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밍 부부 이명희·최석문 선수
클라이밍 부부 이명희·최석문 선수
  • 임효진 기자 | 양계탁 기자
  • 승인 2017.04.23 06: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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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등반파트너이자 소울메이트

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이명희, 최석문 선수. 올해로 45살인 동갑내기 두 선수는 24살 때 산에서 처음 만나 여전히 친구같이 지내는 국내 대표 부부 클라이머다. 부부는 자신의 생일도 까먹고 서로의 생일도 잊어버리고 챙기지 않을 때가 많다. 남편은 구두나 명품백 따위를 선물해 본 적도 없다. 그래도 둘 사이에 이런 일로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여전히 가장 마음을 잘 알아주는 친구이자, 그리운 연인이고, 아이와 부모님을 부양하는 가족이며 가장 믿음직한 등반 파트너이다. 또한 여전히 현역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최고 기량의 선수이기도 하다. 클라이머 부부가 사는 법이 궁금해졌다.

최석문
명희를 처음 본 건 인수봉이었다. 한 여자애가 수많은 남자 선배들을 제치고 거침없이 바위를 타고 있었다. 그녀는 강하고 누구보다 빨랐으며 자유로웠다. 바위 위에서 놀이터처럼 뛰어놀았다. 나는 산을 탄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그녀가 더 대단해 보였다. 멋있었다.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어쩐지 언젠가 다시 만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명희
소개할 사람이 있다는 선배를 따라 가래비 빙벽장으로 갔다. 남자애 한 명이 걸어 나왔는데 어젯밤 비박을 했는지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하얀 이를 드러내고 순박하게 웃었다. 석문이었다. 첫눈에 반할만한 외모는 아니었지만, 그 미소가 썩 나쁘지 않았다. 아니, 너무 착해 보여 내가 보듬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땐 내가 더 강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나는 19살 때부터 산에 다니기 시작해 누구보다 뛰어난 기량을 과시하고 있던 때였다. 여성 클라이머가 많지 않은 상황이라 더욱 내가 돋보였고 또 나는 정말 잘했다. 그땐 정말 무서울 게 없었다. 나는 선등으로 올라가서 줄을 깔았고 그 줄을 잡고 남자 선배들이 올라왔다. 모두 다 내 발아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최석문 명희는 지금은 아이 낳고 살면서 부드러워졌지만 처음 만났을 때는 눈매도 사납고 굉장히 차가워서 말 붙이기도 어려웠어요. 사실 명희를 만나기 전에는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어서 여자는 다 명희 같은 줄 알았어요. (웃음) 그래도 좋아하는 게 같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었죠. 생각해보면 산을 좋아하고 등반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멋있어서 좋아했던 거 같아요. 산을 열심히 탄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명예가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좋아해서 매진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멋있었어요.

이명희 처음 만났을 당시 저는 산에 다닌 지 5년쯤 됐을 때라 사실 초심을 잃었다고나 할까, 으레 하는 일처럼 클라이밍을 했는데 석문이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마치 산에 처음 입문하던 제 모습을 보는 거 같았어요. 그러더니 얼마 뒤에는 알프스 3대 북벽을 올랐어요. 저도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말이죠.

저는 그 다음 해에 요세미티를 다녀온 후 친구인 채미선과 다음에 같이 가기로 약속했는데 석문이가 카라코룸 멀티 4 원정을 간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작년에 다녀온 요세미티를 또 갈지 안 가본 히말라야를 갈지 고민을 하다 결국 안 가본 곳을 택했어요.

처음 가 본 고산 등반은 상상을 초월했어요. 아이젠 밑으로 달라붙는 눈 뭉치를 털어내면서 가야 하는데 다리가 풀려버려 눈을 털 기운조차 없었죠. 결국 눈 뭉치가 쌓여서 발이 미끄러졌는데 다행히 아래 있던 남편이 저를 잡고 제동을 걸었어요. 만약 저를 잡지 않았다면 저는 크래바스(빙하 낭떠러지)로 떨어졌겠죠. 남편의 눈썹 위에 있는 상처가 그때 생긴 거예요. 미끄러지면서 제가 아이스바일을 떨어뜨려서 남편의 얼굴을 찍었어요. 피가 많이 났고 결국 둘은 내려 왔어요. 정말 미안했어요.

최석문 힘들었는데 잘 됐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그 다음 번에도 위기가 있었어요. 아내는 그때 몸에 이상이 생겨 먼저 베이스캠프로 내려간 상황이었어요. 저는 봉우리에서 자고 있었는데 용변을 보다 발을 헛디뎌서 신발이 빠져 버렸고 신발이 수천 미터 아래로 떨어졌어요. 고산에서 신발을 잃어버렸다는 건 목숨을 바꾸는 일이나 마찬가지예요. 빙벽 길을 걸어 내려가야 하니까요. 그래도 아이젠과 비닐봉지를 이용해 겨우 캠프로 내려왔어요. 명희는 그때 많이 걱정했다고 하면서 제게 신발을 가져다줬어요. 저는 빙벽이 끝나는 지점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야생화를 꺾어 선물하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프러포즈였겠네요.

