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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와 작별하다
아프리카와 작별하다
  • 글 사진 정효진 기자
  • 승인 2017.03.26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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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여행자의 지구별 자전거 여행

드디어 세계 3대 폭포 중 마지막인 빅토리아 폭포를 구경했다. 강수량이 많을 때라 물의 양이 많았다. 이구아수 폭포를 구경할 때 물에 홀딱 젖었다. 그래서 이번엔 우산과 우비를 준비했는데 정말 유용하게 쓰였다. 폭포를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그 웅장함에 넋을 잃게 된다. 이구아수 폭포와 빅토리아 폭포가 좋은 점은 폭포 옆 숲속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정글 속을 걷는 기분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먼발치에서 코끼리 한 마리를 만났다.

마사이족을 만났다.

한국말을 하는 탄자니아인
탄자니아 국경은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말을 거는 환전상이 많아져 사기당하지 않으려 조심했다. 탄자니아는 잠비아보다 집 형태가 조금 발전되어 있고, 차량이 많고, 오토바이도 간혹 보였다.

고속도로 옆 작은 길 뒤로 집이 보였다. 안전해 보여서 허락을 구하고 텐트를 쳤다. 바람 빠진 타이어를 수리하는 데 집 주인 아들 중 한 명이 나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한국 이름이 ‘역산’이라고 한다. “부모님은 안녕한지요”, “맥주를 마시다”, “나는 학교에 간다” 등의 기본적인 문장을 구사할 줄 알았다. 밤늦게까지 역산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줬다.

역산은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만 사는 곳엔 전기가 없었다. 집과 1km 떨어진 곳에서 400실링(240원)을 주고 이틀에 한 번씩 충전해 쓰고 있다. 랜턴은 매주 돈 주고 건전지를 갈아서 쓴다.

하루는 탄자니아의 사파리를 지나 해 질 무렵 학교에 텐트를 쳤다. 영어 선생님과 마사이족 관련 얘기를 나누는데, 학교 뒤편에 마사이족이 산다며 나에게 보여주겠다고 했다. 가장 연장자인 90대 할머니와도 얘기할 수 있었다.

다음날 자전거를 타는데 고기를 파는 마사이족이 계속 보였다. 혹시나 해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돈을 달라고 한다. 그래서 돈 주고 그들의 사진을 찍었는데, 인상을 잔뜩 썼다. 사자가 득실대는 사파리를 자전거로 지나고, 마사이족을 만나는 예상 밖에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

아름다운 잔지바르의 해변가

아름다운 섬, 잔지바르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잔지바르라는 섬에 페리를 타고 가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잔지바르의 매력은 미로처럼 엉킨 골목이다. 잔지바르의 집은 다양한 문으로 되어 있는데 오만의 지배 시절 전해져 온 문화인듯하다. 자전거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 해변이 아름다운 능귀해수욕장에서 여유를 즐겼다. 현지인들이 직접 배와 그물을 제작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방문 당시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금식하는 라마단 기간이라 여행하는데 꽤 고생했다. 식당은 문을 닫았고 길거리에서 물 먹는 것도 조심스러워 숙소에 돌아가 음식을 먹어야 했다. 흥미로운 건 해 질 녘 기도가 시작되면 길거리엔 음식을 사 먹는 사람들로 분주해진다.

혹자의 말에 의하면 라마단 기간에 가장 많은 음식이 팔린다고 한다. 새벽녘까지 가족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 먹는다. 덕분에 밤늦게 골목골목 돌아다니며 이들의 생활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잔지바르에서 다르에스살람으로 돌아오는 페리는 최악이었다. 어쩜 그렇게 심하게 배가 흔들리던지, 난파당하는 줄 알았다. 이 구간에서 몇 년 전 몇 번 배가 난파당해서 관광객들이 사망했다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다행히 무사히 육지에 도착했다.

독특한 잔지바르의 골목 분위기.

