 24기의 풍력발전기가 웅장하게 늘어섰고 남쪽 내연산에서 서쪽 주왕산으로 이어진 낙동정맥의 마루금이 거대한 장벽을 이룬다.

고불봉을 내려오면 강구~창포 임도가 시작된다. 본래 이곳은 나무가 빽빽했는데, 10여 년 전 큰 산불로 모두 타버렸다. 산불 후에 임도가 뚫렸고 풍력단지가 조성됐다. 산비탈을 부드럽게 돌고 고개에 오르자 풍차 너머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눈이 쌓이면 대관령 풍경과 비슷하다.

임도를 내려오면 신재생에너지관. 이곳 전시장 뒤편 바람언덕에 오르면 거인 나라에 온 느낌이다. 거대한 풍차들이 빽빽하고, 시퍼런 바다가 펼쳐진다. 1코스의 백미는 풍력단지에서 내려와 만나는 창포말등대다. 게 다리 형상의 등대와 바다가 어울려 이국적이다. 특히 이곳의 시퍼런 바다는 블루로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로 꼽힌다.

▲ 영덕 블루로드의 출발점인 강구항에서 5분쯤 오르면 시원한 전망이 펼쳐진다. 강구항은 오십천과 바다가 만나 어족 자원이 풍부하고 풍광이 수려하다.

해안절벽 따라 축산항까지, 2코스
창포등대에서 길은 본격적으로 해안을 따른다. 창포등대와 이어진 해맞이공원에서 대탄리를 지나 석리까지 30분쯤은 도로를 따라야 한다. 어촌체험마을인 석리에서 길은 은밀한 해변으로 숨어든다. 가파른 언덕에 집들이 들어선 석리는 60~70년대 어촌 풍경을 오롯이 담고 있다. 여름철에는 바닷물을 막은 독살 같은 해수풀장에서 수영도 하고,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길이 없을 것 같은 절벽으로 철계단이 놓여 있다. 모퉁이를 돌자 수려한 해안절벽이 시작된다. 석리란 이름처럼 해안은 온통 돌밭이다. 중간 중간 나무계단이 있어 걷기 괜찮다. 시퍼런 파도가 몰려와 해안을 연달아 때리지만, 절벽은 요지부동이다. 푸른 바다, 검은 돌, 부서진 흰 파도가 어울려 기막힌 해안 풍경을 빚어낸다.

▲ 해안절벽과 시퍼런 바다, 부서지는 포말이 기막히게 어울리는 석리 해안. 석리에서 죽도산까지 이런 해변길이 이어진다.

해안을 빠져나오면 경정3리. 여기서 도로를 좀 따르면 대게원조마을인 차유마을로 들어선다. 마을 입구에는 대게의 원조임을 알리는 비석과 대게 형상의 해학적인 장승이 서 있다. 고려시대부터 이곳에서 잡은 게의 다리가 마치 대나무 마디를 닮았다 하여 대게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추운 날 바다에서는 영하 20도가 넘어요.”

작은 배 서너 척이 정박한 포구에는 화톳불을 피우고 노부부가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40년 넘게 바다를 일터 삼아 생계를 꾸려왔다. 노부부를 다시 만난 곳은 돌산횟집 민박집. 운 좋게 노부부가 운영하는 집에 든 것이다. 알고 보니 아저씨 이름이 김돌산이었다.

“게 맛 아는 사람은 이곳 대게를 최고로 친다 아닙니까. 그래서 다른 곳보다 값도 비싸요.”

물가자미회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노부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덕의 작은 포구들에는 김돌산 아저씨처럼 늙은 어부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었다.

▲ 대소산 봉수대에 오르면 그동안 걸어온 길들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가운데 작은 봉우리가 죽도산이고 그 오른쪽으로 걸어온 해변이 이어진다.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블루로드를 시작한다. 떠오르는 해를 배경으로 조업에 나서는 어선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차유마을에서 축산항까지 다시 해안길을 따른다. 갯바위와 해안절벽 사이에는 손바닥만한 모래사장이 숨어 있다. 반달 모양으로 움푹하게 들어선 해변이 절경이다. 여름철이라면 그대로 옷을 훌훌 벗고 뛰어들면 좋겠다. 

