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없는 자전거 편집매장, 루비워크샵
‘자전거’ 없는 자전거 편집매장, 루비워크샵
  • 오대진 기자 | 정영찬 기자
  • 승인 2017.05.02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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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스토리텔링 “자전거가 승마가 됐으면 좋겠어요”

낯설었다. 논현동 한복판에 4층 빌딩 모두를 사용하는 자전거 숍이라니. 자전거인들이라면 응당 반가워야 했지만 첫 인상부터 살갑게, 따뜻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달콤 쌉싸름한 커피향과 함께 루비워크샵RUBI WORKSHOP을 둘러보았다. 잠시, 굳이 ‘자전거’를 내세울 필요는 없었다. 사람 냄새 나는, 사는 이야기면 충분했다.

엔지니어바 & 커피숍
입구에 들어서면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혼란에 빠진다. 적어도 국내에서 일반적인 자전거숍을 가본 이라면 말이다. 분명 자전거숍인데 가장 먼저 마주치는 공간에 자전거가 없다. ‘스피릿SPIRIT’이라는 블링블링한 커피머신이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다. ‘음, 난 지금 커피를 마시러 온 거야. 맞아’ 깔끔하고 심플한 분위기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허나 마냥 여유롭고 감미롭지는 않다. 맞은편, 분주한 움직임들에 자연스레 귀가 쫑긋, 커피 잔을 집어 들고 발걸음을 옮긴다. 그래, 이제 좀 자전거숍 같다. 너저분한 듯 감각적으로 정돈된, 틀에 박히지 않은 섹시함이 묻어난 공간에서 자전거 분해정비를 하는 메커닉들의 손이 분주하다. 동시에 고객들과의 대화도 지속된다. 문제점과 개선방안, 정비 팁 등 그들의 입을 떠난 이야기들은 자전거 오너들의 귀에 ‘쏙 쏙’ 들어간다.

국내 자전거숍으로는 이례적인 구성, 권오현 대표는 “‘자전거’라는 냄새를 다 뺐어요. ‘자전거 매장이 판매만을 위한 공간이어야만 할까’라는 질문을 해봤습니다. 1층에 엔지니어바와 커피숍만 있는 이유가 이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1층에 산재해 있으면 조금 어지럽죠. 고객도 힘들고, 저희도 힘듭니다. 정비에 집중할 수도 없고요. 한 번 자전거를 구매하면, 다시 재구매 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흐릅니다. 100이라는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 중 20 정도는 힘차게 달리고 나머지 80은 쉬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죠. 물론 자전거를 보러 오시는 분들도 많지만, 대부분은 휴식과 정비를 하러 오신다”며 루비워크샵의 콘셉트를 전했다.

편식, 편중 말고 밸런스
커피숍과 엔지니어바를 지나면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손짓한다. 투어링 준비를 마친 시크한 빨강 몰튼을 지나면 로드바이크부터 하이브리드, 투어러, 엔듀런스, MTB, 픽시, 미니벨로 등 다양한 자전거들이 눈에 들어온다.

파츠도 다양하다. 오르트립과 툴레 등 방수 가방과 캐리어가 자전거를 여행용, 일상용, 마트용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하고, 헬멧과 클릿슈즈, 안장, 핸들바, 바테잎, 쪽모자, 양말, 장갑 등 다양한 파츠들 또한 컬러와 종류로 ‘다양성’에 방점을 찍는다.

권 대표는 “주력 브랜드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전반적으로 고르게, 편중 없이 취급하려 노력합니다. 편중을 하는 순간 편집가게라는 의미가 사라져 버립니다. 최대한 다양한 제품들을 구비해서 고객들이 다양한 제품을 만나보고 그 ‘다양성’ 안에서 선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다양성의 가치를 설명했다.

철학을 파는 편집숍
한 층 더 오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2층이 카시오라면 3층은 롤렉스다. 몰튼, 피나렐로, 스페셜라이즈드, 바소, 치폴리니 등 최상급 바이크와 프레임들의 공간이다. 2층도 마찬가지이지만 3층은 조금 더 특별하다. 자전거 역사가 살아 숨 쉰다. 벽면 한 칸 한 칸을 장식하고 있는 프레임은 마치 박물관의 예술작품과 같이 그 우아함과 섬세함을 뽐낸다. 사실 맞다. 이들이 있어야 할, 있어야만 할 자리가 바로 이런 자리다. 가격으로만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길게는 100년 이상의 역사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들은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자전거 역사는 10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커피보다도 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원두의 역사는 자전거 역사보다 훨씬 뒤쳐져 있는데 말이죠. 몰튼의 언어를 모르면 그냥 몰튼인 것이죠. 그냥 값비싼 고철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오스틴 미니를 만들면서 거기에서 받은 영감으로 몰튼의 서스펜션이 제작되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서스펜션에 대한 개념과 몰튼의 이해도가 달라집니다. 자연스럽게 구조에 대한 해석력이 생기고, 몰튼이 갖고 있는 노면 추종성과 변속기의 장단점 등을 알게 되죠. 제품에 대해서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 공간은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권오현 대표는 고객들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도 루비워크샵의 의무라 말한다.

