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에서 만난 우리 민족의 향수
역사의 현장에서 만난 우리 민족의 향수
  • 글 사진·최광호 사진가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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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최광호의 KOMSTA 동행기 | ②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 우즈베키스탄의 평범한 가정집에서 만난 풍경. 역광으로 떨어지는 실루엣이 우리 동포, 고려인의 현재를 보여주는 것 같다.
우즈베키스탄은 지구촌 현대사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데올로기의 실험무대가 되어왔다. 경술국치 이후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한, 혹은 이주당한 이들의 삶이 스며있고, 어쩔 수 없이 구소련의 슬픈 역사에 동참하게 된 우리 민족의 한이 서려 있다. 구소련의 소수민족 분산 정책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쫓겨난 동포들은 황무지 갈대밭을 일구어 옥토로 만든다. 우리말로 고려인, 그곳 말로 까레이스키 라고 부르는 동포들의 손으로.


구소련 시절인 1937년, 스탈린은 연해주에 살고 있던 한인들을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 시킨다. 기차를 타고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몇 주에 걸쳐서 이동하는 중에 많은 한인들이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바로 지금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이었다. 수만 명의 한인들은 타슈켄트(Tashkent) 인근에 정착했는데, 당시 중앙아시아는 아무것도 없는 갈대밭이었다고 한다. 한인들은 이곳에서 갈대로 집을 짓고, 척박한 땅에 물길을 대며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낯설고 척박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한인들은 중앙아시아를 떠나면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서럽고 분통이 터질만한 상황에서 그들은 보란 듯이 황무지를 황금들녘으로 바꾸어 놓는다. 또, 구소련 스탈린으로부터 금탑훈장을 받은 김병화 농장이 있는 곳도 여기다. 강제이주 당시 서른둘이었던 김병화는 1940년부터 1974년까지 35년 동안 농장장으로 근무한다. 이 농장이 바로 김병화 농장인데, 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식량을 지원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김병화는 구소련에게 두 번의 금별훈장을 받았다고 하는데 뭔지 모를 뭉클한 것이 저 밑에서 올라온다. 우리 현대사의 생채기가 오롯이 새겨진 땅, 오랜 시간 외면 당해 더욱 쓸쓸한 이 땅에는 구소련 패망 후 등장한 새로운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벅찬 하루를 버텨가는 고려인들이 있다. 우리 동포들에게 콤스타의 침술과 약간의 온기를 전할 수만 있다면….

▲ 진료를 받고 있는 고려인.

왜 우리는 헤어져야 했는가?
▲ 진료 첫날부터 매일 본 할아버지와는 제법 친해져 농담도 건넨다.
이번 목적지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다. 2004년, 우르겐치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다. 자본주의 소비문화가 파고든 거리는 깨끗해지기는 했지만, 대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광고판들도 함께 도시를 파고들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지만, 첫 번째 방문과는 사뭇 다르다. 우즈베키스탄의 아침을 여는 빛은 강열하다. 사진기를 들고 산책하는 나는 빛에 감동해 이 아름다운 빛으로 느끼는 사진적 감동을 다시 사진으로 세상에 내놓는다. 이 신선한 빛에 감싸여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듯한 이 기분은, 바닷가에서 아름다운 일출을 보는 것 같다. 다시는 오지 않을 아련함이 범벅된 상쾌함에 젖어 빛이 부르는 대로 이 도시를 배회한다. 이 느낌. 내가 여기 살아있는 지금. 나만이 느끼는 뿌듯함에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콤스타 의료봉사에 동참하서면서 우리 민족의 동지애에 나는 찡한 감동을 받는다. 이번에는 고려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의례적인 행사를 마치고 콤스타 윤리강령 선서를 하고 진료를 시작한다. 의료진들은 진료를 시작할 때 환자의 병세를 알기 위해 진맥을 한다. 맥을 알아야 그 사람은 몸 상태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맥을 잡는 방법이 각기 다르다. 심각하게, 자연스럽게, 우아하게, 멋있게, 근사하게. 이렇듯 각기 다른 맥을 짚는 모습에서 그 사람의 성격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그렇게 각기 다른 성격만큼 의료진들의 진료 방법도 다르다.

▲ 고려인 할머니는 “조선말 알어” 하면서 “밥이, 물이, 떡이” 라고 말을 한다.
간호사들의 상냥함은 언제나 사람을 뭉클하게 한다. 환자들 대부분은 노령이어서 갑상선이나 결석, 부정맥 같은 노인성 질환이 많다. 우리네 할머니, 우리네 할아버지와 꼭 같다. 그들은 고마움의 표시로 꽃다발을, 그리고 손수 만든 과자와 빵을 건넨다. 동포의 정을 듬뿍 얹어서. 차창 넘어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레이스 커튼이 나부끼고, 문득 우리 어릴 때 집에 온 것 같은 착각에, 그리고 향수에 젖는다.