아프리카의 하이라이트 세렝게티
아프리카에서 사파리로 가장 유명한 곳은 탄자니아의 세렝게티와 케냐의 마사이라마다. 사실 이 두 곳은 국경을 사이로 이어졌는데, 나는 탄자니아 쪽에서 구경하기로 했다. 근데 막상 와보니 잘못된 선택이었다. 탄자니아 세렝게티는 너무 넓고 가는 길이 멀어서 차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여행사가 최악이었다.

아프리카에서 흔히 말하는 빅5 동물은 코뿔소, 사자, 코끼리, 버펄로, 표범이다. 관광객이 보기 힘들어서 빅5라 부르는 게 아니라, 직접 걸으면서 사냥하기 힘든 동물을 모아서 빅5라고 한다. 만약 빅5가 사파리에 나타나면 드라이버들끼리 무전기로 통신한다. 그러면 구름떼같이 그곳에 사파리 차들이 몰려든다. 사파리로 이동하는데 대부분 시간을 보내서 아쉬웠지만, 여러 동물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밤에는 사파리 안 캠핑 사이트에서 텐트를 치고 잤다. 동물들은 사람들을 피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세계 거대 분화구 응고롱고로에 만난 누떼의 이동이 장관이었다. 이곳에는 많은 동물이 함께 살아가서 둘째 날에도 여러 동물을 구경할 수 있었다.

길 한가운데를 건너는 기린과 그를 기다려주는 트럭.

케냐에서 일어난 차 사고
케냐 수도 나이로비는 정말 복잡한 도시다. 불행하게도 나이로비에 도착한 첫날 차 사고를 당했다. 힘든 오르막길에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봉고 버스가 내 자전거 옆을 치는 바람에 앞으로 굴러떨어지고 가방에 달렸던 짐들도 날아갔다. 경찰을 부르고, 경찰서에 가서 실랑이를 벌인 끝에 가방 값50달러를 받아냈다. 하지만 운전자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3년 넘게 자전거 여행을 하며 교통사고만 세 번째, 단 한 번도 운전자에게 사과받지 못했다. 대부분 화를 내거나 도망가기 일쑤였다. 운전자가 사과만 했었어도 기분이 이렇게까지 상하진 않을 텐데.

케냐 북쪽지역으로 이동 중 갑자기 페달이 안 돌아갔다. 자세히 보니 변속기가 고장 났다. 이렇게 중요한 부품이 망가지기는 처음이다. 어쩔 수 없이 히치하이킹으로 다음 도시에서 고쳤다. 케냐의 북쪽 지역은 내전 때문에 굉장히 위험하다. 이웃 나라 에티오피아 국경 비자도 얼마 전부터 허락됐다. 케냐의 북쪽 지역에서 자전거 타는 게 너무 위험해 보여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장거리 이동을 했다.

버스는 정말이지, 내 생애 최악이었다. 장담하는데 지구상 가장 최악의 버스였다. 버스는 밤 8시 출발해서 다음 날 새벽 7시에 도착했는데, 도로의 포장상태가 엄청 울퉁불퉁하다. 운전자가 도로의 상태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렸다. 몸이 날아다니다 못해 엉덩이가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자칫하다간 목뼈도 날아갈 것 같았다. 어둠 속에 몸이 사방팔방으로 튕겨 나가고, 한쪽에선 사람들이 계속 토했다. 내 인생 가장 최악의 버스였다.

비가 자주 와 힘들었던 에티오피아 자전거 여행.