축산항의 상징인 죽도산이 점점 다가오더니 어느덧 코앞이다. 수백 년 동안 이곳의 작은 대나무는 화살로 쓰였다. 해안에서 죽도산으로 이어진 길에는 커다란 다리를 놓고 계단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나무 데크를 놓은 죽도산 산책로는 소문처럼 절경의 연속이었다(공사는 2월 말에 완공 예정이다). 축산항은 강구항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지만,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포근하고 백사장과 포구를 두루 갖춘 멋진 곳이다.

▲ 차유마을의 해학적인 게 장승과 원조대게마을 비석.

목은 이색 유적지와 고래가 놀던 고래불해수욕장, 3코스
축산항 버스정류장 뒤편의 야산으로 올라붙으면 산길이 시작된다. 월영정 정자터를 지나면 솔숲 우거진 능선길이 이어진다. 30분쯤 지나니 하늘이 열리며 대소산(282m) 봉수대가 나타난다. 대소산은 인근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조선 초기의 봉수대가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봉수대 앞에서 뒤를 돌아보니, 전망이 기막히다. 아담하고 예쁜 축산항 오른쪽으로 차유마을, 석리, 그리고 멀리 풍력단지까지 블루로드의 해안선이 한눈에 펼쳐진다. 반대쪽으로는 영해가 낙동정맥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멀리 울진 후포가 아스라하다.

봉수대에서 내려와 한동안 능선을 따르면 느닷없이 정자가 앞을 막는다. 망일봉(152m)으로 예전 선비들이 일출을 즐기던 곳이다. ‘밀려오던 물결 소린 /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처럼 / 땅 뿌리를 쪼개누나… / 만약 겨드랑이에 날개 생겨날 수 있다면 / 아득히 먼 만장 구름 위로 한 번 날아 보련만.’

안내판에 적힌 주세붕의 ‘망일봉’ 시를 읽어보니 절로 호연지기가 느껴진다. 정자 뒤로 세찬 바람이 할퀴는 망망대해를 날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망일봉을 내려와 구름다리를 건너면 목은 이색 등산로가 이어진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고려문학을 대표하는 목은 이색 생가터와 기념관이 서 있다. 기념관에서 내려오면 고택 30여 채가 잘 보존된 괴시리 전통마을이다.

▲ 강구항은 영덕 대게의 집산지로 유명하다. 노천 시장에서 대게를 파는 영덕 아가씨.
괴시리를 지나 한동안 도로를 따르면 대진이다. 블루로드의 마지막은 대진해수욕장, 덕천해수욕장, 고래불해수욕장이 연달아 나타나는 약 5㎞ 구간. 대진해수욕장은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의 배경이 된 곳이다. 소설의 주인공 대학생 영훈이 창수령을 넘어 이곳에 도착해 “바다, 나는 결국 네게로 왔다. 너는 갖가지 모습으로 나를 손짓하고 수많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하며 폼 잡고 중얼거린 곳이다.

끝없는 백사장과 솔숲이 끝없이 이어지는 길은 황홀하면서도 고되다. ‘고래불’은 목은 이색선생이 고래들이 하얀 분수를 뿜으며 노는 것을 보고 ‘고래가 노는 펄’이란 뜻으로 ‘고래불’이란 이름을 붙인 데서 유래했다. 기어코 드넓은 고래불해수욕장에 도착, 배낭을 멘 채 주저앉았다. 모래가 설탕처럼 곱다. 여기가 ‘영덕 블루로드’의 종착지다. 하지만 길은 울진을 거쳐 삼척까지 계속 이어진다.

‘영덕 블루로드’ 만든 영덕군청 강영화 계장
“인심, 풍광, 먹거리 풍부한 영덕으로 오세요”

“뭐니 뭐니 해도 해안 경치가 좋아요. 석리나 차유마을은 우리나라에 별로 남지 않은 옛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요.”

영덕군청 강영화 계장은 블루로드를 만든 장본인이다. 그동안 꾸준하게 추진한 해맞이 산길과 해안 정비 사업이 블루로드의 밑돌이 되었다. 기존에 있던 길을 잘 어울리도록 코스를 짠 것이다. 영덕대게 축제가 열리는 봄철이면 많은 사람이 블루로드의 일부라고 걸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영덕의 진풍경이 그 속에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덕대게를 싸게 구입하는 방법은 강구시장이나 영해시장에 가면 품질 좋은 게를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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