이명희 24살 때 처음 만나서 29살 때 결혼했어요. 카라코룸 멀티 4 등반을 하고 돌아온 지 3개월 만이었죠. 그땐 뭐가 그리 급했는지(웃음). (결혼)할래? 하고 물었더니 ‘하자’고 해서 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 아들 보건이를 낳았고요. 거의 매일 산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이제는 산에 갈 수 없고 3시간마다 수유를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답답했어요. 결국 우울증이 왔어요. 너무 힘든 시간이었죠.

제대로 된 등반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6개월 무렵부터는 캐리어에 태우고 산에 갔어요. 초봄에 인수봉에 시산제 하러 간 게 시작이네요. 그 뒤로는 아이를 싸개로 싸서 산에 데리고 다니면서 등반을 했죠. 그때 정말 열심히 했어요.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그 시간이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아이가 조금 크고 난 후에는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남편과 등반을 하러 갔죠. 아직 수유할 때라서 3시간마다 젖이 돌았지만 유축을 하면서도 등반을 하러 갔어요. 그래야 좀 살 것 같았어요.

누군가에게는 낯설지 모르지만 이게 저희가 사는 방식이에요. 저희는 남들 사는 모습과 우리를 비교하지 않아요.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지도 않고요. 돈을 더 많이 벌어서 좋은 차로 바꾸고 싶거나 큰 집으로 옮겨가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장비 욕심은 있어요. 가끔 결혼기념일에 새로 나온 암벽화를 같이 사서 신기도 하고요. 생일 선물로 안전벨트를 선물하기도 해요.(웃음) 장비 선물 받았을 때가 제일 좋아요.

최석문 살면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남들이 볼 때 우리는 산에만 다니는 부부 같을지 몰라도 그렇지 않아요.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우리는 산에 자주 가고 좋아할 뿐이지 사는 모습은 남들과 비슷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아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좋아하는 게 비슷해서 그럴 거예요. 만나는 사람도 거의 같고 서로의 친구도 모르는 사람이 없죠. 비밀도 없고요. 가족을 위해 가장의 역할을 할 때도 먹여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는 일이고 가족이 행복해야 저도 행복하니까요.

이명희 전생에 제가 나라를 구했습니다.(웃음) 사실 저는 좋은 엄마도 아니고 훌륭한 아내도 아니에요. 요리도 못하고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것도 아니죠. 보건이한테는 이야기했어요. ‘엄마는 보건이 엄마로만 살 생각이 없어. 나는 이명희로 살 거야. 엄마는 엄마 인생이 중요해. 그리고 너는 계속 우리와 함께 살 수 없고 어느 정도 크면 나가주면 좋겠어’라고요. 공부해서 좋은 대학가라고 강요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공부는 꼭 학교 가서만 하는 게 아니라 산에 가서도 배울 수 있다고 꼬여서 산에 데리고 다녔죠.(웃음) 그런데 요즘에는 한 번씩 요리도 해요. 남편이 16년을 기다리니 드디어 요리해준다고 말하더라고요. 물론 돼지고기를 넣은 미역국을 해줘서 먹지도 못했지만요.

최석문 시도하진 마세요.(웃음)
이명희 그렇다고 제가 엄마나 아내의 역할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에요. 남편의 좋은 점이 제가 엄마가 아내의 모습으로도 살 수 있도록 기다려줘요. 생각할 시간을 준다고나 할까요? 저한테 내 다름의 시간이 주어지면 아이 밥은 챙겼는지, 학교생활은 어떤지 생각해 보게 돼요. 요즘에는 제가 양말 아무 데나 벗어놓지 말라고 잔소리도 해요.(웃음)

최석문 부부들이 서로 기다려주지 못해서 많이 싸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내는 좀 다르잖아요. 다른 사람처럼 살기를 바라지 않아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제일 많이 하고,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보건이 엄마 이전에 이명희 자신으로 사는 게 가장 중요해요. 명희는 명희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최석문
1998 몽블랑, 아이거, 마터호른, 그랑드죠라스 등정
1999 인도 가르왈 히말라야 탈레이샤가르(6904m) 등반
2007 파타고니아 파이네 중앙봉 한국초등
2008 파키스탄 카라코람 바투라2봉 (7,762m)세계 초등
2011 헌터봉 등정(Mt' Hunter 4,441m, moonflower)
2012 알레스카 헌터봉 등반
2013 시에라 네바다 인크레더블 헐크 등반
現 UIAA 아이스클라이밍 국제 루트세터

이명희
1999 요세미티 엘캡 노즈(A2), 조디악(A3)등반
2001 파키스탄 카라코람 멀티4 등반(카체블랑사, 혼보르, 무스뜸, 레이디핑거)
2008 남미 파타고니아 파이네 중앙봉 등정
2009 설악산 적벽 에코길, 독주길 자유등반(여성최초)
2011 전국 아이스클라이밍 선수권대회 1위
2012 아르헨티나 피츠로이(3,375m) 등정(국내여성 최초)
2014 중국 리밍 크렉 등반
2015 UIAA Ice Climbing World Cup(KOR) 2위
2015 유타 인디언 크릭 크렉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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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소 2018-06-14 17:08:39
너무 멋있어요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