너무 힘든 나라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는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더 가난해 보였다. 사실 에티오피아는 자전거 여행자에겐 지옥으로 알려진 곳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테러 위험도 적고 안전한 편에 속하지만, 문제는 길거리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아이들은 돌을 던지는 등 자전거 여행자를 힘들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참 자전거를 타던 도중 또 체인이 안 돌아갔다. 며칠 전 케냐에서 변속기에 넣은 새 부품이 그새 망가졌다. 자전거 타는 게 불가능해 히치하이킹을 했다. 현지인 차를 얻어 타고 나름 큰 도시에 도착했는데 자전거 부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배가 고팠던지라 우선 점심을 시켜 먹었는데, 에티오피안 음식이 나왔다. 쟁반 같은 곳에 큰 부침개 같은 게 깔려있고 그 위에 다양한 종류의 반찬이 올려져 있다. 손으로 부침개 같은 걸 뜯은 후에 반찬을 싸 먹는데, 여행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음식을 꼽으라면 에티오피안 음식이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변속기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나만 보면 소리를 지르고, 쫓아오고, 둘러싸고, 가끔 돌도 던지고, 게다가 무엇보다 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소리친다. 짐 쏠린 걸 정리하기 위해 전봇대에 자전거 세웠는데 몇 분도 안 돼서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날 둘러싼 적도 있다.

남쪽과 달리 북쪽은 자전거 타기가 조금 편했다.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가장 힘든 나라를 뽑으면 아마 에티오피아를 말할 것이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곳이었다. 하지만 난 에티오피아가 정말 좋았다. 그들의 음식, 커피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음식은 매번 시킬 때마다 형태를 달리해서 나왔다. 호기심 많은 나에게 에티오피아 음식이 가장 아름다웠다.

쓸쓸한 수단 사막을 달리다.

사막의 나라 수단
수단은 두 나라로 쪼개져서 남수단, 수단으로 불린다. 남수단은 내전이 너무 심각해 가면 안 되는 곳이다. 수단에 오면서부터 날이 엄청나게 더워졌다. 마치 헤어드라이어 3대를 켜 놓고 달리는 기분이랄까. 너무 덥다 보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까지 했다. 현지인 집에 들어가서 하룻밤 텐트 쳐도 되냐고 물어보니 그물침대를 내주었다. 그 위에 텐트를 치고 잤다.

미국이 수단의 국제 금융을 제재해 수단에선 ATM 기계가 없다. 미리 미국 달러를 들고 와야 했다. 에티오피아에서도 달러를 구하는 게 불가능했다. 대사관에 가서 달러를 구할 수 있게 도움을 받을 수 있냐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한다. 다행히 인터넷으로 알고 있던 한국 지인의 도움으로 달러를 구할 수 있었다.

수단은 사람들이 친절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마당에 텐트를 쳐도 되냐고 물으면 항상 그물침대를 주고 차를 대접해줬다. 길에서 만나는 현지인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현지인은 너무 달랐다. 자전거 타고 가다 만난 수단 남자들은 다른 아프리카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추파를 던지거나 소리 지르며 장난을 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들의 집에서 만날 땐 친절하다. 덕분에 아프리카의 문화를 느끼며 존중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의 좋은 점만 보면 참 좋을 텐데, 아쉽다.

수도에서부터 국경 근처까지는 황량한 사막이 지속됐다. 매일 역풍이 불어 힘들었다. 조그마한 상점들이 20~30km마다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여성이 일하는 걸 못 봤다. 요리하는 사람도, 음식을 나르는 사람도 다 남자였다. 그런 곳에 매번 텐트를 치고 잤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국경까지 90km를 앞두고부터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차로 이동하는 게 싫었던 나는 결국, 생애 첫 와일드 캠핑을 하기로 했다. 고속도로 옆으로 빠지는데 사막 모래라 자전거를 미는 게 힘들었다.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언덕에 텐트를 쳤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사람이 올 거라곤 생각지 않았지만, 혹여나 차가 이곳으로 올까 봐 무서워서 간밤에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수단에서 이집트로 가는 육로 국경은 막혀있었다. 국경을 넘으려면 페리를 타고 나일 강을 따라 올라가야 했다. 페리가 태울 수 있는 인원은 이미 훨씬 넘었다. 사람들은 갑판 위, 구명보트 등 어디에든 자리를 깔고 앉았다. 마치 피난민들로 가득 찬 배 같았다. 12시간이 넘는 여행이었지만, 다른 여행자를 만나서 심심할 겨를은 없었다. 우연히 지하에 빈 곳을 발견해서 아냐라는 친구와 침낭 깔고 잠을 청했다.

