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스페인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스페인
  • 글 사진 우근철 기자
  • 승인 2017.03.12 0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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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타닥 리듬을 맞추는 흥겨움이 내게 묻는다

잠시 눈을 감고 떠올려본다
이런 분위기

바로 옆에선 늙은 할아버지가
차 한잔을 마시며 아침 인사를 하고

귀에 꽂은 이어폰에선
잔잔한 목소리가 거슬리지 않게
속삭이는 정도

방금 주문한 바삭한 토스트와
따끈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 나오면 더할 나위 없다

음, 여기는 아마 스페인의 어느 작은 마을

때마침 성당에서 종소리가 댕댕 거리며 울려 퍼지고
첨탑 안 비둘기 떼가
파다닥 하며 하늘 위를 날아갔으면 좋겠다
하늘은 청량한 솜구름을 품고
커피숍은 텅스텐 조명의 누런 분위기

노트에 끄적끄적 일기를 쓰든, 낙서를 하든,
그건 그닥 중요하지 않다

오늘은 뭐를 할까 잠시 생각하다
다시 광장을 바라보며 시선을 멈추겠지

하나, 둘 사람들이 커피숍에 들어차며
시끌시끌 해져도 상관없다
어차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말을 쏟아 낼테니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고
아무도 내가 거기 있는지 모를 정도로
그냥 그렇게 보내고 싶은 하루

바람처럼 자유를 품은 날

분주히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에서

어설픈 가락의
반주가 흘렀다

뻔한 거리의 악사
흔한 멜로디 가락

근데도 사람들이
머물며 지켜보는 거다
노래 3곡이 연달아 끝날 때까지

누군가는 박수를 쳤고
누군가는 공연의 답례로
꽤나 큰 돈을 모자에 넣어줬다
유별나게 연주를 잘 한 것도 아닌데
격한 반응에 궁금해서 살펴보니

그 분 장님이었다
전혀 앞을 못 보는 분

송공송골 맺힌 땀방울과
타닥타닥 리듬을 맞추는 흥겨움이
그제서야 내게 묻는다

“너는 얼마나 많은 핑계를 둘러대냐?
너가 하고 싶은 일을 안 하기 위해서”

아름다운 풍경에 취할 줄 알고
흥겨운 노래에 들썩일 줄 알고

모든 이와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쉬어가기와 치열하기를 적절히 섞는

언제나 심장이 뛰는 쪽을 택하고
감사함과 설렘으로 풍요로운

옅은 미소에 깊이가 있고
걸음걸이에는 여유가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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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에 태어난 와인도
가격 차이가 천차만별이다

간혹, 더 젊은 와인임에도
훨씬 비싼 경우도 허다하다

적정한 온도와 습도
오크통, 코르크마개의 종류
보관장소와 외부환경 등등

깊은 향과 맛, 그리고 질감을
얻기 위해 무던히 버티는 와인처럼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신경 쓸 잡다한 고민과
지인과의 말다툼
오해와 반성
불투명한 내일과 작은 다짐

이것저것 우리네 또한,
숙성되는 과정 아닐까

머무는 사람과
머물다 가는 인연이니
인사는 미리 할게요

Good morning
Good afternoon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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