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도시’ 김은덕 & 백종민 부부 인터뷰
‘한 달에 한 도시’ 김은덕 & 백종민 부부 인터뷰
  • 이지혜 기자 Ⅰ사진 정영찬 기자
  • 승인 2017.03.24 06: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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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준 사랑의 농도

서로를 충분히 알았다고 생각했다. 스몰 웨딩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 막연하게 작은 결혼식을 올린 부부는 신혼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1년 뒤 세계여행을 약속한다. 2년여 간의 세계여행. 이억 만 리 타국에서 온갖 가재도구를 던지고 때려가며 이혼을 결심하고 돌아온 부부는 지금도 여행을 떠나고 있다. 싸움은 옅어졌고 농밀해진 서로의 사랑 속에 더는 평온할 수 없는 표정으로.

애초엔 결혼 후 5년 뒤 세계여행을 떠날 예정이었지만 부부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1년 뒤 훌쩍 떠났다.

이혼 대신 여행
집으로 투기하지 않을 겁니다. 인생 목표를 평수 넓히기에 두지 않겠습니다.

영화 번역일과 홍보회사에서 일하던 김은덕, 백종민 부부가 2년의 연애 끝에 지난 2012년 결혼식을 올리며 선언한 내용이다. 부부는 선언문을 착실하게 따랐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지 1년 뒤, 예상보다 4년 빠르게 세계여행을 떠났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세금을 빼서 캐리어 두 개에 살림살이를 구겨 넣고 떠난 여행이었다.

부부는 한 도시에서 한 달씩 머무르며 일본 도쿄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8개월, 아메리카에서 9개월, 아시아에서 8개월을 보냈다. 이후 그들의 이야기는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로 출간됐다. 잠시 눈요기로 만족하고 떠나는 짧은 여행이 아닌 현지인과 살 비비며 보고 느끼는 느릿한 여행 신드롬을 가져왔다. 하지만 여행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남의 집 물건이라 못 던졌을 뿐, 던질 수 있는 건 다 던지며 싸웠어요. 무서울 정도로 다퉜죠. 얼마 전 친구를 만났는데, 여행 중간에 제가 전화로 그랬데요. 이 사람과 더는 못 살겠다, 돌아가자마자 이혼해야겠다고요.”

여행 전 계약 된 세 권의 책이 아니었으면 진작 헤어졌을 거라며 웃으며 말한다. 격렬히 싸울 수 있는 것. 서로의 바닥까지 들춰내고 상처 주고 헤집으며 부부는 말 그대로 끝을 봤다. 그리고 변했다.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나 싶어요. 분명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여행을 했고 지금도 하며 열심히 싸우는 지금, 사랑이 더 깊어졌어요. 이토록 깊어질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요.”

터키 이스탄불 어느 거리에서 엽서를 고르는 부부.

모든 풍경이 달랐다
여행은 사랑만 깊어지게 만든 것이 아니다. 도심에서 겪었던 만성 두통이 사라지고 디스크가 낫기 시작했다. 경계하던 현지인도 한 달을 머무는 부부에게 인심 좋은 미소를 내주기 시작했다. 대부분 1년에 3천만 원 정도를 예산으로 세계여행을 떠나지만, 부부는 2년 동안 5천만 원을 썼다. 가져간 미니 밥솥으로 밥을 해 먹고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구했지만, 전시회나 공연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부부만의 여행법이었다.

히말라야와 파타고니아 트레킹에선 별을 담요로 덮고, 바람을 벗 삼아 자연을 즐겼다. 오롯이 부부를 위한 대자연 속에서 힘든 트레킹도 견뎌낼 수 있었다.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지구가 새로운 옷, 어쩌면 벌거벗은 모습을 그들에게 내비치고 있었다.

트레킹을 하는 내내 한 번도 같은 풍경은 나오지 않았다. 발끝에 닿은 대지의 촉감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몸은 감각을 살린다. 걷는 순간마다 지표가 느껴져 경이로움을 숨길 수 없었다. 하염없이 걷는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부부는 걷는 재미를 느끼고 돌아왔다.

“우리나라에선 집 뒷산만 가더라도 히말라야를 정복할 수 있는 복장을 갖춰 입고 가시잖아요. 막상 파타고니아 트레킹 길에 올라보니 그냥 평범한 운동화에 면바지를 입고 오는 사람이 더 많았어요. 텐트나 코펠 등은 즉석에서 대여할 수 있고요. 오히려 너무 간단하고 편리해 놀라울 정도였어요. 과한 아웃도어 복장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아웃도어 브랜드도 많은 걸요. 저희가 말하고 싶은 건 좋은 명품 아웃도어 용품을 사셨으면, 충분히 사용하시면 좋겠어요. 조금 더 여유를 내셔서 걷는 시간을 늘리는 건 어떨까 권하고 싶어요.”

2년간의 세계여행은 두 사람에겐 더 짙은 농도의 사랑을 선물했다.

없어도 괜찮아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지 2년이 지났다. 부부는 인세와 강연비 등 월 소득 평균 100만 원으로 서울에서 한 달을 살고 있다. 자발적 가난을 선택했다고 해야 할까. 돈이 없을 뿐 그들에겐 시간이 있고 서로가 있다. 거기서 또 아끼고 아껴 항공권과 숙박비만 마련되면 한 달씩 해외로 나간다. 그들의 여행은 지금도 유효하다.

“저희는 각자 나름의 결핍이 있었어요. 하지만 서로가 만나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른 적이 없죠. 서로의 결핍을 채워준다고 할까요. 함께했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아졌어요. 둘이 만나 이제 겨우 1인분을 하며 사는 것 같아요. 저희처럼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아요. 모두의 인생에는 각자의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고, 그것은 존중받아 마땅해요. 단지, 우리처럼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그 정도면 만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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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새 2017-03-24 17:07:42
전형적으로 보여주기식 삶을 사는 사람들로 보임. 미니멀 라이프를 주장하는 책을 읽어봤는데 교조주의가 만연하고 자기네 삶의 방식에 대한 확고한 의지나 깊은 성찰은 보이지 않음. 얕은 지식과 덜익은 성찰로 왜 굳이 남들에게 자기네 삶을 보여주려하는지 이해가 잘 안됨. 진정 행복하려면 정말 두분의 삶속으로 밀착하세요. 남들 의식하며 살지 마시고. 진득하게 그런 삶을 오래 실천하시고 또 책을 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