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없는 자작나무 숲을 찾아서
미세먼지 없는 자작나무 숲을 찾아서
  • 김경선 차장|사진 정영찬 기자
  • 승인 2017.04.12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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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수산리~어론리 22km 임도 트레킹

새파란 하늘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언젠가부터 한반도의 봄은 잿빛을 띄는 날이 더 많아졌다. 미세먼지가 점령한 하늘. 청명한 날씨와 화사한 꽃망울의 향연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봄은 더 이상 설렘의 계절이 아니다. 그러나 강원도 깊숙한 산골 인제에서는 다르다. 이곳의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공기는 청명했다.

인제 수산리의 임도길은 산등성이를 따라 끝없이 굽이쳤다.

집 앞 공원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연분홍 진달래와 노란 산수유가 앞장서 봄을 노래한다.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 매화도 하얀 얼굴을 수줍게 드러냈다. 천천히 찾아온 봄이 절정을 향해 바쁘게 달리는 모양새다. 그런데 봄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이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생명이 움트는 봄의 역동성에 늘 압도당했던 기자는 봄을 타곤 했었다. 깨끗하고 투명한 날씨가 주는 나른함과 화사함으로 물든 대지는 사무실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려야하는 현실과의 괴리감으로 봄을 설렘의 계절인 동시에 잔인한 계절로 만들어버렸다.

언젠가부터 봄이 봄 같지 않다. 투명한 봄의 이미지는 이제 남의 나라 이야기다. 미세먼지가 점령한 대기, 코끝이 아리는 매캐함, 잿빛으로 물든 하늘은 봄을 기다리는 뭇사람들의 기대를 일순간에 무너뜨렸다. 우리는 더 이상 깨끗한 봄을 만날 수 없는 걸까.

인제의 늦은 봄,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길을 걷다 만난 버들강아지.

깨끗한 봄을 찾아서
이른 아침, 서울에서 꼬박 2시간 반을 달려야 도착하는 강원도 인제 수산리로 차를 몰았다. 이유는 단 하나, 피톤치드 가득한 좋은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주말이면 꽉 막혔을 서울춘천고속도로는 평일 오전 막힘이 없었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인제는 국도를 갈아타며 한참을 돌아가야 했던 오지였지만 이제는 수도권에서 2~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접근성 좋은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제가 주는 오지의 이미지는 일상에서 벗어나 원시의 자연으로 떠나고픈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길은 고도를 높이며 숲속으로 점점 더 들어갔다.

인제군은 산림자원보호와 산림을 이용한 소득창출을 위해 수산리 일대에 꾸준히 임도를 조성중이다. 울창한 숲이 주는 풍요로움을 편안하게 만끽할 수 있는 임도는 수산리의 깊고 높은 산군을 따라 굽이치는데, 길이 평탄하고 완만해 트레킹은 물론 산악자전거 등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기에 적합하다.

트레킹의 시작은 인제자연학교캠핑장. 잣나무가 울창한 캠핑장은 폐교를 활용해 조성했으며, 텐트 50여 동을 칠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다. 당일 트레킹이 아쉽다면 캠핑과 트레킹을 함께 즐겨도 좋을 일.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이라면 코스를 짧게 잡아 걸어봐도 좋을 듯 싶었다.

캠핑장을 출발해 마을길을 1km 가량 따르자 본격적인 수산리 임도가 나타났다. 길은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지며 점점 숲으로 파고들었다. 파란 하늘과 맑고 투명한 계류가 어우러진 숲의 초입에 서자 그토록 기다리던 진짜 봄을 만난 느낌이다. 길 가에 듬성듬성 핀 연분홍 진달래와 노란 산수유가 눈을 맞춰오는 길. 그렇게 수산리의 봄은 시작되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한반도 형태의 자작나무 군락. 울긋불긋 단풍이 물드는 가을이면 그 형태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제의 대표적인 자작나무 군락지
인제에는 대표적인 자작나무 군락지 2곳이 있다. 원대리와 수산리 일대에는 울창한 자작나무 군락이 자리하고 있어 몽환적인 숲의 춤사위를 만나고픈 트레커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자작자작’ 소리 내며 탄타고 해 이름 붙여진 자작나무는 보기 좋게 쭉쭉 뻗은 늘씬한 몸매와 하얗게 빛나는 껍질이 이색적인 수종이다. 추운 곳에서 자라며 우리나라에서는 인제, 태백, 횡성 등 강원도 산간 지방에 주로 분포하고 있으니 강원도민이 아니라면 부득이 발품을 팔아야 만날 수 있는 비싼(?) 나무인 셈이다.

임도는 고도를 높나들며며 산등성이를 감싸고돌았다. 그렇게 2시간 가량을 걷자 한반도 형태의 자작나무 군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났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직접 자작나무 군락 속으로 들어가 걸을 수 있는 반면 수산리 자작나무는 먼발치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다만 단풍이 완연해지는 늦가을에 한반도 형태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아직 숲이 앙상해 한반도 지형이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다.

어론리에서 만난 작은 계곡.
코스가 끝나갈 무렵 만난 작은 계곡. 깨끗하고 시원한 물에 손과 발을 담그자 피로가 일순간 사라지는 기분이다.

길은 자작나무와 소나무, 잣나무 군락을 차례로 지나며 변화무쌍한 풍광을 연출했다. 수산리 인제자연학교캠핑장을 출발해 전망대를 지나 어론리 교차로로 이어지는 약 22km 임도는 결코 짧지 않은 코스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 그 속에 춤추는 자작나무 숲이 있고, 사시사철 푸르른 송림과 잣나무 군락이 자리하고 있었다.

트레킹을 시작한 지 6시간. 길은 어론리 마을로 고도를 낮췄다. 미세먼지 없는 하늘은 청명했고, 피톤치드를 머금은 공기는 시원했다. 남쪽에서 올라온 봄이 인제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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