나는 우리 동포들이 있는 곳에 오면 그들에게 반해 무작정 다가간다. 곱게 나이든 할머니가 가슴에 손을 대고 정중하게 말을 건네며 시작한 서툰 우리말 대화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계속된다. 그러다 건너편 할아버지가 “야, 이놈의 자식아 어디서 왔노?” 하고 말을 건넨다. 모르는 척 하는데, 툭 치면서 “너 어디사니? 서울? 거기서 여기까지 몇 숨이오?” 하고 묻는다.

▲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고려인들, 한 눈에 보기에도 우리네와 닮아있다.
“숨요? 숨이 무언데요?”

“아, 이놈 봐라. 숨도 몰라?”

옆에 있던 할머니가 웃으면서 장난치지 말라며 역성을 든다.

“할머니, 숨이 뭐죠?”

“돈 셀 때 한숨 두숨 해, 여기 화폐단위라고, 사진사양반. 여기선 한숨 쉬며 돈 센다고들  해. 한숨 쉬고 한숨, 또 한숨 쉬고 두숨, 이렇게 말이야. 그만큼 살기 힘들었다는 거 아니겠어. 옛날에 우리 엄마, 아버지가 그리 농담하고 그랬어.”

할머니가 움푹 파인 주름살과 함께 웃는다. 또 아까 그 할아버지가 “50년 사변알지?” 하고 묻는다. “예, 6·25 전쟁이요.” 답하자 또 묻는다.

“그것 남한에서 북으로 쳐들어 온 것도 알아?”

“아니요, 북에서 남으로 쳐들어 왔어요.”

“아니야, 난 그렇게 안 배웠어.”

▲ 콤스타의 한방진료를 받으러 사람들이 몰려든다.

사마르칸트가 ‘푸른 돔의 도시’인 이유
다음날, 타슈켄트에서 4시간을 달려 사마르칸트로 향하는 길.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취한다. 꼭 영화 <닥터지바고>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초원의 목동들이며 옹기종기 자리한 집들 사이로 길쭉이 늘어선 나무들이 새로운 사진 속 세상으로 이끈다. 느끼고 감동하면 쉽게 집중해 버리는 탓에 빠른 기차와 더불어 스치는 시선에 매혹되어 셔터를 누른다. 사마르칸트(Samarkand)는 옛 고대에서부터 이어지는 동서양의 교역지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생각나게 하는 비단길로 유명한 도시다. 일찍이 발달했으나 칭기즈칸에 의해 몰락했고, 다시 14세기 경 티무르제왕에 의해 번창했다.

▲ 처음 한방 진료를 받는 아이. 영 어색해하며 겁내는 모습이 귀엽다.
사마르칸트에는 ‘스모크’라 불리는 둥근돔이 많다. 그중 ‘지배자의 묘’란 뜻의 ‘구르에아미르’는 14세기 몽골의 정복자 티무르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티무르가 손자 무함마드 술탄이 이란에서 죽은 것을 추도하기 위해 지었고, 티무르 자신도 1405년 명나라 정벌에 나섰다가  병사해 이곳에 묻혔다. 건물 외관은 코란 문구로 장식되어 있고, 푸른 색 돔은 티무르 시대의 풍조대로 푸른 타일이 세로로 붙여져 있다. 내부에서 보는 돔의 천장은 금색, 청색으로 채색된 이슬람 문양으로 장식되어 아름답다. 사마르칸트를 왜 ‘푸른 돔의 도시’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빛의 반사에 따라 변하는 돔 내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아예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게 한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시장과 고대 박물관이 자리한 아프라샤프 언덕으로 향한다. ‘순례자의 길’이라는 뜻을 지닌 이곳 박물관에는 우리나라 고대 사신의 그림이 있어 한국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단다. 함께 한 일행들은 시장으로, 나는 눈앞에 보이는 무덤으로 다가간다. 무덤만으로도 어떤 삶을 살았을지 전해지며 황폐함속에서 살아남은 그들의 애환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들의 죽음과 삶을 접하며 나의 삶을 떠올린다.

우즈베키스탄은 어떤 나라인가

중앙아시아 중부에 있는 나라로 정식 명칭은 우즈베키스탄공화국(Republic of Uzbe kistan)이다. 19세기 후반 제정 러시아의 속국이 됐고, 1924년 10월 구소련의 일원으로 우즈베크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을 수립했다. 구소련 붕괴와 함께 1991년 9월 완전 독립했다.

동쪽으로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남쪽으로 아프가니스탄, 남서쪽으로 투르크메니스탄, 북쪽으로는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접한다. 북서 일부는 아랄해(海)에 면한다. 125개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국가이며, 국명은 ‘우즈베크인(人)의 나라’라는 뜻의 페르시아어(語)에서 유래했다. 구소련 시절, 연해주에 살던 한인들이 강제로 이주 당해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지에 뿌리를 내렸다.


사진가 최광호
| 1956년 강릉 출생. 고교시절 우연히 시작한 사진에 빠져 거의 모든 시간을 사진과 함께 해 온 사진가.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나는 사진이다”로 답하는 여전히 뜨거운, 청춘. 우연한 기회에 스리랑카, 몽골, 티벳, 우즈베키스탄 등 수십 차례에 걸친 <콤스타> 의료봉사에 동행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숨 쉬며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풀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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