피난민을 태운 듯, 꽉 찬 페리의 모습.

이집트에서 성희롱을 당하다
이집트에 도착하자마자 아냐와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아프리카의 마지막 나라 이집트까지 무사히 왔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아냐와 작별인사를 하고 자전거에 올랐다. 기쁨도 잠시, 도착하자마자 성희롱을 당했다. 항구에서 도시로 가는 길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현지인이 내 엉덩이를 만졌다. 난 페달링 중이었고, 그 현지인도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설마 도착하자마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도시로 가는 길에 아이들은 돌을 던지고, 남자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소리 질렀다. 이집트 아이들은 에티오피아, 수단 뺨치는 돌 던지는 실력을 보여줬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이집트 여자 99%가 성희롱에 시달린다고 한다. 어떻게 혼자 자전거를 탈지 막막하기만 했다. 페리에서 만난 아냐가 지낼 곳이 없게 되자, 나에게 잠잘 곳을 제공해준 호스트가 아냐까지 초대해줬다. 아냐는 항구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가던 중에 이상한 일을 겪었다. 차 창밖에서 아냐에게 구걸하던 사람이 아냐가 못 본 체하자 칼을 들고선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죽이겠다고 겁을 줬단다. 아냐와 나는 호스트 집에 재회해서는 서로 신세 한탄을 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성희롱을 당한 뒤 이집트에서 자전거 타는 게 두려워졌다. 그래서 같이 자전거 탈 동행자를 구했다. GBI EGYPT 자전거 팀에서 연락이 왔다. 아스완에서 룩소르까지 3박 4일 자전거 여행을 하는 일정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자전거 타는 날은 이틀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숙소를 크루즈에서 해결한다고 했다. 비용이 내 한 달 경비라서 어쩔 수 없이 포기했는데, GBI EGYPT 멤버들이 나를 위해 돈을 모아 내 참가비를 마련해줬다. 자전거 여행 중 가장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생에 처음 크루즈에서 지냈고, 무엇보다 가장 특별했던 건 현지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달리는 것이었다. 여행 중 가장 특별한 경로로 기억에 남는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자전거 여행이 끝났다.

아프리카의 마지막
이집트 수도에서 피라미드를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자전거 여행을 무사히 끝마쳤다. 아프리카에서 자전거를 타는 게 중남미에서 자전거 타는 것보다 육체적으론 쉬웠다. 아무래도 여행 2년 차라 그런 것도 있고, 중남미에 비하면 사건 사고도 적었다. 운 좋게도 생명에 위협을 받거나 강도를 만나는 일도 없었다. 다만, 아프리카를 여자 혼자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었다. 길에서 남자들이 너무나 추파를 많이 보내고, 인종차별적 언어나 행동을 매일 같이 봐야 했으며, 어딜 가든 시선을 받아서 혼자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아프리카에서 총 1만615km를 탔다. 10개의 나라를 지나쳤으며 364일 동안 있었다.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내가 두려움에 떨 때 자기 집 앞마당에 텐트를 치게 해주거나 집 안에서 자게 허락해준 많은 고마운 이들도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을 당시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도 갈 거라고 했었다. 사실은 아프리카 자전거 여행이 가능한지 전혀 몰랐다. 단지 세계를 여행한다고 했으니까, 아프리카도 세계의 한 부분이니까, 막연히 가겠다는 말을 했다. 꿈이 이뤄질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아프리카를 무사히 횡단할 수 있게 도움 준 많은 현지인, 외국인, 국내외 후원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는 이후 집에 돌아가지 않은 채 3년 동안 유럽과 중동, 중앙아시아에서 자전거를 탔으며 현재 동남아시아에 있다. 앞으로 1~2년을 더 자전거를 탈 예정이다. 만약 이 긴 여정을 함께 하고 싶다면 블로그(www.universewithme.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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