왼쪽부터 김건일 매니저, 최자람 마스터, 권오현 매니저, 이원규 마스터

INTERVIEW
“자전거가 승마가 됐으면 좋겠어요”
권오현 루비워크샵 대표


매장의 첫인상이 독특합니다. 자전거가 없고 커피숍과 엔지니어바가 있네요.
커피숍은 사실 라파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영국 런던 피카딜리 라인 핵심 상권에 라파가 있습니다. 자전거 관련 매장인데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요. 전략이 멋졌습니다. 비구매고객을 고객화 하는 과정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커피매장인 줄 알고 들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옷이 너무 예쁜 거죠. 라파 이전 비슷한 콘텐츠와 퀄리티를 가진 자전거 브랜드들이 있었지만 하지 못했던 영역입니다. 라파가 주목받는 부분이죠. 저희도 근방에 거주하거나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점심시간에 커피 한 잔 하러 오십니다. 자전거를 모르시는 분들도 궁금한 사항을 하나씩 여쭤보며 자전거에 관심을 갖습니다. 행복한 순간 중 하나죠.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은 정비를 받을 때 전문적인 공구를 이용한 서비스를 받는데 자전거 신에서는 왜 되지 않을까?’ 메커닉 룸, 즉 엔지니어바는 이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조립된 자전거는 두카티 몬스터나 BMW 모터사이클, 준중형 차량 등과 가격이 비슷합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지금껏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죠. 당연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 당연한데 말이죠.

이 공간은 메커닉을 위한 공간입니다. 전략적이라기보다는 메커닉이 존중 받기를 원합니다. 메커닉이라는 직업이 멋있고 섹시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페라리 엔지니어를 보면 멋있어 하잖아요. 사실 만지는 것은 똑같은데 말이죠.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저희의 답입니다.

매장 규모에 대한 물음표도 있었어요.
시장과의 괴리가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 공간의 형태가 기존 시장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폭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돈의 물결이거든요.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비즈니스의 형태와 시스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존 형태를 고수 했다가는 저희가 위태로울 것 같았어요. 작은 규모로도 시작할 수 있었지만 신규 유저 창출하기가 쉽지 않고, 오래 갈 수 없다고 생각했죠.

반면 자전거를 잘 몰랐던 일반 고객들은 위화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아웃도어에서 스노우피크나 파타고니아 매장에 익숙한 고객들이요. 가구 거리에 있다 보니 가구 매장인 줄 알고 오시기도 하고요. 사실 유럽 등에서는 이게 일반적인 매장 형태인데 말이죠.
저희가 하는 정비나 판매의 언어와 태도들이 대중음악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재즈가 되고 싶습니다. 루비워크샵만의 예술 행위로 말입니다.

다른 카테고리의 편집숍과 비교해도 특색이 있어요.
기본적인 기조는 ‘자전거가 승마가 됐으면’입니다. 자전거 매장에 갔더니 가격은 라이카랑 비슷한데 받는 서비스는 라이카보다 엉망인 거예요. 개인적으로 이게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전거 매장은 작아야 한다’, ‘자전거 매장은 어둡고, 거기서 뭔가 힘들게 정비하는 것 같다’ 이런 것들 말이죠. 라이카, 샤넬 가방과 가격이 비슷한데 말이죠. 샤넬 매장에 가서 ‘할인 안돼요?’라고 이야기 하진 않잖아요.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앞서 말한 엔지니어바와도 그 맥락을 같이 합니다.

기본적으로 인테리어에 시간을 쓰고 조명이나 컬러 등에 고민을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래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꼭 승마일 필요는 없습니다. 자전거 시장의 가장 큰 장점은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유니클로 J는 고급브랜드를 런칭하기 위해 사활을 겁니다. 이유는 사람들이 이미 옷을 중저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 시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실 이미지 개선이 필요한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자전거는 시계 매장과 비슷합니다. 이미지의 제약이 크지 않죠. 시계 매장에서는 세이코도 팔면서 롤렉스도 판매합니다. 대신에 핵심은 편집자의 역량입니다. 저희 같은 경우 다른 매장과의 비교우위는 결국 ‘큐레이션’입니다.

루비워크샵의 뜻도 궁금해요.
루비워크샵에서 ‘워크샵’이라는 개념 자체가 ‘바이크’ 또는 ‘사이클’의 대체 개념입니다. 워크샵이 카메라 자동차처럼 메커니즘을 지향하는 업이고 그것에 대한 표현이죠. 루비는 롤렉스나 브레게 등 하이엔드 시계의 분해도를 보고 착안했습니다. 그 안 베어링에 인조루비를 사용하더라고요. 매력적이었습니다.

‘왜 루비를 사용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첫 번째는 ‘아름답다’였어요. 많은 수가 들어가는 것이 아닌데, 그 차가운 기계적인 부분에서 시각적으로 굉장히 화려함을 만들어 줍니다. 내구성도 일반 소재에 비해 월등하고, 마모성도 뛰어나 기계학적으로 정교하게 들어맞습니다. 목적성에 맞는 것이죠. 이 3가지 키워드가 자전거랑 비슷하더라고요. 그래서 ‘루비워크샵’이 탄생했습니다.

루비워크샵
11~20시 / 매주 월요일 휴무
서울시 서초구 신반포로 320
02-516-8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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