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음과 마음껏 충돌하길
낯설음과 마음껏 충돌하길
  • 글 사진 우근철 기자
  • 승인 2017.03.28 0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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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근철 작가의 인도 여행
그들이 언제나 말하듯, No problem

#1
9시 30분에 도착한다던 기차가
11시간이나 늦더라도

내가 시킨 음식 말고
얼렁뚱땅 다른 게 나오더라도

앞에 서 있는 아저씨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내 무릎 위에 짐 보따리를 잔뜩 올려놓더라도

상쾌한 아침 공기를 들이키며 걷던 중
난데없이 응가를 밟더라도

버젓이 호텔이라 써 붙인 숙소에서
줄줄줄 흐르는 녹물에 샤워를 하더라도

태연히 지금 운전을 배우는 중이라고 말하는
택시기사에게 나를 맡기더라도

한 입 크게 먹으려던 바나나를
원숭이가 냉큼 나이스 캐치 하더라도

거스름돈이 없는데
빗자루는 필요하지 않냐고 추천하더라도

언덕에 못 올라가 바동거리는 릭샤에서 내려
같이 낑낑 대며 끌고 올라가더라도

급한 마음에 서둘러 들어간 화장실에서
결국엔 왼손을 쓰게 되더라도

그들이 언제나 말하듯
No problem

구수한 쉼표 정도

#2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은
건물 귀퉁이에 자리 잡은 짜이 집에서
차를 홀짝이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달콤 쌉쌀한 인도의 국민 차(茶) 짜이는
여행객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친해질 수 있는 녀석.

장사를 하다가도 일에 열중하다가도
각자가 정한 짜이 타임에는 칼같이 일손을 놓고
짜이를 홀짝이는 모습은 여유로움 그 자체다.

기차 안에서든,
도로 밖에서든,
심지어 산 정상에서든,
장소의 구애 없이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성실한 짜이왈라(짜이 장사꾼) 덕분에
둥글게 모여 앉아 찌든 일상을 잠시 내려놓는 짜이 타임.

구수한 쉼표 정도

달빛 한 바구니, 즐거움 두 스푼

#3
“각자 흩어져서 마른 잔가지를 가져와.”
몰이꾼 소년의 지휘에 맞춰 모두 함께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잠무와 낙타들의 짐받이에서 다양한 가재도구가 쏟아져 나왔고,
소년은 우리가 모은 가지를 한데 엮어 순식간에 불을 만들어냈다.

그러고는 평평한 돌덩이 하나를 도마 삼아 채소를 썰고
처덕처덕 밀가루를 반죽하나 싶더니 짜파티를 만들고
또 다른 한쪽에서 물을 끓여 커리와 짜이를 만들었다.

나와 친구들은 불이 꺼지지 않게
수시로 나뭇가지를 더 넣어주면서,
각자 챙겨온 것을 일사 분란하게 꺼내 놓았다.

맥주와 위스키.
그리고 통기타 반주.
둥글게 모여 앉아 조촐한 캠프파이어.

유난히도 커 보이는 달을 조명 삼아
접시에 따라 마시는 위스키 한 잔.

달빛 한 바구니, 즐거움 두 스푼

Second Class

#4
언뜻
'후발주자'로 해석되는
Second Class.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

조금 불편할테고,
조금 불쾌할테고,
조금 불만할테지.

그래도 목적지가 뚜렷하니,
머뭇없이 설레입니다.

왜 허송세월을 보냈나.
지금 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나.
젊은 놈들, 유능한 놈들 사이에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조금 불편할테고,
조금 불쾌할테고,
조금 불만할테지.

그래도 목적지가 뚜렷하니,
머뭇없이 과감합니다.

Second Class

햇빛에 찰랑이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처럼

#5
‘바라나시를 머물지 않았다면 인도를 다녀온 것이 아니다.’
라는 말처럼 인도의 모든 집합체라 할 수 있는 곳.

가는 곳마다 길을 떡 하니 막고 있는 소들을 마주하고
비좁은 골목길을 이리 저리 헤매며
“여기가 맞나요?” 하고 몇 번이나 물은 끝에,
드넓게 펼쳐진 갠지스 강과 그 긴 물줄기를 따라
줄지어 늘어선 가트들을 볼 수 있었다.

사진이나 TV 다큐멘터리에서 본 것처럼
인도 전역에서 몰려든 순례자들이 강물에 몸을 담그고
경건하게 의식을 치르는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들에게 이 강은 자신의 죄를 씻어주는,
속죄의 기회를 주는 곳이라고 한다.

내 곁에 있던 아저씨도
한참동안 가부좌를 틀고 앉아 기도를 드린 뒤
강으로 다가가 천천히 발을 담갔다.

그러고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받드는 것처럼
양손 가득 강물을 듬뿍 떠서 조심스럽게 입을 갔다 댔다.

그런데 그 성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위가 상해서 혼이 났다.
쓰레기와 오물들이 둥둥 떠 있는 데다
시체들을 수장시키기도 하는 곳이기에
더러운 물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저씨는 더 깊이 들어가
머리까지 푸욱 담갔다 일어나기도 하고
물을 떠서 머리 위에 끼얹고, 벌컥벌컥 들이키며,
눈을 감은 채 무언가를 되뇌고 있었다.

마치 어머니에게 잘못한 것을 반성하며
용서를 비는 아이 같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수많은 사람들이 아저씨처럼
기도를 하고, 용서를 빌고 있었다.

아, 그제야 알았다.
그들에게 이곳은 더러운 강물이 아니라
이들을 껴안고 보듬어 주는 어머니라는 것을.

햇빛에 찰랑이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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